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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0 (토)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예술가가 사랑했던 몰스킨(MOLESKINE), 다시 태어나다


Prologue#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해외생활을 하면서 한식을 주로 먹지 않는 터라, 냉장고 안에는 김치 또는 한식에 쓸 만한 재료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12월 밀라노의 한인을 위한 송년행사에 참여해 운 좋게 상품에 당첨됐습니다. 고추장이며 된장 등을 경품으로 받게 됐지요. 유학생활을 하거나 해외에서 거주하는 동포들에게는 이런 재료들이 제법 쏠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한국인을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이날 수백 명의 교민들이 모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늘 외국인들만 보다가 모여 있는 한국인들을 보니 낯설기도 반갑기도 했습니다.
밀라노란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이곳에는 성악과 패션을 공부하러 오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덕분에 주위에는 프로 성악가(깐딴떼)(Cantante)들이 많아서 귀가 호강합니다. 오페라에 관해서라면 문맹 수준에 가까웠던 제가 파바로티와 스페인의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같은 3대 테너는 물론 엔리꼬 카루소와 같은 이들을 알게 되고, 귀동냥을 하다가 이제는 스스로 유튜브를 뒤적거리기도 합니다. 삶은 긍정적으로 보면 참 다채롭습니다.
어쨌든 이런 연유로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호박, 양파, 파, 감자와 같은 야채들을 송송 썰어 넣고 차돌 대신에 비슷한 부위를 사서 살짝 볶으며 끓여냅니다. 자취생표 된장찌개가 제법 맛이 납니다. 페이스북에 사진도 올려보면서 혼자 흐뭇해합니다. 어쩌면 ‘이탈리아 독거 라이프가 그렇게 궁상스럽지는 않다. 나는 외롭지 않아.’라는 완곡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Scene 1# 된장찌개의 추억과 함께 2016년의 마지막 페이지는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첫 장이 열렸습니다. 1월의 첫 휴일에 제가 다녀온 곳은 밀라노의 코르소 가리발디(Corso garibaldi)입니다. 이탈리아에 오는 관광객들은 사실 잘 들르지 않는 곳이지만, 패션을 사랑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외국에서 온 멋쟁이들은 이곳을 즐겨 찾습니다. 밀라노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미술대학과 밀라노 회화관 및 개인 화랑들이 밀집해 있는 브레라 지역은 디자인과 패션 멀티 숍이 많습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곳에 잘 어울리는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멀티 숍들입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예전의 가로수길 느낌이라고 할까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작년 7월 22일, 몰스킨(MOLESKINE)에서 직영으로 이곳에 커피숍을 오픈했습니다. 제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다이어리도 공교롭게 몰스킨 제품입니다. 배트맨이 주인공이죠.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가는 브랜드인데, 이 브랜드가 지닌 예술적 감성에 커피가 만나면서 독특하고 힘이 느껴지는 숍이 탄생했습니다.




Scene 2# 몰스킨은 과거 2세기 동안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사랑해온 전설적인 노트로 유명합니다. 그들 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브루스 채트윈 등이 있습니다. 심플한 검정색 노트에 둥글게 처리된 모서리, 탄력 있는 페이지 홀더, 그리고 확장형 내부 포켓은 몰스킨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실제 미술, 문학, 사상가들의 사랑을 받은 노트는 이 단순함에서 출발합니다. 어쩌면 대가들의 눈에는 그들의 작품에 색채와 구도의 화려함이 있는 만큼 노트에서만큼은 단순함을 사랑했나 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상상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가운데 하나가 ‘Simple is the best’입니다. 이 노트는 작은 프랑스 제본 업체에서 1세기 동안 생산돼 파리의 문구점에 공급됐고, 이곳에서 전 세계의 전위예술가와 작가들이 이 제품을 찾고 구입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편리한 여행의 동반자인 이 노트북에는 어느 날 유명한 그림이나 사랑 받는 책이 될 매우 귀중한 스케치, 메모, 이야기, 아이디어가 들어있었습니다.
브루스 채트윈이 아끼던 노트, 그는 이것을 ‘몰스킨’이라고 불렀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이 노트는 점점 희귀해졌고 끝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1986년 프랑스 투르시의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제조업체가 문을 닫았습니다. 더 이상 정품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죠. 1997년 밀라노의 작은 출판업자는 전설적인 노트북을 되살리기로 마음먹고, 그 특별한 전통을 담기 위해 채트윈이 지은 몰스킨이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채트윈의 발자취를 따라서 몰스킨은 그가 걸어갔던 여정을 되살리고, 오늘날의 새로운 첨단기기가 가져다 줄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Scene 3# 몰스킨은 현재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거리의 풍경과 몰스킨 숍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대형 브랜드들이 수익 다각화를 위해서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의 일환으로 커피를 아이템으로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커피는 약방의 감초처럼 어디에나 안성맞춤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동네 북인 셈입니다. ‘그냥 대충 끼워놓으면 된다’라는 식의 얕은 상술인 것이죠. 하지만,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몰스킨의 출발점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이곳의 매니지먼트 담당자 베피(Bepy)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회사는 유행처럼 커피숍을 만든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커피는 이탈리아의 큰 문화이고, 사람들의 삶에 더 많은 가치를 예술적으로 제공하겠다는 게 이들의 철학입니다.
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측에는 몰스킨의 제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일반적인 콘셉트 숍, 디자인 숍 , 멀티 숍이 카페와 함께 있을 경우, 숍인숍(shop in shop)과 같은 느낌이거나 적지 않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몰스킨의 제품들은 카페의 풍경에 하나의 인테리어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제품에 추가로 스페셜티 커피와 자체 제작된 머그잔, 그리고 커피 관련 용품들도 전시되고 판매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몰스킨의 플래그십 스토어의 Bar는 로렌조(LORENZO)가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 친구는 이탈리아에서도 유명한 친구입니다. 2016년 이탈리아 커피 테이스팅 대회 우승자입니다. 작년에는 이탈리아의 대표로 세계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다른 이탈리아의 Bar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스터디 하는 젊은 고객부터, 개인 작업을 하는 고객,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 다양한 모습이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 35~40% 가량의 고객이 외국인 손님이라고 합니다. 메뉴도 이들의 취향을 반영해 빅 카푸치노와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 커피 등이 준비돼 있습니다.




Scene 4# 스타벅스는 2000년대 초반 로마에 입성했다 참패를 경험했지만, 올해 밀라노에서 다시 도전합니다. 재도전을 하는 지금은 이러한 고객층만 흡수해도 성공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브랜드 충성도가 강한 청소년, 공간에 대한 효용성을 더욱 필요로 하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의 스타벅스 사랑은 두말하면 무엇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스킨의 Bar가 빛나는 것은 최고의 전문가가 손수 커피를 내려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제게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브루잉으로 내려줄 커피는 어떤 지역에서 경작된, 어떤 특징의 맛의 커피인지 설명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몇 그램의 커피를 사용해 몇 도의 온도에서 얼마의 시간 동안 어떻게 커피를 만들겠다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레시피를 설명해줍니다. 이럴 때 ‘뼛속까지 프로‘란 말을 쓴다면 너무 과장인가요?
주말에는 바의 뒤쪽 키친에서 셰프가 브런치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일반 에스프레소의 3배 이상 되는 싱글 오리진 커피, 브루잉 커피와 같은 것을 부담스럽지 않게 즐기고 있습니다. 15~20%의 고객들이 스페셜티, 싱글 오리진을 요구합니다. 2층에는 라이브러리와 같은 별도의 공간이 준비돼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Bar에서는 아무리 커피 맛이 훌륭할지라도 바리스타와의 교감이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처럼 섭섭함이 느껴집니다. 예술적인 감각을 지닌 섬세한 바리스타 로렌조가 제공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자연스럽게 주위를 응시하다 보면 몰스킨의 제품들이 유독 사랑스럽게 다가옵니다.


Epilogue# 몰스킨을 사랑했던 작가 헤밍웨이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원인은 자기 불신에 있다.” 2017년, 우리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힘차게 전진해보면 어떨까요?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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