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좀 읽어 봤다 하는 사람들이 4월이 되면 곧잘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휘젓네..” T.S.엘리엇의 <황무지> 라는 시다. 지금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최대의 위험에 봉착해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감염과 공포가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3월 10일의 상황이지만, 이 잡지가 출간되는 4월 1일에는 제발 이 사태가 진정되길 기원한다.
그리하여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화사한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향긋한 라일락향이 온 동네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우리는 마스크 쓰지 않고 그 향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산지, 와인의 꽃밭~!
목련처럼 순수하고 라일락처럼 향긋한 그런 와인이 만들어지는 곳, 이 달에는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로 간다. 수도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난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달리면 부르고뉴의 최북단 샤블리(Chablis)가 나타나고, 다시 더 1시간 반을 달리면 부르고뉴의 최남단 마꽁 지구(Mâcon)에 도달한다. 고속도로를 세 시간 달리는 거리라 하니 꽤나 크게 느껴지겠지만, 샤블리 지구와 꼬뜨드뉘(Cote-de-Nuits) 지구 사이에는 꽤 큰 빈 지역이 존재하고 전체 와인 산지가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모양이라, 총 면적은 약 3만여 ha 이하다.
보르도 Bordeaux 와인 산지가 총 12만 ha 이상이니 보르도의 1/4 크기밖에 안 된다. 프랑스 중부 북위 47도 선상이라 다소 선선한 기후 지역으로, 부드러운 구릉이 낮게 깔리며 만들어낸 경사지에 그림 같은 포도밭들이 펼쳐져 있다. 석회 점토질 토양은 높은 산도와 적절한 몸집을 갖춘 클래식 스타일 와인을 만들어 준다. 이 곳에 뿌리박은 두 터줏대감 격 품종은 샤르도네와 피노누아다. 석회질이 상대적으로 많은 밭에는 샤르도네를, 점토질이 더 많은 밭에는 피노누아를 심어왔다. 중세 이후로 이 지역 수도원의 수도승들이 노동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포도 재배였고, 종교적 열정과 헌신으로 탄생한 것이 부르고뉴 와인이었다. 오늘날 그 전통을 잇는 많은 양조장들이 깔끔하고 정갈한 정통 드라이 샤르도네, 피노누아 와인을 생산한다. 부르고뉴에는 크게 두 가지 생산 주체가 존재한다.
소규모 포도 재배 농민들의 포도를 구입해 와인을 생산하는 대규모 기업형 양조장을 이른바 ‘네고시앙(Negociant)’이라 하고, 소규모 가족 사업으로 자체 양조장을 갖추고 자기네 포도로 직접 양조까지 마쳐서 자기 브랜드로 와인을 출시하는 ‘도멘느(Domaine)’ 양조장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부르고뉴 포도밭 면적이 작아서 생산량이 적은데도 세계적 수요는 엄청나다 보니 구매 가격이 매우 높게 형성돼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수입하기에는 작은 개인 양조장보다는 기업형 네고시앙 회사가 양과 가격을 맞추기에 유리하다. 더욱이 큰 네고시앙 회사에서는 부르고뉴 북부의 샤블리 와인부터 가장 남부의 마꼬네 와인까지 다채로운 포트폴리오를 맞출 수 있어 편리하다. 그 중 필자가 이 달에 소개할 와인 회사는 1850년 이래의 안정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뫄야르(Maison Moillard 한국명 ‘모알라’)사다.
170년 역사의 정통 부르고뉴 네고시앙, Maison Moillard
부르고뉴의 핵심 산지 꼬뜨드뉘 지구에 자리잡은 가장 큰 상업도시 뉘-생-조르쥬에 본부를 둔 메종 뫄야르는 자체 도멘느 와인과 네고시앙 와인들을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회사의 연보를 보면, 뫄야르 가문은 이미 프랑스대혁명 이전부터 포도 재배를 하고 있었다. 돋보이는 품질의 와인을 생산했던 뫄야르 집안의 와인은 명성이 높아, 주변에서 점점 와인의 수요가 늘어났다. 그러자 이 집안 와인 산업의 중흥자 격인 생포리앙 뫄야르(Symphorien Moillard) 씨는 주변 동료들의 포도나 와인을 구매해 양조, 숙성 후 병입하는 네고시앙 사업을 시작했다. 이 때가 1850년경으로 메종 뫄야르의 설립 연도가 된다. 올해로 170여 년이 된 와인 회사다. 마침, 이 무렵 파리-리용-마르세이유를 연결하는 PLM 기차 노선이 완성되고, 북유럽의 고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던 중, 1873년 생포리앙의 딸이 다른 양조장 자제인 모리스 토마(Maurice Thomas)와 결혼을 하게 된다. 사위가 들어옴과 함께 회사는 더욱 성장해, 건물을 증축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디종의 유명한 건축가 샤를르 스위스(Charles Suisse)의 설계로 1000여 개의 오크통을 저장할 수 있는 크기의 셀러를 짓게 됐다.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북부 벨기에에서 운용중인 와인 저장고가 폭격을 받아 모두 파손되는 불운도 겪었다. 1930년대의 세계 경제 공황 당시에는 어려움에 처한 동료 포도 농군들을 도와줬고, 이로써 회사는 ‘부르고뉴의 은행가(Banquier de la Bourgogne)’이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1940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침공한 독일군이 두 번째로 벨기에 창고를 털어 갔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회사는 다시 프랑스 본사의 지하 셀러를 증축했다. 1970년 뫄야르 사는 브랜드를 다변화해, 일반 보급용 ‘Moillard-Grivot’ 브랜드와 고급 레스토랑용 ‘뫄야르-그리보(Moillard-Grivot)’로 차별화했다. 현재 설립자 생포리앙의 5대손이 경영을 맡고 있으며, 2016년 회사는 프랑스 최대 와인그룹인 GCF에 인수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뫄야르 사는 약 20여 ha의 자사 소유 포도밭을 가지고 있는데, 포도밭 관리 담당 쟈끄 브리데이(Jacques Briday)의 관리 하에 모두 환경친화적 지속 가능 영농법을 구현하며, ‘Domaine Moillard’ 레이블로 출시한다. 도멘 와인의 양조는 보르도 양조대학을 졸업한 밥티스트 꼬로(Baptiste Corrot)가 담당한다. 이 외에도 북쪽의 샤블리에서 남쪽의 마꽁 지역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관리되는 계약 밭에서 생산되는 포도로는 ‘Maison Moillard’ 레이블로 출시한다. 거의 모든 원산지 명칭을 생산하니, 부르고뉴의 네고시앙 회사 중 이렇게 온전한 와인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드물다. 회사는 또한 뉘-생-조르쥬, 본느, 뫼르쏘 마을에 3개의 직영 와인숍을 운영한다. 와인 투어 가실 기회가 되면 이 곳들을 방문해서 시음도 하고 좋은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다.
샤블리 그랑크뤼, 부그로 Chablis Grand Cru, Bougros
발음도 예쁜 샤방샤방 샤블리~! 부르고뉴 지방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12세기에 시또 교단의 뽕티니 수도원(Pontigny)이 포도를 재배한 이래, 15세기 중엽에 부르고뉴 공국에 합병된 역사 때문에 부르고뉴 와인 지방으로 편입됐다. 오래 전에 바다였기에 지금도 이 곳의 포도밭에서는 조개껍질 화석이 많이 발견되며, 기본 토질은 석회성 이회토다. 이런 기후와 토질에서 최상의 표현을 내는 품종이 샤르도네다. 샤블리의 샤르도네는 연한 노란 색상에 녹색 뉘앙스가 선명하며, 꿀향과 복숭아, 레몬향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금속성 느낌의 솔직 담백한 입맛과 단도직입적인 산미가 인상적인 화이트 와인이다. 생산된 직후에는 산도가 높고 거친 느낌이 있지만 숙성되면서 섬세함과 복합미가 더해진다. 본 와인은 이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품질을 가지고 있는 그랑크뤼 밭 포도로 만든 것이다. 그랑크뤼 밭은 총 100ha 정도되는데, 이 중 ‘부그로’라는 이름의 밭이다. 약 12ha 정도 되는 작은 밭에서 가장 진하고 강건하고 활기찬 와인이 생산된다. 직접 마셔 보면 알겠지만, 화이트 와인 병치고는 매우 무거운 ‘Sommelier Bottle’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이 와인이 갖는 비중감의 표현이 되겠다. 발효 후 오크통에서 효모 침전물과 함께 10개월 숙성시켰다. 계절 전복버터구이와 시음했으며 풍미와 질감에서 완벽한 궁합을 보였다. 알코올은 13.5%vol로서 균형감이 뛰어났다. 아울러, 이 회사의 ‘샤블리 프르미에 크뤼(Chablis 1er Cru AOC)’는 최고의 일급 밭 포도를 블렌딩해 만들었으며, 역시 효모 앙금위에서 숙성시켰다. 기본급은 일반 ‘샤블리 꼬끼야주(Chablis Coquillage AOC)’로서, 이 지역의 대표 토질인 이회토에서 발견되는 조개 관련 이름을 갖고 있다. 2018년 브뤼셀 콩쿠르에서 은상을, 2019년 베를인 와인 트로피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Price 25만 원대
마꽁-빌라쥬 Mâcon-Village
샤블리가 가장 북쪽 부르고뉴 지역이라면, 마꽁은 가장 남쪽 부르고뉴다. 혹시 보졸레를 아시는 분은 그 보졸레 지방 바로 위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부르고뉴 안의 5개 지역 중 가장 넓은 지역이라 생산량도 적절히 많은데, 기후는 아주 좋아, 품질 대비 가격이 매우 좋은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다. 옛날 옛적 이곳에 살던 원시인들이 생활하던 흔적도 있고 큰 산과 언덕들 사이로 포도밭이 매우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곳이라 관광으로 가도 정말 멋진 곳이다. 본 와인의 명칭은 Mâcon-Villages인데,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단일 마을이 아니라 인근 26개 마을에서 생산되는 지역 단위 AOC다. 색상은 샤블리 와인보다 좀 더 깊은 노란색을 띠고 있으며, 오렌지, 레몬, 잘 익은 복숭아와 메론 향이 좋다. 들에 핀 흰꽃 향기가 작은 잔 안에 가득 담겨 있다. 봄철 라일락 꽃필 때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부드러운 산미와 적절한 알코올의 무게감, 품질을 담보하는 미디엄 보디 비중감도 완벽하다. 마시고 나서 가격을 말해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란다. 모시조개를 넣은 봉골레나 해산물 파스타와 잘 어울렸다. 이 지역 인근의 또 다른 화이트 와인이 있어서 더불어 비교 시음을 해봤다. ‘생 베랑(Saint-Véran AOC)’ 와인이다. 이회토에 칼슘이 많은 석회암 층이 깊은 곳이다.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고 스테인레스조에서 깔끔하게 양조했다. 부르고뉴의 표준 샤르도네 화이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황금빛 칼라, 노란색 과일향, 흰꽃 향기, 버터와 메론 뉘앙스 그리고 높은 산미가 이어진다. 집에서 만든 부추와 해물전하고 잘 어울리는 수수하면서도 안정적인 화이트 와인으로 추천한다.
Price 4만 원대
즈브레-샹베르탱, 보 베르쌍 Gevrey-Chambertin, ‘Beau Versant’
샤블리 지역과 마꽁 지역이 화이트 와인의 성지라면, 레드 와인의 성지는 꼬뜨-드-뉘 지역이다. 이 곳에서도 가장 알짜배기 노른자위 네 마을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힘차고 견실한 피노누아 레드 와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곳이 즈브레-샹베르탱 마을이다. 약 7세기부터 수도원 수도승들이 만들어낸 포도밭 구획을 지금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당시부터 유명한 그랑크뤼 밭 이름이 샹베르탱이다. 그래서 즈브레 마을 이름 뒤에 샹베르탱 이라는 포도밭 이름을 함께 붙여 마을 이름이 다시 정해졌다. 이 와인의 뀌베명은 ‘보 베르쌍(Beau Bersant=Beautiful Slope)’이다. 경사가 아주 멋지게 내려오는 완경사 포도밭 포도로 생산했단다. 경사진 밭은 배수가 잘되며 채광 효과가 놓아서 품질 좋은 포도가 생산된다. 당연히 피노누아 100%며, 피노의 상큼한 베리향을 살리기 위해 약 10일 정도 초저온에서 저온침용과정을 거쳤다. 만들어진 와인은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켰는데, 새 오크가 주는 강렬한 효과보다는 중고 오크통을 적절히 섞음으로서 완만한 복합미를 추구한 흔적이 보인다. 새 오크통은 40%만 사용됐다. 짙은 루비색이 매우 맑고 투명하다. 산딸기와 블랙베리, 레드 커런트 향이 새큼한 풍미와 함께 주류를 형성하며, 약간의 볏짚단내음과 흙내음이 저변에 고여 있다. 알코올 도수는 13%vol 이며, 미디엄-풀보디 몸집에 높은 산도가 주는 강력한 힘이 내재돼 있는 숙성형 와인이다. 필자는 다진 고기가 들어간 미트 소스 볼로네제 파스타와 함께 했는데, 역시 좋았으며, 가벼운 안심 구이와도 잘 어울릴 것이다.
Price 19만 원대
뉘-생-조르쥬, 레 자르지야 Nuits-Saint-Georges, ‘Les Argillats’
뉘-생-조르쥬 시는 꼬뜨-드-뉘 지구 와인 산업의 중심지다. 이 도시는 소위 가장 뛰어난 4대 마을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도시 뒷 산에 자리잡은 포도밭들은 오랜 명성을 갖고 있는 숨겨진 보물들이 많다. 더구나 이 도시는 뫄야르 메종이 위치한 곳이라 더욱 신경을 써서 양조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와인은 가격 대비 품질이 아주 우수한 피노 와인인 셈이다. 이 와인의 브랜드 명을 보면 ‘레 자르지야(Les Argillats=Clay)’ 라고 적혀 있는데, 아마도 이 포도가 생산된 밭은 점토질 성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밭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점토의 함량이 높으면 단단하고 힘찬 피노 와인이 만들어진다. 양조된 와인은 30%만 새 오크통을 사용해서 12개월 정도 숙성시켰다. 선명하고 뚜렷한 보랏빛 뉘앙스가 멋진 루비 색조를 보인다. 산딸기와 블루베리, 체리, 자두 향이 특징적이며, 흙내음도 말미에 등장하며 피스타치오를 연상시키는 견과류 향도 매혹적이다. 부드러운 흰 후추 향이 살짝살짝 풍겨 나오고 미감의 찰진 몸집과 가벼운 타닌감이 13%vol의 알코올과 좋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함께 한 음식은 아파트 베란다 그릴에서 구운 바비큐 소시지 구이와 함께 했다. 독일 흰 소시지 구이가 참 잘 어울렸으며, 허브를 묻혀 구운 돼지 목살도 기름기가 많지 않아 적절했다. 마지막에는 이 회사의 가장 기본급 피노를 열었다. ‘부르고뉴 피노누아 르 뒤쉐(Bourgogne, Pinot Noir, Le Duché)’다. 기본급인데도 오크통에서 10개월을 숙성시킨 공력이 돋보이는 와인이다. 아무래도 음식 술자리의 마지막은 가벼운 와인으로 마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Price 17만 원대
손진호 / 중앙대학교 와인강좌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