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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수)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동경의 카페 그리고 산책


Prologue# 최근 2017 동경 국제 호텔, 케이터링, 주방기기 박람회 HCJ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이 박람회는 식품 분야 중 설비, 시스템에 특화돼 있는 전문 박람회라고 합니다. 일본 디스트러뷰의 전시 서포트와 워크숍을 진행하고자 방문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전시회에 어떤 업체들이 무슨 아이템을 가지고 참여했는지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국제전시장으로 가는 길은 도쿄 JR 노선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 안에서는 바다를 둘러싼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태어나서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이탈리아 동료가 풍경에 매료됐습니다. 질투심은 아니지만 저는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서울에는 한강 위를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 멋있어.” 라고 말이죠. 출퇴근길에 보여지던 그 풍경들을 아무 감흥도 없는 일상의 한 자투리로 여겼는데,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언어에는 그리움이 묻어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복잡한데, 도쿄의 지하철 노선은 거미줄이 따로 없습니다. 1350만 명이 거주하는 일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Scene 1# 시오도메 역에 머물고 있던 저는 저녁 식사를 위해 긴자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긴자 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를 걷다 보면 다코야키와 맥주를 서서 먹는 가게가 나오는데 참 친절하고 맛있습니다. 이탈리아로 치자면 식전주 ‘아뻬리띠보’와 비슷한 개념이라 생각이 듭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이전에, 간단한 먹거리와 주류로 하루의 긴장을 걷어내는 라이프스타일이죠. 다코야키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마시는 생맥주 한 모금이 시원합니다. 생맥주의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신선함, 깨끗한 관 청소인데, 이곳의 생맥주에서는 풍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따끈하게 제공되는 다코야키의 짭조름하면서 달콤한 맛, 은은한 바다의 풍미는 일품입니다. 치맥이 환상의 궁합이라면 이것 역시 그에 비견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음식은 길거리 음식조차 믿음이 가는 편입니다. 웬만한 식당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오픈 키친을 유지한 지 상당히 오래됐습니다. 십 수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기본으로 청결을 최우선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음식을 조리하는 이들의 모습은 때로 숭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탐이 많아서인지 커피의 맛을 직업적으로 기억하고 구별해 내야 하는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훌륭한 음식을 대할 때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화려한 레스토랑의 얘기가 아닙니다. 소박한 돈가스 가게에서도 돈가스가 기름에 튀겨지며 나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줍니다. 여름날 한바탕 내리는 빗소리처럼 청명하고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라멘 집에서 면이 삶아지며 피어오르는 김, 그리고 그것을 툭툭 털어낼 때 나는 소리는 다가올 그릇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킵니다.


Scene 2# 한국에서도 오픈키친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아직 정착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픈된 주방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 보입니다. 고객을 향한 신뢰감, 준비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맛의 일부분이 되는 것, 무엇보다 소통이 이루어지는 점. 이러한 모습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돼 잘 알려진 영화 ‘심야식당’에서는 오픈키친을 둘러싼 고객과 주인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극적으로 구성됐습니다. 번화가의 뒷골목에 자리 잡은 밥집, 모두가 귀가할 무렵 문을 여는 ‘심야식당’은 주인장이 가능한 요리는 무엇이든지 해줍니다.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것을 음미하는 가운데 주인장과 단골들에게서 피어나는 이야기와 삶의 에피소드를 감동적이면서도 위트 있게 풀어냈습니다.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쩌면 한국의 포장마차 역시 오픈키친의 원조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려웠던 시절, 퇴근길에 들러 안주 없이, 잔술을 청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죠. 전 세계의 커피 업계도 오픈 바, 모듈 바, 이런 것이 유행을 이끌고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주도하는 세계적인 매장들은 프랜차이즈의 딱딱함을 걷어내고, 전문가인 바리스타와 고객의 소통을 만들어내는 오픈 형태의 매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Scene 3# 일본에 온 김에 일본의 커피 문화를 조금이라도 관찰하고 싶어 소소한 커피숍 투어를 했습니다. ‘퍼펙트 데일리 그라인더’에 소개된 동경의 BEST 5와 몇 매장들을 다녀왔습니다. 물론 누구의 선정 기준인지는 저는 모릅니다. 굳이 동의해야 할 필요도 없고요.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매장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시부야의 대로변에는 세 평 남짓해 보이는 테이크 아웃매장 ABOUT LIFE가 있습니다. 이 작은 매장은 앉을 공간도 없지만 핸드드립 커피를 손수 내려서 제공합니다. 또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니 르완다, 온두라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며, 와인리스트처럼 커피리스트를 건넸습니다. 저는 온두라스를 주문했고, 이곳의 바리스타는 정성스럽게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작지만 커피에 무게감을 실은 매장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커피의 맛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열정은 커피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편집숍 형태로 일본에서도 유명한 로스터리 3곳의 커피를 사용하며, 싱글오리진 메뉴로 차별화하고 있었습니다. 테이크아웃 형태의 매장이라고 해서 저렴한 커피를 판매하는 일반적인 숍과는 다릅니다. 몸집이 작을 뿐 콘텐츠는 특별합니다.
이곳에서 15분 정도 도보로 이동하면 커피와 차, 칵테일 바, 빈티지 디자인 콘셉트 스토어인 FUGLEN이 나오는데요. 인적이 많지 않은 골목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들 다양한 고객층이 그곳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유명 스페셜티 커피 매장이란 이름값이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Scene 4# 굳이 기억에 남는 곳은 꼽자면 지유가오카에 있는 BIBILIOTHEQUE입니다. 이곳의 분위기는 동경의 도심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역의 이름은 원래는 학원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지역의 이름이 돼버린 독특한 지역입니다. 마치 호치키스란 브랜드가 너무 유명해져 ‘스테이플러’란 이름을 생소하게 만들어버린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이곳에는 디저트로 특화된 매장이 굉장히 많습니다, 수년 전 디저트로 특화된 브랜드를 디렉팅하는 과정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이 지역을 방문한 기억이 납니다. 작은 골목 사이로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다양한 숍들은 이곳의 유명세를 더해줍니다. 역 인근에 위치한 이 매장은 유니크한 아이템들이 숍인숍 형태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에스프레소와 드립을 한 잔씩 마셨는데, 이탈리아의 그것과는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 없지만 에스프레소 특유의 밀도감이 넘치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설탕을 한 스푼 넣어 마시면 더욱 달콤할 것 같았는데, 그럴 겨를도 없이 이미 다 마셔버리고 말았습니다.
일본에는 커피로만 특화된 매장들도 있지만, 식사와 디저트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는 매장들이 많습니다. 이 매장이 기억에 남는 것은 제품 퀼리티뿐 아니라 고객을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서빙을 하는 매장으로 주문한 메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기본입니다. 오늘 준비된 메뉴 중에 하나의 품질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며 다른 것을 추천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등 스태프들이 보여준 예의와 리액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pilogue#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의 커피를 가장 좋아하지만, 살다 보면 잊히지 않는 인생 커피가 몇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7년 전 일본에서 마신 커피였습니다. 아카사카의 작은 다방, 70대로 보이는 노신사가 내려준 커피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한국의 공항에 돌아와서도 머릿속 그 맛이 잊히지 않았으니까요. 그윽한 커피의 향기와 함께 쓴맛, 신맛, 단맛, 부드러운 목 넘김이 혼연일체가 된 그런 느낌의 커피였습니다. 이방인을 위해 준비하는 노신사의 눈빛, 느릿하지만 흐트러짐 없는 집중력과 커피 한 잔을 정성스럽게 건네는 이에게서 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출장의 여정에서는 벚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모양과 색깔로 피어나는 꽃들처럼, 다르지만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달라서 더욱 아름다운 동경의 커피숍들 역시 다른 모양과 색깔로 그렇게 피어있었습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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