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홍대의 랜드마크였던 서교호텔이 리모델링을 거쳐 작년 4월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으로 등장했다. ‘업스케일 라이프스타일 호텔’을 표방하며 홍대의 거친 스트리트 문화를 한층 현대적으로 해석했는데, 제작자들의 인장이 명확한 라이즈를 이끄는 제이슨 임 역시 우리가 알던 총지배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의 컬렉션에 셀 수 없을 만큼 스니커즈를 모아뒀다는 사람, 90년대 힙합에 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사람, 그리고 이렇듯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호텔의 진정성을 만들어낸다고 말하는 제이슨 임 총지배인을 만나 그의 이야기와 함께 라이즈의 지난 1년에 대해 들어봤다.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인턴을 한 경험으로 광고에서 호스피탤리티로 전공을 바꿨다고 들었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나이키같은 큰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처음에 광고 전공을 선택했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차선책으로 떠오른 것이 호스피탤리티였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다닌 영향인 것 같다. 집과는 달리, 호텔에 들어설 때 낯설고 특별한 감각이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내가 느꼈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웨스틴조선 호텔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팀워크에 영감을 받았다. 원래 좋아했던 스포츠 역시 팀워크에 관련돼있으니, 아무래도 나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또 눈에 띄는 경력이 있다. 뉴욕 양키즈 구장의 프리미엄 서비스 개발업무를 담당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호텔에서 다시 미국 프로야구 분야의 일을 하게 됐는지 알려 달라.
커리어의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경험을 위한 결정이었다. W호텔 뉴욕에서는 디렉터로 근무했고, 사실상 지위가 낮아지는 선택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뉴욕 양키즈의 스타디움이 오픈할 때였는데, 그들이 경기장에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이식하고 싶어 했다.
시즌에는 티켓 값이 억대에 호가하는 VIP 좌석의 세일즈와 F&B 서비스를 진행하는 일이다. 멤버십 고객들 역시 월스트리트의 골드만 삭스, JP 모건 금융 회사들 출신이 주를 이뤘다.
이렇듯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며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왜 한국에 돌아왔나? 서울에서 이정도 규모의 호텔에 젊은 총지배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서 궁금한 게 많다.(웃음)
내가 가장 어린 게 맞나?(웃음) (Q 한국에서는 그런 편이다.) 원래 안주하기보다 인생에서 도전을 즐긴다.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일이 끝나고 서부로 넘어가 LA 에인절스를 비롯해 웬만한 스포츠 팀의 스타디움은 돌며 반복되는 일로 타성에 젖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주 호텔앤리조트의 CEO가 라이즈 프로젝트를 권했다. 1년이나 고민을 했는데, 아내도 미국에 직업이 있는 데다, 거주지를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결국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프로젝트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호텔을 선보인다는 데 기대감을 가지게 돼서다.
호텔에서 총지배인을 해보니 뭐가 다른 것 같나?
솔직히 말하면 이제껏 내가 해온 일과 큰 차이는 없다. 단지 과거의 경험을 총망라한 느낌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과거에 나에게도 멋진 멘토들이 있었고, 그들의 장점을 본받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이곳의 팀원들이 덕분에 매번 보상받는 기분이다. 라이즈 팀은 인성과 능력 전부 탁월하고, 이들은 내가 총지배인으로 겪는 일들을 한층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곧 라이즈 오픈 1주년을 맞는다. 라이즈 호텔의 첫 해는 어떠했고, 특히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었다면?
우리의 첫해는 기대 이상으로 정말 좋았다. 이전에도 많은 작업을 했지만, 머릿속에 생각하던 이상을 있는 그대로 꺼내서 구현해낸 유일한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서비스 레벨이 한국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라이즈 총지배인이 한 말이라고 해서, 편향된 의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정말로 스텝들 한 사람 한 사람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자신감이 생긴다.
라이즈는 홍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호텔이다. 지난 1년간 홍대 지역 커뮤니티와 문화적 교감을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가?
홍대 지역과는 여러 방식으로 교감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컬처 팀에서 홍익대학교와 파트너십을 수립해 학생회와 여러 가지 일을 진행했다. 또 마포구청과 함께 클리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매달 호텔의 직원들이 봉사활동의 개념으로, 홍대 지역을 청소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에 가능한 더 많이 돌려주고 싶다.
이에 대한 홍대에서 로컬 커뮤니티의 화답은 어땠는지?
서교호텔이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었지만, 젊어진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호텔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개방적으로 로컬 커뮤니티와 교류하고 있고, 이들 역시 우리를 반기고 있다. 이 지역의 브랜드가 우리와 일하고 싶어 하는 게 그 방증 아닐까. 스트릿H, 헨즈 클럽 같은 홍대의 다양한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다.
라이즈 호텔은 자주 뉴욕의 에이스 호텔, 일본의 트렁크 호텔과 비교되곤 한다. 이렇듯 유사한 라이프스타일 호텔과 비교했을 때, 이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라이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자주 에이스나 트렁크와 함께 언급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같은 비교 선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차이점을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으로 라이프스타일 호텔은 로비를 비롯한 공공장소의 디자인에 많이 신경 쓴 반면, 객실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양측 모두 고려한다. 로비 공간에 지역 주민들이 드나들기도 하고, 객실에는 디자인으로 라이즈의 철학을 반영했다. 우리의 아이덴티티는 앞서 말한 홍대의 정체성에 부합해 나가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홍대의 1세대 스트릿 문화를 호텔 차원에서 현대적인 방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한다. 10년이 지나도록 홍대처럼 그 고유성을 지니고 있는 지역은 드문데, 언제나 젊고 창조적인 기운이 넘친다.
오토그래프 컬렉션은 독립적인 브랜드를 지향하지만, 사실은 메리어트라는 큰 회사에 편입돼있다. 마치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인디가수’ 같은 느낌이다. 의사결정을 진행할 때 라이즈 팀만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가?
물론 항상 지켜야하는 가이드라인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침대인데, 사이즈나 리넨, 브랜드는 시몬스로 선택해 회사에서 제시하는 럭셔리의 수준을 지켜야 된다. 수용할만한 정도이고, 이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운 좋게도 라이즈는 메리어트가 거대한 조직으로서 갖는 장점에, 독립성까지 유지할 수 있는 이점을 함께 누리고 있다. 메리어트 헤드쿼터에서 처음에는 라이즈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집중받기 시작했다. 메리어트의 아니 소렌슨 CEO 가 방한한 딱 하루 동안 방문한 호텔 중에 하나가 라이즈이기도 했다. 그 어떤 호텔과도 달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메리어트는 여러 면에서 우리를 지지해준다.
라이즈 팀의 직원들은 특히 크리에이티브한 이들로 구성돼있는데, 개성강한 구성원들의 팀워크를 위해 리더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클리셰처럼 들리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호스피탤리티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개성이 강한 사람인만큼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 라이즈 팀원들은 직원들 개인의 특성을 파악해서 각기 다르게 대응해야한다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한테는 군대식으로 하는 방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용기를 북돋는 방식이 효과적일 거다. 그렇지만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칭찬하는 데 집중하는 게 기본이다.
오너와의 파트너십도 궁금하다.
오너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한국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면 비즈니스는 이뤄질 수 없다. 그와는 개방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윗사람, 특히 오너에게 말하기 무서워한다. 그렇지만 내가 자라온 배경은 다르기 때문인지 몰라도 난 오히려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게 불편하다. 궁극적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솔직한 피드백이 가장 중요하다.
경영자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라이즈 호텔의 셀링 포인트는?
첫째는 진정성이다. 우리는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고 싶지 않다. 호텔에서 무언가를 보여줄 때, 그건 진짜 우리가 열정을 느낀다는 뜻이고, 그런 게 진정성을 더해준다고 생각한다. 또 라이즈는 로봇처럼 서비스하지 않는다. 다시 찾는 사람들은 결국 사람 때문이다. 디자인 같은 하드웨어는 베낄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인 사람들은 모방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라이즈와 컬래버레이션 하는 각 브랜드는 우리의 정체성과 부합하는 창의적인 곳들로 선정한다. 다른 호텔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유니크한 브랜드를 앞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 거다.
힙스터와 아티스트를 타깃으로 한 호텔 입장에서 274개 객실은 적지 않아 보인다. 객실 점유율과 수익성에서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내고 있는가?
우리는 1년 단위가 아니라 5년, 10년을 바라보고 장기적인 지속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즈니스를 굳건하게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라이즈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업스케일 라이프스타일 호텔이다. 이전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비즈니스호텔 정도의 사이즈로 선보이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우리는 업스케일로 끌어 올려서 고객들에게 보다 확장된 경험의 폭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객실 수 역시 우리가 목표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알맞은 정도라고 생각한다.
힙합과 스포츠 등 여러 가지 문화 예술 활동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들었는데, 이러한 총지배인의 예술적 취향이나 안목이 호텔 경영에 영향을 주기도 하나?
물론이다. 라이즈의 본질은 패션, 음악,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이뤄져있다. 오너가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권한 것도 나의 이런 취향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과 취향은 호텔에서 하는 모든 일에 연관돼있다. 호텔의 직원들이 스니커즈를 신는 것도 스포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또, 매달 사이드 노트 클럽의 컬렉션에 들어갈 바이닐도 그냥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다. 레코드숍에서 수 천 개의 LP 중에 괜찮은 하나를 찾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감각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 호스피탤리티 산업에 대한 총지배인의 견해가 궁금하다.
세계 어디를 가든 호텔업계는 보수적이고 FM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호텔업계보다는 여행업계의 움직임으로 호텔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개인 여행객들의 변화로 라이프 스타일 호텔이 발전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글로벌 체인의 장점도 있지만, 개별 호텔 브랜드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호텔 업계에 아쉬운 점은 없는가?
호텔 업계는 경쟁이 심한 곳이기 때문에, 옛날 방식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 한국 호텔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견고한 수직 구조라고 생각한다. 상관에게 파워가 지나치게 몰려있고, 의사결정을 위한 형식적인 단계가 너무 많다. 리쿠르팅부터 의사소통, 결정과정까지 일하는 모든 면에서 일하는 방식을 다시 고려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라이즈는 다른가?
그렇다. 우리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기존 스테레오타입의 총지배인처럼 보이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최대한 수평화 시키려고 노력한다. 일단 이름 부르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나도 ‘함 팀장~’(웃음) 같은 말은 쓰지 않고, 직원들 역시 나를 ‘총지배인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불필요한 직위나 형식부터 없애려고 한다.
향후 라이즈 호텔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무엇보다 라이프스타일 호텔의 표본을 제시하고 싶다. 가장 큰 야망은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한국 호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