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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수)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밀라노의 커피 장인 Caffe ‘Torrefazione artianale Cagliero’




Prologue#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패셔니스타들이 밀라노의 거리를 수놓았습니다.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패션위크 기간이었죠. 공작새 마냥 본인만의 화려함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듯 뽐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모처럼만에 밀라노는 활기가 넘쳐납니다. 패션의 도시란 수식어가 제법 어울리는 시즌입니다.



Scene 1#
135개의 첨탑을 지닌 밀라노 성당을 앞에 두고 야외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은 품질을 논하기에 앞서 그 자체만으로 가져다주는 묘한 만족감이 있습니다. 평온함, 내리쬐는 햇살,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인 셈이지요. 꿀처럼 떨어지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에 설탕 반 스푼을 넣고 잔을 돌려가면서 향을 느끼고, 진한 커피 맛을 혀끝으로 입안 전체로 맛보고, 잔 밑에 가라앉은 설탕을 스푼으로 긁어먹는 방법은 또 하나의 묘미입니다.

‘이탈리아의 커피는 모두 맛있을 거야.’라는 생각은 ‘한국인은 모두 태권도를 잘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커피도 있지만 경기침체와 더불어 치솟는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오르지 않는 커피 가격은 품질의 저하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이십년 전까지만 해도 밀라노의 시내에서 20~30대의 젊은 바리스타를 구경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30~40대의 바리스타들이 경력 많은 노년의 바리스타가 뽑아내는 커피를 옆에서 서브하는 모습은 매우 일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유서 깊은 일본의 레스토랑에서 펼쳐지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상에 떠도는 ‘당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카페 100선’에는 절반은 미국 또는 영국의 숍이고 나머지는 북유럽, 호주 등의 매장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떤 기준을 내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의 숍은 한 곳도 명단에 올라있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누군가 ‘당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카페’를 물어본다면 주저없이 오늘의 매장을 소개할 것입니다. 저는 이곳의 주인 다비드(Davide)를 미치광이 로스터(Pazzo torrefatore)라고 부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전문가 보다 커피에 단단히 미쳐있기 때문입니다.



Scene 2#
45가지 종류의 에스프레소를 골라서 마실 수 있고 그 커피를 구매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것은 엉뚱한 상상 내지는 가정이 아닙니다. 밀라노의 골목 한 귀퉁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당시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밀라노의 패셔너블한 모습은 이곳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 테이블 하나 존재하지 않지만 오로지 커피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이곳은 1956년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1980년, 1993년 두 차례에 걸쳐 이곳의 주인이 바뀌었는데, 최종적으로 2003년 다비드가 이곳을 인수하면서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다비드는 한때 레스토랑 매니지먼트를 하는 전문가였습니다. 커피 이외에도 폭넓은 시선으로 산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고객이 어떤 종류의 커피를 구매할지 물어보는 과정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수많은 종류의 커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단순하게 판매하지 않습니다. 먼저 고객에게 물어봅니다. ‘언제 마실 것인가? 어떤 도구를 사 용해서 커피를 만들 것인가? 어떤 종류의 맛을 선호하는가?’를 고객과 소통합니다. 27개의 블렌딩, 17가지의 싱글 이스테이트, 1가지의 디카페인 커피까지 45가지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 단 한 명의 바리스타, 단 한 명의 로스터가 일하는 곳, 12대의 커피 분쇄기와 3대의 로스팅 머신으로 볶아내는 공간. 커피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벌써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진 커피 애호가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운이 좋게도 이곳을 찾은 고객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많은 커피숍이 있는데 이곳을 찾 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손님은 대답했습니다. “이곳의 커피는 품질자체가 탁월해요. 다른 곳에서 몇 번이고 커피를 마시려고 시도했지만 맛이 없어 마시기가 어려워요.” 맛이 없다는 말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이 특별한지 다시 물어봤습니다. “우선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가 훌륭합니다. 커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추천을 해줄 수 있고, 무엇보다 커피를 제조하는 과정 자체가 프로답고 친절해요. 신뢰가 갑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주로 어떤 커피를 마시나요?” “기분에 따라 달라요. 어떤 날은 바디감이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유독 향이 좋은 커피가 그리운 날이 있어요. 그때 그때 상황과 기분에 따라 제가 원하는 커피를 마시죠. 그게 이 매장의 특별함이에요.”
커피는 습관에 의해 마셔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처럼 기분에 따라서 맞춤형 커피를 제공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Scene 3#
이 매장의 일반 커피는 1유로에 판매되고 있지만 세계 톱클래스를 자랑하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2.6유로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이 가격에 판매가 된다면 말 그대로 ‘껌 값’이란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이 커피 진짜 맞아? 몇 %만 섞인 커피를 블루마운틴이라고 판매하는 것 아냐? 이건한국의 형편없는 프랜차이즈의 커피보다 가격이 더 싸거든.” 다비드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줬습니다. “이건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커피 판매 사진이야. 블루마운틴 1kg에 17유로 보이지? 이건 사기야. 1kg에 최소 90유로는 지불해야 생두를 구매할 수 있어.” 저는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2.6유로에 판매하면 거의 손해에 가깝지 않아?”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다비드가 말문을 엽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가격이야. 사실 손해를 볼 때도 있어.” 상징적인 가격...잠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손해를 보고 판다면 고객들도 믿지 않을 것 같은데. 밑지는 장사 없다고.” 이야기를 듣자마자 커피를 만들던 바리스타 알렉스가 거듭니다. “미친거야. 하지만 아무도 5유로를 주고 한두 모금에 마실 에스프레소를 사서 마시진 않을 거야. 그냥 주는 거야.” 다비드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오리지널에 대한 사랑은 지독할 만큼 강합니다. “요즘에는 C.O.E, 게이샤 등 굉장히 트렌디 한 커피들도 많은데 왜 블루마운틴을 최고라고 생각해?” 다비드가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커피 중 하나야. 다음은 세인트 헬레나인데 블루마운틴은 자체가 특별해. 밸런스, 즉 향, 벨벳티, 좋은 신맛, 애프터 테이스트, 단맛 모든 부분을 충족 시켜 주고 있어. 나는 이런 특별함을 사람들에게 경험시켜 주고 싶은데 정상적인 가격에는 불가능해. 이건 나의 열정이고 나의 심장이야. 소량씩만 판매되지. 하지만 그들에게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시켜주면 그들은 조금씩 변화될 수 있고 커피를 이해하게 돼. 손해는 볼 수 있지만 대신에 다른 커피들을 많이 판매하고 있어서 괜찮아.”


Scene 4#
12대의 커피 분쇄기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커피마다 최적의 포인트와 신선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분쇄도를 환경의 변화에 따라 튜닝해야 하는데 그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물어봤습니다. “다비드, 현실적으로 12대를 운용하는데 어려움은 없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쉬워!” 저는 거듭 질문했습니다. “각 커피의 특성을 고려하면 어려움이 따르지 않나?” 다비드는 웃으며 말합니다. “프로패셔녈한 바리스타만 있으면 문제없어. 나는 알렉스를 교육시킬 수 있고, 훌륭한 감각의 바리스타의 손이 있으면 우리는 품질을 유지할 수 있지. 단 하나, 프로들을 본 적이 별로 없어. 그게 문제야.”
만약 이들이 제공하는 커피가 실제로 추출의 문제가 있었다면 이런 인터뷰 자체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프로라는 수식어가 당연한 사람들입니다. “다비드, 바리스타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이야기 해줄 수 있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얘기 합니다. “모두 필요해. 하지만 무엇보다 커피 산업에 뛰어들 용기가 필요해. 그건 다시 말하면 열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또한 인성일 수도 있어. 남을 배려할 수 있는 것,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이건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야.”



Scene 5#
저는 다비드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사람들에게 45가지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잘 안 믿어. 혹은 미친 사람 취급해. 굳이 45가지나 하는 이유가 뭐야?” “커피는 옷이야.” 알렉스, 다비드가 이구동성으로 답합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혹은 선호하는 취향의 옷이 있지? 우린 그걸 제공하고 고객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지. 그래야 그것을 비로소 즐길 수 있어. 그들도 우리도.”
매장에 대한 소개를 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어떤 배움의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비드, 이곳에 오면 마치 와인 사러 온 기분이야. 내가 고르고 싶은 종류가 너무 많고 각각 다른 걸 맛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있어! 넌 미쳤어, 커피에 단단히.”


Epilogue #
미쳐야 미칠 수 있다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참 축복이 가득한 하루입니다. 이탈리아의 소박한 골목 한 귀퉁이에는 미친 커피인, 비로소 장인이란 이름이 걸맞은 다비드가 있습니다. Fashion을 이해하고 Passion이 있는 사람. 용혜원님의 시와 함께 가을의 여유로움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커피가 주는 행복감
용혜원


커피를 마시기 전
먼저 향기를 맡는다
키스를 하듯
입술을 조금 적셔
맛을 음미한다


기분이 상쾌하다
이 맛에
커피를 마신다


한 잔의 커피가
주는 행복감


삶도 허둥지둥 살며
뭐가 뭔지 모르고
살아갈 때가 있다
우리들의 삶도
향기와 맛을
음미해 가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행복이란
그 느낌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똑같은 커피도
장소에 따라
타주는 사람에 따라
시간에 따라
기분에 따라
컵에 따라
그 맛이 전혀 다르다


삶도 마찬가지
음미하며 살아가자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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