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00년 전에 중국에서 티가 발견돼 전 세계로 확산되고 오늘날에 이르면서 티를 준비해 마시는 방식은 시대 지역마다 매우 다양하게 발달했다. 이번 호에서는 ‘티의 종주국’이라 할 중국에서 티가 발견되고 티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살펴본다.
당의 압축차가 계승돼 최고조로 발달
당나라 시대에는 티가 육상 무역 루트로 운반됨에 따라 보관과 편리를 위해 다양한 형태로 압축됐다. 이러한 딱딱한 압축차를 ‘긴압차(緊壓茶)’ 또는 ‘연고차(硏膏茶)’라고 하는데 송에 이르러서는 그 제조 기술이 최고조로 발달했다.
특히 푸젠성(福建省) 지역에서 생산돼 황제나 황족에게 헌상 되는 최고급의 티인 용단봉병(龍團鳳餠)이 대표적이다. 용단(龍團)은 황제나 친왕이나 성주에게 바치는 것이었고 봉병(鳳餠)은 황족이나 학사나 스승에 바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용단이나 봉병은 용이나 봉황의 인印을 찍어 주로 헌상됐다.
또 하나의 혁신, 가루차의 등장
그런데 송나라 시대(960~1279)에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 넘는 또 하나의 형태인 가루차, 일명 말차(抹茶)가 등장했다. 이 가루차는 찻잎을 딴 뒤 토기 항아리에 넣고 창고에서 수개월 동안 보관 및 건조 한 뒤 고운 가루 형태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가루차를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 마셨다. 이때 가루차를 저어 거품을 내었는데, 이를 ‘격불(擊拂)’이라 한다. 그리고 거품을 내는 도구인 ‘차선(茶筅)’도 함께 등장했다. 이는 일본으로 전파돼 오늘날의 ‘맛차(抹茶), (matcha)’로 발전하게 된다.
동아시아 초기 해상 무역 루트의 형성
한편 송나라 시대에는 동아시아의 티 로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날의 광둥성廣東省에 무역항이 설립되면서 중국,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의 해상 무역 루트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송나라 시대에 새로이 개발된 가루차는 이미 당나라 시대부터 불교 승려에 의해 티가 전파된 이후, 생활 예술로서 차노유茶の湯가 발전해 있었던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크게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차노유에서는 가루차가 자주 사용되면서 중국에서 일본으로의 해상 무역 루트는 더욱더 활기를 띠었다.
티를 우리는 방식과 보관 방식에도 일대 변화
한편 티를 우리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찻잎과 물을 함께 넣고 끓였던 기존의 ‘전차煎茶’ 방식에서 벗어나 ‘점차点茶’ 방식이 생겨났다. 점차 방식은 물을 끓인 뒤에 찻잎을 넣어 우려내 먹는 방식이다. 송나라 시대에 오늘날과 같이 티를 우리는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티의 보관 방식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딱딱한 연고차, 압축한 긴압차에서 찻잎이 낱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차散茶’가 등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산차에 뜨거운 물을 부은뒤 식혀 가면서 티를 한 모금씩 즐겨 마셨다. 이 과정에서 티를 준비해 마시는 방식에도 법도가 생겨났고, 이는 귀족층 사이에서 예식으로서 매우 중요시됐다. 그러나 산차는 아직은 그 쓴맛으로 인해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정승호
(사)한국티(TEA)협회 회장,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 원장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은 국내 최초의 티(TEA) 전문가 양성 교육기관 및 연구 기관이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에서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외식 음료 산업의 티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백차,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 허브차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티를 시음하며 향미를 감별하는 훈련과정(Tea Tasting & Cupping)과 티 산지 연수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