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의 끝에는 겨울의 서곡이 존재한다. ‘싸늘함’이 ‘서늘함’을 대체할 11월에는 지난달 나바로 꼬레아스 아르헨티나 와인과 짝을 이룰 칠레의 와인을 찾아간다. 안데스 산맥을 서쪽으로 넘으면 광활한 태평양이 눈에 들어오며 그 사이의 좁은 밴드 같은 대지에 신대륙 최고의 포도밭들이 펼쳐져 있다. 칠레다. 강렬한 흙 내음과 진한 과일 향, 든든한 알코올과 탄탄한 구조감은 한 해를 정리하는 각오를 새롭게 해줄 것이다. 일곱 색깔 무지개 밴드, 칠레 와인 평균 폭 100km에 남북으로 약 5000km에 달하는 긴 영토를 가진 칠레~! 북으로는 아타카마 사막, 남으로는 빙하 지형, 서로는 드넓은 대양과 동으로는 6000m 급의 안데스 산맥이 병풍을 드리운 매우 특별한 지형을 가진 국가다. 칠레의 와인 생산 지역은 국토의 중간 부분인 센트럴 밸리에 집중돼 있으며, 북쪽의 아콩카과 밸리에서부터 남쪽의 비오비오 밸리까지 약 7개의 구역이 핵심산지를 구성한다. 연간 400mm 정도의 낮은 강수량과 2200시간 이상의 풍부한 일조량을 자랑하는 칠레는 세계적 수준의 와인을 생산하는 대국이다. 일찍이 그 가능성을 간파한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낮은 인건비, 높은
이젠 완연한 가을이다. 하늘이 맑고 높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 살짝 느껴지는 한기는 지난 여름의 열기에 대한 기억을 무색케 한다. 필자의 ‘명가의 와인’은 늘 계절을 따라가니... 서늘함은 따뜻함으로 궁합을 맞춰 본다. 10월은 남미로 가자. 높은 알코올과 진한 과일 향, 화사한 태양의 열기가 담긴 와인이다. 가버린 여름을 달래고, 다가올 수확의 시기를 축하하는 올 10월 바쿠스 축제는 아르헨티나 와인으로 선택해 본다. 잠 깨는 와인 생산 대국,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조국이여~!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애절한 선율로 기억되는 국가, 아르헨티나. 라틴어로 ‘은(Silver)’라는 뜻의 나라 이름과는 달리, 많은 경제적 위기를 거치고 있는 국가, 아르헨티나. 장엄한 이과수 폭포를 끼고 있는 관광 대국, 팜파스 대초원에서 수백 만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 축산 국 아르헨티나. 이런 다양한 이미지를 넘어 아르헨티나는 우리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세계 5위권의 당당한 와인 생산 대국으로 다가온다. 와인 역사도 오래됐다. 1554년 최초의 포도나무 묘목이 아르헨티나에 식재됐고, 이후 500여 년간 와인은 아르헨티나
2018년 여름, ‘대프리카’를 넘어 ‘서우디’ 등 수많은 패러디 명 조어를 남긴 최고의 폭염이었다. 2019년 올 여름은 어떠할까? 5월 중순부터 그 전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밤과 새벽이면 아직은 서늘하다. 레드 마시기도 그렇고, 화이트로 완전 유턴하기도 부담된다. 이럴 땐, 레드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레드가 제격이다. 성하의 레드, 시원한 레드, 바로 피노누아다~! 그런데, 뉴월드 피노는 좀 묵직하겠다. 그러니, 정갈한 프랑스 부르고뉴로 가자~! 천생연분, 부르고뉴 지역과 피노 & 샤르도네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과일은 많아도 포도처럼 완벽한 과일은 없다. 포도 중에서도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만큼 자연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품종도 드물다. 여기에 자연 조건까지 따라주면 더욱 완벽한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이다. 부르고뉴는 프랑스 중동부 지역에 위치한다. 대서양과 지중해로부터는 다소 떨어져 있기에 직접적인 혜택을 받지는 않는다. 그래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준 대륙성 기후 지역이다. 기후가 불순하기에 냉해와 우박, 강수량도 많다. 이런 곳에서 잘 자라줄 효자 품종은 드물다. 지난 1000년 간, 고르고 골라 마지막으로 남은 두 품
계절의 여왕 5월~! 왜 최고의 계절일까? 장미를 비롯한 모든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변덕스런 4월 날씨보다는 안정되고, 더운 여름으로 진입하는 6월로 가기 전의 5월이 기온도 가장 최적이라 그런 왕관을 씌워줬을까? 와인으로 본다면, 가장 안정되고 무난한 칠레 와인 격이다. 최근 칠레 와인 품질 상승 속도가 놀랍다. 레드 와인의 풍성한 과일 향과 화이트 와인의 화사한 꽃향기, 온화한 알코올과 매끄러운 바디와 타닌~! 그렇다, 5월에는 칠레로 가자~! 대서양을 건넌 까딸랑, 돈 미겔 뷰 1935년 스페인 카탈루냐(Cataluña) 지방 출신의 이민자 미겔 뷰 가르샤(Miguel Viu-García)와 두 아들 아구스틴(Agustín)과 미겔 뷰 마넨(Miguel Viu Manent)은 청운의 꿈을 품고 대서양을 건넜다. 그들은 칠레 수도 산티아고 근방에 양조장 보데가스 뷰(Bodegas Viu)를 설립했다. 그들은 포도를 구입해 양조해서 국내 시장에 자신들의 브랜드 ‘Vinos Viu’로 병입 판매했다. 아버지와 형과 함께 일하던 미겔 뷰 마넨은 1954년 산티아고의 한 양조장을 구입해 독립한다.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칠레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슬로건 “
4월이 되니, 들꽃도 만발하고 비로소 봄이 온 것 같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지만, 그래도 산으로 들로 유원지로 놀러 나갈 수 있다. 유원지에 가면 필수적인 놀이 시설이 공중 전차나 케이블카다. 하늘에 붕~떠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생경스러움이 최고다.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에는 와이너리에도 이런 시설이 있다. 그래서, 공중 트램이 있는 와인 명가 스털링이 이 달의 와인 명가로 뽑혔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보석, 나파 밸리~! ‘1976년 파리의 심판’으로 캘리포니아 와인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파 밸리(Napa Valley) 와인이다. 나파 밸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지점에 있는 좁은 밸리다. 남북으로 길이 45km, 평균 너비 5km 정도로 좁고 길다. 면적은 약 1만 8500ha며, 캘리포니아 전체 포도밭의 약 8%다. 캘리포니아 와인 총생산의 5%를 담당하나, 캘리포니아 와인 경제의 34%를 담당한다. 그만큼 고급 와인산지다. 양쪽이 산맥으로 막혀있는 나파 밸리는 태양이 내리쬐는 고온 건조한 낮과 서늘한 밤이 이어지는 최적의 기후조건으로 포도는 천천히 골고루 잘 익게 된다. 나파 밸리 안에서도 미세 기후는
1월에 글을 쓰고 2월 호에 올리니, 마치 신정을 쇠고 맞은 새해를, 구정(설)으로 한 번 더 맞는 느낌이다. 여전히 북극 추위는 맹위를 떨치는데, 지난 달의 아이스와인이 차가운 겨울 왕국 엘사 공주 이미지였다면, 이 달에 소개할 와인은 같은 겨울 왕국 공주지만 좀 더 마음이 순박하고 맑은 이미지의 동생 안나 공주를 닮은 와인이다. 바로 독일의 리슬링이다. 그래, 공주로 가자~! 공주 시리즈는 불패지 않은가?! 공주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공주가 사는 높은 산 정상의 멋진 성과 화려한 궁전이 있어야 하고, 왕이나 황제가 등장해야 한다. 여기에 딱 맞는 양조장이 있으니, 독일 최고의 와인 명가 ‘슐로스 요하니스베르크’다. 새해엔 정갈한 마음을 가지게 하소서~! 20여 년 와인을 마시면서 점차 레드 와인 일변도에서 스파클링 와인과 화이트 와인으로 취향이 변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현상일까? 특히 화이트 와인은 대부분의 음식과도 잘 맞아서 즐겨 마신다. 그러다 보니 보통 드라이 와인을 주로 챙기게 되는데, 겨울에 마시기에는 드라이 스타일이 좀 차갑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살포시 부드러운 감미의 화이트 와인인데, 이 분야의 독보적 명품
‘한 방에 훅~간다’는 농담스런 표현이 있다. 몇 번의 늦가을비와 싸늘한 북풍을 맞더니, 수은주가 10도 이하로 내려가고, 나무와 잎들이 바삐 서로 이별을 나누고 있다. 캠퍼스에 뒹구는 단풍잎과 은행잎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별을 맞이할 때, 슬픔을 보듬어 주고, 아픔을 승화시켜 주는 와인은 없을까? 그 때 머리에 떠오른 와인은? 바로 이탈리아 피에몬테 와인이었다. 그렇다. 쇠잔한 벽돌색 색상과 애잔한 부께, 부드러운 질감이 입안을 어루만지는 네비올로 와인은 시작 보다는 마감을 할 때 더욱 생각하는 와인이다. 그 완성체,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으로 나의 2018년을 마감하려 한다. 신이 조성한 완벽한 와인산지 랑게 이탈리아 북서부 프랑스와의 접경에 가장 프랑스적인 이탈리아, 피에몬테가 있다. 다분히 프랑스어를 연상시키는 ‘Piemonte’ 라는 말은 ‘산자락, 산기슭’ 이라는 뜻으로, 고담준봉의 알프스 산기슭에 위치한 이 지방 이름으로는 제격이다. 피에몬테 지방의 중앙부 남쪽 지역에는 따나로(Tanaro)강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200~500m의 낮은 구릉이 끝없이 이어지는 완벽한 와인 산지가 있으니, 이곳이 바로 랑게(Langhe)지역이다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온 산이 타는 듯하다. 우리나라 단풍도 멋있지만, 수년 전 이맘때 다녀온, 이탈리아 돌로미티(Dolomiti)산맥의 단풍이 생각난다. ‘작은 알프스’라고 부르는 돌로미티와 그 주변 산과 구릉지대에서 포도밭 풍경과 어울린 단풍은 또 다른 이국적 느낌을 선사했다. 그 때 그곳에서 단풍을 보며 마신 와인이 ‘프로세코(Prosecco)’라고 하는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그래서 이 달의 와인은 프로세코의 명가를 초대해봤다. 추운 겨울이 들이 닥치기 전, 부드러운 풍미의 스파클링으로 동장군으로 맞이해 보려는 나의 선택이기도 하다. 베네또 산골의 스파클링, 프로세코 이탈리아는 한반도처럼 길쭉한 반도인데, 지형도를 보면 국토 전역에 높은 산악지대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한 산괴가 그 유명한 알프스로, 알프스의 위용이 다소 완만해지는 산자락 그림같은 풍광 속에 아기자기한 포도밭이 곳곳에 숨어있다. 이 달 주제인 프로세코 와인은 이탈리아 북동부의 베네또 지방 북부 지역의 산골 산악 지형에서 생산된다. 해발 300m의 구릉에는 햇볕이 비스듬히 포도밭을 비추고, 일조량은 좋으나 기온이 서늘해 당도와 산도가 균형을 맞춘 포도가 생산되니, 잘 익은 과일
지금은 일년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며, 그 중 최고인 10월이다. 태어난 달이라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여름의 혹서와 겨울의 혹한도 아니고, 황사와 바람이 많은 봄도 아니고, 차분한 자연의 정취와 결실을 느끼는 가을이 좋은 것이다. 이런 가을에는 차가운 화이트도 무거운 레드 와인도 아닌 중간쯤의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는데, 마침 떠오른 와인이 부드러운 레드 스파클링인 람브루스코다. 그래서 이 계통에서 가장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한 양조장 와인을 소개하려 한다. 다행히 최근 이 와인이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했으니 이런 행운이 또 있으랴~!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과 람브루스코 와인 람브루스코 와인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찾아 갈 곳은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 지방이다. 이탈리아는 남북으로 기다란 국토를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눌 수 있는데, 북부와 중부의 경계 지대에 있는 지방이 에밀리아 로마냐다. 사실, 이 지방은 와인보다는 음악과 예술, 미식의 고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띠, 작곡가 베르디, 지휘자 토스카니니 등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미식 분야에서도 그 유명한 아체또 발사미
태어나서 처음 맞은 초유의 폭염~! 110여 년 만의 최고 기온을 갱신한 지난 여름 더위의 광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9월이지만 이대로 가을을 맞기엔 그래도 아쉬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읊조린다. “주여.. 마지막 남은 과일들이 익을 수 있도록.. 이틀만 더 남국의 태양을 허락하시어.. 짙은 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바로 그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이 프랑스 북부 론 산지다. 로마 제국의 숨결이 느껴지는 프랑스 남동부 론 지역은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와인 명산지다. 중앙 산악 지대(Massif Central)와 알프스 산맥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론 강이 흐르고, 그 가파른 경사 언덕에 심어진 포도나무는 역사 이상의 감동스러운 맛을 전해 준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발원해 프랑스 남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론 강은 800km 이상의 긴 강으로, 그 유역에 멋진 포도 산지를 빚어 놓았다. 가파른 경사지에 좁고 길게 형성된 북부 산지와 넓은 구릉지에 여유롭게 퍼져있는 남부 산지로 나뉜다. 북부 산지에는 험준한 비탈만큼이나 꼬장꼬장한 뚝심의 생산자들로 유명한데, 이 달의 손님은 30년 만에 론 최고의 생산자 반열에 오른 행복한 디오니소스
한 여름 밤의 버건디 랩소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밤만 되면 생각나는 와인이 있다. 도멘느 드 라 로마네 꽁띠의 ‘라 따슈’(Domaine de la Romanée-Conti, La Tâche)다. 연구소 앞의 테라스에서 시원하게 칠링해 마셨던 2006년의 여름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다. 부르고뉴의 정갈하고 시원한 드라이 피노는 그야말로 한여름의 와인이다. 더위에 노곤해진 정신을 번쩍 깨우는 산도와 감각적인 타닌, 새침한 피니시까지 온 몸의 감각을 깨우고 힐링시킨다. 프랑스 중동부의 부르고뉴 지방은 선선한 기후와 석회점토질 토양으로 피노누아와 샤르도네가 번성할 수 있는 최적의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수백 년간의 포도 재배, 와인 양조 전통이 있고 그 노하우를 대대로 물려받은 우직한 생산자들이 있다. 전통과 역사성, 자연과 떼루아라는 프랑스적인 관념이 가장 깊이 뿌리내려 있는 곳이 부르고뉴 지방이다. 이런 곳에서 이방인이 적응하고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달에 다룰 이 와인 회사가 더욱 빛을 발한다. 바로 미국인 알렉스 감발이 세운 메종 알렉스 감발 네고시앙 이야기다. 그는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한 경우다. 선대로부터 사업과
전 세계 레드 와인 생산자들의 모범이 되는 곳,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동경과 관심을 받는 곳, 자연과 빈티지의 끊임없는 도전과 평가를 받는 곳, 바로 프랑스 보르도(Bordeaux)다. 그 위대한 와인 산업 공간에 발을 디딘 한 메종(Maison)을 7월의 와인 명가로 골랐다. 보르도 와인 산업의 든든한 기둥, 비뇨블 두르뜨 12만ha의 포도밭을 가진 보르도는 세계 최대의 고급 와인 산지다. 8000여 개 이상의 샤또(Chateau)와 400여 개의 네고시앙(Negociant)이 보르도 와인 산업을 지탱하고 있다. 샤또는 일정한 농지와 건물을 가진 농장으로서 개별 가족 안에서 영농이 이뤄지고 있는 독립형 단위 와인 생산체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에 포도밭 관리와 와인 생산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 지역색이 뚜렷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또한 세대를 거듭하면서 생산 철학과 노하우를 전수해 가기에 샤또는 가장 전통적이며, 가장 ‘보르도스러운’ 생산 단위다. 네고시앙은 본래 와인 도매상으로부터 출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별 양조 시설을 갖추지 못한 포도 재배 농가의 포도를 구입해 자사의 양조 시설에서 생산하고 숙성시켜 병입하는 라인을 갖추게 됐다.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