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이들이 가치소비를 추구하면서 호텔에도 특별함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호텔 공급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더 이상 가성비만이 해결책은 아닌 때가 왔다. 이로 인해 호텔업계에서 계속해서 외치는 것이 차별화다. 알고 있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차별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호텔? 재미없어!
친구들과 호캉스를 가고 싶은 A씨. 유명 호텔예약 사이트에 접속해 특정 지역 호텔을 검색하니 페이지수가 몇 십 장을 훌쩍 넘어간다. 한 페이지에도 몇 개씩 있는 호텔들은 하나같이 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Wifi가 무료인데다가 피트니스와 실내수영장이 있다.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며 호텔 이름을 외다보면 애초에 호캉스를 왜 가고 싶어 했는지 이유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호캉스가 그렇게 좋다던데. 사람들은 어떤 핫 플레이스에서 호캉스를 즐기는 것일까?
최근 호텔로의 휴가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며 고객들의 호텔에 대한 눈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근사한 레스토랑만 있으면 호텔에서 우아한 분위기를 냈는데, 요즘 호텔을 즐기는 이들에게 인피니티풀과 루프탑 바가 없는 호텔은 시시한 호텔이다. 그래서 인피니티풀과 루프탑 바를 열심히 지었다. 그런데 웬걸? 어제까지만 해도 열광하던 고객들의 반응이 급 다시 냉랭해졌다. 이제는 지겹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인지. 치열해져만 가는 경쟁 속에서 호텔은 머리가 아프다.
Identity와 Image의 불협화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호텔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모든 서비스는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이뤄진다. 따라서 우리는 고객, 즉 ‘소비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고려해야한다. 그런데 그런 소비자들은 호텔이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시장 및 고객 분석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컨설팅·리서치 전문 업체 NICE R&C 박준호 수석컨설턴트(이하 박 컨설턴트)는 이러한 상황은 '‘Identity'와 'Image'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Identity는 기업의 입장에서 '고객이 자사 서비스와 관련해 떠올리기를 바라는 생각'이고, Image는 고객 스스로가 '기업의 서비스와 관련해 떠올리는 생각'이다. 즉, Identity와 Image가 불협화음을 이룬다는 것은 호텔에서 어필하는 것이 그만큼 소비자에게 크게 와 닿지 않고 있음을 의한다.
국내에도 자주 회자되고 있는 미국의 에이스호텔이나 일본의 트렁크호텔, 국내의 카푸치노호텔, 스몰하우스 빅도어와 같은 곳들은 호텔 설계 단계부터 일관적인 메시지를 고객에게 전달, Identity와 Image가 일치된 케이스다. 남들과 다른 뚜렷한 메시지를 보내다보니 고객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정체성에 스며들게 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찾아보면 유독 일본의 사례가 많다. 지난 호 칼럼에서도 언급한바 있듯이 일본의 기업들은 쌀 하나를 팔더라도 그 속에 ‘한 끼’라는 기업의 정체성을 담는다. 본지에 기고 중인 전복선 일본 기고위원은 “일본에는 최근 철도, 선박, 자전거, 로봇 등의 다양한 아이템을 활용한 호텔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애니메이션 세계에서의 다양한 제재들을 일상 공간에서 형상화 하고자 하는 일본 특유의 예술적 감성이 담긴 것”이라며 “이와 같이 디자인 아트호텔, 사회공헌과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호텔 등 보다 사회적인 변화에 맞춰 세분화된 특성을 살린 호텔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관점의 전환, Identity만큼 중요해
Identity, 어렵게 느껴지지만 쉽게 접근하면 우리 호텔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면 그것이 곧 호텔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도 쉽지 않다. 고객들의 니즈는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워낙 다양한 환경과 서비스에 노출되다보니 개인의 취향이 확고해졌고, 이전까지는 그래도 몇몇이 비슷한 무리로 모여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었다면 이젠 그렇지도 않다.
이에 대해 박 컨설턴트는 "요즘에는 한 개인이 날씨, 주위환경, 기분에 따라 니즈가 변한다. 심지어는 1억을 호가하는 테슬라의 주인이 차에서 에코백을 메고 내리기도 하는 등 점점 고객들은 종잡기 힘든 상황"이라며 "호텔이 고객 입장에서 재미요소를 찾으려면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데, 이처럼 기존의 서비스 제공자들이 서비스 소비자들에게 기대하고 예상했던 행동들이 완전히 빗나가고 있어 갈수록 관점의 전환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관점의 전환'은 어떻게 이뤄야 할까?
일본 숙소의 개념을 확장시킨,
호시노 리조트의 패러다임 변화
관점의 전환이 가장 잘 이뤄진 케이스로 전 기고위원과 박 컨설턴트는 일본의 호시노 리조트를 들었다.
호시노 리조트의 역사는 1914년 일본의 가루이자와라는 조용한 마을에서 작은 료칸을 오픈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호시노가의 료칸은 3대째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었는데, 일본이 국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줄었던 여행객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점점 여행객들은 전통보다 편리함을 찾기 시작했고, 료칸 열풍으로 우후죽순 들어섰던 료칸들도 공급과잉에 시달리다보니 돌연 료칸의 시대는 끝나는 듯 보였다.
이에 호시노가의 4대 사장인 호시노 요시하루(星野佳啓)는 료칸의 전통과 서구식 호텔서비스를 접목시켜 일본식 호텔을 새롭게 ‘호시노 리조트’로 탄생시켰다.
그의 경영혁신이 자주 회자되는 이유는 전통과 현대의 세련된 조화를 이뤘다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일본이 가지고 있던 인력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꿨기 때문이다. 기존 전통 료칸은 ‘찾아가는 서비스’였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녁식사, 가이세키(懐石) 요리도 정해진 메뉴를 객실에 들어와 직접 서비스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점차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는 고객들이 늘자, 기존 방식에 변화가 필요했고 이에 생산성이 낮은 료칸의 대표적인 서비스를 없앴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을 각자가 맡은 직무에서 벗어난 ‘로테이션 근무’ 제도를 도입했다.
호텔과 리조트는 비교적 반복되는 업무리듬을 가지고 있다. 체크인/아웃시간에는 프론트가 바쁘고 상대적으로 F&B가 한가하다. 체크아웃이 끝나면 새로운 고객을 맞이하기 위한 새 단장으로 룸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반면, 식사시간이 되면 객실보다는 F&B가 붐빈다. 호텔에 근무하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호시노 사장은 관점을 달리해 접근했다. 바쁘다 한가해지는 시간이 있으면 그만큼 잉여인력이 생긴다는 것. 따라서 그는 각 파트에 최소한의 인력만 두고 나머지 직원은 유동적으로 배치한다.
물론 직원들 입장에서는 한숨 거를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에 불만을 가지기도 했고, 특히 레스토랑 업무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스페셜리티를 침해받았다는 반발이 거셌지만 호시노 사장은 뚝심 있게 그들을 설득, 결론적으로 호시노 리조트 직원들은 한 직무의 전문가가 아닌 말 그대로 전반적인 '호텔의 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의 시선은 니즈가 변해가는 고객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호시노家에서 내려온 전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면 이러한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일 [Feature Hotel] 종잡을 수 없는 고객 입맛을 맞춰라! 호텔 차별화, 그것이 문제로다 -②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