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기온이 이미 섭씨 25도를 육박하니, 곧 다가올 성하의 계절과 뜨거운 태양이 조금씩 걱정되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 하면 생각나는 곳 중의 하나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이다. 4년 전 여름 이곳을 들렸다가 더위에 혼나 쫓기듯 돌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에어컨도 없이 시원한 것에 놀랐다. 그만큼 토스카나 지방의 돌집은 50cm 이상의 석회석 벽 두께가 단열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집이 바로 까스텔로 디 아마 농장이다.
순수 끼안티의 새로운 지평, 까스텔로 디 아마~!
1970년대 몇 개 가문이 파트너십을 맺어 설립된 까스텔로 디 아마 농장은 수백 개에 달하는 끼안띠 지역의 양조장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존재 중 하나이다. 1972년에 로마에서 내려온 세바스티 Sebasti 가문이 성을 구입했고, 1982년부터는 2대 오너인 로렌짜 Lorenza Sebasti의 남편인 천재적 재능의 와인메이커 마르꼬 팔란티 Marco Pallanti가 합류하면서, 까스텔로 디 아마의 명성은 최정상에 올라섰다. 마르꼬는 2003년에 권위 있는 이탈리아 와인가이드를 편찬하는 감베로 로쏘 협회로부터 ‘올해의 와인메이커 Winemaker of the Year’ 상을 받았다. 또한 2005년에는 같은 협회로부터 Castello di Ama 농장이 ‘올해의 최고 양조장 Best Winery of the Year’ 상을 받는 겹경사를 누렸다. 이러한 명성을 인정받아, 마르꼬는 2006년부터 2012년에 걸쳐 두 번이나 끼안띠 클라시꼬 협회 회장직을 역임하는 영예를 받아 지역 산업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Castello di Ama 오너 부부>
토스카나 끼안티 지구의 노른자위 지역인 ‘가이올레 Gaiole’ 마을의 해발 500m의 구릉성 언덕 정상에 위치한 아마 성은 중세 에트루스카 양식에 충실하게 지어졌다. 성과 농장 이름은 부락 이름인 Amma에서 유래됐으며, 옛 명칭인 Castello di Amma는 18세기 토스카나 지역을 다스렸던 합스부르크 로렌 Habsburg-Lorraine 가문의 영주 레오폴드 대공 Grand Duke Peter Leopold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당시 대공은 이 지역을 시찰하다가, 기품 있는 아마 성과 잘 조성된 포도밭 그리고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포도밭 관리에 썼던 관리자들의 열정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글을 남겼다.
아마 성은 소박한 외양과 품격 있는 내부 장식으로 전 세계 여러 패션 잡지의 커버를 장식하기도 한다. 아울러, 두 부부의 예술적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화려한 색감과 영감의 현대 미술 작품들이 성 안 곳곳에 설치돼 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디 아마&현대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수십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을 초빙, 유니크한 작품을 만들어 미래와 사회에 대한 책임과 봉사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특히 통유리 거울과 창문으로 구성된 매우 현대적인 ‘비트린 조망대’는 다니엘 부렌 Daniel Buren의 작품으로 언덕 아래의 광활한 토스카나 경관을 색다르게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 이우환 화백의 작품도 설치돼 있어, 아마 성을 찾는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을 뿌듯하게 해주고 있다. 그는 지하 셀러에 작품을 남겼다.
끼안티 싱글 빈야드 크뤼의 원조, 까스텔로 디 아마
까스텔로 디 아마 농장의 포도밭 80여 ㏊는 아마 부락 주변의 반경 3㎞ 이내에 소재해 있다. 해발 450~550m의 고도의 구릉지에 4개 밸리로 나뉘어져 다양한 특성을 표출하는 포도밭의 집합이다. 오래전 바다였던 이곳은 해양 퇴적물로 석회질 토양이 풍부해 높은 산도와 신선한 풍미를 간직한 복합미를 ‘디 아마’ 와인에 전해준다. 1972년 초창기에 구입한 주요 3개 포도밭이 핵심 크뤼 와인을 생산한다. ‘라 까주챠 Vigneto La Casuccia’, ‘벨라비스타 Vigneto Bellavista’, ‘산 로렌쪼San Lorenzo’ 등이 그것이다.
단일 포도밭 크뤼 핵심 와인은 공동 소유주인 부인 로렌짜와 함께 만든다. 매년 수확 전에 마르꼬는 단일 포도밭 크뤼 Single Vineyard Cru 포도를 평가하고 부인 로렌짜에게 묻는다. “내가 올해 이 와인을 만들 수 있을까? 작년보다 나아졌나?” 수확할 포도의 품질이 자신의 엄격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크뤼 와인을 만들지 않고, 그 포도는 일반 ‘끼안티 클라시코’ 생산에 사용된다. 최근 생산을 보면, 2001, 2004, 2006, 2007 그리고 2011 빈티지가 빛을 봤다. 2012년 포도는 품질이 적절하지 못해 과감하게 크뤼 생산을 포기했다. 이런 것은 정말 대단한 결단이다~!
오너 와인메이커 마르꼬는 끼안띠 와인의 균질성과 전통성을 강조하면서도, ‘까스텔로 디 아마 스타일’ 와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장기 숙성에 더욱 적합한 끼안띠 와인, 블렌딩이 아닌 단일 포도밭의 특성을 고유하게 살린 와인, 수율 Yield을 50%로 엄격하게 제한한 고품질 와인을 그는 추구해왔다. 그 결과 끼안띠 지역에서는 최초로 단일 포도밭 이름을 내세운 와인을 생산하면서, 묵직하고 중후한 끼안티의 이미지를 개척했다.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양조팀의 노력과 혜안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끼안티’라는 이름이 더욱 묵직해지는 듯하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매우 선호하는 끼안티 와인이다.
샤르도네 디 토스카나, 알 뽀지오(Al Poggio, Chardonnay di Toscana IGT)
끼안티 끌라시코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트레비아노와 말바지아 두 청포도 품종을 재배해, 작황이 좋으면 최상의 빈산또 디저트 와인을 생산해 왔다. 그런데 아마 농장의 석회질 토양과 높은 고도의 경사지 지형 덕에 멋진 드라이 화이트 와인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그 가능성을 엿본 아마 농장에서는 1982~1983년 사이에 밭의 몇 개 필지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가져온 샤르도네 클론으로 재식재했다. 이어서 1984년에는 영내의 ‘알 뽀지오 Al Poggio’ 지구에 4㏊의 샤르도네 밭을 추가로 조성했다. 그리고 적합한 수형 방식을 채택하면서 힘쓴 결과, 1899년을 첫 빈티지로 구조감이 뛰어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할 수 있었다.
2013년 빈티지 알 뽀지오는 샤르도네 70%에 피노 그리죠 30%가 블렌딩 됐다. 정교하고 우아한 멋진 미네랄 노트가 살아있는 샤르도네의 순수한 표현이 돋보인다. 복숭아와 살구, 사과향이 중앙을 받치며 까모마일과 세이지가 개성 있게 주변을 정리한다. 1시간 후에는 밀랍과 꿀, 아몬드의 무게감이 느껴지며, 차분하게 피니쉬를 마무리해 준다. 앞으로 2~3년은 더 숙성 할 수 있겠다. 오렌지 드레싱의 리코타 샐러드, 관자 요리, 생선찜 등과 잘 어울리겠다.
가격 7만 원대
토스카나, 일 끼우조(II Chiuso, Toscana IGT)
일 끼우조는 2009년에 첫 출시된 매우 모험적인 레드 와인이다. 포도밭 이름을 따서 명명된 기본급 레드 와인으로서, 지역 터줏대감 산죠베제에 생뚱맞게도 피노 누아를 블렌딩했다. 아마 농장에서는 1984년 산 로렌죠 골짜기의 경사지에 부르고뉴 피노 누아 클론 111, 114, 115를 약 4.15㏊ 정도 심었다. 석회질이 풍부한 알베레제 토양과 갈레스트로 토양에 잘 적응된 피노는 완벽하게 잘 익을 수 있었다. 산죠베제 포도는 비교적 어린 나무로부터 얻는다. 피노가 토스카나의 기후에 따라 매우 예민하게 변할 터이니, 아마도 블렌딩 비율은 매년 달라질 것이다. 필자가 테이스팅한 와인은 2014년 빈티지로 50:50 으로 섞은 것이다.
이 와인을 두고, 오너 로렌짜 Lorenza는 “심플 와인이 쉽지가 않다. 대략적인 타닌과 적절한 섬세함, 그래도 테루아를 느낄 수 있어야 하기에…. 심플 와인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솔직한 표현이다.
체리와 산딸기, 블루베리 풍미가 강하게 대두되며, 신선한 허브 뉘앙스가 생동감을 준다. 산죠베제의 타닌감과 피노의 상큼한 질감이 잘 조화를 이뤘다. 시간이 흐르며 볏짚단 노트와 석회질 흙의 드라이한 미네랄도 등장한다. 가뿐한 피니쉬는 감칠맛 나는 산딸기의 산미를 풍기며 음식과 기분 좋게 마무리된다. 부드럽고 매끈한 타닌을 가진 일 키우조는 초여름의 더운 날씨에 즐겁게 마실 수 있는데, 온도를 15℃로 낮춰 마시면 신선하고 아삭한 산미를 잘 느낄 수 있다.
가격 6만 원대
끼안티 끌라시코 그란 셀레찌오네, 산 로렌쪼(San Lorenzo,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이 와인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려면, 끼안티 와인의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 1872년에 베티노 리카솔리 남작에 의해 포도 블렌딩 비율이 공식화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끼안티 지역 레드 와인은 오랜 기간 침묵하다가, 1996년 끼안티 클라시코 구역이 독립되면서 품질 와인 생산의 기치를 높였다. 최근 2010년에는 드디어 ‘그란 셀레찌오네 Gran Selezione’ 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상층부에 만들었다. 이 등급 규정에 의하면 그란 셀레찌오네 와인은 농장 소유주가 직접 소유해 경작한 포도로부터 만들어야 하고, 최소 30개월을 숙성시켜야 하며, 엄격한 품질 검사를 추가적으로 받아야 한다. 까스텔로 디 아마의 마르코 판티니는 즉시 이 새로운 제도에 응답하며 기다렸다는 듯, 산 로렌쪼 와인을 출시했고 출시한 첫 빈티지 2010이 와인 스펙테이터지 ‘2014 Top 100’ 와인 리스트에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대박이었다~!
산 로렌쪼는 해발 고도 500m의 산지에 있는 작은 밸리 포도밭으로 석회질과 점토질 토양이 혼재된 20㏊의 단일 포도밭이다. 2010년 빈티지는 산죠베제 80%에 말바시아 네라 Malvasia Nera 10%, 메를로 10%가 블렌딩 됐다. 우아하고 생동감 있는 끼안티 레드 와인으로서 매우 댄디한 격식이 있어 보인다. 야생 체리향, 딸기향, 자두향, 장미향이 산뜻하다면, 그 이면에는 볏짚단과 광야에 핀 들풀 내음과 스모키향이 그란 셀레찌오네 고급 끼안티의 존재감을 알려 준다. 알코올 13%vol의 단아한 몸집에 매우 세련되게 다듬어진 이탈리아 레드 와인으로서 레이블에 그려져 있는 은빛 기사의 이미지가 절로 떠오른다. 10년 이상 숙성이 가능할 듯하며, 마시기 전 2시간 정도 미리 오픈해 두면 타닌이 피어올라 살포시 부풀어 오른다. 특별히 필자가 테이스팅한 2011년 빈티지 와인은 지나치게 덥지 않았던 쿨 빈티지 와인으로 5월의 포근한 저녁, 정원이 보이는 레스토랑의 창가 좌석에서 로즈마리 한 잎새를 얹어 나온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와 함께한다면 낭만적이겠다.
가격 14만 원대
구입정보 에노테카코리아 & 에노테카숍 (02-3442-3305)
손진호
중앙대학교 와인강좌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sonwine @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