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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전용의 Coffee Break] 시라쿠사의 커피 축제, Coffee Show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하이앤드 원그룹 머신 ‘Mina’의 론칭과 관련한 특별워크숍에 초대돼 다녀왔습니다. 보통은 항공편을 이용하는데, 신제품과 함께 신기술을 설명하는 자리인지라 많은 짐을 차에 싣고 운전해야 했던 터프한 여정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모나코, 니스, 칸느를 거쳐 스페인에 도착하는 경로였는데 프랑스 국경과 인접한 도시 산레모(San Remo)를 지나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한 듯 제 생각은 2013년의 어느 날로 멈춰 있었습니다. 시선의 저편에서 기억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2013년 가을의 토스카나 골목, 끝없이 펼쳐지는 지중해를 품고 있는 리구리아 해안. 어떤 꿈과 이상 같은 것을 가슴 한복판에 새긴 채 80ℓ짜리 대형 배낭을 스쿠터 뒷자리에 꽁꽁 묶은 채 바람을 가르는 한 청년의 모습이 보입니다. 체 게바라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인상 깊게 본 탓일까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배짱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생겨난 객기인지 용기가 마음을 끌어당겼습니다.
이탈리아의 식문화와 레스토랑과 바(Bar) 등,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의 유구함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여정이었지만, 또한 그것은 위험천만한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운이 없게도(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적인 일이지만) 저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5000km 지점인 산레모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처음 마주한 도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으니까요. 외국에서의 병원신세는 무섭기도, 새롭기도 했습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까닭에 더욱 그랬지요. 척추골절 상태의 동양인 청년은 이들에게도 낯선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레아노(Coreano)’를 위해 매일 아침 따뜻한 수건으로 온 몸을 정성껏 닦아내주는 이들이 감사했고, 심장질환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같은 병실 노인으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는 신세가 된 저는 인류애란 큰 산을 만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는 데는 실로 짧은 시간, 예기치 못한 일들로부터 찾아옵니다. 저는 그곳에서 눈빛과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말을 하고 싶다…말을 배우고 싶다…저들과 소통하고 싶다….’를 되뇌었던 제가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에스프레소처럼 강렬한 기억으로 잊기 힘든 향기를 남겨버렸습니다.



삶의 진통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더군요. 몇 주 전 국제적 행사인 Coffee Show를 위해 다녀온 시칠리아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데요. 이탈리아의 음식은 너무나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이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시칠리아의 식문화를 좋아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마피아의 도시란 이미지가 매우 강한데, 실제로는 아름답고 유쾌하며 맛있는 자치주이자 지중해 최대의 섬입니다. 칼라브리아 반도에서 남서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섬은 그리스와 로마, 아랍을 비롯해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입니다. 지리적으로 지중해의 상업 및 무역의 주요 거점인 탓에, 역사적으로 잦은 침입을 받았습니다. 고대 로마 초기에 시칠리아는 고대 그리스 식민도시인 시라쿠사의 지배 하에 있었고, 서부에선 카르타고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카르타고는 지금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제국인데, 한때는 남부 스페인과 포르투갈, 북부아프리카와 시칠리아에 이르는 영향력을 자랑한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포에니 전쟁에 패배하며 아프리카 속주의 일부가 되고, 698년 아랍인들에게 파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뜨거운 인간애와 훌륭한 성품을 가진 도덕적 인간이자, 자기위안보다 시민의 자유를 더욱 귀하게 여겼던 정치가 플라톤이 꿈꿨던 철인정치를 몸소 보여준 철학자로 평가받는 키케로마저 극찬했던 꿈의 도시 시라쿠사. 그는 시라쿠사를 ‘가장 위대한 그리스의 도시이며 가장 아름답다.’고 묘사했습니다. 흰색과 베이지색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이곳은 2000년이 훌쩍 넘는 과거의 흔적을 그리스보다 더욱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700년이나 앞서 만들어졌다는 그리스의 원형 극장도 이곳에 보존돼 있습니다. 로마 극장이 타원형인데 반해, 그리스 극장은 반원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검투사들의 시합을 관람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로마의 원형 극장과는 달리, 그리스인들은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이곳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반원형으로 만들어진 구조는 이러한 목적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산과 바위를 깎아서 만든 이 극장의 관람석은 바다를 향해 있어, 공연을 관람하면서도 적의 침입을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또한 고대 그리스의 희곡이 직접 공연되기도 했지요. 대학시절 연극을 사랑하고, 졸업 이후에도 극단에 잠시 몸을 담았던 제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야외공연 문화는 너무나 놀랍습니다.
시라쿠사에서 펼쳐진 Coffee Show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이 행사는 올해로 6년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호텔학과의 담당교수인 본 지오바니(Bon Giovanni)가 오거나이저(Organizer)이자 주최자입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성공적인 행사를 치러낸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엔 실험적인 행사를 주최했습니다. 본 지오바니가 처음 이 행사를 개최하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남부는 낭만적이지만, 커피문화가 과거에 머물러있고 현대적인 이미지도 매우 약한데, 이런 시칠리아의 커피문화를 더욱 꽃 피우기 위해 열정 하나로 시작한 행사라고 합니다. 시라쿠사 시내에서 택시로 약 10분 거리인 호텔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물론 시내 곳곳에서 Coffee Show에 관한 홍보 게시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에는 이 지역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피아짜 델 두오모(Piazza del Duomo)에 위치한 유명 라이브 카페테리아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Coffee Show를 치렀습니다. 행사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각 나라의 라테아트 대회 챔피언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리스,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의 챔피언 출신 바리스타들이 행사를 더욱 빛나게 해줬습니다. 저는 영광스럽게도 내셔널 챔피언십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돼 이들의 멋진 시연과 에너지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지켜보는 행운을 거머쥐었습니다. 내셔널 라테아트 챔피언십은 Coffee Show에서 올해 처음 시도하는 이색적인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라테아트를 위해 본인이 사용할 잔과 그려내야 하는 미션 모두 즉석에서 제비뽑기로 주어졌는데요. 종이컵, 유리잔, 스팀 피쳐, 모카포트 상하부 등 그려내야 하는 잔의 용량과 깊이와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말 그대로 복불복 대회였습니다. 튤립, 나뭇잎, 리버스, 큐피드, 하트, 에칭 등 미션도 다양했는데요. 평소 다양하고 화려한 디자인을 거침없이 그려내던 바리스타들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대회였습니다. 결승에는 총 3명의 바리스타가 진출했는데, 그리스, 폴란드, 이탈리아의 선수였습니다.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 즐거움과 역동감을 동시에 선사하기 위해, 결승전은 눈을 감은 채 진행되는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이름하야 크레이지 라테아트 대회. 안대를 착용한 채 5분 동안 오로지 한 잔의 카푸치노를 완성해야 합니다. 에스프레소의 추출과 우유 스티밍, 푸어링, 디자인, 주변정리와 청결까지 심사 항목에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졸지에 모든 선수들이 5분 동안 심봉사가 된 셈입니다. 선수들의 역량이 국제적인 수준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즉석에서 알려진 미션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가린 채 손으로 더듬으며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필터 홀더를 분리해내, 그라인더를 통해 분쇄된 커피를 담아내고, 그것을 잘 탬핑하는 작업을 거쳐 머신에 장착해 적정한 추출시간동안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일련의 과정을 물 흐르듯이 해내고야 말았기 때문입니다. 눈을 가린 채 라테아트가 그려지는 순간에는 관중들 모두 숨을 죽인 채 관람을 했습니다. 그리고 완성이 되자 비로소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날 최종 우승자였던 폴란드의 아그네스카(Agnieszca)의 시연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시연 마지막 순간에 손끝을 타고 마지막 튤립의 가운데 줄기를 그리는 우유거품이 피처를 가로지르자, 깔끔하고 아름다운 튤립이 완벽하게 그려졌습니다. 본인도 ‘Time!’을 외친 후 안대를 벗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면서,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커피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의 열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그것을 기술로 승화시켜 소비자에게 기쁨을 전달하려는 젊은 바리스타들의 열정은 분명히 감동적입니다.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안에 또 산업이 자리를 잡게 되니 말입니다.
최근 한국의 커피 시장은 경제 불황 가운데 저가경쟁이란 치열한 생존투쟁에 돌입했습니다. 각자의 개성보다는 해외에서 유명한 브랜드나, 개인숍을 카피해 옮겨놓은 것처럼 보이는 곳들도 넘쳐납니다. 뿐만 아니라 한 곳에서는 스페셜티란 단어에 열광을 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싸게싸게’를 외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각자의 상황과 현실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콘트라티에프 파동, 쿠즈네츠 파동, 주글라 파동 등의 경제용어를 사용해가며 50년, 20년, 10년 등의 경제 순환주기를 통해 불황과 호황을 설명해 보려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한 가지는 위기 또한 극복해내고 지혜롭게 변모해가며 발전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유행을 거부한다는 문구는 무척이나 당돌해 보이지만 자신감 있는 표현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행을 창조한다는 말은 상투적이지만 매우 전략적입니다. 커피가 맛있는 레스토랑을 보기 드물고, 전문가가 있는 호텔을 찾기 어렵습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저관여’의 속성일 수도 있습니다. 구태여 말을 할 수도 있고 무슨 의미가 있냐며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나 밥보다 많이 마시는 커피,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란 기사의 타이틀을 눈여겨 볼 필요는 있습니다. 가치 있는 무언가가 등장해 세상을 유쾌하게 리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단지 꿈에 불과할는지요?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이 이탈리아의 바를 방문하면서 마음 속으로 그렸던 그림이 전 세계의 영향을 미친 것은 한때 꿈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이 됐습니다.
천년에 가까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변화를 경험해 온 시칠리아 사람들의 DNA 안에는 새로움에 적응하고, 그것을 보다 새롭게 만들어 내려는 열정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반원형 극장에서 배우와 관객이 소통하는 2000년 전의 무대만큼, 시라쿠사의 커피는 대중과 함께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챔피언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카푸치노를 보면 키케로는 어떤 말을 했을까요? ‘시라쿠사처럼 가장 아름답다.’라는 말을 하진 않았을까요?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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