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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월)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로맨틱한 연인의 매장 Caffe ‘Aroma’


Prologue# 밀라노에서 약 200km 떨어진 곳에는 붉은 벽돌색으로 물든 예술의 고장, 볼로냐가 위치해 있습니다.
그야말로 붉은 치맛자락을 펼쳐 놓은 듯한 볼로냐 시내의 아름다움이 오렌지색 벽과 조화를 이룹니다. ‘뚱보의 도시’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이 도시는 미식각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손으로 직접 만든 파스타 탈리아텔레pasta tagliatelle와 고기 스튜의 묵직함이 어우러진 ‘라구ragu'는 일명 ‘볼로네제 파스타’로 불리며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덕분에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라구소스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너무 유명해서 이젠 흔한 아이템이 됐지만, 집집마다 그 맛과 풍미는 천차만별입니다. 작년 겨울 이 지역 주민 사이에서 입 소문이 난 가족운영 레스토랑 뜨라또리아trattoria에서 맛본 파스타 볼로네제는 이탈리아의 다른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없었던, 담백하면서도 동시에 고기 특유의 풍미가 입안 가득한 맛이었습니다.
이런 풍부함의 원천에는 지역이 지닌 특수성도 있어 보입니다. 볼로냐가 속해있는 에밀리아로마냐 주州는 예전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롬바르디아 평야와 포 평원으로 펼쳐지는 대평원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제일가는 곡창 지대로서 황금의 땅으로 불리기도 했으니까요. 파스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펜을 든 것이 아님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네요. 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또한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할 것 같아 아쉬움을 뒤로 남기겠습니다.


Scene 1# 볼로냐는 ‘책의 도시’란 수식어가 붙어있을 정도로 매년 세계적인 규모의 도서 전시회가 펼쳐집니다. 그래서인지 볼로냐의 골목골목에는 작고 독특한 서점이 많습니다. 유럽 최초, 다시 말해 세계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곳이기에, 책과의 상관관계는 불변의 방정식처럼 따라붙는 상수였는지도 모릅니다. 11세기에 창립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답게 유럽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또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계 최초로 인체 해부를 할 정도로 탐구정신이 강한 대학이기도 했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든 학생들의 에너지가 여전히 도시를 가득 채웁니다.
볼로냐를 걷다 보면 도시의 대다수를 뒤덮고 있는 40km에 다다르는 아케이드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 밑을 조용히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한 군데도 같은 모양이 없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모양과 색상들의 아케이드를 감상하며 거니는 것이 이방인인 제게는 무척이나 로맨틱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과 도시가 전해주는 평온함과 마주치다 보면 ‘싱글 라이프’의 화려함으로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헛헛함이 이내 찾아옵니다. 갑작스런 비를 만나도 의연합니다. 처마 밑에서 잠시 시원한 바람을 느끼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비가 그칩니다.
이 많은 아치 건물에는 나름의 지혜가 숨어있다고 합니다. 여름철에는 직사광선으로부터 그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소나기가 내리 부어도, 눈이 많이 내린 겨울철에 도로가 마비돼도, 아케이드 밑 1층의 상점이나 통행로에는 전혀 피해가 가지 않습니다. 도시를 구획하는 데 있어서도 예술적 감성과 지혜를 한데 모은 것 같습니다.
테라코타 느낌을 주는 도시의 색상은 100m 가량 되는 첨탑에서 보면 장관을 이룹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가 바뀌면 전혀 다른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잠시 삶의 시선에 대한 상념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가리센다와 아시넬리로 구분되는 두 개의 탑은 볼로냐의 상징입니다. 탑의 높이만큼 권력의 크기를 자랑했던 옛 시절, 중세의 이탈리아는 황제파와 귀족파의 권력구도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고 합니다.



Scene 2# 볼로냐의 상징이 되어버린 탑을 바라보고 있자니, 볼로냐 최고의 커피숍인 ‘아로마’ 카페가 오버랩 됐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권력의 크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 이 도시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낸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연인의 러브스토리라는 점입니다.
이 여행의 목적지인 ‘아로마’ 카페의 주인 알레산드로는 이탈리아에서도 유명한 커피 전문가입니다. 그는 1994년에 작은 커피숍을 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디가드’, ‘쟈뎅’, ‘도토루’와 같은 원두커피전문점 브랜드가 유행하던 시절입니다. 집 테이블마다 유선전화기가 있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모래시계’란 드라마가 대한민국의 안방을 달구던 그 즈음의 이야기입니다.
알레산드로의 연인 크리스티나는 원래 길 건너편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고객으로 매장을 찾은 그녀는, 당시만 해도 에스프레소 한 잔이 일상인 여느 이탈리아 바bar와는 다르게, 두 대의 그라인더를 구비해 놓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유별나고 열정적인 젊은 바리스타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알레산드로는 커피에 대한 호기심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습니다. 자신에게 원두를 공급하는 커피회사에 이 원두의 블렌딩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떤 특성 때문에 이런 맛이 연출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알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커피를 볶는 로스터리 회사들은 단지 “우리는 좋은 가격에 품질이 뛰어난 커피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녀는 알레산드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존경과 사랑의 대상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코카콜라처럼 사람들은 내용물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풋풋하게 묻어났습니다.
‘레오나르도 렐리’라는 작은 로스터리의 전문가를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이들의 열정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커피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지자 볼로냐에서 최고의 품질, 그리고 와인처럼 다양한 커피의 맛을 선보이길 원했습니다.


Scene 3# 2000년부터 크리스티나는 알레산드로와 함께 매장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에 이미 15가지 종류의 에스프레소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비자로부터 ‘커피 미치광이‘란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미 15가지나 되는 다양한 커피가 있음에도, 시간이 지나자 이 매장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더 새로운 커피가 없느냐고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머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식상함을 느끼는 고객들의 변덕을 접하며 두 사람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합니다. 2016년 현재 이들은 6가지의 에스프레소, 드립커피, 사이폰 등 다양한 추출방식으로 커피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종류는 적어졌지만, 대신 지속적으로 새로운 커피를 고객에게 전달하며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경험이 많은 부부는 의아하게도 커피를 직접 볶지 않습니다. 이유는 로스팅에만 몰두하고 있는 최고의 전문가들과 끊임없이 교류하여 새로운 원두를 테스팅하고 찾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편집숍’인 셈입니다. 두 사람은 개성이 강한 스몰 로스터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평균 커피가격이 1유로인데, 이 매장은 가장 저렴한 커피가 1.5유로입니다. 한국의 커피숍은 그들의 콘셉트와 품질, 상권에 따라 몇 유로의 차이가 일반적이지만, 이곳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이 매장에서는 그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고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품질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매장은 오로지 수십 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두 전문가 연인에 의해서만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직원도, 파트타이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커피의 장인들이 직접 커피를 내려주는 곳인 셈입니다.
운이 좋게도 이곳을 찾는 고객들과 가벼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 골목길에 위치해 상권이 좋지 않은데다가 타 매장에 비해서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이 매장을 찾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이들의 답변은 매우 심플했습니다. 이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Qualita.꽐리따” (품질)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커피를 즐기러 온 이들을 방해할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더 질문할 필요성조차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 부부는 SCAE(Speciality Coffee Association of Europe)라고 하는 유럽 스페셜티 커피협회의 이탈리아 코디네이터, 트레이너로 활동함과 동시에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느라 매장 운영이 효율적이지 않음에도, 오로지 두 사람이 커피를 만들고 판매하고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품질 이상의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했습니다. ‘Aroma’에는 이름처럼 이들의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Scene 4# 호텔에서 조식으로 제공된 커피가 떠올랐습니다.
별 세 개짜리 호텔이지만, 수동형 머신으로 만든 노신사 바리스타의 카푸치노는 품질에 관계없이 감동적인 무엇이 있었습니다. 일의 특성상 해외출장이 많아 호텔에 자주 숙박하지만 기억에 남는 곳은 많지가 않습니다. 다양함으로 품질 높은 조식을 제공하는 호텔도 편리하지만,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지닌 볼륨에 비해서는 매우 큰 영향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브런치가 맛있는 OO호텔, 일식을 잘하는 OO호텔, 라운지가 좋은 OOO호텔 등은 들어봤지만, 커피가 맛있는 호텔은 아직 들어보질 못한 것 같습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도 더욱 뛰어난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오로지 ‘세계에서 Coffee&Tea가 가장 뛰어난 숙박시설’이란 수식어가 붙는다면 이것 역시 하나의 색깔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한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 위한 마인드의 전환은 늘 보이지 않는 저항에 부딪치기 마련이죠.


Epilogue# 이제는 볼로냐에 가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커피향기에 침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기분 좋은 조건반사인 셈이지요. 작은 커피 잔에 사랑과 인생을 녹여내는 두 연인의 모습이 하늘 높이 용솟음쳐 올라있는 두 개의 탑 뒤로 비춰지는 눈부신 태양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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