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아름다운 쓰레기 호텔,  HOTEL WHY

2022.05.04 09:00:52

 

토쿠시마(徳島) 시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카미카츠쵸(上勝町)는 인구 약 1600명의 작은 마을이다. 
카미카츠쵸는 일본의 여느 시골마을들 처럼 급격히 진행된 인구 감소가 지역의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고령화율이 50%를 넘기면서, 주민들은 언젠가 마을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휩싸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곳은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 배출 제로의 마을로 만들겠다는 ‘제로웨이스트(ZERO WAIST) 선언’ 때문이었다. 
카미카츠쵸가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겠다고 목표를 세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쓰레기 제로에 도전한 마을


예전부터 임업을 주 산업으로 해온 카미카츠쵸에서는 나무를 베고 나오는 가지들을 소각해 처리해 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골 마을이 그래왔듯이 환경에 관한 의식이나 규제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라 생활 쓰레기들도 소각 처리했다. 하지만, 행정 지도로 더 이상 쓰레기를 개별적으로 소각할 수 없게 되자, 마을 지자체는 쓰레기 소각로를 건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카미카츠쵸는 인구감소로 인해 세수가 줄면서 마을에 소각로를 건설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러자 카미카츠쵸는 소각로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2003년 그 대안으로 쓰레기 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제로웨이스트’라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 

 

 

카미카츠쵸는 제로웨이스트를 구현하기 위해 먼저 음식물 쓰레기 처리 기계를 각 가정에서 구입하도록 했다. 그러나 형편이 좋지 않은 고령자들이 순순히 고가의 기계를 설치할 리가 없었다. 이에 마을 지자체는 각 가정에서 1만 엔 씩만 내도록 하고, 나머지 설치 비용은 자신들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주민들을 설득해 나갔고, 그 결과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의 보급률은 불과 2년 만에 97%에 도달했다. 그 후 포장용기 리사이클법이 시행되자, 마을은 리사이클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9개 품목의 분리수거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면서 매년 리사이클 품목을 늘려 최종적으로 45개 항목의 분리수거 시스템을 확립했다. 그리고 45개 품목의 분리수거를 마을의 제로웨이스트 센터에 집중시켜 2000년대 중반에는 마을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80%를 리사이클하는데 성공했다.  

 

 

지역기업과의 연계 비즈니스


카미카츠쵸는 여기서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제로웨이스트를 지역 브랜드로 실현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지역기업과의 연계였다. 제일 처음 연계한 기업은 토쿠시마를 중심으로 위생 검사와 분석을 통해 식품 안전을 지원하는 기업인 ‘SPEC Bio Laboratory Inc(이하 SPEC)’였다. SPEC의 타나카 대표는 어느날 카미카츠쵸의 공무원들로부터 “제로웨이스트의 브랜드를 활용한 사업을 추진해줬으면 한다.”는 의뢰를 받았다. 타나카는 고민 끝에 제로웨이스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을에서 나온 물건들을 모아서 파는 리사이클숍 ‘카미카츠 백화점’을 오픈했다. 하지만, 단순히 분리수거된 쓰레기 중에서 쓸만한 제품을 되파는 비즈니스 모델은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마을을 찾는 외부 사람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좋아하던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던 타나카는 수제 맥주의 중심지인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고객들이 ‘마이보틀(자신만의 맥주병)’을 들고 좋아하는 양조장을 돌아다니면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카미카츠쵸를 찾는 사람들이 리사이클한 자신만의 맥주병을 들고 다니면서 마을의 수제 맥주와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가게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타나카는 이 아이디어를 공무원들과 상의했고, 때마침 이 이야기는 카미카츠쵸의 제로웨이스트를 체험하기 위해 머물고 있던 영국의 젊은 건축가 집단인 ‘어셈블(Assemble)’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프로젝트팀, ‘어셈블’은 자진해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고 이들은 폐자재를 활용해 수제 맥주 양조장 ‘RISE & WIN Brewing & Co. BBQ & GENERAL STORE’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곳은 제로웨이스트의 콘셉트에 기반을 둔 하드적인 요소와 소프트적인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킨 공간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지역활성화의 거점 공간이 됐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호텔


제로웨이스트의 마을로 카미카츠쵸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자 주민들과 지자체는 고민에 빠졌다.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해서 만든 제로웨이스트를 단순히 일회성의 볼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공유하고 실천하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점이었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논의를 진행하면서 숙박을 통해 제로웨이스트를 체험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착수했고, 숙박시설  ‘HOTEL WHY’를 오픈하게 됐다. 

 
 HOTEL WHY는 카미카츠쵸의 쓰레기를 가져와서 45개의 항목으로 구분하는 스테이션(쓰레기 집적소)인 제로웨이스트 센터와 마을의 커뮤니티 홀 등이 병설된 복합 시설 안에 폐자재를 활용해 건설됐다. 그리고 호텔 내 4개의 객실에는 리사이클 가구 및 도구들을 새로 손을 봐 재생시켰고, 그 외에도 숙박객들이 머무는 동안 쓰레기를 가능한 만들지 않도록 하는 제로웨이스트 체험 공간을 만들었다. 


일명 ‘쓰레기 호텔’로 불리는 HOTEL WHY는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우선 호텔 외관을 폐자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스타일이 살아있는 귀여운 호텔로 보일 만큼 디자인의 저력이 느껴진다. 호텔 주변의 호수와 계곡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 역시 쓰레기 호텔이라는 별칭과 전혀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모든 숙박객은 체크인에 앞서 ‘쓰레기 스테이션’으로 이동해 카미카츠쵸의 제로웨이스트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그 후 체크인을 통해 본격적으로 카미카츠쵸류의 쓰레기 분리수거를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객실에 가기 전에 숙박객이 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객실에서 자신들이 사용할 비누를 사용할 만큼만 잘라서 가져가는 것이다. HOTEL WHY는 흔히 호텔에 있는 샴푸, 린스, 보디 샴푸를 비치하지 않고, 65년의 역사를 가진 지역 기업이 만든 유기농 비누를 숙박 기간 동안 사용할 만큼만 잘라서 가져가도록 하는데 이것 또한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다.


그렇다면 숙박객은 머무는 동안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게 될까? 먼저, 숙박객은 객실에 있는 6개 항목으로 구분된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구분해서 버린다. 체크아웃을 하기 전에는 머무는 동안 나온 쓰레기를 집하 센터로 가져가서 다시 45개의 항목으로 구분해 분리수거를 한다. 숙박객이 스스로 쓰레기를 치운다는 것이 일반적인 호텔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45개의 항목으로 나눠서 분리수거하는 것 이 바로 HOTEL WHY가 존재하는 이유이라고 할 수 있다.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원칙이 가장 중요한 HOTEL WHY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무는 숙박객들이 즐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HOTEL WHY는 숙박객들을 위해 무료로 커피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역시 보통 커피가 아니다. 호텔은 SDGs를 제안하는 TADE GG 농원의 커피콩을 로스트해 제공하고 있으며,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도 페이퍼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스테인레스 드리퍼를 사용한다. 쓰레기를 최소화하면서 최고의 품질의 커피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숙박객들은 계절에 따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액티비티에도 참가할 수 있는데, 호수에서의 카약과 강변의 피크닉, 플라잉 낚시, 서바이벌 게임 등이 있다.

 

카미카츠쵸의 비즈니스 능력


제로웨이스트로 유명해진 카미카츠쵸는 사실 이 프로젝트 전부터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가 함께 인구를 유입 시키키 위해 지역의 특성을 살린 수익 사업을 펼쳐왔다. 농협의 지도원으로 마을에서 일하던 요코이시 토모지(横石知二)는 과소화를 멈추고 인구를 유입시키기 위한 수익사업이 필요하다고 판단, 고민을 거듭한 끝에 ‘츠마모노(つまもの)’ 판매 비즈니스를 모색하게 됐다. 츠마모토는 일본의 고급 요정이나 료칸의 가이세키(懐石) 요리에서 장식으로 사용되는 나뭇잎인데 요리의 미를 살리기 위해 주방장들은 고품질의 나뭇잎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바로 이 요리에 장식할 나뭇잎의 상품 가치에 주목한 요코이시는 주민과 지자체가 주주가 되는 주식회사를 설립해 주민들과 함께 나뭇잎 재배 및 판매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요코이시와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카미카츠쵸는 일본 전국에 ‘나뭇잎 마을’로 알려지게 됐다. 이렇게 나뭇잎 재배로 성과를 올린 카미카츠쵸의 주민들과 공무원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3년 또 다른 도전에 뛰어들었고 그것이 바로 제로웨이스트 선언이었던 것이다. 

 

 

영원한 착한 소비의 가치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HOTEL WHY가 코로나19가 한창인 2020년에 오픈했을 때 과연 숙박객이 찾아올까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예약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아 오고 있다. 이처럼 숙박객이 끊이지 않는 HOTEL WHY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제로웨이스트라는 확실한 콘셉트를 구현해 숙박객들이 머무는 동안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편리함과 호화로움을 넘어서는 선한 가치를 체험함으로써 일반적인 호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을 얻도록 한 것이 이 호텔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매력은 적어도 인류가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한 계속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사진 출처_ www.chill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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