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유독 한국 사회에 다양한 양상의 ‘갑질 이슈’가 수면에 올랐다. 특히 고객들의 갑질로 감정노동자들이 상해를 입거나 심하게는 목숨을 잃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경각심을 지피며, 감정 노동자와 소비자 간의 균형을 꾀하는‘워커밸(Worker-Customer Balance)’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이에 지난 10월부터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조항이 추가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 중 하나인 호텔, 업계는 ‘워커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사회에 찾아온 ‘워커밸’ 트렌드
콜 센터 상담 직원에게 전화를 걸면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 통화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라는 식의 멘트다. 한국 사회에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실을 이러한 안내 멘트를 듣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정 노동자들의 피해가 막심 했길래, 이러한 상황이 되고야 말았을까. 2018년은 유독 고객들의 갑질이 사회적 이슈가 됐던 해다. 대표적으로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에서 직원을 폭행하는 ‘백화점 갑질녀’ 동영상을 시작으로 대기업 임원의 승무원 갑질, 비일비재한 ‘레스토랑 노쇼’ 등이 매스컴에 보도되며 화제가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9년의 트렌드 키워드로 ‘워커밸(Worker-Customer Balance)’이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삶과 일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을 비틀어 근로자와 고객 간의 균형을 이루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손님이 왕’이었던 시절을 지나,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모든 개인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인격체임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기업/서비스를 이용해 수익을 올려주는 손님이라고 하더라도, 무분별한 ‘갑’이 될 수는 없다는 소리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비교적 이전 정권보다는 노동자 입장에 친화적인 새로운 정권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법에도 이러한 감정노동자에 대한 개선사항이 추가됐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실효성은?
지난 2018년 10월 18일부터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발효됐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이번 개정안에서는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신설됐다. 핵심적인 내용은 고객의 폭언, 폭행 등의 위험 상황에서 노동자가 업무를 중단이 가능하게끔 사업주가 보장해야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되는 처벌 조항 또한 명시됐다. 하지만 명문화된 짧은 법령으로 모든 감정노동자의 위험이 곧바로 해소될 수 있을까? 분명 법적으로 감정 노동자를 위한 보호체계를 마련한 것은 일단은 유의미한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법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감정 노동자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의 의식 개선은 물론, 직접적인 행동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 감정노동인증원의 박종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CS 관련 현장에서 16년 간 일하면서 감정 노동의 현장에서 이슈를 체감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개정된 산업보건법의 의미와 호텔에서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남겼다.
“감정노동자의 보호를 위해 사용자인 호텔 측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해”
한국감정노동인증원 박종태 대표
감정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의 핵심 원인이 고객의 갑질이다. 왜 유독 한국사회에서 고객이 이렇듯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갖게 됐는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의 잔재가 사회 저변에 깔려있다. 여러 가지 양상의 차별이 존재하며 이것이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 또, 우리는 7~80년대에 기술력은 없고 사람이 많았다. 반대로 외국은 기술은 우수한데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은 전통적으로 우리와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것이다. 한국사회는 갈수록 치열해지며, 무조건적인 서비스로 승부하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고객이 왕’이라는 광고 캐치프레이즈가 미디어를 활성화되면서 잘못된 프레임을 형성하는 데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전에는 권고/경고 수준이었던 것이, 이번에 감정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사업주의 처벌 조항까지 포함한 것은 유의미한 일이고, 사회가 한층 진일보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포함된 것이 아닌,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독립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노동자의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약 700만 명 이상이 서비스를 반으로 한 3차 산업 직종에 근무 중이다. 그런데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예전 1차/2차 산업, 즉 제조업 중심의 작업장 육체/신체노동자들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노동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섬세한 법이 제정되기를 바란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현재 국내 호텔 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가?
고객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컨시어지를 대표로 국내 호텔은 감정노동의 강도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호텔은 고급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에, 역시 이미지 때문에 쉬쉬한다. 이번에 ‘백화점 갑질녀’처럼 동영상으로 퍼지는 일이 있기도 하다. 호텔에서는 동영상이 잘 나올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더 폐쇄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정노동자인 호텔리어의 사용자인 호텔 측에서 주체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컨설팅을 받으러 온 호텔도 있었는지?
그렇다. 호텔은 보통, CS처럼 고객 서비스에 관한 매뉴얼은 훌륭하게 갖췄는데 위험 상황 대응에 관한 매뉴얼은 많은 곳에서 아직 가지고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며 몇몇 특급호텔에서 감정노동자의 보호에 관한 방향성을 문의하러 오는 경우가 있다. 주로 ‘어떻게 보호해야하나요?’라는 방법론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런 분들께 악성 응대 유형별 지침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컨설팅은 한달 정도 소요되고, 무엇보다 오너 및 의사결정자와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앞으로 호텔 업계에 감정노동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는가?
네 가지 주체인 호텔(기업), 고객, 정부, 호텔 종사자(노동자)가 밸런스를 이뤄야한다. 아까도 언급했듯 그중, 호텔이 가장 중요한 주체라고 생각한다. 경영학에서 직원을 ‘내부 고객’이라고 지칭하지 않는가? 결국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를 하는 호텔이 곧 우수한 호텔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내일 이어서 [Feature Hotel_Ⅱ] 호텔리어의 감정을 지켜주세요, 호텔, ‘워커밸’을 찾아서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