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OTA, 공유 숙박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전통적인 ‘호스피탈리티’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가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기업 가치를 뛰어넘어, 숙박업계 생태계를 뒤집어 버린 지 오래다. 국내 호텔업계는 훨씬 혼재된 상황인데, 표면적으로는 신라와 롯데가 공격적인 해외진출로 양적 성장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한편에서는 사드 당시 무분별하게 만들어졌던 중소형 호텔들이 경매에 넘어가거나 폐업하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호텔과 모텔이 구분도 가지 않을 만큼 숙박업의 분류마저 중구난방이다. 침체된 관광산업과 더불어 호텔업계도 호황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데, 호텔업계 종사자들은 현 상황에 대해 대체로 ‘과도기’에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움이 되도록 본질에 대해 되돌아보려고 한다. 앞으로 호스피탈리티 업계가 나아갈 방향이 어디든, 본질을 탐구해나간다면 최소한 방향을 잃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호텔의 육체와 영혼
호텔 기업은 집을 떠난 투숙객들에게 숙박과 식사, 그리고 기타 이벤트가 가능한 제반 서비스를 제공해 영리를 취하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웹스터스 사전(Webster’s Dictionary)은 이러한 현대적 호텔을 ‘숙박과 식음료, 각종 연회 행사 및 국제행사, 부대시설을 활용한 제반 이벤트 등을 수시로 제공하는 영리 서비스 기업(A building or an institution providing lodging, meals, and service for the public)’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호텔의 사전적 정의를 넘어, 호텔업의 본질은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본질(本質, Essentia)이란, 어떤 존재에 관해 ‘그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성질을 말한다. 서양 철학에서는 인간을 본질에 괜히 이원론을 통해 영혼과 육체로 나눠 탐구해왔다. 이를 호텔에 적용해보면 호텔의 육체는 토지와 건물인 ‘부동산’, 그리고 영혼은 ‘서비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호텔은 부동산과 서비스로 이뤄져있다. 서비스가 없는 호텔 건물은 일반적인 부동산 매물일 뿐이고, 호텔에 제대로 된 토지와 건물 없이 서비스의 개념만 존재한다면 그것 또한 호텔의 허상일 뿐이다. 철학자들이 계속해서 육체와 영혼의 관계에 대해 논쟁을 이어 왔던 것처럼, 호텔의 본질을 논할 때도 부동산과 서비스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부동산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반대로 서비스로 인해 고객이 호텔을 찾아야 부동산 가치 상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호텔의 육체, ‘부동산’
부동산의 요소인 토지와 건물이 있어야만 호텔이 실재한다는 측면에서, 부동산은 호텔의 육체다. 호텔은 기본 시설인 토지와 건물이 제대로 갖춰져야 비로소 고객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힐튼, 메리어트, 스타틀러 모두 호텔업의 본질이 이러한 부동산에 닿아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라고 언급했다. 이건희 회장의 업의 본질론도 비슷한 맥락에서 유명하다. 이 회장이 ‘호텔업의 본질은 서비스업’이라고 여기던 삼성의 임직원에게 전 세계 호텔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돌아온 뒤 다시금 ‘호텔업은 장치산업이다.’라는 인사이트를 깨닫도록 이끌어낸 일화다. 혹자는 매우 ‘삼성다운’ 일화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대기업 입장에서 호텔 사업을 통해 가장 크게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이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세계 호스피탈리티 시장에서 서비스가 강세였던 유럽과 부동산이 강세였던 미국 중 패권을 잡은 것도 결국 체계적인 호스피탈리티 부동산 개발 시스템을 가진 미국이었다.
(주)루밍허브의 유경동 대표는 “전 세계 호스피탈리티 업계에서 가장 파워가 센 사람들이 바로 부동산 개발자다. 코넬대학교 호텔경영학과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가는 곳이라고 하면 메리어트, 하얏트, 그리고 또한 곳이 호텔 부동산 개발사이기도 하다. 호텔 산업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 부동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세종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과 이슬기 교수는 “호텔업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부동산 장사가 맞는데, 특히 정보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부동산 쪽으로 쏠림이 증가하는 추세로 보인다. 전통적인 호텔의 기능 중 하나가 컨시어지 정보 전달이었는데, 최근 들어 많이 약해지기도 했다. 호스피탈리티 서비스 없이 객실만 판매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알다시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객실 비즈니스가 주인 호텔 역시 부동산 사업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호텔업의 부동산적 특징은 근본적으로 여타 부동산의 단순 임대 구조 상품과는 달리 까다로운 점이 많다. 일단 초기 투자비용이 높은 편인데, 비슷하게 레스토랑과 비교를 해봐도 규모와 부대시설에서 차이가 난다. 이후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최소한 10~20년 가량이 걸리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야한다. 또,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일반 건물에 비해 시설 노후화도 빠른데다가, 투숙객에게 지속적으로 매력이 소구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리모델링 작업도 필수다.
호텔의 영혼, ‘서비스’
누군가의 가치관, 윤리, 성품 같은 것들은 영혼이라고 표현한다. 한 사람을 보다 ‘사람답게’ 하는 요소는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호텔에서도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일컫는 말은 ‘서비스’로 통칭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호텔의 영혼, 호스피탈리티 정신이 된다.
<가톨릭의 모든 것>에서는 ‘Hospitality’, 즉 손님을 환대하는 호스피탈리티 정신이 구약시대부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각 수도원에는 객실을 준비해 식사와 숙박을 제공하는 관습이 있었다. 주교는 주교품을 받을 때 주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와 행려자들을 환대할 의무가 있었고, 베네딕도회의 수도 규칙에는 이들을 ‘그리스도를 맞듯이 환영’하라고 명시돼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만찬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는 예식 역시, 당시 손님 영접의 한 형식 중 하나였다.
이 책에 따르면, 호스피탈리티 정신이 ‘그리스도적 환대’에서 비롯됐다는 데는 여러 가지 시사점이 있다. 호스피탈리티의 어원이 병원과 같다는 점에서, 호텔의 서비스는 일정정도 고객에 대한 희생, 봉사, 사랑 같은 것들을 포함할 것이다. 다만, 자본주의의 상품이 된 호텔에서는 숙박객이 서비스에 부합하는 일정한 금액을 지불한다.
결과적으로 호스피탈리티 상품이란 무형의 가치를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에 인적 서비스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투숙객들은 기본적인 시설이 갖춰졌다고 가정했을 때, 환대 서비스가 더 좋은 곳을 선호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 입장에서는 인적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이러한 호스피탈리티 정신을 쌓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서비스의 ‘무형성’이란 고객 입장에서 일반적인 재화와 달리 경험해보기 전에 알 수 없기 때문에 호텔에서는 끊임없이 유형적 단서를 제공한다. 화장실 끝은 접어놓거나, 홈페이지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호텔에 스토리를 불어넣는식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센스와 감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서비스는 ‘이질성’이라는 특성을 띄는데, 직원마다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며, 동일한 서비스라도 고객의 특성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느낌도 달라진다. 서비스는 표준화하기에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호텔리의 인적 자원에 대한 지원, 그들의 노하우에 대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메리어트, 힐튼, 하얏트 우리가 알고 있는 소수의 글로벌 체인 호텔들은 오랜 시간과 경험이 축적돼 만들어진 기업이다. 이렇게 호텔에서 ‘서비스’라는 것이 체계화가 됐을 때 비로소 호텔의 정체성, 영혼과도 같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