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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 Bar

[손진호 교수의 명가의 와인] 비유 텔레그라프, 샤또뇌프-뒤-빠쁘(Piedlong, Telegramme & Pallieres)


장마가 끝났다. 눅눅한 장마 때는 건조함이 그리웠는데 폭염이 시작되니 장마가 그립기도 하다. 요즘의 무시무시한 더위는 시원한 맥주나 칠링된 스파클링으로 해결될 더위가 아니다. 이런 때는 ‘이열치열’이다. 아예 뜨거운 놈으로 마셔 줘야 한다. 섭씨 35도를 넘어서는 남프랑스의 열기가 고스란히 담긴 커다란 돌멩이들이 밤새도록 뜨끈뜨끈하게 포도밭을 달궈 탄생한 와인, 바로 샤또뇌프 뒤 빠쁘다.


교황의 와인, 와인의 교황 Vin de Pape, Pape des vins
14세기 초, 프랑스 남부 아비뇽(Avignon)에 교황청이 설립됐다. 아비뇽이 갑자기 유럽 종교의 중심지가 되자 수많은 가톨릭 지도자들과 순례자들이 몰려들었고 지역의 와인 소비는 급증했다. 역대 7명의 교황들은 와인 생산을 장려했고 포도밭은 확장됐다. 곧 인근에 있던 한 마을이 교황의 여름 별장으로 선정됐는데, 그곳은 와인의 품질로도 유명했다. 2대 아비뇽 교황 요한 22세는 아비뇽 북부 지역에서 온 와인도 즐겨 마셨는데, 이 일대 와인은 자연히 ‘교황의 와인’으로 알려지게 됐다.
1320년, 그는 조용하게 쉴 별장으로 이 지역에 성을 쌓았다. 후일, ‘샤또뇌프 뒤 빠쁘(Châteauneuf-du-Pape =  Pope's new castle)’라고 불리게 된 이 마을 이름은 교황청의 스토리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주변에 포도밭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와인을 생산해 왔던 엄격한 방법은 오랜 기간 변함없이 유지됐는데, 프랑스에서 AOC 제도가 마련될 때 그 초안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폐허만 남은 이 성은 샤또뇌프 뒤 빠쁘 마을과 와인의 상징이됐다.
이 지역 와인은 넉넉한 품성의 그라나슈(Grenache) 품종을 중심으로 수십 가지 포도 품종의 블렌딩 천국이다. 수많은 품종들을 기반으로 한 다채로운 스타일과 다양한 품질의 교향악, 이 와인이 샤또뇌프 뒤 빠쁘 와인이다. 한 잔 가득 따르니… 드넓은 광야Garrigue에 핀 이름 모를 풀꽃과 약초, 그 위를 불어오는 산들 바람, 달디 단 꽃향기와 올리브, 라벤더, 세이지 등 스파이시한 허브의 시원한 모든 느낌들이 몰려온다~! 이열치열, 내 전략은 성공한 듯하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보’ 같은 농장, 비유 텔레그라프
이 달의 주인공, 비유 텔레그라프 농장은 샤또뇌프 뒤 빠쁘 마을의 남동부에 위치해 있다. 마을에서도 몫 좋기로 소문난 ‘라 크로(La Crau)’ 언덕에 넓은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1891년 창립된 이래, 수대 째 이어오면서 고전적이고도 전통적인 생산 방법을 지키며 가족 기업을 이어 왔다. 현재, 농장을 경영하는 다니엘(Daniel)과 프레데릭(Frederic) 형제가 이 유명한 브루니에(Brunier) 가문의 5대 손이다.
그런데 농장의 이름이 좀 특이하다. 비유 텔레그라프는 프랑스어로 ‘오래된 전신기’라는 뜻이다. 사유는 이렇다. 농장은 마을에서는 비교적 높은 해발 고도 127m의 고지대 정상에 위치해 있다. 비유 텔레그라프의 초대인 앙리 브루니에(Henri Brunier)는 아들 이폴리뜨(Hippolyte Brunie)r에게 이 언덕 정상의 포도밭을 물려 줬고, 가족을 위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밭의 위치가 통신탑을 설치하기에도 가장 적합한 고지대였다. 실제로 1821년에 마르세이유(Marseille)와 파리를 잇는 전신탑을 이곳에 설치했다. 이 스토리를 기억하는 이폴리뜨의 아들 쥘(Jules)은 와인 사업을 확장하며 그들의 샤또뇌프 뒤 빠쁘 와인에 ‘비유 텔레그라프’라는 이름을 붙여 출시했고, 자연스럽게 농장 이름이 됐다.



아비뇽 교황청 시대부터 이어져 온 가톨릭의 ‘기쁜 소식(=복음)’
이 샤또뇌프 뒤 빠쁘 AOP 와인의 출발점이었다면, 1891년 브루니에 가문의 농장 설립 이래 5대에 걸친 농군의 손으로 대대로 고수해 온 비유 텔레그라프 와인의 품질은 또 다른 ‘복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와인 잔에 채워질 새로운 메시지를 기대하며 ‘전보’같은 이 와인을 연다.
남부 론 와인의 명가, 비뇨블 브루니에(V. BRUNIER) 비유 텔레그라프 본 농장은 약 60여 헥타르의 넓은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현재 화이트 2종과 레드 3종 등 총 5종의 샤또뇌프 뒤 빠쁘 AOP 와인을 생산한다. 양조는 전통 방법에 충실해 온도 조절 없이 자연 발효를 추구하며, 토착 효모만을 이용한다. 숙성이 오래된 커다란 오크통을 사용하는데,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이 농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샤또뇌프 뒤 빠쁘의 떼루아다. 태고적부터 떠내려 온 자갈들이 형성한 독특한 밭의 미네랄리티와 우아함 그리고 여러 품종의 블렌딩이 주는 복합미다. 그래서 오히려 방해가 될 오크통의 사용은 최소화 시킨다.
최근 브루니에 가문은 오랜 기간 쌓은 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꾸준히 와인 생산 지역과 포트폴리오를 늘렸다. 샤또뇌프 뒤 빠쁘AOP 지역에는 도멘느 뒤 비유 텔레그라프(Vieux Telegraphe) 이외에도 라 로께뜨(La Roquete)와 최근 독립된 삐에롱(Piedlong) 농장이 기대주다.
이 중 삐에롱 와인은 이번 달에 시음해 봤으니, 후반부의 시음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동쪽으로 수 십 킬로 떨어진 지공다스(Gigondas) 마을에는 ‘레 빨리에(Les Pallieres)’ 농장에서 지공다스 AOP 와인과 뱅 드 뻬이(Vin de Pays Vaucluse) 그리고 방뚜(Ventoux) 와인을 생산한다. 방뚜 AOP 와인의 이름은 ‘메가폰(Megaphone = 확성기)’ 인데, 이 역시 ‘전신=메시지’와 관련이 있는 단어다. 마지막으로, 놀랍게도 뜨거운 열사의 나라 중동의 레바논에도 진출해 ‘마싸야(Massaya)’라는 농장에서 6종의 레드, 화이트, 로제를 생산한다. 농장 이름 ‘마싸야’도 혹여 ‘메시지’라는 뜻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샤또뇌프 뒤 빠쁘, 삐에롱 Piedlong, Chateauneuf-du-Pape
샤또뇌프 뒤 빠쁘 와인은 유명한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책에 아주 잘 묘사돼 있다. 어린 아이들이 저녁이 오는 줄 모르고 즐겁게 뛰어 놀다가 갑자기 어둠이 내리자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한 아이가 홀로 남아 불안해한다.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나 아이에게 달콤한 사탕을 건네고, 아이는 사탕을 입에 물고 행복하게 돌아와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는다는 이야기로 소개돼 있는 와인이다. 그처럼 감미롭고,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는 와인이다.
이 와인은 샤또뇌프 뒤 빠쁘 AOP 중에서도 고도가 높은 삐에롱Piedlong Plateau 지구의 그르나슈 품종 90%와 삐냥Pignan 지구의 무르베드르 품종 10%를 블렌딩했다. 그라나슈는 70년 수령이며 무르베드르는 50년 수령의 고목나무들이다. 콘크리트조와 나무조에 나눠 발효시키고, 20개월간 프랑스 오크조 6000㎖ 통에서 숙성시켰다. 약 4만 병 정도 생산됐다.
마치 향신료를 듬뿍 친 양념 고기처럼, 육즙과 고기 내음 그리고 허브 뉘앙스가 강하다. 올리브와 후추, 블랙커런트에 달큼한 사탕 내음이 깃들여 있다. 입안에서는 걸쭉한 질감과 매끈한 타닌감, 풀바디의 무게감에 알코올의 넉넉함이 여유가 있다. 이름처럼 긴 여운이 1분 가량 이어진다. 가격 대비 샤또뇌프 뒤 빠쁘 AOP의 모든 특성이 살아 있는 멋진 와인이다.
Price : 14만 원 대



샤또뇌프 뒤 빠쁘, 텔레그람 Telegramme, Chateauneuf-du-Pape
이 회사의 메인 와인인 ‘라 크로La Crau’의 세컨드 와인으로서 30년 수령 정도의 어린 나무들에서 수확한 포도와 가장 늦게 익는 포도밭 포도로 생산했다. 보르도처럼 론 지방에서도 최근 세컨드 와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랑뱅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이니 바람직하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레이블 디자인도 아주 신선하다. 그랑뱅 와인의 레이블을 뒤집은 듯 반전시켜 하얗게 프린팅한 디자인이 의미심장하다. 그랑뱅의 페르소나(persona)인가? 그래서 이름도 ‘텔레그라프=전신기’로 친 ‘텔레그람= 전보’인가 보다~! 나무 수령만 어렸지 블렌딩 복합도는 그랑뱅 못지않다. 그라나슈 80%에 쉬라즈 10%, 무르베드르 6%, 생쏘 4%를 블렌딩했다. 양조장에서는 온도 통제된 양조통에서 25일간 침용 발효했으며, 스테인레스조에서 10개월 숙성, 3000L 프랑스 오크조에서 7개월 숙성시켰다. 약 11만 병이 생산됐다.
맛은 부드럽고 달큰한 과일향이 중심이다. 산딸기와 레드 커런트 잼, 말린 흙내음과 광야의 들풀 향도 좋다. 입에서도 우아하고 신선미가 넘치며 블랙베리와 커런트의 즙 풍미가 인상적이다. 미디엄 바디 와인으로서, ‘미니 비유 텔레그라프’로서 손색이 없다. C-d-P 협회에 특징적인 고유 병 문양도 잊지 않았다. 17℃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가뿐하게 즐기실 것을 권장한다. 고급 소시지 구이와 불고기 구이, 불닭 구이에 잘 어울린다.
Price : 10만 원 대


지공다스, 테라스 뒤 디아블 Terrasse du Diable, Gigondas
몽미라이 산맥의 발치에 자리잡은 지공다스 마을은 ‘리틀 샤또뇌프 뒤 빠쁘’ 격이다. 포도 품종의 구성도는 보다 심플하지만, 진흙 함량이 많은 밭에서 단단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더구나 이 와인은 ‘악마의 테라스Terrasse du Diable’ 출신 아닌가?! 포도밭이 해발 고도 350m 정도로 삼림에 둘러싸여 있는 엄폐된 곳이다. 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크고, 농축된 포도로 생산해 알코올 함량은 샤또뇌프 뒤 빠쁘와 같은 14.5%vol다. 몽미라이 산맥이 뒷산처럼 버티고 서 있어 찬바람을 막아 주는데다 경사가 급해 채광이 좋다. 또한 석회암 암반 받침에 얕은 상부토가 포도나무로 해금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해 가장 품질 좋은 지공다스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한다.
그라나슈 90%, 무르베드르 5%, 끌레레뜨 5%를 블렌딩했다. 청포도 품종이 화사함을 주며, 그라나슈의 무게감을 끌어 올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온도 통제된 양조통에서 25일간 침용 발효했으며, 6000㎖의 커다란 프랑스 오크조에서 20개월 숙성시켰다. 약 4만 병이 생산됐다.
고기 육질처럼 잘근잘근 씹히는 질감이 샤또뇌프 뒤 빠쁘와는 다르다. 좀 더 근육질이 보이며, 좀 더 긴장된 결이 느껴진다. 미네랄과 후추, 감초 향이 좋고, 황야스러움이 허브로 나타난다. 등심 스테이크나 양꼬치 구이에 좋을 듯하며, 1시간 정도의 브리딩 디캔팅을 권한다. 마시면서 감상할 레이블 디자인에 대해 한마디~! 레이블 왼편에 그려 넣은 악마들의 얼굴이 무서우면서도 익살스럽다. 코뿔소 같은 뿔을 머리 양쪽에 달고 있다.
Price : 10만 원 대


손진호
중앙대학교 와인강좌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sonwin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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