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지막으로 떠오를 와인의 자존심! 3000년 와인 역사를 자랑하는 지중해 와인 세계에서 가장 덜 알려진 나라 중 하나가 스페인이다. 스페인 역시 로마 점령기 이래의 오랜 와인 생산 전통이 있으나, 7세기부터 약 500년 동안 이슬람 지배와 뒤이은 정치 불안으로 인해 와인으로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다. 현재도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나 뻬스께라(Pesquera), 또레스(Torres) 등 세계적 명성의 와인 생산자들이 있지만, 다수의 벌크 와인 생산자들에 가려 고급 생산자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와인의 역사에 있어 프랑스가 이미 17세기부터, 이탈리아가 20세기 후반부터 화려하게 부활했다면, 이제 21세기는 스페인이 용트림을 할 차례가 아닐까? 이미 스페인 와인은 2005~2008년 세계적인 와인 평가 잡지들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바 있다. 우리도 이제 스페인 와인을 글라스에 채워 보자!
무리에따, 스페인 와인의 자존심 리오하를 탄생시키다
프랑스에 보르도(Bordeaux)가 있고, 이탈리아에 끼안띠(Chianti)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리오하(Rioja)가 있다. 리오하는 스페인 북부 국경인 피레네산맥에서 멀지 않다. 스페인보단 프랑스에 가깝다는 말이다. 1860년대 ‘필록세라(Phylloxera)’ 질병이 프랑스 전역의 포도밭을 강타하자, 프랑스의 포도상들은 포도주를 구하러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찾았다. 이리하여, 북부에 위치한 리오하 지역은 프랑스의 포도 재배, 양조 기술이 이전됨으로써, 스페인 와인 르네상스의 최첨병이 됐다. 리오하 지역 와인 생산의 역사는 로마가 이 지역을 정복했던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지역 포도밭의 팽창은 대략 10세기 정도부터다. 이 시기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따라 북유럽의 순례자들이 성당을 참배하러 다닐 때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와인 생산지로서의 부활은 19세기 중반부터다. 1852년 마르께스 데 무리에타(Marqués de Murrieta)가 리오하에 첫 포도밭을 개척한 것이다. 필록세라 사태로 스페인이 프랑스의 관심과 영향을 받기 이전이다. 자생적으로 탄생한 리오하 지역의 첫 와이너리,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 양조장이 이 달의 명가다.
샤또 와인의 콘셉트,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 양조장의 설립은 리오하 와인의 기원과도 연결된다. 이는 무리에따 양조장이 리오하 와인을 만든 첫 생산자 중 하나이며, 해외로 수출한 첫 양조장이기 때문이다. 창립자 루시아노 데 무리에따(Luciano de Murrieta)는 리오하 와인을 세계화한 공로로 사보이의 아마데오(Amadeo)왕으로부터 후작 마르께스(Marqués)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루시아노는 보르도를 여행하고 그곳에서 와인 기술을 연마해, 스페인에 들여왔다. 아직까지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던 리오하 지역과는 달리 보르도에서는 이미 그랑크뤼 와인들이 생산됐으며, 장기 보관이 가능한 힘차고도 섬세한 고급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귀국해 이가이성(Ygay Castle)을 짓고 이가이 농장(Ygay Estate)을 세웠다. 그가 프랑스에서 봤던 보르도 ‘샤또(Château)’의 콘셉트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포도밭을 울타리 식으로 낮게 가꾸는 프랑스식 귀요 가지치기 방식을 도입했으며 품질을 높이기 위해 그루 당 수확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스페인 와인의 근대화에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 포도원의 공헌이 지대했다. 그로부터 130년 후, 1983년 크레셀 백작(Count of Creixell)인, 비센떼 세브리안 사가리가(Vicente Cebrián Sagarriga)가 무리에따 양조장을 인수했다. 첫 손바뀜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양조장을 현대화시키고 기업적 소명을 가지고 무리에따의 유업을 계승했다. 그가 서거하자, 장남 비센떼 달마우(Vicente Dalmau Cebrián-Sagarriga) 크레셀 백작이 그의 여동생 크리스티나(Cristina)와 함께 경영을 이어받았다.
전통과 현대성의 절묘한 조화,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
6만 여 헥타르의 생산 면적을 가진 리오하 지역은 3개의 소구역으로 나뉘는데, 그중에서 밸리의 상류 지대에 위치한 곳이 리오하 알타(Rioja Alta)지역이다. 이 지역은 최고 최대 생산지역이다. 마르께스데 무리에따 양조장의 포도밭은 알타 구역에 있다. 이가이 농장은 해발 고도가 350~480m이며, 석회점토질의 토양과 자갈이 풍부한 표피를 가진다. 지역의 전통 품종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 마쑤엘로(Mazuelo), 가르나챠(Garnacha), 그라시아노(Graciano)와 청포도인 비우라(Viura)를 재배한다. 와인은 총 6종의 리오하 와인을 생산한다. ‘까스띠요 이가이(CastilloYgay)’ 브랜드로 출시되는 그란 레세르바 에스페시알 와인이 가장 뛰어난 와인이며, 레드와 화이트 두 타입으로 특별히 좋은 해에만 생산된다. 특히 화이트 와인의 1986년 빈티지는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보케이트 잡지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스페인 화이트 와인으로서는 사상 최초의 만점 기록이었다. 다음으로는 새로운 가문이 인수한 후 새로운 현대적 방법을 가미한 리오하 와인의 대명사가 된 ‘달마우 리오하(Dalmau)’가 매우 독특한 이미지로 무리에따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시켰다. 그 아래 일반 대중급 와인으로는 ‘리오하 레세르바’ 의 레드 및 화이트가 있다. 특히 화이트 리오하는 카페야니아 싱글 빈야드 와인으로서, 이 지역 토착 품종인 비우라 종의 특성과 가능성을 한껏 살린 와인으로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 양조장은 ‘Best of 2015 Awards’에서 ‘BestWinery of the year’ 상을 수여받았으며, 이어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개최된 세계 대회에서 ‘The Best Winery in the world’ 상을 받았다. 21세기 스페인 와인의 중흥을 이끌 맏형으로서의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 양조장의 역할은 매우 지대하다. 전통을 승계하고 현대적 감각을 입힌 무리에따 와인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하며, 한국 시장에 진출한 무리에따의 와인 중에서 핵심 3종을 소개한다.
리오하 블랑코 레세르바, 까페야니아 Rioja, Capellanía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에 수입되는 리오하 와인의 95%는 레드 와인이기에, 리오하는 보르도 메독의 Medoc AOP 와인처럼 레드 와인만 있다고 속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도 멋진, 너무나 멋진 화이트 와인이 생산된다. 이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된 품종은 역시 고유 품종인 비우라(Viura)이다. 100% 단품종 와인이다. 이가이 농장의 포도밭 중, 중심부 하단에 위치한 100여 년 수령의 까페야니아(Capellanía) 단일 포도밭 와인이다. 가볍게 한번 터트린 포도주스는 껍질과 함께 저온에서 잠시 침용 과정을 거쳤다가, 곧 껍질을 제거한 맑은 주스로 3주 간의 긴 저온 발효과정을 거쳤다. 강한 구조와 풍미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18개월 새 프랑스 오크통에서 숙성시켰으며, 병입 후에도 1년간 안정을 취했다.
시음한 와인은 2010년 빈티지였는데, 7년이 지난 안정적인 샤프란급 진한 노란 색상이 매혹적이었다. 잔에서는 잘 익은 살구와 복숭아의 농밀한 과즙 향과 겨자와 올리브유의 스파이시한 미네랄 특성이 살아 있고, 자몽과 샤프란의 쌉싸래한 풍미도 개성의 중요한 한 축을 이뤘다. 적절한 산미와 풍부한 알코올 파워, 1분 이상 이어지는 긴 피니쉬의 여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웬만한 뫼르쏘(Meursault)급 와인으로, 프랑스 화이트 와인 메이커들이 경계해야 할 0순위 화이트 와인이다. 89,000병 정도 생산되어 한정 수량이니, 발견 즉시 구입하여야 할 것~! (Price : 8만 원대)
리오하, 레세르바 Rioja, Reserva
스페인 와인은 다른 와인 선진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는 없는 독특한 규정을 하나 갖고 있다. 와인을 일정 기간 특별한 조건하에 숙성시키도록 유도하는 숙성 등급이 그것이다. 이 규정에 의하면, 숙성 기준을 크리안사, 레세르바, 그란 레세르바의 세 등급으로 나눈다. 이 중, 이 와인이 소속된 레세르바(Reserva)는 12개월 이상 오크통 숙성을 동반하여 총 36개월을 숙성시킨 후에 출시하는 와인이다. 따라서, 잘 익은 과일향과 함께 오크통에서 오는 바닐라, 토스트, 크리미한 풍미가 깃들여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완숙미가 느껴지는 스타일의 와인으로 탄생한다. 바로 이것이 고급 리오하 와인의 가장 중요한 감각 상의 특징을 보여 주는 스타일인데, 소위 ‘Classic Murrieta Signature Style’ 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역 고유 품종들을 블렌딩한 전통적 스타일로서, 300 헥타르의 이가이 농장 포도로 생산하였다.
시음한 2012년 빈티지 리오하 레세르바는 템프라니요 77%, 가르나챠 10%, 그라시아노 8%, 그리고 마쑤엘로 5%가 블렌딩됐다. 8일간의 발효 과정 중에 다양한 침용 기법(르몽타쥬, 삐자쥬)을 사용해 짙은 색상과 껍질의 풍미를 살렸다. 그리고 껍질 지게미를 짜서 나온 프레스 와인을 일부 첨가하면서, 타닌과 구조를 보강했다. 20개월 미국 오크통에서 숙성시켰는데, 그중 최소 8개월은 새 오크통을 사용했다니, 테이스팅에서 보이는 은은한 코코넛 풍미의 원인이 되겠다. 병입한 후에도 1년간 안정을 취한 후 출시됐다. 20분 정도의 디캔터 브리딩을 거친 레세르바 와인은 부드러운 갸닛 색상을 보이며, 잘 익은 과일향에 바닐라, 계피, 후추와 커피 그리고 볏짚단과 시골 농장 마당의 소박한 풍취가 담겨 있다. 빳빳한 타닌이 쇠잔해질 무렵, 나타나는 후속 산미도 일품이며, 무엇보다 과하지 않은 알코올과 바디감이 전형적인 유럽형 스타일이라 맘에 든다. 점점 더워지는 여름밤의 이른 바비큐 파티에 최적이다. Price : 8만 원대
리오하, 달마우 Rioja, Dalmau
‘달마우’는 새로운 소유주 비센떼 달마우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으로서,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 양조장이 추구하는 리오하 와인의 현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포도는 이가이 농장의 핵심 포도밭인 까나하스(Canajas) 단일 포도밭의 포도만 선별했다. 이 포도밭에는 60여 년생 이상의 고목들이 심어져 있으며, 해발 465m 고지에 위치해있다. 토질은 주로 석회 점토질이며 표피에는 자갈이 많아, 포도에 당과 산의 밸런스를 잡아줘 세련된 와인을 만들게 해준다. 달마우는 장기 침용 과정과 프랑스 새 오크통 숙성을 통하여 한정량 생산된다. 품종으로 볼 때도 전통적인 템프라니오에 프랑스 보르도 원산의 까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했다. 생산법으로 볼 때, 리오하에서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미국 오크통이 아닌 프랑스 오크통을 사용했고, 새 오크통을 사용함으로써 현대적 스타일로의 변신을 추구한 와인이다.
필자가 시음한 2012년 달마우의 품종 블렌딩은 템프라니요 70%, 카베르네 소비뇽 15%, 그라시아노 15%이었다. 열매솎기를 해줘 수확량을 현격히 감소시켜 농축미를 추구했다. 9월 하순경에, 까베르네, 템프라니요, 그라시아노 순으로 손 수확했다. 각 품종은 각종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별도로 독립 양조했다. 11일간의 발효 기간에 템프라니요 종은 스테인레스 탱크에서, 까베르네 소비뇽은 커다란 오크조에서 발효시켰다. 이후, 모든 와인은 225리터들이 프랑스 새 오크통에서 약 19~20개월 숙성되며, 병입 후에도 1년간 추가 숙성시키고 출시한다. 와인 잔에 따르니, 짙은 암적색에 진보랏빛 뉘앙스가 선연하며, 야생 베리류 향, 바닐라, 미네랄, 프랑스 새 오크통에서 오는 세련된 크리미-토스트 향이 마구 뿜어 나온다. 1시간 정도 디캔터에 브리딩한 결과, 힘 있는 타닌과 견고한 구조감, 농축미와 동시에 우아한 세련미, 매끈한 바디와 단아한 균형감을 뽐낸다. 어울리는 음식으로는 양갈비 구이가 최고이며, 무난한 입맛으로는 채끝 등심을 추천한다. 알코올 14.5%vol으로서 24,000 병 한정 생산되며, 육중한 병과 문장이 조각된 병이 독특하다. 스페인 리오하 와인의 ‘아방 가르드(Avant-Garde)’ 적 작품으로서, 고유하고 특별한 개성을 가진 ‘A Modern-Boy Rioja’다~! Price : 17만 원대
구입정보 에노테카 코리아 & 에노테카 와인숍 (02-3442-3305)
손진호
중앙대학교 와인강좌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sonwine @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