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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월)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CAFFE DELLA TERRA

Prologue #



겨울에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은 참 맛있습니다. 찬 공기에 귀가 빨개진 채 버스를 기다리며 먹는 어묵 한 꼬치와 따끈한 국물처럼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가죠. 1월의 광합성은 왠지 더 포근하게만 느껴집니다. 잠시 눈을 감고 걷던 길을 멈춥니다. 명동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지만, 찰나의 순간 햇살과 대화를 잠시 나눕니다. 질투심이 많은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정오의 데이트를 방해합니다. 마음을 동요하지 않고 따뜻함에 집중하자 더욱 거센 몸짓으로 심술을 부립니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해님과 바람의 이야기처럼 모자를 뒤집어쓴 채 외부의 진동에 저항합니다. 봄을 갈망하는 차가운 겨울입니다.


Scene 1 #

오늘 이탈리아의 동부 해안 라벤나에서 25km 떨어진 지점에서 강도 4.6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볼로냐, 마르케, 베네토 지역에서도 이 지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불안해 집에서 잠을 청할 수 없어서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발 빠르게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고, 전문가를 파견해 각 건물의 안전을 검사한다고 합니다. 시장은 방송을 통해서 이러한 조치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위험에 대처하는 이들의 모습이 놀랍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지난 여름휴가가 떠올랐습니다.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복구 중인 라퀼라(l’aquila)가 오버랩 됐습니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지만 극복하면 더욱 단단해지기도 합니다. 한 줄기 빛이 위로가 되는 이탈리아의 겨울 한 가운데 서있습니다.



Scene 2 #

밀라노의 중앙역에서 서울의 명동과 같은 쇼핑의 거리 ‘꼬르소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길에 ‘카페 델라 떼라(il caffe della terra)’가 있습니다. ‘Via viturvio 9’에 위치한 이 매장은 안젤로(Angelo)와 니코(Nico) 두 형제가 운영하는 커피숍입니다.


사실, ‘카페 델라 떼라’는 비제바노(Vigevano), 체사노(Cesano), 노바라(Novara), 밀라노(Milano) 등에 지점이 있는 프랜차이즈 브랜드입니다. 밀라노를 제외한 지역은 한 도시에 한 개정도의 숍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1921년부터 밀라노와 교외에 볶은 커피를 공급하는 일로 성장하게 된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커피 회사입니다.


2011년부터 3세대를 거쳐온 ‘Terrani’ 가족은 현대적인 디자인, 따뜻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그리고 커피는 내추럴한 요소가 풍부한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그리고 독창적인 메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는데요. 이탈리아 바리스타 챔피언과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해 첫 선을 보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마스터 셰프를 영입해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트렌디하게 해석한 새로운 음식을 선보이게 됩니다.
오늘 제가 방문한 ‘카페 델라 떼라 또레파지오네(il caffe della terra torrefazione)’는 본사에 속해있지만,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정립한 곳입니다.


Scene 3 #

두 형제는 매출을 증진시킬 수 있는 아이템보다, 커피에 대한 열정, 본질에 집중했죠. 주방과 사이드 메뉴는 최대한 배제시키고, 오로지 커피와 건강음료의 판매에만 집중합니다. 그들은 2006년부터 5대의 커피 분쇄기를 사용해 왔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나의 커피 또는 디카페인 정도로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 않았던 시기였죠. 그랬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판매해온 안젤로와 니코의 방식은 파격이었습니다. 매장은 매일 아침 7시에 오픈해 오후 6시에는 영업이 종료, 일요일에는 가게 전체가 문을 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매장에서 하루에 4kg 정도의 커피가 소비됩니다.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커피처럼 ‘더블샷’을 위해서 ‘트리플 바스켓(에스프레소 3잔 분량)’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약 500잔의 커피가 이곳에서 판매가 되는 셈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면에 이탈리아의 아침식사라고 불리는 ‘브리오쉬’와 디저트 ‘또르따’가 진열돼 있고, 좌측에는 디스펜서 안에 커피가 진열돼 있습니다. 이곳의 커피가 맘에 들어서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은 100g 단위로 커피를 구매할 수 있으며, 각 가정에서 사용하는 추출 도구에 적합한 분쇄도로 커피를 갈아줍니다.


입구 전면 중앙에 위치한 냉장고 속 각종 과일과 야채가 눈에 들어옵니다. 건강한 음료를 제공하는 일 역시 이들에게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탈리아의 많은 카페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아이스 음료를 찾아보기 힘든데요. 이곳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카페라테, 아이스 카푸치노와 같은 음료를 여름에 판매하고 있고, 테이크아웃이 가능합니다. 이탈리아에 거주중인 한국인들도 정착한지 오래되면, 현지인들처럼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지만, 더운 여름 시원한 아이스커피에 대한 갈망은 이곳을 찾은 관광객과 새내기 이민자들에게는 너무나 큰 것이죠.



Scene 4 #

두 형제는 v60과 같은 드립용 도구로 커피를 만들고 싶어, 다각도로 고민했지만 적용시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한 잔의 드립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커피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초와 분을 다투는 고객들이 바 앞에서 줄을 서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작은 테이블이 비치돼 잠시 앉아서 휴식을 즐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스탠딩으로 커피를 즐기고 돌아가죠.


이러한 이유로 ‘프렌치 프레스’를 준비해 뒀습니다. 추출 방식이 달라서 맛은 다르지만, 신속하게 만들어지고, 이러한 커피를 선호하는 고객들도 있죠. 또한 자동으로 드립을 해주는 추출도구도 있습니다. 매 순간 바리스타의 손으로 직접 내리는 것과는 맛과 품질은 다르지만, 고객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기 위한 방침입니다.


100% 아라비카로 블랜딩 된 커피가 전체 판매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밀라노 북부 지역의 사람들은 남부에 비해서 보다 부드러운 맛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남부 이탈리아 출신의 거주자도 상당해서 100% 로부스타 커피도 30% 정도가 판매가 된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로부스타는 인도산 고급 로부스타입니다.


저는 이날도 여김 없이 저의 존재를 숨기며, 한 명의 고객으로 이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하고 이곳의 실제 운영 방침과 서비스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들에게 저를 소개하고 인터뷰의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저급 로부스타가 지닌 대표적 특징이 고무가 탄 내음, 발효취와 같은 냄새인데요. 이들의 커피에서는 오히려 헤이즐넛/초콜렛 맛과 향이 나는 커피였습니다. 묵직하면서 크리미한 커피를 선호하는 남부 출신들에게는 적합한 커피임이 분명합니다. 3대 7의 비율로 블렌딩된 커피와 5대5의 비율로 블렌딩된 커피, 그리고 디카페인까지 준비돼 있었는데요. 안젤로는 “처음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어떤 커피를 마셔야 하는지 당황하지만, 친절하게 어떤 느낌의 맛을 선호하는지 물어보고, 안내를 해주면 거의 대부분의 고객들은 만족을 한다.”라고 말했는데요. 왜냐하면 고객의 취향은 말 그대로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드럽고 우아한 향의 커피일지라도 묵직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맛있다고 우겨봐야 와 닿지 않죠. ‘취향저격’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셈이죠.


커피의 신선도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 디스펜서에는 최소한의 분량을 준비하고 소진되는 양에 맞춰 새로 채우려는 노력, 카푸치노 한 잔을 위해서 맛의 완성도에 집중한 이들의 모습은 제품에서도 나타납니다. 이의 커피는 다른 여는 바처럼 단 1유로입니다. 평론이 유행이 돼버린 세상에 살고 있지만, 원가가 얼마 정도인지 짐작이 되는 이곳의 이윤이 박한 커피를 보면서 ‘세치 혀’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맛있는 커피를 만날 때면 고마울 따름이지요.


Epilogue #



2019년 한국에도 경제적 지진의 여파가 몰려올 것이란 관측이 대세입니다.  외식업에 오래 종사한 저로서도 주변의 전문가들을 통해 소위 ‘곡소리’ 를 전해 듣고 있습니다.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거리로 내몰린 자영업자에게는 볼테르의 명언처럼 ‘행복은 환상에 불과하지만, 고통은 현실이다.’란 말이 폐부를 찌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처럼 올해도 최선을 다해 희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중국인은 위기를 두 글자로 씁니다.  첫 자는 위험의 의미이고, 둘째는 기회의 의미입니다.  위기 속에서 위험을 경계하되, 기회가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라고 말이죠.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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