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계관 인기제품
교토의 후시미(伏見) 지역에 들어서면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술 곳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첨단과학기술의 현재와전통 문화의 과거 일본이 동시에 체험되는 후시미 지역의 대표적인 사케 도가, ‘월계관’이다. 한국의 애주가 중에 이 ‘월계관’이라는 술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월계관이란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스 신화에 ‘태양 신 아폴로가 독사를 퇴치하고 월계수 잎으로 몸을 정결히 했다.’라는 유래와 같이 유럽에서는 월계관은 악의를 물리치는 신성한 나무(霊木)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월계관의 유래는 기원전 9C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4년에 한 번 신들을 섬기기 위한 체육 및 예술 경기 축제가 각 지역에서 행해진다. 오늘의 올림픽의 기원이 된 올림피아 지방의 ‘올림피아 제전경기’를 비롯해 고린도 지방의 ‘이스트미안 게임’, 네미아 지방의 ‘네미안 게임’, 델피 지방의 ‘피디안 게임’ 등이 그리스 4대 제전경기로 알려져 있다.
올림피아 제전경기의 승자에게는 올림피아 신전의 신목인 ‘올리브로 만든 면류관’이, 이스트미안 게임의 승자에게는 ‘소나무의 왕관’이, 네미안 게임의 승자에게는 ‘야생 샐러리의 왕관’이, 피디안 게임의 승자에게는 아폴론 신전의 ‘신목 월계관’이 주어진다.
이에 우리에게는 마라톤을 비롯한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와 영광의 상징으로 ‘월계관’이 경기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월계관의 역사는 360년 전 오쿠라(大倉) 지에몬씨 창업부터 시작한다. 토쿠가와 3대 장군 토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 시대에 교토부의 남쪽지역인 키즈가와(木津川)와 상류 카사기(笠置)에서 그 주조가 시작됐다. 카사기에서 왔다해 옥호를 카사기야(笠置屋)로 짓고 술 이름은 다마노이즈미(玉の泉)로 붙였다. 그 후 무로마치(室町) 시대에는 일반인에게도 널리 퍼졌다. 사실 사케 경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사카의 이케다(池田), 이타미(伊丹), 나다(灘)의 사케들은 외부지역으로 판매가 확장됐지만 여기서는 에도 막부의 통제를 많이 받았다. 생산량 제한, 과다한 세금, 교토 지역에서의 판매제한이 따랐던 탓이다. 더욱이 막부 말에는 도바후시미(鳥羽伏見)의 전투로 마을이 대부분 불탔다. 하지만 명치(明治)시대 철도의 개통으로 순조롭게 도카이도(東海)선으로
이동할 수 있게 돼 찬스를 잡았다. 당시 최고의 술로 인정받던 고베 나다의 사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1905년 사케의 왕자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월계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술상표로 자연, 지역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던 터라 ‘월계관’이라는 이름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1909년에는 오쿠라 주조연구소를 세우고 그동안 직관과 경험에 의존해 사케를 빚던 관행을 과감히 깨뜨렸다. 1911년, 드디어 방부제 없이 병에 담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술병 위에 유리 술잔이 달린 월계관이란 술을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마케팅 혁신을 시도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월계관은 1911년 1월 술품평회에서 1등상을 수상해 전국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1961년에는 근대식 설비를 갖추고 사계절 생산이 가능한 주조장을 일본 최초로 만들어 경쟁력을 높였다.
월계관은 사케 세계화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1989년 ‘미국 월계관’을 설립, 현재는 미국 내에서의 신선한 사케를 제조해 공급하며 사케 시장 점유율이 25%에 달한다. 1994년부터 한국에서의 사케 수입이 개방되자 월계관은 발 빠르게 수출을 시작, 현재 한국 사케 시장의 25.5%를 점유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과거에 미국에서 ‘Gekkeikan’으로 사케 보급에 앞장선 결과 현재는 많은 사케가 진출이 돼 ‘Sake’ 또는 ‘Japanese Sake’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중국 상하이로 진출하는 등 60개 국 이상의 해외 고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사케뿐만 아니라 소주, 맥주, 와인, 기타 식품, 술을 이용한 화장품이나 입욕제 등까지 진출했다. 청주의 제조에서 축적된 기술로 볏짚에서 축출한 바이오 에탄올의 특허 기술을 취득하거 나카오(花王)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누룩곰팡이에 의한 염색기술의 특허도 얻어냈다. 2014년 4월에는 ‘냉동 나베야키 우동’으로 알려진 ‘킨레이’ 식품사업을 인수했다. 그러나 수 십년 이상의 긴 세월에 걸쳐 술 메이커의 1위 점유율을 자랑해 온 월계관이지만, 2002년에는 고베의 백학주조(白鶴)에 그 자리를 내줬다.
그 후 월계관은 전통기업의 국제 조직인 ‘에노키안 협회(1981년 결성, 본부는 파리, 단체명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담의 후손에녹)’에 가맹을 했는데 그 가입조건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창업 200년 이상’, ‘가족경영’, ‘실적양호’의 3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시켜야만 한다. 그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것은 월계관을 포함법사(法師), 토라야(虎屋), 오카타니철강(岡谷鋼機), 아카후쿠(赤福)뿐이라고 한다.
월계관의 마케팅 전략은 청주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사업을 확대한 것이다. ‘촉촉함을 당신에게’와 ‘For Your Lifestyle Taste’라는 세련된 문구를 사용해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것이 돋보인다. 심볼 마크와 로고 또한 신문이나 잡지, TV, CM등 광고 커뮤니케이션에 일관되게 사용한다. 신규 고객 확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장르의 신상품을 끊임없이 기획하고 있다.
신세대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제품, ‘당분 제로 시리즈 사케’, ‘탄산 음료식 사케 시리즈’도 이어졌다.
월계관은 기업이미지 제고와 사회봉사를 위해 J리그의 교토상가 F.C.의 공식 스폰서를 맡았고, 최근에는 기업 메세나에도 적극 참여한다. 본사가 있는 교토시 후시미구에는 월계관 오쿠라(大倉) 기념관이 있고, 술과 관련된 문화제도 연다.
최근 정보화시대에 맞춰 Facebook, 트위터 등 SNS, 블로그라는 인터넷 정보망을 이용한 홍보를 적극 활용하는 월계관의 마케팅 전략은 화려하고 보수적인 일본기업의 이미지를 뛰어넘는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360년 장인 기업의 미래가 어떠할까? 상상이 어렵다.
이용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