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대프리카’를 넘어 ‘서우디’ 등 수많은 패러디 명 조어를 남긴 최고의 폭염이었다. 2019년 올 여름은 어떠할까?
5월 중순부터 그 전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밤과 새벽이면 아직은 서늘하다. 레드 마시기도 그렇고, 화이트로 완전 유턴하기도 부담된다.
이럴 땐, 레드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레드가 제격이다. 성하의 레드, 시원한 레드, 바로 피노누아다~!
그런데, 뉴월드 피노는 좀 묵직하겠다. 그러니, 정갈한 프랑스 부르고뉴로 가자~!
천생연분, 부르고뉴 지역과 피노 & 샤르도네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과일은 많아도 포도처럼 완벽한 과일은 없다. 포도 중에서도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만큼 자연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품종도 드물다. 여기에 자연 조건까지 따라주면 더욱 완벽한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이다. 부르고뉴는 프랑스 중동부 지역에 위치한다. 대서양과 지중해로부터는 다소 떨어져 있기에 직접적인 혜택을 받지는 않는다. 그래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준 대륙성 기후 지역이다. 기후가 불순하기에 냉해와 우박, 강수량도 많다. 이런 곳에서 잘 자라줄 효자 품종은 드물다. 지난 1000년 간, 고르고 골라 마지막으로 남은 두 품종이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다. 과연 천생 연분이자 찰떡궁합이다. 오래 전, 바다였기에 해양 퇴적물이 쌓여 굳어진 석회암에 점토질이 적절히 분포돼 있어, 그 함유율에 따라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모자이크처럼 식재돼 있다.
부르고뉴 지방은 총 5개 와인 생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가장 북쪽이 샤블리 지역으로 기후가 서늘해 화이트 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두 번째가 꼬뜨 드 뉘 지역이고 세 번째가 꼬뜨 드 본느 지역으로, 이 둘을 합해 ‘꼬뜨 도르(Cote d’Or)’라 부른다. 부르고뉴 최고 품질의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나오는 곳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지역인 꼬뜨 샬로네즈(Cotes Chalonnaises)와 마꼬네 (Maconnais)가 그 남쪽으로 이어진다. 비교적 중저가에 준수한 피노와 샤르도네를 만날 수 있는 곳들이다.
황금의 언덕, 테루아 & 등급체계
영화 배우이자 와인 애호가인 쟈끄 뻬렝은 부르고뉴 와인을 일컬어 ‘신의 은총’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지방 와인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은총이 아니다. 머리 빠지게 공부해도 잘 암기가 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약 300km에 달하며, 그 사이에 수 백 개의 마을이 있고, 1000여 개의 작은 포도밭들이 융단처럼 덮고 있다. 소구역과 동네 이름, 포도밭 이름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 포도밭이 남북으로 흐르는 구릉의 남향, 남동향, 남서향 경사지에 빼곡히 조성돼 있다. 비가 잦으니 배수가 잘되는 경사지가 좋고, 일조량이 적으니 채광이 좋은 남향이 선호된다. 부르고뉴의 와인 등급은 4단계다. 33개의 단위 포도밭이 최상위인 ‘그랑크뤼(Grand Cru)’로 선정돼 있다. 680여 개의 일급 포도밭이 ‘프르미에 크뤼(Premier Cru)’로 그 다음 등급이다. 그 아래로 44개의 마을이 자기 이름의 등급을 가지며, 마지막으로 제일 기저에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단위가 존재한다. 필자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이 마을 이름과 포도밭 이름을 외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두 가지를 함께 외우는 기가 막힌 방법이 있다. 1847년에 쥬브레(Gevrey)라는 마을 사람들이 이 마을의 세계적인 그랑 크뤼 포도밭 ‘샹베르탱(Chambertin)’의 이름을 마을 이름 뒤에 더하도록 청원해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쥬브레 샹베르탱(Gevrey-Chambertin)’으로 불린다. 좀 더 기억하기 쉽고 멋진 이름이 된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가장 남쪽의 ‘샤싼뉴-몽하쉐(Chassagne-Montrachet)’까지 모두 11개의 마을이 이런 식으로 긴 와인 마을 이름을 가지게 됐다. 이것들만 암기해도 최소한 11개의 핵심 마을과 11개의 최고 포도밭 이름을 동시에 기억할 수 있게 된다.
240년 전통의 네고시앙 명가, 파트리아슈
파트리아슈 회사는 부르고뉴의 다양한 지역에서 다채로운 와인을 생산하는 네고시앙(égociant-Éleveur)이다. 부르고뉴 와인 산업의 중심지인 본느 시에 위치해 있다. 이 회사의 시작은 18세기 중반이다.
1772년 부유한 와인 상인 죠셉 부샤르(Joseph Bouchard)는 11년 전에 같이 창업했던 동업자가 죽자, 4년 전부터 관리인으로 고용했던 필리베르 파트리아슈(Philibert Patriarche)를 동업자로 받아 들여 ‘Bouchard&Patriarche’라는 회사를 차린다. 1780년 두 동업자는 각각 아들과 조카를 입사시키는데, 이 때 쟝 밥티스트 파트리아슈(Jean-Baptiste Patriarche)가 22세의 나이로 와인 산업에 입문한다. 이로 인해 사명은 다시 바뀌어 ‘Joseph Bouchard Père&Fils & Patriarche’가 됐다. 1785년 두 가문은 분리, 쟝 밥티스트는 ‘Patriarche Père&Fils’ 회사를 차려 독립하게 된다. 4년 뒤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본느 시 중심부에 위치한 17세기의 수도원 ‘Couvent des Visitandines’이 국가에 귀속돼 공매물로 나오자 쟝 밥티스트는 이 수도원을 매입, 회사의 본부로 삼게 된다.
1941년에는 앙드레 부아쏘(André Boisseaux)와 그의 아들 쟈끄(Jacques Boisseaux)가 파트리아슈를 구입한다. 2011년에는 보르도에 본부를 둔 세계적 와인 그룹 가스텔(Castel)이 파트리아슈의 가능성을 보고 구입하게 된다. 현재, 파트리아슈는 30여 종의 주옥같은 부르고뉴 레드와 화이트 와인 그리고 스파클링 크레망을 생산한다. 부르고뉴 크레망 생산자로서는 2번째로 큰 규모다.
파트리아슈 사의 본부인 17세기 수도원 건물은 1632년에 건립된 역사적, 건축학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니 본느 시를 방문한다면 꼭 가보는 것이 좋겠다. 매년 5만여 명의 방문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 6000평의 면적에 지하에는 5km에 달하는 셀러가 고색창연하다. 약 300만 병의 와인이 보관 숙성 중이란다. 파트리아슈 로고에 등장하는 수도사 동상이 구석에 숨어 있으니, 한 번 찾아 실물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다. 파트리아슈의 와인들은 철저하게 포도밭을 선정하고, 각 떼루아의 특성을 최대한 잘 살려내도록 와인을 양조한다. 강함을 추구하는 현대적 스타일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가뿐한 정통 피노와 샤르도네를 생산한다. 실제로 필자는 붉은 살색이 식욕을 돋우는 참치 뱃살을 떠 놓고 하룻밤 새 3종의 와인을 적당히 마셨는데도 속이 아주 편했다. 6월의 여름밤은 파트리아슈와 함께 보낼 것이다.
파트리아슈, 쥬브레 샹베르탱 Patriarche, Gevrey-Chambertin
쥬브레 샹베르탱~! 부르고뉴 지방의 피노누아 생산 마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다. 모레 생 드니, 샹볼 뮈지니, 본 로마네 마을과 함께 소위 ‘사대천왕’이라고 하는 최고 명성의 네 마을 중 하나다. 그 중 가장 강력한 힘이 있는 피노를 생산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28개의 프르미에 크뤼와 9개의 그랑크뤼 와인을 자랑한다. 재배 면적 435ha의 포도밭에서 매년 200만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토양은 이회암과 석회암 층위에 붉은 양토로 구성됐다. 쥬브레 샹베르탱 포도밭은 테루아의 차이와 INAO의 토지 평가 기준을 토대로 깔끔하게 3개 구역으로 나뉜다. 마을 동편과 북쪽에는 마을 단위 포도밭들이 있으며, 꼬뜨 도르 지방에서는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한다. 면적이 넓고 생산량이 많아서, 자칫 서운한 품질의 와인도 곧잘 만날 수 있다. 이 마을의 레드 와인은 지역에서 가장 풀 바디감을 갖추고 있으며 남성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꼬뜨 드 뉘의 그 어떤 마을보다도 힘차고 진한 맛을 낸다. 특별히 강한 색상과 진하고 깊은 풍미로 인해, ‘부르고뉴 피노의 왕(King of Burgundy)’이라는 별명을 가진다. 강렬한 힘과 장기 숙성력, 그리고 다른 마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유의 사냥감 냄새가 고유하다. 고급 쥬브레 샹베르탱 와인은 상대적으로 짙은 칼라, 강한 향, 힘세고 꽉 찬 느낌, 매력 있고 우아하다. 장기 숙성용으로 골격이 잘 잡혀 있다.
필자가 시음한 2014년 빈티지는 12.5%vol의 비교적 가벼운 바디감을 유지했으며, 그에 따라 프랑스 오크통에서 14개월 정도 숙성시켰다. 새 오크통의 비율은 30%만 사용했다. 선명하고 생생한 짙은 루비 색상에, 잘 익은 붉은 과일 향이 생생하게 나타났다. 까시스와 블랙 체리, 약간의 감초와 연한 후추향, 감초 풍미가 막 진화가 시작됐음을 알려 줬다. 가볍고도 칼칼한 타닌감과 둥근 미감이 높은 산도와 매혹적인 균형감을 선사하는 와인이다. 2007년 International Wine Challenge 콩쿠르에서 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Price 14만 원대
파트리아슈, 뉘 생 죠르쥬 Patriarche, Nuits-Saint-Georges
뉘 생 죠르쥬 마을은 꼬뜨 드 뉘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꽤 큰 마을에 해당한다. 그 면적이 넓어서 나머지 꼬뜨 드 뉘 전체를 합친 것에 육박하지만 특급 포도밭은 없는 까닭에 지명도가 떨어지는 편이나 상대적으로 품질은 뛰어나다.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꼬뜨 드 뉘 와인 지구의 중심 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가진 와인상이나 네고시앙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랑 크뤼는 없지만 총 41개의 빼어난 일급 와인을 생산한다. 생산량의 절반이 일급 와인인 셈이다. 면적이 넓어서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되는데, 북쪽으로 갈수록 부드럽고 화려하며 남쪽으로 갈수록 단단하고 힘찬 골격의 와인이 나온다. 전형적인 뉘 생 죠르쥬 스타일은 힘차고 강건한 남성적 스타일을 대변해 강한 과일 향과 견고한 타닌으로 진하고 힘 있는 와인이다.
시음한 2012 빈티지는 13%vol의 준수한 알코올에 어느 정도 숙성이 진행된 와인이었다. 프랑스 오크통에서 14개월 정도 숙성시켰으며, 새 오크통의 비율은 50%로 쥬브레 샹베르탱 와인보다 많이 사용했다. 살짝 벽돌색이 비치는 루비-갸빗 색상에 마음이 편해진다. 검붉은 베리 향과 자두 향이 지나가고, 뒤이어, 시골 농장의 자연스러운 동물 내음과 말린 건초 내음도 풍겨난다. 잘 숙성된 부르고뉴 정통 피노의 진화된 느낌이 잘 표현된 빈티지 와인이다. 숙성된 치즈나 갈비살 구이와 잘 어울렸다. Price 14만 원대
파트리아슈, 부르고뉴 피노누아 Patriarche, Bourgogne Pinot Noir
기라성 같은 와인들이 즐비한 부르고뉴 꼬뜨 드 뉘 지역의 피노 와인들은 각기 단위 포도밭 이름이나 마을 이름으로 시판되지만, 가장 기본적인 피노 와인은 부르고뉴라는 지방 단위 AOC 명칭으로 판매된다. 부르고뉴 전 지방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피노를 특별한 제한 없이 가볍게 모아서 양조한 와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지방 단위 와인을 마시며 그 해의 빈티지 특성을 평가하곤 한다. 북쪽부터 남쪽까지 다채로운 포도밭 동네의 날씨가 하나로 모여서 그 해의 기상 테루아를 특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가볍고 여리고 농축되지 않아 오히려 전반적인 빈티지 평가를 하기에 더욱 용이하다.
필자가 시음한 2016년 빈티지는 12.5%vol 알코올이었는데, 가장 무난하고 고유한 부르고뉴의 모습을 보여 줬다. 맑고 연한 루비색은 깊지 않은 산속의 샘물처럼 영롱했다. 그 샘물에서 솟아나는 한 모금의 물을 떠서 입안에 넣으니, 산골의 산딸기 풍미가 입안 가득하다. 더도 덜도 말고, 산딸기 풍미만 고즈넉이 즐기고 싶을 땐, 부르고뉴 지방 단위 피노만 한 것이 없다. 빈자의 역설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좀 복잡하지 않은가? 그래서 하루 종일 관광지를 쏘다니는 여행객들이 좋아하나보다. 전 세계 메리어트 호텔 체인과 공급 계약을 한 와인이란다. Price 5만 원대
파트리아슈, 샤블리 Patriarche, Chablis
부르고뉴에서 화이트 와인은 피노 누아 레드 와인에 가려 빛을 잃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지에서 볼 때, 피노 레드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이 샤르도네 화이트다. 편안하고도 오묘한 향, 높은 산미의 생동감에 세련된 질감, 우아한 밸런스 그리고 깔끔한 미네랄 터치를 보여 주는 샤르도네는 전 세계에서 부르고뉴 밖에 없다. 그 중 샤블리 지역은 부르고뉴의 가장 북쪽으로서, 대륙성 기후 특성이 명확하다. 포도가 익을 만한 충분한 햇빛이 요구돼 포도밭의 방향이 중요하다. 그 방향에 따라 특급 와인, 일급 와인, 일반 와인이 결정된다. 토질은 돌이 많은 석회 점토질 토양인데, 오래 전에 바다였던 터라 여러 해양 퇴적물 성분들이 샤블리 와인에 고유한 DNA를 부여한다. 전통적으로 연한 색상에 녹색 뉘앙스, 자극적이며 금속성 느낌의 솔직성, 단도직입적인 강한 산도가 특징이다. 최근에는 포도를 점점 더 늦게 완숙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유산 발효를 진행하고, 저온 침강법으로 주석산마저 제거해, 더욱 풍부하고 부드럽고 유연한 스타일의 샤블리를 생산한다.
필자가 시음한 2017년 빈티지는 오크통 숙성을 하지 않고 12개월 스틸 탱크 숙성으로 신선함을 유지시켰다. 추가로 12개월가량 병입 후 숙성을 진행해 안정적이며 균형 잡힌 미감을 선사했다. 반짝이는 노란색에 황금빛 뉘앙스가 가을 햇빛에 반사되는 은행나무 이파리들 같다. 레몬-라임 향과 함께 꿀 향이 강하게 올라오며, 높은 산도가 주는 산미의 발랄함이 즐거운 미감을 구성한다. 12.5%vol의 알코올이 주는 둥글둥글한 볼륨감도 멋진데 미네랄 특성도 뚜렷하게 나타나며 살짝 짭짤하고도 새큼한 피니시로 이어진다. 6월의 바닷가 음식들과 잘 어울리겠다.Price 6만 원대
손진호 / 중앙대학교 와인강좌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