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필자는 3주 전 루마니아에서 열린 Man vs Machine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3년째 지속되고 있는 루마니아의 스페셜티 커피신을 견인하는 큰 행사입니다. 오후 6시부터 시작해 새벽 1시 정도가 돼서야 끝이 났는데요. 한국에서 온 세계 라떼아트 챔피언인 ‘엄 폴’의 세미나가 개최 돼 뷰큐레슈티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했습니다. 저는 엄 폴과 함께 이튿날의 메인이벤트인 라떼아트 챌린저에 심사위원으로 활동을 했는데요.
이국땅에서 왠지 코리아 파워 같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Scene 1 #
루마니아는 대표적인 동유럽 국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1988년까지는 구소련의 지배 하에서 공산주의 사회를 시도했습니다. 마침내 1989년 12월 시민 중심의 민주혁명이 일어나 차우세스쿠 공산정권이 축출됐고, 국명이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루마니아로 환원되면서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점진적 전환을 통해 오늘날의 루마니아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2016년 루마니아의 커피 성장률은 3%였습니다. 2015년 법안에 따라 부가세율이 24%에서 9%대로 낮춰지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량 판매가 긍정적으로 전개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5년 이전의 높은 세율은 유럽에서도 가장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시장의 역동성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탈리아는 리라화폐를 사용하던 십 수 년 전까지는 18%대의 부가세 비율을 유지하다가 현재는 22%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1유로에 판매되는 에스프레소 한 잔에는 22센트의 부가세가 포함돼 있는 것이죠. 임대료, 인건비, 원 재료비와 기타 비용 등을 제외하고 수익을 창출해 내야하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글로버 리서치 그룹 유로모니터에 의하면 현재 루마니아의 커피 시장 브랜드 점유율은 ‘Mondelez Romania SA’ 27%, ‘Strauss Romania SRL’ 24%, ‘Nestle Romania SRL’ 11%, ‘SC Tchibo Brands SRL’ 7%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은 모두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마케팅 예산을 사용하는 다국적 기업인데요. 매출이 높은 주된 이유는 제품의 우수한 품질과 소비자의 선호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루마니아는 유럽 전체 소비량의 1.83%를 차지하지만, 동유럽 전체 커피 소비량의 20%를 차지하는 동유럽 커피 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인당 GDP가 1만 달러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매우 뜨겁습니다.
10년 전에 루마니아를 찾은 이들이 2019년 이곳을 방문한다면 매우 놀랄 것입니다. 시내에는 밀라노보다 고급 승용차들이 눈에 띄고, 시내 곳곳에는 작지만 개성 있는 레스토랑과 트렌디한 상점 그리고 스페셜티 커피 전문 매장이 제법 많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뜨거운 열기속에서 스페셜티 커피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커피숍 ‘Bloom’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Scene 2 #
이 특별한 매장의 주공은 코스민(Cosmin)입니다. Bloom의 커피는 부큐레슈티에서도 가장 비싸게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코스민은 이 가치를 지켜내려고 노력해왔고, 현재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연히 이 매장을 찾은 미국의 한 바리스타가 남긴 글의 내용이 심상치가 않은데요.
제목은 ‘삶의 변화(Life Changing)’이고, 제시카라는 여성이 기고한 글 속에서 커피숍을 묘사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어메이징하다. 그리고 Bloom팀은 내게 많은 영감을 가져다 줬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온 바리스타다. 그리고 좋은 커피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오레곤, 워싱턴, 오슬로, 이탈리아, 런던, 더블린 등을 거쳐 왔다. 내가 루마니아에 도착했을 때 사실 나는 어떤 기대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서운 장소, 무서운 사람으로 가득한 나라라는 생각 뿐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루마니아의 스페셜티 커피숍’이란 제목으로 구글링을 해 ‘Origo 숍’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 방문해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연히 어떤 사람이 나와 내 친구에게 Bloom을 추천해 줬다. 우리는 그곳을 찾아 나섰고, 나에게 좋아하는 새로운 숍이 하나 생겼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커피에 관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면, 그리고 괴상한 유머감각에 쉽게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꼭 코스민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는 커피의 다방면에 대해 탁월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오픈했고, 인격적으로도 남을 쉽게 재단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점은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알고 있던 지식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됐다. 더불어, 캘리포니아의 그들은 여전히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우물 속 개구리임을. Bloom의 크루들은 세계 최고의 로스터 가운데 한 명인 영국의 로스터리와 함께 일하며, 코스민뿐만 아니라 모든 팀원이 함께 준비단계에서 세심함을 기울인다. 내가 충분히 설명할 수 없지만, 이곳을 꼭 방문하길 바란다….
위의 글은 Bloom의 인테리어, 위치, 가격, 커피 맛 이런 요소들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한 커피숍을 통해 본인의 세계관이 확장됐음을 의미하는 내용이 기술돼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이 대목만 보더라도 이 숍의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Scene 3 #
코스민은 영국에 살면서 ‘Colonna and Smalls’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숍에서 맥스웰 콜로나와 한 팀을 이루면서 커피에 대한 전문가적인 식견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숍에 들어서면 드립용 전문 분쇄기가 눈에 띄는데요. 통상적으로는 이를 에스프레소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데 비해, 코스민은 이를 에스프레소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추구하는 맛의 개성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도구의 특정 부분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창의적으로 활용한 것이죠. 정량으로 개량이 된 커피를 밀폐용기에 하나씩 담아놓고 고객이 주문을 하면 보는 앞에서 매번 콩을 분쇄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영국의 팀과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는 코스민은 루마니아의 로스터가 아닌, 영국의 팀으로부터 신선한 커피를 공수 받고 있습니다. 품질에서 만큼 최고를 고집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코스민은 커피를 만들 때 사용할 원두에 대한 프로파일을 먼저 설명해 줬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만들어낼 커피의 레시피를 이야기 해주는데요. 보기에 다소 강해보이는 템핑을 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재현과 맛의 일관성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숍의 근무하는 바리스타들은 맛의 평준화, 정확한 표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죠. 코스민은 본인의 레시피에서 조금이라도 편차가 생기면 용납하지 않습니다. 코스민은 이렇게 말했는데요. “100잔의 똑같은 샷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최대한 같은 맛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커피를 만들 때는 춤을 추는 사람처럼 리듬감 있는 액션으로 커피를 만들지만, 눈빛은 에스프레소의 첫 방울에서부터 마지막까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코스민은 처음부터 커피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처음 영국에 갔을 때 그의 머릿속에 커피는 쓰고 자극적인 그런 액체였을 뿐이니까요. 어느 날 커피숍에서 한 바리스타가 그에게 플랫화이트를 추천했고, 코스민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가족 가운데 아버님과 누나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코스민은 미술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있었죠. 그는 플렛 화이트의 라떼아트에도 인상을 받았음은 물론, 과일의 느낌이 살아있는 멋진 시음 경험에 완전히 압도됐다고 해요.
Scene 4 #
코스민의 삶을 완전히 바꾼 중요한 하루였죠. 그는 다음 날 본인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커피로의 세계로 첫 발을 디뎠다고 합니다. 이후로는 커피에 대한 배움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고 하네요.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숍으로 옮겨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종착역이 ‘Colonna and Smalls’였다고 합니다. 그에게 이곳은 커피에 대한 과학적인 식견과 보다 깊은 세계관을 갖게 해 준 고마운 곳입니다.
코스민에게 성공한 커피숍의 비결을 묻자,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비결이라는 어찌 보면 상투적인 답변을 합니다. 거기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좁은 마인드에 갇히지 않고 마음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추상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이 아닌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쉼 없이 달려온 코스민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Epilogue #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체조경기장에서 루마니아 대표로 참가한 14세 소녀 나디아 코마네치. 그녀의 경기점수가 전광판에 표시되자 장내는 술렁였습니다. 완벽한 경기의 점수는 고작 1점, 알고 보니 9.9점이 만점이었던 올림픽에서 최초로 10점이 나와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하루 8시간 이상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전 세계의 새로운 체조의 역사를 그린 그녀처럼 루마니아의 커피숍에서는 지독한 열정이 느껴집니다. 드라큘라의 스토리 배경으로 유명한 루마니아 이 곳에는 드라큘라 백작도 반할만큼의 커피향이 느껴지는 숍 Bloom이 있습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