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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

[정승호의 Tea Master 11] 중국 티의 시대 양식들_ 송, 원, 명대에 부침을 거듭하며 발전한 티 문화


중국에서 티는 봉건주의가 융성기를 맞은 당대(唐代) 이후 융성과 침체를 거듭하면서 크게 발전하게 된다. 티의 세 시대 중 제2기인 송(宋代)에서는 티의 생산과 소비에 큰 변혁이 일어났고, 원나라의 침략으로 티 문화는 1세기 동안 침체기를 맞았다가, 제3기인 명대(明代) 이르러 오늘날의 티 준비 방식으로 다시 발전한 것이다.
특히 청대(淸代)에 이르러서는 서양과의 무역을 통해 티가 전 세계로 전파되기 이른다. 여기서는 중국의 근대화와 함께 발전한 티의 시대 양식들을 소개한다.



티의 제2기, 송(宋)
중국은 송대(宋代, 960~1279)에 이르러 티의 생산과 소비에서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당대는 그동안 티를 병차로 만들어 보관했다가 때에 맞춰 부숴 끓여서 마셨던 시대라면, 송대는 티를 갈아서 휘저어 마시는 시기, 즉 ‘격불(擊拂)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 시대에는 건조 찻잎을 맷돌로 갈아 고운 가루 형태로 만든 뒤, 이 가루차를 체로 걸러 사발에 넣고 비취색의 거품이 일 때까지 대나무로 만든 ‘차선(茶筅)’으로 휘저어 마셨다. 이러한 방식을 오늘날에는 ‘격불 방식’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 불교 승려들은 그와 같은 티의 양식을 일본으로 처음으로 전파했는데, 그 양식은 일본에서 오늘날까지도 ‘차노유(茶の湯, Chanoyu)’라는 다례(茶禮)로 전승되고 있다.


또한 이 시대에는 일반인들도 티를 쉽게 마실 수 있게 됐다. 티를 만드는 시간이 감소하고, 준비하는 방식도 간편해지면서 티의 대중성도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찻잎을 최고급만 수확하는 전통도 생겨났는데, 첫 새싹과 그 아래의 한 잎(일아일엽, 一芽一葉)만 초봄의 수확기에 채엽하는 ‘헌상급 채엽(Imperial picking)’이 등장한 것이다. 이 수확물은 오직 황제에게만 헌상된 것이다. 또한 티를 담는 용기도 더욱도 세련됐는데, 티의 녹색 비취빛이 더욱더 두드러지도록 어두운 색감의 유약을 마감재로 사용한 넓고 편평한 자기 사발이 나무재질의 함지박을 대체한 것이다.



티의 침체기, 원(元)
중국의 티 문화는 송대에 이르러 이와 같이 대중적으로 확산됐지만, 13세기에 정복자 징기즈 칸의 후예이자 몽고 제국 제5대 황제인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를 세우고, 남송을 멸망시키면서 그러한 문화의 확산에도 큰 제동이 걸렸다.


원나라는 중원을 중심으로 몽고, 티베트를 점령하면서 몽고 지상주의 입각해 제국을 통치했다. 여기에 송나라의 귀족적이면서도 화려한 티 문화와 대중적인 티의 양식들을 소박한 유목 민족들의 문화로 대체하면서 티 문화는 크게 쇠퇴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중국의 티 문화는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기까지 약 100여 년 동안 침체기에 놓여 있었다.


티의 제3기, 명(明)
한편 원이 멸망하고 명대(明代, 1368~1644)에 이르면서 티 문화는 다시 부흥기를 맞는다. 오늘날의 티를 준비하는 방식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건조 찻잎에 부글부글 끓는 물을 부어 티를 우려내는 방식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또한 주전자, 찻주전자, 손잡이 없는 찻잔인 ‘종(盅, Zhong)’ 등 오늘날 티를 우려내는데 사용하는 대부분의 차구들이 이 시대에 발명됐다. 이로 인해 티는 이제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활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티의 확산기, 청(淸)
17세기 여진족의 후예 누루하치가 명나라가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연 청대(淸代, 1644~1914)는 중국 티의 역사에서도 또 하나의 중요한 시대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유명 티들의 대부분이 이 시대에 명명됐다. 대표적인 예로는 벽라춘(碧螺春, Bi Luo Chun)과 용정(龍井, Long Jing)은 청나라 최전승기의 황제인 건륭제(乾隆帝, 1711~1799)가 이름을 붙인 것이다.


또한 이 시대는 유럽에서 티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차나무의 재배지가 동아시아의 다른 지역을 비롯해 인도, 아프리카, 스리랑카 지역으로 확산, 중국이 서양 세계에 대한 티 무역의 독점권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더욱이 티 무역에서 중국의 예속국이었던 영국도 이때부터는 식민지 개척을 통해 중국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티 생산 및 소비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중국의 근현대 티 문화
중국은 20세기 초에 들어 전제 황권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일제 침략기, 1949년 중국 공산당의 혁명 등 정치적인 큰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 문화적인 관습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중에서도 문화대혁명(1966~1976)은 티 문화를 결정적으로 쇠퇴시켰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찻집들이 문을 닫았고, 가족 공동으로 다원을 운영해 온 농장주들도 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티의 생산성이 대폭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의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방 정책의 물결로 다시 중국의 티 산업은 활기를 띠게 된다. 여러 유명 찻집들이 다시 등장했고, 대학교와 농업학교에서는 티를 전문적으로 교육시켰다. 특히 과학을 기반으로 티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 항저우시(杭州市)에서는 1993년도에 ‘티 문화 연구소(IRCT, Institute for Research into the Culture of Tea)’를 발족, 티와 찻주전자 등 차구만 전문적으로 소장한 박물관들도 생겨났다.


중국 당국은 중국 문화에서 차나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민간 차원에서는 티 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한 티 문화 협회, 티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 조직들을 설립했다.


오늘날 중국의 티 문화는 최근 새로이 등장한 부유층들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 또한 동서양의 티들이 그 건강 효능성으로 인해 중산층을 중심으로 그 소비량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티의 종주국인 중국은 이제 전 세계 티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세계의 명차 56 _

바이하오우롱(白毫烏龍, 백호오룡, BAI HAO WU LONG / BLACK DRAGON) 청차



타이완을 대표하는 우롱차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티다. 동방미인(東方美人, Oriental Beauty)이라고도 한다. 여름에 찻잎을 수확해 50~70%의 산화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이 우롱차의 독특한 향은 ‘소록엽선(小綠葉蟬, Jacobiasca Formosana)’이라는 벌레가 찻잎을 갉아먹으면서 생긴다. 이렇게 소록엽선이 갉아먹은 부분에서는 벌레의 진액에 의한 화학작용이 일어나 산화한 뒤에 과일 향과 나무 향이 동시에 느껴지는 바이하오우롱만의 독특한 향을 갖게 된다. 소록엽선이 잘 활동할 수 있도록 농약을 치지 않으며, 찻잎은 6월 말에서 8월 말에 채엽한다.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완전 유기농 우롱차이다.


마시는 법 ‌300㎖ 용량의 서양식 티팟에는 6g 정도의 찻잎을 70~75℃의 물로 4분간 우린다. 자사호나 개완에는 ⅓가량의 찻잎을 70~75℃의 물로 30초~5분간 우린다.


※ 차의 이름은 ‘중국어 병음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표기했다.


정승호
(사)한국티(TEA)협회 회장,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 원장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은 국내 최초의 티(TEA) 전문가 양성 교육기관 및 연구 기관이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에서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외식 음료 산업의 티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백차,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 허브차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티를 시음하며 향미를 감별하는 훈련과정(Tea Tasting & Cupping)과 티 산지 연수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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