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출근길인데도 집에 돌아가서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만 같은 어둠이 도시를 삼켰습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불빛을 대체한 어둠은 어젯밤 퇴근길의 제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인위적으로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밤을 낮으로 바꿔치기한 ‘양계장의 닭’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마치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꿈속의 꿈처럼 몽환적인 밀라노의 아침입니다.
Scene 1 #
양계장의 불빛이란, 대도시의 삶과도 일정 부분 닮아 보입니다. 저녁이 되면 자연스레 각성의 늪에서 벗어나 가정과 평온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연스러움을 거부한 채 긴장을 향해 질주하는 뫼비우스 띠처럼, 아드레날린 중독은 흥분과 위험의 수치를 한층 높이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게 합니다. 더 많은 자극이 있어야하는 과잉의 시대, ‘Less is better’란 문구가 비상구처럼 느껴집니다.
닭…. 이 존재와 관련된 깊은 사랑의 이야기가 제 삶의 한 조각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 정문 앞에는 병아리를 파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상자 안에서 여러 마리의 병아리가 ‘삐약삐약’거리며 어미를 잃은 슬픔의 창가를 부르는 동안 안 그래도 커다란 눈동자의 아이는 동공을 확대하며 노란색 귀염둥이들을 해맑게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입양해 이불에서 함께 잠들고, 베개 위에다 똥을 누며 동고동락 하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부모에게는 아이들의 똥도 사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이 시절 꼬마 신사도 같은 감정이었나 봅니다.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떠올리면 마치 누군가 저의 유년 시절을 훔쳐본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두 마리의 병아리가 입양됐죠. 씩씩하고 건강하게 돌아다니는 아이에게는 ‘삐돌이’, 어디가 아픈지 매번 졸기만 하는 아이에겐 ‘삐졸이’란 이름을 붙여줬는데, 두 아이는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그 옛날에 촌스러운 이름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미신처럼 말이죠.
건강하게만 보였던 ‘돌이’가 어느 날 시름시름 앓다 주검이 됐고, 졸기만 하던 ‘졸이’는 머리에 벼슬을 올리며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SNS에는 주인의 말을 듣고 다가가 포옹을 하는 닭과 꼬마 이야기가 수백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죠. 만약 그 시절의 제 모습을 영상에 담을 수만 있었다면 수천만 조회 수를 넘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삐졸이는 제 어깨 위에서 동네를 배회했고, 아무렇게나 풀어 놔도 언제나 제 곁에 동행했으며, 부르면 다가오고, 품에 안기기 일쑤였죠. 요즘 같으면 <동물 농장> 혹은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왔을 것 같네요.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께서 더 이상 집에서 닭을 기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삐졸이를 지하실의 어두운 공간의 박스에서 몰래 키워야만 했죠. 삐졸이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매 순간 비좁은 공간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철창 지옥 생활을 해야만 했죠. 결국 아침마다 울어대는 바람에 꼬리가 잡혀, 이 친구를 동물원에 기증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서글펐는지 몰라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으니까요.
닭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 맞이한 보금자리는 전 세계에서 온 닭과 오골계가 함께 사는 글로벌한 공간이었을 것 같네요. 1주일 정도 지났을까요? 보고 싶은 마음에 동물원에 한숨에 달려가자, 피투성이가 된 채 구석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삐졸이를 봤습니다. 동물원 사육사에게 전해 듣기로는 오골계의 텃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삐졸이는 그리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동물과의 교감은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훨씬 안정적이고 성숙하며, 성장 후 자립심, 책임감 등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보고가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동물과 사람의 믿기 힘든 사랑의 이야기가 영화로 그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죠. 영화 <하치 이야기>에서는 ‘사람은 개를 잊어도 개는 사람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도쿄 시부야 역에서 10년 동안 주인을 기다리다 죽음에 이른 개 ‘하치’의 이야기는 여전히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이렇듯 동물에게도 사랑이 깃들면, 그것은 우리가 숭배해 마지않던 ‘프라이드’ 이상의 존재적 의미로 다시 태어납니다.
Scene 2 #
커피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밀라노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카사노 다다(Cassano d’adda)에 다녀왔습니다. 이 지역은 무차(Muzza) 운하와, 나빌리오 마르테사나가 교차하는 지역입니다. 이 운하는 고르곤졸라, 밀라노, 카사노다다를 관통합니다. 정보를 좀 더 알고 싶어서 동료에게 물어봤는데, 운 좋게도 수년간 이 지역에 살았던 로컬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카사노다다까지 이어지는 나빌리오 마르테사나와 관련한 운하는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 흔적을 상실했습니다. 1929년까지만 해도 밀라노의 시내는 암스테르담처럼 시내 곳곳을 수로가 관통했습니다. 이것은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으로 강으로 연결돼 바다까지 이어집니다. 1929년에 모든 수로를 흙으로 덮어 도로로 만드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밀라노는 그 독창적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됐습니다.
무차 운하는 1230년 사이에 발굴된 관계 사업입니다. 1443년 밀라노의 공작으로부터 소금 독점에 대한 야심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다강에서 이어지는 관개용 운하를 탄생시킵니다. 농업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아다강을 관통하며, 두 개의 대운하가 이어지며 지역의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000년에 걸쳐 조금씩 확장된 보르메오 성은 이 지역의 상징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프랑코는 이 지역에서 30년째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bar)가 위치한 곳은 시내에서 다소 떨어졌습니다. 차량이 없으면 찾아오기 힘든 상가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원래 프랑코는 23년동안 역 인근에서 장사를 해왔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 판매는 어느 정도 잘됐지만 커피를 향한 그의 열정은 소비자와 교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새로운 출발을 결정하고, 4년 전 과감하게 매장을 정리하고 새로운 장소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이곳은 프랑코의 아내와 딸, 그리고 동료가 함께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전형적인 가족 비즈니스 매장입니다. 바에 들어서면 바텐더 코스 수료증이 바의 왼쪽 면에 걸려있습니다. 프랑코는 본인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커피라고 말을 하지만, 칵테일 제조에도 열정을 아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네요.
바깥 외부 유리창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6대의 커피 분쇄기입니다. 각각의 분쇄기 위에는 100% 아라비카, 20% 로부스타 블렌딩, 코스타리카, 파나마, 마라자, 디카페인이 표시돼 있네요.
이러한 시도는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인데, 이토록 작은 도시에서 오로지 품질 지향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언뜻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커피의 소비가 골고루 이어지지 않으면, 신선함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프랑코는 새로운 고객들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그들과 소통하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습관적으로 “카페 한 잔 주세요.”라고 하는 고객에게 “어떤 커피를 드릴까요?”라고 되묻고, 다시 설명을 해주는 부분은 습관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이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65% 정도의 고객은 기본 블렌드를 마시지만 나머지 35%의 고객은 다양한 커피를 시음하게 됐다고 합니다. 커피에 따라 가격도 맛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과는 프랑코가 꿈꿔온 열정의 한 조각인데요. 또, 그는 필터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v60과 같은 드립용 추출도구로 커피를 만들어 제공합니다. 판매율이 높지는 않지만,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바리스타의 열정입니다.
이곳에서는 커피와 칵테일만 판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료 외에, 오늘의 메뉴라고 하는 런치를 판매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꼬똘레따(Cottoletta)’라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돈까스를 먹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카페테리아는 대부분 기성 제품을 사용하는데, 이곳의 돈까스를 맛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부드럽고 촉촉한 닭고기의 육질이 전해졌기 때문인데요. 프랑코에게 물어보니 식사는 아내가 직접 만든다고 전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란 말이 이해가 갔는데요. 품질 지향의 커피를 향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인데, 사이드 메뉴조차 대충하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30년 동안 일을 해오면서 느낀 자신만의 경영철학도 있을 테니까요.
식후에 마신 파나마 커피는 올해 제가 마신 커피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맛 중 하나였습니다. 또, 해당 커피가 재배된 환경과 맛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프로파일도 함께 보여줬는데요. 히비스커스와 민트, 초콜릿, 그리고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단 맛이 충분히 오랜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특별한 미사여구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맛있는데 무슨 많은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죠. 숨을 쉴 때마다 후각에 전해지는 민트 초콜릿 향이 상쾌한 기분마저 들게 합니다.
일주일 후 이 곳에서 이탈리아 스페셜티 커피협회에서 전문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강사를 초대해,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걸음씩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프랑코는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때 그들의 행동도 변화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30년을 쉬는 날 없이 일하고도 열정을 지니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프랑코에게 토스카나에서 개최되는 전문가를 위한 행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지 권유했지만, 그는 매장을 쉽게 비울 수 없다고 전하며 아쉬워합니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 매장의 주인인 동시에, 종업원이기 때문입니다.
Scene 3 #
오늘은 커피 애호가를 위한 희소식을 전하며, 글을 갈무리하려 합니다.
2018년 10월의 커피 관련 뉴스입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커피를 마시는 것은 건강에 좋다는 보도입니다. 200개 이상의 연구의 공통 결과에 따르면, 일일 평균 3~4잔정도 커피를 마시면 건강에 다음과 같은 건강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간경화 감소, 19%의 심장질환 위험 감소, 2형 당뇨병에 도움, 7% 위험인자 감소, 발암률 18% 감소, 알츠하이머, 치매, 인지능력 저하 15% 감소, 우울증의 고통 15% 감소까지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참고로 50만 명의 유럽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결과를 한 결과 하루 3잔 이상의 커피로 16년 동안 사망률이 12%가 줄었다고 하네요.
위에 나열한 것만 보면 자칫 커피가 보약처럼 느껴지기까지 할 텐데요. 문제는 권장 섭취량이 넘어가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루 3잔이 한국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 3잔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한국의 커피숍에서는 대용량의 컵을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 되면서, 세 잔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재료를 사용해 더블 샷을 만들고 그것을 베이스로 한 잔에 전부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잔으로 세 잔 분량의 카페인을 동시에 섭취하는 것이죠. 이런 커피를 하루에 여러 잔 마시게 된다면, 본인도 모르게 카페인 중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Epilogue #
아마 우리 스스로가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커피콩을 판매하는 사람, 머신 판매자, 바리스타들 모두가 이 부분에 대한 성찰과 윤리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고객이 건강해지면 회사의 수명도 연장되는 법입니다. 커피의 최대 장점인 각성은 적당할 때 삶에 활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기분 좋은 각성으로 건강을 디자인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