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향과 맛의 예술은 무엇보다도 차를 우려냈을 때 찻잎의 함유 성분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데 달려 있다. 이런 방향성 성분들의 조화와 균형은 차를 우릴 때의 물의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
각 차마다 물의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아도 방향성 화합물의 균형이 깨져 향미가 달라진다.
물의 온도는 끓는점 아래로
찻잎을 우리기 위해 끓인 물의 열은 찻잎에 든 풍부한 방향성 화합물들의 용해도를 높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방향성 화합물들은 자연스레 소실된다. 따라서 보통 훌륭한 향미의 차라는 것은 그런 화합물의 수를 극대화한 것이 아니라, 타닌이나 아미노산이나 방향성 화합물 간의 균형을 맞춘 것이다.
모든 차는 제각기 훌륭한 향미를 내는 데 적정 온도가 있지만 차를 우리는 데는 보편적인 법칙도 있다. 그 보편적인 법칙이란 “물을 100℃로 끓이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은 보통 40℃의 온도에 이르면, 그 속에 녹아 있던 산소 기체가 작은 기포의 형태로 맺혔다가 증발한다.
그런데 이 산소는 차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용해된 방향성 화합물을 기체 상태로 유지해 차를 마실 때 후각 정보로써 뇌에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물이 끓는점에 이르면, 그 속에 함유된 미네랄 성분들이 찻물을 담은 찻주전자의 내벽에 흑갈색의 막을 형성한다. 이 막이 타닌을 뭉치도록 해, 결국 차의 맛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녹차·백차는 저온의 물로
우롱차는 고온의 물로 우려야
물은 고온일수록 용해도도 높아져 타닌 등 무거운 화합물들이 더 많이 녹아든다. 만약 물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차의 맛에서는 떫은맛과 쓴맛이 지나치게 강해지고, 차의 향에서는 균형이 무너진다. 녹차의 경우, 물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감칠맛 성분인 아미노산과 첫 발향, 즉 톱 노트의 성분인 휘발성의 방향성 화합물이 소실된다. 더욱이 물이 끓는점 정도로 높으면 찻잎도 익어 버린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녹차나 백차의 경우, 찻잎에 함유된 아미노산과 싱그러운 향을 살리기 위해 저온의 물에서 우려 왔다. 반면 청차(우롱차)에서 주형(珠形)의 둥딩우롱(洞頂烏龍, 동정오룡)이나 안시톄관인(安溪鐵觀音, 안계철관음) 등의 차는 끓기 전 고온의 물로 우려 왔다. 왜냐하면 이들 차의 찻잎은 가지 밑동의 것으로서 재질이 여물어 고온의 물에서 우려내도 잎이 서서히 펼쳐진다. 따라서 여러 회에 걸쳐 우려야만 비로소 모든 향이 풍기기때문이다.
각기 차에 맞게 알맞은 온도로 우려야
반면 물의 온도가 너무 낮아도 용해도가 낮아져 찻잎의 성분인 방향성 화합물들이 녹아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아니면 함유성분들이 일부만 용해된다. 따라서 너무 낮은 온도의 물로는 차의 발향을 위해 긴 시간에 걸쳐 우리더라도 고온의 물로 우리는 경우보다도 좋은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물론 본래부터 향이 약한 차를 아이스티로 만드는 경우는 예외이다.
결국 차의 종류마다 함유 성분들이 균형을 이루어 훌륭한 향미를 내기 위해서는 제각기 찻잎의 재질, 함유 성분 등의 조건에 따라 알맞은 온도로 우리는 것이 가장 좋다.
세계의 명차 19
둥팅비뤄춘 녹차(洞庭碧螺春, 동정벽라춘, Dong Ting BI LUO CHUN)
둥팅비뤄춘(洞庭碧螺春, 동정벽라춘)은 장쑤성 둥팅산(洞庭山)에서 생산하는 초청 녹차이다. 둥팅산 지역은 예로부터 과일의 산지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곳에서는 복숭아, 사과, 자두 등 과일나무와 차나무를 교대로 심어 재
배한다. 따라서 차에서는 ‘화궈샹(花果香, 화과향)’이라는 화사한 향이 물씬 풍긴다.
명대(明代)에 처음 생산된 이래 수백 년간 ‘혁살인향(吓煞人香, 샤사런샹)’으로 불려 왔다. 그 뜻은 ‘사람이 놀라 죽을 만한 향’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찻잎을 따다가 바구니가 가득 차자 옷에 담아 이동했는데, 체온으로 찻잎이 데워지자 놀라우리만큼 강한 향이 풍긴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후 18세기 청의 황제 강희제(康熙帝, 1661∼1722)가 우연히 재배지 인근 호숫가에서 이 차를 마셨다. 강희제는 ‘혁살인향(吓煞人香)’은 황제가 마시는 차의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언뜻 찻잎의 모양이 하얗고
가는 솜털에 싸여 나선으로 꼬인 모양인데 착안해 우렁이를 뜻하는 ‘톈뤄(田螺, 전라)’의 ‘뤄(螺, 라)’를 따 ‘비뤄춘(碧螺春, 벽라춘)’이라 명명했다. 춘분에서 곡우 사이에 일아일엽으로 찻잎을 딴다. 찻잎의 크기가 굉장히 잘아 고품질의 차에는 500g당 약 7만 개의 싹이 포함돼 있을 정도이다. 현재 원산지 확인서와 함께 판매되고 있다.
※ 차의 이름은 ‘중국어 병음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표기함.
마시는 법) 400㎖ 용량의 서양식 티팟에 4g 정도의 찻잎을 95℃의 물로 3분간 우린다. 자사호나 개완에는 약 3g의 찻잎을 80~85℃의 물로 2~5분간 우린다.
<2015년 5월 게재>
정승호
(사)한국티(TEA)협회 회장,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 원장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은 국내 최초의 티(TEA) 전문가 양성 교육기관 및 연구 기관이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에서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외식 음료 산업의 티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백차,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 허브차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티를 시음하며 향미를 감별하는 훈련과정(Tea Tasting&Cupping)과 티 산지 연수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