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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전용의 Coffee Break] il gelato che nonce

Prologue #



이탈리아의 여름은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를 녹여버릴 것 같은 기세입니다. 물론 100년 만에 찾아온 한국의 더위에 비하면, 한숨을 돌릴만한 수준입니다. 8월의 이탈리아는 90% 정도의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며 빗장을 걸어 잠그는 시기입니다. 토스카나의 발도르차를 향해 떠난 여정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밀밭 사이로 줄지어 서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아름다움에 입 밖으로 감탄사가 새어나옵니다.


Scene 1 #

‘막시무스의 집’으로 불리는 곳에도 들려보았는데요. 영화 <글레이데이터>에서 주인공 막시무스가 아내와 아이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집으로 걸어 내려오는 명장면이 된 곳과 매우 비슷해 이렇게 이름 지어진 곳이기도 하죠.


광활한 구릉지에 추수 이후 둥그렇게 말린 건초더미가 펼쳐진 모습이 장관을 이룹니다.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는 태양에게 백기투항을 한 채 열기를 받아내며 영글어갑니다. 소도시의 유명 와인과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백미입니다.


Scene 2 #

낭만의 여정 가운데, 무더위를 피해 방문한 도시는 바로 ‘라퀼라(l’acquila)’입니다. 아브루초 주에 위치한 이 곳은 로마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그란싸소 국립공원이 위치한 아펜니노 산맥으로 둘러쌓인 곳에 위치해 연중 선선한 기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더운 8월조차 최고 기온이 29도. 평균 기온 21도로 매우 시원하죠. 오래 전부터 적의 침입을 피해서 사람들은 산으로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13세기 신성로마 제국 때부터 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해 한 때는 나폴리 왕국의 제2도시로의 번영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가지는 매우 멋지게 구성이 돼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퀼라는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큰 아픔을 지닌 도시 가운데 한 곳이었는데요. 이 도시에서 이탈리아 역사상 유례없는 지진이 발생해 6만 5000명에 이르는 이재민과 3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켜 충격을 더했습니다.



라퀼라는 원래부터 지진이 잦게 발생하는 도시였기 때문에, 소규모 지진은 전혀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발생 빈도가 심상치 앉게 늘어나면서, 이탈리아 국립핵물리학 연구소 기술자 장 파올로 줄이아니는 술모나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라돈 수치를 측정했다고 주장했는데요. 곧 지진이 술모나를 덮칠 것이라 예견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예상한 날짜에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고 그는 정부에 의해 거짓 선동죄로 고소당합니다. 그리고 정부 당국은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곧 6.3 규모의 강진이 강타하면서 도시는 아수라장이 됩니다.


지금도 라퀼라 두오모 광장 인근에는 폐허가 된 집, 복구 중인 집들이 즐비합니다. 이탈리아에 살고 있지만, 이렇게 참혹한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를 방문한 적은 없었습니다. 일몰 이후에 이 도시의 골목은 건장한 사내조차 혼자 다니기에 두려울만큼 을씨년스럽습니다. 사람의 흔적이 없음을 보여주는 잡초들이 골목을 무성하게 채우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슬픔 속에서도 희망의 기운은 남아있습니다. 광장에는 무료로 영화 한 편이 시민들에게 공개 상영되고 있었는데요. 슬픔을 함께 이겨내려는 공동체의 배려와 노력이 감동적인 동시에 짠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독수리란 뜻을 지닌 ‘라퀼라’, 이름답게도 이 도시는 다시 뜨겁게 비상하겠지요. 


Scene 3 #

이 뜨거운 여름에 가장 환영 받는 제품은 단연 ‘젤라토’입니다. 2017년 기준 Repubblica의 기사를 기준으로 SIgep Observatory에 따르면, 젤라토는 여름철에 평균 10%의 성장을 한다고 합니다. 특히 대도시(12%)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상반기에는 날씨 영향으로 슈퍼마켓 구매도 증가했다고 합니다.


젤라토는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이 사랑하는 제품 가운데 하나로, 항상 구매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입니다. 게다가 단지 여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6년 Aiipa 데이터에 따르면 총 매출액 27억 유로의 섹터(수제아이스크림)를 나타내며 유럽시장인 90억 유로의 30%를 차지합니다.



국가 차원의 소비 증가에 대비해 1인당 6.5㎏로, 이는 약 38만 톤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또, Sigep(수제 제과 세계 최고의 무역 박람회)의 통계는 2017년 여름에 10%에 가까운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의 소비의 증가를 드러내고 전국 평균(2017년 3월 기준) 약 8%인 반면 이탈리아 젤라토 제작자 협회에 따르면, 생산과 소비 증가는 특히 대도시(+12%)에 집중됐습니다.


반면에 2017년 상반기에 거대 조직 유통망 판매와 관련해 전년 대비 4.8% 증가한 아이스크림의 기여로 전체 매출의 1% 정도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아이스크림이 최근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10만 개가 넘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전 세계에 퍼져 있다고 조사됐습니다.


현재 이탈리아에만 3만 9000개의 젤라토 숍이 있습니다. 그러한 포화상태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는 젤라토 산업에 남들과는 전혀 다른 콘셉트를 가지고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 젤라떼리아를 소개하려 합니다.


Scene 4 #

오늘 소개할 매장은 ‘il gelato che nonce’로, ‘존재하지 않는 젤라토’를 의미합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M1 지하철 로레또 역에서 내려 도보로 3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했는데요. 이 지역은 쇼핑의 거리로 유명한 꼬르소 부에노스아이레스(corso BuenosAires)에 연결돼 있습니다. 두오모 중앙역과도 가까운 정거장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Il gelato non ce’는 지역의 다른 유명한 젤라떼리아와는 전혀 달리 차별화된 콘셉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캐치프레이즈로 ‘Fatto al momento’를 내세우는데, 이는 ‘주문과 동시에 젤라토를 제조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곳에는 젤라토를 보관하기 위한 쇼케이스는 찾아 볼 수도.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젤라토를 먹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처음에는 당황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면서 본인이 원하는 맛을 고르는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젤라토가 판매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11월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어느 때 보다 추운 밀라노의 겨울이어서 젤라토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이 매우 드물 때였는데요. 하지만 이내 봄이 찾아왔고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자 사람들이 젤라토를 맛보기 위해 하나둘 이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젤라토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가게는 북적이게 됩니다. 무엇보다 젤라토 제작 방식이 특이한데요. 주문과 동시에 재료를 준비하는데, 이탈리아에서도 첫 시도였다고 합니다. 주문과 동시에 질소가스가 유입되면서 급냉을 시켜, 순간적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냅니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동안 하얀 연기가 바를 가득 메우는 진풍경을 보는 재미도 있고요. 빠르게 젤라토를 포장해 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인내심이 요구되지만, 소극장의 무대처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젤라토’를 운영하는 주인공은 마르코와 삐에뜨로입니다. 삐에뜨로는 2015년 ‘마스터 셰프 이탈리아’와 같은 TV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Bake off Italia’에서 세미파이널까지 진출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입니다. 강한 실험정신, 그리고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경력으로 새로운 콘셉트의 젤라토를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전합니다. 그러한 삐에르또 옆의 마르코는 커피전문가이면서 기획에 특출 나기도 한데요. 이러한 둘의 색깔이 궁합이 맞아 ‘Il gelato che non ce’란 새로운 콘셉트의 매장이 탄생하게 된 거죠.


이곳의 젤라토는 밀라노 인근에서 생상한 고르곤졸라 치즈를 사용해 풍미가 가득해,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네스 맥주를 이용해서 만든 젤라토 역시 여타 젤라떼리아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을 선사합니다. 매장 안쪽에는 빵을 직접 굽는 라보라토리오가 있는데요. 빵집이 아니라서,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신선한 과일을 이용한 Torta와 매일 아침 신선하게 구워내는 크로와상, 무스케이크 등은 이 매장이 지닌 강점이 최대로 드러납니다.


Epilogue #


무엇보다 커피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해도, 별도로 제공되는 물과 함께 플레이팅 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씁니다. 주방 한켠의 모카포트를 가스레인지위에 올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립니다. 그렇게 압력을 받으면서 내부의 커피 층을 통과하며 힘차게 올라오는 커피를 바라보다가 창문 넘어 보이는 산들에 걸려있는 구름이 NON CE LATTE를 연상시킵니다. 커피 향기가 거실을 가득 채워주네요.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이 내려주는 커피의 탁월함도 좋아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해서 커피 때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바래버린 모카포트에서 끓여낸 커피에 우유를 살짝 넣어 마시는 커피가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왠지 가을을 재촉하는 비처럼 다가오네요. 


‘비오는 날의 수채화’ 노래의 가사처럼 무더위에도 모두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그 카페에 초콜릿 색 물감으로,
빗방울 그려진 그 가로등 불 아래 보라색 물감으로,
세상사람 모두 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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