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는 웅대하고 장엄한 규모의 랜드마크가 있거나 그 도시나 관광지 고유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두바이의 부르자 할리파, 시엠립의 앙코르와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우타르프라데시의 타지마할, 네바다주의 후버댐, 베이징의 자금성, 쿠알라룸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 모두 그 스토리도 풍부하지만, 그 거대한 스케일과 경이로움에 우선적으로 압도당한다. 이러한 랜드마크를 통해 해당 도시와 국가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으며 도시마케팅을 한결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다양한 스토리와 콘텐츠 보유한 도시 및 관광지
거대한 랜드마크가 없을지라도 다양한 스토리와 콘텐츠를 보유한 도시와 관광지 또한 관광객 유입에 유리한 고점을 차지할 수 있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은 그 규모에 있어서도 압도적이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화려한 검투 경기장을 상상하며, 그곳에서 펼쳐졌던 인간의 용기와 잔혹함,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벌어졌던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2000년에 개봉했던 할리우드 대작 ‘글래디에이터’로 시청자는 콜로세움에서의 시각적 경험을 넘어,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아름다움이 넘치는 아테네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풍부한 스토리를 보유한 도시다.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며 중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델로스 동맹을 결성, 그리스 해상 제국의 중심지로 떠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페리클레스 시대에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졌으며, 조각, 건축, 연극 등 다양한 예술을 꽃피웠고,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출했다. 동서양을 아우르며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많은 관심이 있는 그리스 신화의 신화적 유산도 오늘날의 아테네 건축물, 문학, 예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중심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비단 역사적 배경이나 신화를 보유한 도시가 아니더라도 대작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 또는 소설 등의 스토리를 가져와 유명해진 도시들도 많다. ‘반지의 제왕’의 주요 촬영지였던 뉴질랜드의 마타마타, 웰링턴, 퀸스타운은 반지의 제왕 팬들에게 성지와 같은 장소가 됐으며, 영화의 성공 이후 관광 명소로 발전해 많은 팬이 방문하고 있다. 2011년부터 방영이 시작돼, 2019년까지 연재된 HBO 대작 ‘왕좌의 게임’ 또한 수많은 팬은 거느리며 주요 촬영지는 관광 명소가 됐다. 특히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왕좌의 게임의 수도인 ‘킹스랜딩’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며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마을인 콜로디는 피노키오의 도시로 유명하다. 코로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중 하나인 <피노키오>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조각과 장식품으로 꾸며진 피노키오 공원이 있으며, 작은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다.
세계 3대 프로축구리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직접 영국 현지에서 실제로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싶어 한다. 그중에서도 축구 스토리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도시로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꼽을 수 있다. 맨체스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라는 두 세계적인 축구 클럽의 본거지로, 두 팀은 프리미어리그뿐 아니라 유럽 대항전에서도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 FC와 에버턴 FC의 고향으로, 두 팀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특히 리버풀 FC는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축구 팬들에게는 풍부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두 도시는 꼭 가봐야 할 성지로 볼 수 있다.
위의 도시들보다 글로벌 인지도나 방문객 숫자에 있어서는 다소 열세에 있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도 풍부한 역사 스토리와 흥미 있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K-컬처의 세계적 붐에 힘입어 이러한 스토리는 더욱 확산될 수 있다. 그 어느 도시보다도 역사적 스토리가 다채로운 곳으로 부여와 경주를 꼽을 수 있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의자왕과 3천 궁녀 이야기 등 백제의 멸망과 관련된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소산성, 낙화암 등 백제의 역사를 상징하는 유적지가 여럿 있는 부여는 백제의 흥망성쇠를 상징하는 중요한 도시다. 경주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해, 대릉원(천마총), 동궁과 월지, 포석정 등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있다.
역사적 사실과 스토리, 상징성 가져
도시들이 역사적 사실과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인공적인 스토리나 인위적 랜드마크보다 더욱 의미를 부여하기 쉽고,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속일 수도, 가공할 수도 없다. 아무리 새로운 건물을 짓고 축제를 만들어도 도시가 가진 오리진과 역사만큼은 흉내 내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인 가운데 이순신 장군이 활약했던 도시는 통영, 여수, 진주, 부산 등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충분히 관광객을 끌어당기기에 유리하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로서 해군을 이끌었던 곳으로 진남관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크다. 이에 여수는 구조적 손상을 복구하는 차원을 넘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장기간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전주한옥마을로 유명한 전주 또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스토리를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출생지로 이성계의 가문은 전주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유력 가문이었다. 그의 가문은 전주 지역에서 군사적,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면서 권력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태조 이성계의 위패는 한옥마을 내 위치한 경기전에 있다. 수원이 정조대왕의 숨결이 깃든 도시라면 청주는 세종대왕의 숨결이 깃든 도시다. 전주 또한 조선 왕조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를 담아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도시마케팅에 활용하고자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 스토리로 활용돼
꼭 역사적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스토리를 활용할 수 있다. 대전은 ‘성심당’을 필두로 빵을 콘텐츠화해 ‘대전 빵 축제’를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이 ‘빵의 도시’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대전이 과거 우리나라의 유통 중심지로, 한국 전쟁 이후 원조받은 밀가루가 대전을 통해 전국으로 유통됐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전에는 다양한 빵집들이 생겨났고, 더불어 대전의 빵 문화가 발전하게 됐다.
빵이라는 콘텐츠로 대전은 노잼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핵잼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프리카'로 유명한 대구는 오히려 역발상으로 마케팅을 진행해 유명하다. 하얗게 익어가는 계란프라이와 녹아내린 교통차단봉(라바콘) 조형물을 설치해 이목을 끌었고 폭염 속에 치맥 페스티벌을 꾸준히 개최해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열광하는 축제로 도약했다. 대구가 치킨의 도시이자 ‘교촌치킨’이 탄생한 도시라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이 축제가 시작됐다고 한다. 또한 폭염 속에 오히려 매운 음식들을 홍보한 역발상 마케팅이 적중했다.
도시 스토리의 힘, 관광객 및 MICE 유치에 큰 작용
이러한 스토리의 힘은 관광객 유치와 MICE 유치에 크게 작용한다. 장엄한 규모의 랜드마크가 있는 도시라면 무방하지만, 특별한 랜드마크나 오래된 역사적 유적물이 없는 도시에서는 스토리를 통해 도시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핀란드의 라플란드 지역은 산타클로스 마을로 유명하다. 서로가 산타클로스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도시는 많지만, 체계적인 마케팅과 산타클로스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제공함으로써, 라플란드는 산타클로스의 연결이 더욱 확립시켰다. 특히 광고, 영화, 책 등에서 라플란드가 산타클로스의 고향으로 자주 등장하며, 대중의 인식 속에서 라플란드가 산타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미국 시애틀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스타벅스와 아마존이 탄생한 도시라는 스토리를 가지고 많은 비즈니스맨과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도시로 자리 잡았다.
주요 MICE 도시들에 있어 주요 관광지나 스토리는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MICE의 특성상 경제적·산업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산업적 특성에 기반한 지역특화 MICE 육성과 함께 산업 관련 국제회의 및 학·협회 학술대회 유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다양한 관광콘텐츠와 더불어 산업적 스토리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울산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의 본사가 위치해 있으며,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산업의 중심지라는 포지셔닝으로 다양한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있다. 포항은 포스코 본사가 위치해 있는 우리나라 철강의 역사를 보여주는 도시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보유한 수원도 삼성전자 본사가 위치한 IT·반도체 산업의 메카라는 스토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관광·MICE 마케팅의 치트키, 스토리
관광·MICE 도시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스토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동상, 코펜하겐 앞바다의 인어공주 동상, 독일 라인강의 로렐라이 언덕, 이 셋은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고 있지만, 유럽의 3대 썰렁 명소로 꼽힐 정도로 보고 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해 허무하고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썰렁 명소를 사람들이 계속 찾게 되는 이유는 명소 그 자체보다는 그 안에 숨어 있는 ‘스토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힘은 강력하다. 웅장한 건축물과 스카이스크래퍼의 매력도 무시 못 하지만, 스토리와 함께 할 때 더욱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해리포터, 셜록홈즈, 윔블던의 테니스, 리버풀의 비틀스 등 수많은 콘텐츠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영국과 나폴레옹, 노트르담대성당, 물랑루즈 등의 스토리를 적극 활용하는 프랑스가 부러운 이유다. MICE 유치와 도시마케팅을 담당하는 마케터에 있어 스토리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할 치트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