하코네는 도쿄에서 가까워 가볍게 하루 이틀 정도 쉬었다 오기 좋은 곳이다. 필자도 가족과 함께 오랫만에 휴식을 취할겸해 하코네의 호텔을 검색하던 중 느낌이 괜찮은 곳을 발견하게 됐다. 책과 어우러짐이 많은 이곳은 뭔가 느긋하고 따뜻해 보이면서, 편안하고도 세련돼 보이는 곳이라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지체 없이 예약을 하려는 순간, 중학생 이하는 이용할 수 없다는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이제 아이가 4살이니 그러면 우리 가족은 10년 정도는 지나야 이 곳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일단 <호텔앤레스토랑>의 독자들에게 먼저 소개하기로 한다.
출판업계의 위기에서 찾은 해법
일본 출판업계는 1996년을 정점으로 해마다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의 보급이 독서 인구를 줄어들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정도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2017년 출판 매체의 매출은 약 14조 원으로 10년 전인 2007 년에 비해 6조 원 정도 감소했다. 이처럼 책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고, 출판사, 출판 유통 중개업체, 그리고 서점도 매출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방에는 서점이 하나도 없는 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 유통 중개 회사인 닛판(日販)도 예외없이 매출 감소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일본에서는 서적을 제작하는 출판사와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 외에, 이 두 사이를 중개하는 ‘토리츠기(取次)’라고 불리는 중간 유통 업체가 있다. 이들 중간유통 업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출판사들은 서점에 책을 공급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닛판과 같은 출판 유통 중개 회사의 시장에서의 파워는 막강하다. 이는 아마존을 포함한 온라인 쇼핑몰도 예외는 아니다. 출판 유통 중개 업체는 출판사와 서점으로 부터 중개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출판 시장이 축소돼도 타격이 가장 적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책의 매출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줄어들자 안정적으로 여겨졌던 출판 유통 중개 업체들마저 경영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출판시장의 축소로 위기에 처한 닛판은 이 난관을 타개할 방법으로 2015년부터 3년 간의 중기 경영 계획을 세우고, 소비자들이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서점의 레노베이션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츠타야 서점의 성공을 모방해, 닛판이 거래하는 서점들의 공간 레노베이션을 추진하는 전문 부서를 설립했다. 즉 닛판은 레노베이션 전문 부서를 통해, 서점이 책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소비자들에게 책을 읽는 즐거움을 제안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 재창출되도록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닛판은 오랜 기간 동안 사원들을 위한 휴양 시설로 운영하던 하코네의 사원용 숙박시설을 책을 테마로 한 호텔로 새로 레노베이션하는 사업을 기획했고, 바로 이것이 하코네혼바코(箱根本箱)가 됐다.
책을 통해 영감을 얻는 ‘굿 디자인’
닛판은 레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 한 후, 잡지 ‘지유진(自遊人)’의 편집장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이와사 토오루(岩佐十良)에게 호텔 레노베이션의 디자인과 총괄을 부탁했다. 그는 니이가타(新潟) 온천 지역의 ‘사토야마 주조(里山十帖)’ 등 여러 호텔을 총괄한 실적을 갖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저명한 인사다. 이와사는 원래 이 시설이 출판 유통에 인연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자연스럽게 호텔의 테마를 ‘책’으로 잡았다. 그러면서 단순히 책을 진열해 두는 그저 그런 북 호텔이 아니라, 책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구상했다.
이러한 하코네혼바코의 공간 디자인은 2019년 ‘굿 디자인 어워드’에 선정됐다. 굿 디자인 어워드는 디자인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바꿔 보겠다는 사회활동의 하나로 1957년부터 시작됐는데, 하코네혼바코가 이 취지를 그대로 담았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 구상이 어떻게 구현됐는지는 하코네혼바코의 로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잘 알 수 있다. 하코네혼바코의 로비의 양쪽 벽에는 1층에서 2층에 걸쳐 ‘의·식·주·유·휴·지(衣·食·住·遊·休·知)’를 테마로 한 책들이 문고에 가득하고, 하드커버의 아름다운 비주얼 북까지 다양한 책들이 책장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책들은 모두 닛판의 사원이자 프로젝트의 대표 멤버인 소메야(染谷) 씨가 선별한 것이며, 수개월에 한번씩 전체적으로 교체된다. 소메야 씨는 출판 불황의 시대라지만 이곳에서만이라도 책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곳에 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반드시 만족할 만한 한 권의 책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북아트를 담아내다
하코네혼바코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책을 콘셉트로 하는 호텔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북아트를 호텔 내부에 담는 것이었다. 이는 하코네혼바코를 단순히 책을 많이 두는 공간이 아니라, 책의 매력을 다른 장르 즉 아트로 표현해 찾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메야 디렉터가 아트에는 문외한이라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호텔에 아트 작품을 전시한다면 큐레이터에게 의뢰하지만, 이와사와 소메야는 호텔의 느낌은 자신들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그 역할을 맡은 소메야는 구글에서 ‘Book Art’를 입력해 수많은 작품들을 매일매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인터넷 창을 열고 닫기를 반복한 끝에 어느날 한 작품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작품은 한쪽 벽면 가득 고서로 채워진 위에 페인트를 칠한 것으로,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러시아 출신의 아티스트 에카테리나 빠니카노봐(Ekaterina Panikanova)의 작품이었다. 그녀의 작품에 홀린 소메야는 서투른 영어로 편지를 보냈고, 에카테리나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바로 일본으로 날아왔다. 에카테리나는 하코네를 돌아보면서, 호텔과 하코네의 자연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담은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그 작품은 하코네혼바코의 레스토랑에 전시돼 고객들에게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하코네혼바코의 객실은 총 18개며, 각각 다른 이미지로 구성돼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인기 있는 객실은 노천탕이 있는 객실이다. 객실에서는 로비나 라운지 등 곳곳에 놓여 있는 책을 자유롭게 들고 가서 온천을 하고 책을 읽는 휴식을 보낼 수 있고, 온천을 하면서 하코네의 경치를 즐길 수도 있다. 에카테리나의 북아트 작품이 걸려있는 레스토랑의 식사 역시 호텔에서 즐길 수 있는 매력이다. 레스토랑에서는 ‘유기농 & 클렌징’을 테마로 한 이탈리안 요리와 카나가와(神奈川), 시즈오카(静岡)산 유기농 야채, 감귤 등을 사용한 로컬 요리가 제공된다.
하나에 집중하라
하코네혼바코가 갖는 의미는 ‘책’에 대해 집중했다는 점이다. 좋은 온천과 식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 부분을 굳이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직 책이라는 하나의 콘셉트를 얼마나 가치 있고, 느낌 있게 구현할 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호텔의 구상부터 운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에 맞춰 전개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굿 디자인 어워드에 하코네혼바코가 선정된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책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것을 진정한 북 호텔로 구현했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처럼 아이가 있는 경우 호텔을 이용할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이 역시 거꾸로 읽으면 하코네혼바코가 얼마나 책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호텔이 가지는 가치 있는 콘셉트 하나만을 제대로 구현해 내고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 호텔은 고객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호텔앤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