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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 Bar

[이용숙 사케 소믈리에의 All about Sake] 사케 소믈리에(기키사케시)를 아시나요?


필자는 2년 가까이 매달 사케 도가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호는 본지의 26년 창간특집호인 만큼 사케 전문가, 즉 기키사케시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가까이는 한 개인, 작은 물건에 이르기까지 이미지의 영향을 벗어나기 어렵다.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여간해서 바뀌지 않으니 말이다. 특히 기업의 경우에는 이미지가 곧 생명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발표해도 기업 이미지가 나쁘면 소비자들의 발길이 멀어진다.
국가 이미지는 더 그렇다. 그런데 국가 이미지에서 ‘술’은 매우 중요하다. 술은 음식 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술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배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와인과 독일의 맥주다. 러시아의 보드카, 중국의 고량주, 멕시코의 데킬라도 그러하다. 프랑스는 ‘와인’ 한 단어로 모든 것이 통하고, 와인 감정사인 소믈리에는 세계 어디서나 대접을 받는다. 칠레산 와인이나 미국산 와인이 세계 시장에서 프랑스를 위협한다지만, ‘와인은 프랑스’라는 등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독일 맥주 역시 마찬가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맥주가 생산되지만 맥주는 독일이라는 등식 역시 탄탄하다.
프랑스와 독일이 이 탄탄한 이미지를 수백 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지역마다 전통적인 술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비법은 물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수백, 수천 개의 브랜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름이 알려진 지역마다 축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은 수백 년간 이어져온 전통의 힘과 멋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프랑스의 와인이나 독일의 맥주에 비길 만큼 오랜 역사적 전통이 배어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의 ‘사케’다. 수백 년 이상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고 1500여 곳에 이르는 사케 도가가 각기 특색 있는 술을 만들어낸다. 독일은 1516년에 ‘맥주 순수령’을 반포해 겉보리, 호프, 효모, 물 이외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이것이 독일을 맥주 종주국으로 만든 힘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본 사케에는 이런 강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각 지역마다 매우 엄격하고 정선된 제조법이 수백 년간 이어져오고 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정해진 비법대로 정직하게 술을 만든다. 그 동안 필자가 소개한 사케 도가 중 100년 또는 200~300년 된 술도가도 있었다. 2016년 8월호에 소개한 일본 관동 지역 이바라기현의 스도 혼계 도가는 무려 879년간의 역사를 자랑했다.
흔히 일본 술은 모두 ‘사케’라고 부르는데, 일본 술 중에서도 쌀로 만든 술만 ‘니혼슈’다. 한국에서 불리는 ‘정종’이라는 이름은 니혼슈 중 마사무네(政宗)라는 술 회사 상표였을 뿐이다. ‘봉고’라는 승용차의 고유명사가 일반명사처럼 여겨지는 것과 같다.



최근에는 니혼슈가 국제화돼 미국 등지에서 타국의 쌀로 사케를 빚어 판매하는 대형주조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되자 최근 일본쌀로 만든 사케만 니혼슈라는 이름을 쓰도록 국세청에서 발표했다. 일본인들에게 니혼슈는 프랑스의 와인처럼 요리 혹은 작품이나 예술과 다름없다. 와인은 이미 세계적인 술이 됐다. 와인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소믈리에도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전문가다. 일본에도 소믈리에에 견줄 만한 니혼슈 감정 평가사가 있다.
약간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필자의 경험담이다. 필자가 사케 전문가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인연은 이렇다. 일본에 이주한지 10년 정도 됐던 때의 일이다. 10년 정도면 나름대로 일본의 문화나 일본인들의 기호, 지역의 맛, 특산품 등이 익숙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10여 년의 시간을 무색하게 한 일이 벌어졌다. 오사카에서 APEC 행사와 더불어 한일 양국 수뇌회담이 열렸다. 한국 경제인 단체가 한국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필자는 행사 일부의 통역을 맡게 됐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만찬 시간에 지인인 한국 모 기업의 회장님이 일본 사케명이 적혀있는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이 선생님, 여기 쓰여 있는 술 한 병 구할 수 있을까요? 다음 주가 추석인데 집안 어른들 모실 때 쓰려고 합니다.”라고 부탁했다. 나는 선뜻 “걱정 마세요. 회장님! 일본이 사케 천국 아닙니까? 제가 내일 당장 구해 오겠습니다!”라고 큰소리쳤다. 그 길로 대형 백화점의 지하 식품코너로 달려갔다. 어느 백화점이든 지하의 식품코너에 가게 되면 술 코너가 따로 설치돼 있어 각종 술들이 즐비하기 마련이었는데 글쎄! 내가 찾는 사케, 아니 니혼슈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뒤지고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당황한 맘에 등에서 땀이 흘렀다. 겨우 술 코너 담당자에게 알아본 결과 메모지에 적힌 니혼슈는 술 도가에 주문한 후 오랜 시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대량생산을 하기에 백화점 술 코너나 슈퍼 등지에서 파는 술과 달리 겨울의 일정 기간에만 빚는 특정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고급 사케였던 것이다. 그런데 큰소리를 치고 당장 구해 온다고 했으니 이를 어째? 할 수 없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일본 전통 요리점을 찾아갔다. 메모지에 쓰여 있는 사케와 가장 수준이 비슷한 것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 요리점의 주인장은 니혼슈 기키사케시였다. 주인장은 “이런 사케를 부탁하시는 걸 보니 사케를 잘 아시는 분이네요!”하면서 나의 절박한 입장을 이해한 듯 내가 찾는 술과 비슷한 수준의 특별한 사케를 찾아줬다. 그는 그 사케를 일본을 방문한 회장님에게 드리는 선물이라며 선뜻 건넸다. 나는 순간 니혼슈의 존재에 대해 묘한 전율을 느꼈다. “아니 이게 뭐지?”하고 말이다. 그 술을 받아 본 지인 회장님께서는 일본인 주인장이 베풀어준 따뜻한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로얄 살루트 36년 한 병을 전달하라며 주셨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회장님과 오사카 유명 요리점의 주인장 사이의 사케 외교가 시작됐다. 그 후 나는 일본의 문화와 관광 관련 연구를 위해 일본 전역을 돌아보면서 일반 백화점이나 슈퍼에서는 살 수 없는 각 지역의 독특한 니혼슈가 있음을 알았다. 급기야 사케가 가지고 있는 깊이와 향에 매료돼 사케 공부를 시작했다. 잘난 체하던 나를 홍당무로 만들어 버렸던 것을 만회해야겠다는 오기도 작용했으리라.
원래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못 마시는 술맹이 사케 공부를 한다며 매달린 결과 2년 만에 기키사케시의 자격을 따냈다. 옛 문헌이나 고서들에나 나올 법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어려운 한자어 때문에 1년 차에는 낙방했다. 필기시험과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그 후 필자는 유명하다는 사케 도가, 사케 전문점, 사케 바 등을 찾아다니며 어설프게나마 실무적 견문을 쌓아나갔다. 1년 절치부심한 덕인지 다음 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이 자격으로 특별한 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도전에 대한 큰 성취감이 있었다. 필자와 사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어 일본에서는 니혼슈를 국주로 정하고 관민일체로 니혼슈 수출 촉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획의 일환으로 10년 전부터 ‘사케 사무라이’를 선정하고 있다. 필자는 2016년 사케에 입문한지 16년 만에 사케 사무라이로 임명됐다. 보통 사무라이라고 하면 전쟁, 말을 타고 달리거나 칼을 찬 무사 등을 연상하는데, 일본에서 사무라이의 어원은 아름다움, 소중한 것을 지키는 강한 의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 지성인, 의리 있는 사람 등을 상징하는 말이다. 술을 양보다는 질로 마시자는, 또한 격식 있게 마시고 취하자는 술 문화를 사회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것이 필자가 술을 공부하는 목적이다.
우리나라의 드라마 대장금에서처럼 천부적으로 맛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소위 절대미각을 갖춘 사람들이다. 소믈리에나 기키사케시 중에는 절대미각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와인이나 사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거나 많이 마셔봤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미각은 물론 음식과 와인 혹은 사케와의 조화를 아우를 수 있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적인 감각까지 있어야 한다. 기키사케시는 니혼슈 즉 사케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는 자격이 결코 아니다. 사케의 맛과 매력을 잘 모르는 사람, 또는 한 번도 사케를 접해 보지 않은 여성들이나 술 초년생들에게 사케를 친근감 있게 접하고 매너 있게 마시게 하는 것도 전문가의 중요한 역할이다. 사케는 일반 술과는 달라 만드는 시기와 재료가 조금만 달라져도 맛이 달라진다. 물과 온도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겨울철 북풍 바람과 장인들의 구슬픈 노래 가락까지 사케의 맛에 영향을 줄 정도이다. 그만큼 예민한 음식이다. 그러니 상당한 집중력과 사명감을 요한다. 그리하여 사케 제조에는 가업에 대한 사명감, 투철한 장인정신이 깃들게 된다. 사람의 혼은 최선을 다하는 데서 생긴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일본의 혼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전통이 가장 잘 살아 있는 것이 사케, 니혼슈 도가’라고 꼽는 이유다.


이용숙
니혼슈 기키사케시(사케 소믈리에)
㈜린카이 이용숙 대표는 오랫동안 사케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간사이국제대학 경영학과 교수 및 니혼슈 홍보 한국사무국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시장의 사케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밤’을 매년 개최, 사케에 대한 정보 공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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