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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 Bar

[이용숙 사케 소믈리에의 All about Sake] 사케도 미인이 대세? 이와테현(岩手県) 남부미인(南部美人) 주조


20여 년 전, 필자가 일본에 처음 와서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던 때의 일이다. 일본인 직장인들과 저녁 회식자리가 마련돼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 전 술을 주문하는 때였다. 일본인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리아에즈 비루(맥주)”라고 주문한다. 나는 일본인이 맥주를 좋아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도리아에즈 비루’가 삿포로, 기린, 아사히, 산토리처럼 맥주의 상표 종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도리아에즈 맥주는 ‘어쨌든 우선 맥주부터’라는 뜻이다. 다른 여러 모임에서도 일본인의 대다수가 자리에 앉으면 “도리아에즈 비루”를 외치는 걸 보면 일본인에게는 사케보다 맥주가 단단히 자리잡은 친근한 술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더불어 일본의 경제성장과 외국 술의 수입개방으로 인해 주류의 다양화가 확산돼 맥주 이외에 와인, 위스키 등의 애호가도 늘어났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니혼슈의 판매와 제조는 약 50~60년에 걸쳐 점점 일본인에게서 멀어졌다. 니혼슈가 가장 사랑을 받은 시기에는 약 2500여 개의 술 도가가 있었으나 최근 1500여 개로 줄었다. 사케 생산량은 25년 전과 비교해 반으로 줄어 연간 80만㎘ 정도다. 이렇게 되자 사케 주조들은 가격 자율화를 실시하고 품질을 고급화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에 발 빠르게 대응해 해외 수출에 나선 남부미인(南部美人) 사케 주조가 있다. 한국에도 수입되고 있는 유명한 사케주조다. 남부미인은 5대 장인 쿠지코스케(久慈浩介)(쿠지) 씨가 대표이며 창업 115년의 역사를 가진 이와데현(岩手県)의 니노헤시(二戸市)에 위치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가업 장인의 용기
2011년 3월 11일 동북 지역 미야기현(宮城県)에 거대한 쓰나미가 지나간 후 4월 2일 유튜브에 남부미인 주조의 대표 쿠지코스케 씨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동북 지방의 사케를 마시는 것이 도와주시는 겁니다. 벚꽃놀이를 즐기세요.” 동북대지진으로 일본 전국이 자숙 분위기로 침체하고 있던 중, 이 지역은 미야기현과 가깝다는 이유로 2차 경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지진 피해로 모두가 눈에 띄는 행동을 절제하는 엄중한 시기에 뜻밖의 외침이었다. 오랜 세월 지켜온 장인 가업의 주조 회사명과 오히려 가려야 할 대표의 얼굴을 노출하며 ‘사케 마시고 힘내자’ 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도 이와데현의 사케 점포 소개와 홍보를 당당하게 올려놓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 주조는 물론이고 동북지방 사케 도가의 앞날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죽더라도 일어나서 검을 뽑아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절실한 목소리가 통했는지 트위터나 동영상이 순식간에 확산돼 각 지역의 뉴스 프로그램과 방송을 타면서 ‘동북지방의 사케와 음식을 먹읍시다’라는 국민 슬로건이 생겨났다. 자신을 잃어 가던 동북 지역의 사람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갖는 순간이었다. 쿠지 사장은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한다. “그때 동북 지역을 돕기 위해 동북 지역의 사케를 마셔주신 분들이 지금까지 제 고정고객이십니다.” 이로 인해 니혼슈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동북지방은 물론 규슈지방까지도 니혼슈 판매량이 늘어났다. 감히 누가 이런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이 맞았다.




해외 수출의 시도와 코셔(Kosher) 인증
쿠지 씨의 시도는 니혼슈의 해외수출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1997년 발족한 니혼슈수출협회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니혼슈 계몽활동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을 돌고 한발 더 나아가 브라질, 두바이, 이스라엘 등까지 니혼슈를 소개했다.
현재 수출국이 26개국으로 늘었다. 쿠지 씨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풀숲 속을 헤쳐 나가는 기분이었어요.”라고 회상한다. 말 그대로 처음에는 풀숲을 헤치고 걷다가 작은 길을 만들었고, 뒤를 따라오는 다른 도가들이 2차선 도로를 만들었다. 그 후 화식(和食)의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일본정부의 ‘Cool Japan’ 전략으로 지금은 4차선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셈이다. “언젠가는 세계인들이 니혼슈로 건배를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라고 쿠지 씨는 앞날을 그려본다. 나아가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냈다. 이스라엘의 코셔 인증을 획득한 것이다. 코셔는 유대교도의 음식에 대한 가르침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원재료부터 제조공정까지 엄격한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미국에는 채식주의자 등 코셔 식품을 원하는 비이스라엘인도 1100만여 명이 산다. 코셔 인증을 받으면 해외시장에까지 빠르게 알려지고 확산된다. 니혼슈 업계는 아직 4~5개사 정도만 인증을 받았지만 해외산 와인에는 꽤 많이 코셔 마크가 붙어있다. 2020년 동경 올림픽에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올 것이므로 일본 내에서도 코셔 인증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쿠지 씨의 생각이다.




국제화와 세계화의 시도
남부미인 사케 도가에는 미국 아칸소 주에서 온 연수생 벤 벨 씨가 근무하고 있다. 벤 씨는 단순히 사케 주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미국에서 사케 주조회사를 설립해 ‘Made in America’ 사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아칸소 주에서는 일본의 사케 전용 쌀인 야마다니시키(山田錦)를 재배하고 있어 일본 원산지의 쌀로 사케 주조가 가능하다. 벤 같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사케 주조 기술을 배워 미국에서 맛있는 니혼슈를 만들고 적정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니혼슈의 미국시장은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들려오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니혼슈 팬을 넓히는 것”이라고 쿠지 씨는 단언한다.
현재 벤 씨가 니혼슈 주조를 배우고 있는 것은 반드시 일본에 도움이 될 것이란다. “미국인들이 일본 술을 만들어 맛있게 마시는 시대가 올 날이 머지않았다.”라고 흥분된 어조로 말한다.


순풍에 돛을 달고
2015년 니혼슈를 소재로 한 영화 3편이 상영됐다. 「Kampaifor  Love of SAKE」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됐다. 외국인 3인을 주인공으로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니혼슈를 마시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의 재미있는 내용의 영화다. 또한 술 기술 장인의 다큐멘터리인 「한잔의 계보」, 테도리가와(手取川)의 사케 주조를 주제로 한 「The Birth of SAKE」가 상영됐다. 니혼슈를 테마로 한 영화가 동시에 3편이나 상영된다는 것은 전무한 일이다. 니혼슈가 주목 받고 있으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쿠지 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역풍을 맞으며 힘든 시간을 견디고 사케를 지켜 온 선인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지금 순풍에 돛을 달 수 있었다고…. 또한, “세계는 지금 니혼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전과 같이 한낱 술 주조 창고만이 아닙니다. 세계로 도전할 수 있습니다. 미래가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좋은 술을 빚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덧붙인다.


기술 개발은 장인의 당연한 책무
남부미인 주조는 고급 사케를 만들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일반적으로 사케를 만들 때는 장시간 사케 보존과 유통을 위해 열처리한다. 높은 온도로 열처리를 하면 당연히 사케가 가지고 있는 쌀의 많은 부분이 많이 날아가게 된다. 따라서 열처리를 하되 고온에서 하고 빨리 저온으로 내려주면 그만큼 향기나 효소가 날아가는 것을 막고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남부미인 주조에서는 1ℓ의 술을 65℃로 열처리하고 단 1초 만에 10℃ 이하로 떨어뜨리는 ‘플레이트 히터 급냉 점화’ 기술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불가능하다고 걱정했지만 온도가 떨어질 때 생기는 발효균의 위험도와 관련 역사를 확실히 연구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향과 맛을 유지해 사케의 품질이 놀랄 정도로 높아졌고 2014년 11월에는 전국 신슈품평회에서 금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쌀은 사람의 얼굴과 같다. 100%의 얼굴을 50%로 작고 예쁘게 깎아 도정한 후 쌀의 피부 즉, 깨끗하고 하얀 속살만 가지고 사케를 만든다. 그러니 남부미인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이용숙
니혼슈 키키사케시(사케 소믈리에)
㈜린카이 이용숙 대표는 오랫동안 사케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간사이국제대학 경영학과 교수 및 니혼슈 홍보 한국사무국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시장의 사케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밤’을 매년 개최, 사케에 대한 정보 공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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