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 문명이 있던 나라다. 이란의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신바빌로니아 왕조가 멸망하기 전까지 중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장악, 오늘날 아랍 문화권의 초석을 다진 나라기도 하다. 그 뒤 13세기 몽골족에게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통치로 동서양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터키로 가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서 티를 마시던 관습이 성행해 오늘날 이라크 사람들은 티를 생활처럼 마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후예 이라크의 티 문화와 티의 명소들을 호텔, 레스토랑, 티하우스와 함께 소개한다.
이라크의 티 문화
이라크는 동양에서 터키로 가는 실크로드(또는 티로드)의 경유지다. 티는 카라반을 통해 처음 육로로 전파돼 ‘차이(Chai)’라고 한다. 그리고 티하우스는 ‘차이카나(ChaiKhana)’라고 부른다.
이때 카나(Khana)는 ‘집’, ‘장소’를 뜻한다. 따라서 차이카나는 ‘티를 마시는 집(장소)’인 셈이다. 이라크 사람들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티를 집에서 쉴 때나, 손님을 맞이할 때, 또는 미팅을 진행 중일 때 등 일상생활 속에서 홍차를 많이 마시기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스리랑카티협회(Sri Lanka Tea Board)가 “그동안에는 이라크가 스리랑카 홍차의 최대 수입국인 터키, 러시아의 다음으로 2~3위의 수입국이었지만, 2018년도에는 이라크가 수입량 1위국으로 올라섰다.”는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자국 홍차의 수입량이 이라크가 3만 2979톤, 터키가 2만 9700톤, 러시아가 2만 5978톤이었다고 한다. 또한 인구수가 이라크는 약 3730만 명, 터키는 7950만 명, 러시아는 1억 4430만 명인 것을 설명하면서 이라크인들은 1인당 티의 소비량이 세계 1위인 터키 사람들 못지않게 많이 마시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라크식 홍차
이라크에서 티(이하 홍차)를 준비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터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나라마다 약간씩의 차이점은 있다. 이라크에서는 홍차를 ‘우려내는 것(Brewing)’이 아니라 ‘조리하는(Cooking)’ 방식이다. 전통적으로는 2단으로 구성된 사모바르를 사용하는데, 아래쪽이 물주전자이고, 그 물주전자의 개구부에 티포트가 올려지는 구성이다.
먼저 하단의 물주전자에 물(6잔 정도 분량)을 넣고 끓인다. 전통적으로는 화덕에 갈탄을 넣고 가열하지만 오늘날에는 가스레인지나 인덕션도 사용한다. 그리고 상단의 티포트에는 홍차 찻잎(보통 3테이블스푼)과 끓인 물을 적당량(보통 4잔 정도 나올 분량) 넣는다. 그 뒤 물주전자를 가열하는 불의 세기를 중간 정도로 낮춘다. 티포트를 물주전자 개구부 위로 올려놓고 약 10~15분간 서서히, 그리고 진하게 우려내면서 티를 준비한다.
이렇게 홍차가 모두 준비되면 이제는 이라크의 전통 방식으로 마신다. 이라크에는 홍차를 매우 달게 마시는 문화가 있는데, 찻잔 또는 튤립꽃 모양의 유리잔에 설탕을 먼저 넣은 뒤 거기에 준비된 홍차를 부어 사람들에게 낸다. 터키 사람들이 각설탕을 입에 머금고 홍차를 마시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물론 진하게 우려낸 홍차인 만큼 이라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우유(지방 함유율 0~2%)를 넣어 ‘밀크 티’로도 많이 마시는데, 전통적인 티하우스인 차이카나에서는 물담배, 즉 ‘후커(Hookah)’와 함께 즐기곤 한다. 참고로 녹차는 티 애호가들이나 즐기는 정도로 이라크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다.
사진 출처_ https://iniraq.net/language/en/iraqi-tea/
바빌로니아 제국의 옛 영화로움을 연상시키는
호텔 바빌론 로타나 바그다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는 이라크식 티를 즐기면서 여유롭게 보낼 만한 유명 호텔들이 여럿 있지만, 여기서는 그중 바빌로니아 제국의 옛 영화로움을 연상시키는 5성급의 특급 호텔, ‘바빌론 로타나 바그다드(Babylon Rotana BAGHDAD)’를 소개한다. 실제로 호텔명에서 사용된 바빌론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옛 수도였기도 하고, 호텔도 바빌로니아의 옛 영광인 바벨탑 떠올리게하듯 피라미드형으로 설계 및 건축돼 있다.
이 호텔은 수도 바그다드 한복판에 위치하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강의 둑과도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바그다드공항과도 약 30분 거리에 있다.
호텔 바빌론 로타나는 ‘세계 최고의 다이닝(정찬)’을 표방하고 있어 전 세계의 음식을 실내의 레스토랑, 룸식 가든, 야외 가든에서 즐길 수 있다. 특히 티애호가들은 멋진 정찬을 즐긴 뒤 ‘알 야스민 로비 라운지(Al Yasmine Lobby Lounge)’에서 이라크식 홍차, 커피, 간식 등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바빌론 빌리지(Babylon Village)에서는 가벼운 식사로 ‘샤와르마(Shawarma)’를 비롯해, 최고급 물담배인 ‘시샤(Shisha)’도 즐길 수 있다. 샤와르마는 이라크 전통 샌드위치로 소고기, 양고기 등을 양념해 불에 구운 뒤 야채로 싸서 먹는 음식이다. 그리고 샤나실 레스토랑(Shanashil Restaurant)에서는 전 세계의 향신료가 든 다양한 풍미 음식들과 이라크 전통 음식들을 온종일 제공한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들른다면, 이곳 호텔 바빌론 로타나에 머물면서 이라크식 홍차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또한 그 옛날 서아시아의 패권자인 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페니키아를 정복했으며, 구약성경에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바벨탑을 쌓도록 한 그 바빌로니아 제국의 흥망성쇠도 잠시 떠올려 보길 바란다.
사진 출처_ www.rotana.com/rotanahotelandresorts/iraq/baghdad/babylonrotana
레스토랑형 카페
컵웨이
수도 바그다드에는 티와 커피, 그리고 아랍 음식으로 유명한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레스토랑형 카페들도 많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이 전통적인 티하우스인 차이카나보다도 가볍게 식사와 함께 음료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형 카페를 더 즐겨 찾는다. 그중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 ‘컵웨이(Cup Way)’다.
컵웨이는 2017년에 탄생했으며, 지금은 이라크에서도 이라크식 음료와 전통 요리의 최고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컵웨이는 레스토랑형 카페로서 이라크에서 유럽풍으로 티와 커피 그리고 요리를 실내외에서 즐길 수 있다는 큰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다양한 음료와 이라크 전통 음식들을 메뉴로 선보이고 있어, 티 애호가라면 이라크의 젊은 세대들에게 떠오르고 있는 이곳에 들러 이색적인 요리들과 함께 다양한 티 메뉴들을 즐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진 출처_ www.facebook.com/cupway/?ref=page_internal
이라크에서 가장 오래된 티하우스
마코 차이카나
이라크에는 티 애호가라면 꼭 들러 보아야 할 티하우스가 있다. 수도 바그다드를 벗어나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주의 주도인 아르빌(Arbil)에서도 가장 유명한 티하우스다. 바로 82년째 가족들이 대를 이어오는 ‘마코 차이카나(Machko ChaiKhana)’다.
이 전통 티하우스는 마코 무하마드(Machko Muhammed)가 1940년에 카페를 처음 설립한 뒤로 가족들이 3대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그의 손자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약 8000년 전 지구상에서 인류가 가장 오래전부터 거주한 곳으로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보호지(UNESCO World Heritage Site)’로 지정된 ‘시타델(Citadel, 성채)’ 내의 한복판으로 옮겨져 명맥을 잇고 있다.
약 80여 년간 단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티 애호가라면 꼭 들러 봐야 할 ‘이라크 티 성지의 순례길’인 셈이다.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사람들은 1인당 연간 티(홍차) 소비량이 1.5kg에 달할 정도로 티를 많이 즐긴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여성들은 차이카나에 들어가지 않지만, 이곳 마코 차이카나는 쿠르드족들에게는 전통과 문화의 상징적인 명소로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들러 홍차를 마신다. 이곳 쿠르드족 전통 방식의 ‘차이 티(Chai Tea, 홍차)’에는 설탕이 항상 들어간다. 튤립 모양의 전통 유리 찻잔인 ‘피얄라(Piyāla)’에 담고 여기에 티 소스인 ‘제르 피얄라(Piyāla)’를 넣어 마시는 것이 독특하다. 또한 마코 차이카나는 그 오래된 역사를 증명이나 하듯이, 정부의 고관대작, 그 지역을 비롯해 해외의 유명 정치인들까지 그동안 수없이 방문해 기록이나 사진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쿠드드족 지성인들이나 활동가들이 이곳에 들러 벽에 방문 증거로 사진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 유적지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보호지’ 내 이곳 마코 차이카나에 들러 쿠르드족 전통의 ‘차이 티(Chai Tea)’를 마시면서 중동을 움직인 역사상의 인사들이 남긴 방문 기록 사진들을 감상하거나, 아니면 전통 주사위 놀이인 ‘백가멈(Backgammon)’을 체험해 보자.
사진 출처_ www.aljazeera.com/features/2015/12/27/the-teahouse-that-holds-the-history-of-iraqs-erbil
튤립형 전통 유리잔 사진 출처_ https://threeteaskitchen.com/tea-traditional-iraqi-chai
이라크 북부의 정치 및 예술의 핵심지 티하우스
차이카나 사브
이라크 북부의 상업 도시인 술라이마니야(Sulaymaniyah)로 가면, 티 애호가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티하우스가 있다. 바로 ‘차이카나 사브(Chaikhana Shaab)’다. 이 티하우스는 1950년에 설립돼 약 7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 도시의 예술과 정치의 기반이 되는 장소로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티하우스가 정치, 경제, 예술의 대표 인사들이 회합을 갖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는 장소라는 점이다.
평화로운 시대의 이라크 티하우스는 시민들이 설탕을 듬뿍 넣은 홍차를 마시면서 소통하는 장소로, 또는 서로 만나 즐기는 사교의 장소로서 기능을 한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란, 미국, 쿠웨이트와의 전쟁을 비롯해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내전을 겪은 가운데 티하우스가 정치적 비밀 결사의 장소가 되기도 해 종종 반대파의 공격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이같이 이라크에서는 국내 상황에 따라 티하우스가 중요 인사들의 비밀 사령부가 되기도 해 반대파의 공격 협박을 받은 역사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이 전통적인 티하우스보다는 세련되고 가족들이 함께 가볍게 음식과 티, 커피 등을 즐길 수 있는 카페를 찾는 경향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에서도 새로운 ‘티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를 방문하는 티 애호가라면 미리 이라크 국내 상황을 파악한 뒤 가능하면 평화로운 시기에 방문해 볼 것을 권장해 본다.
사진 출처_ www.sadiasteaparty.com/category/around-the-world-in-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