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나 가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 핀 율(FIN JUHL).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그의 가구로 채워진 호텔이 전 세계 최초로 일본 하쿠바(白馬)에 오픈했다.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재현된 핀 율의 하우스를 만나보자.
덴마크 디자인의 아버지 핀 율
덴마크 디자인의 아버지, 나아가 북유럽 디자인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핀 율은 1912년에 덴마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건축가이자 산업 디자이너고 특히 가구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1940년대 덴마크 디자인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기여했다. 덴마크 왕립 예술 아카데미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1945년 개인 사무실을 설립한 후 견고한 목제 가구를 매혹적인 형태로 디자인했다. 1950년대 뉴욕의 유엔 본부 빌딩 컨벤션 센터를 디자인했고, 1951년 시카고 ‘굿 디자인 전시회’에 참석해 미국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우뚝 서게 된다.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6개의 금상을, 캐비넷메이커스길드에서는 14개의 상을 받았다. No. 45(1945), No.48 (1948), Chieftain(1949) 등의 의자는 최고의 장인기술, 고도의 표현력, 유동적인 형태가 뛰어나 가구계의 전설이 됐다. 그는 티크나무 재료를 덴마크 가구에 사용하도록 기술을 개발했으며 대담한 조각적 형태와 극도로 세련된 상세함으로 차세대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단단한 목재가 마치 도자기로 빚은 듯 유려한 곡선을 자아내며 대담한 디자인을 담는다. 북유럽의 자연을 닮아 아름답고도 강인한 이미지를 담아낸 핀 율의 가구는 한마디로 아티스틱하다.
왜 일본, 그리고 하쿠바를 선택했을까?
핀 율이 생전에 완성한 대부분의 작품을 담았기에 특별한, 그리고 세계 최초라서 더 특별한 하우스 오브 핀 율 호텔이 2016년 12월 일본 나가노현의 하쿠바라는 작은 마을에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이며 그중에서도 하쿠바였을까?
우리가 지금 핀 율의 가구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핀 율의 미망인인 한네 빌헬름 한센(Hanne Wilhelm Hansen)과 덴마크 가구 제작사인 원컬렉션(One Collection)의 확고한 의지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핀 율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가구가 제대로 선보이지 못하는 점에 대해 안타까워한 그의 아내는 부군의 훌륭한 디자인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핀 율의 디자인에 경외심을 갖고 있던 원 컬렉션과 인연이 닿아 2000년에 핀 율의 가구를 생산할 권리를 이임하게 된다. 그 이후 원 컬렉션은 핀 율의 유산을 보호하고 이어나가는 데 도움을 줬으며, 오늘날 생산된 가구는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특히 원 컬렉션은 핀율의 정교한 디자인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게 숙련된 장인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을 쏟았고 그 결과 목재를 다루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일본의 키타니(キタニ)사를 찾아냈다. 미망인과 원 컬렉션 모두가 고집한 핀 율 디자인 그대로의 목제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공수한 원목 소재 월넛을 사용해 키타니사의 장인들이 만든 가구 프레임은 다시 덴마크로 보내 핀 율의 완벽한 마스터 피스로 재탄생된다. 이처럼 강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하우스 오브 핀 율이 문을 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쿠바라는 지역을 선택하게 된 연유는 원 컬렉션의 대표이자, 하우스 오브 핀 율 호텔의 매니징 디렉터인 한스 헨릭 쇠렌슨(Hans Henrik Srensen)과 일본인 파트너인 오카사키(Okasak) 씨와의 대화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하쿠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 지역으로 Powder Snow를 자랑한다. 한스는 처음에 가족과 친구가 머무를 수 있는 스키 롯지를 구입할 생각으로 나가노 지역을 여행하면서 올림픽 스키 점프가 있는 언덕에서 불과 400m 떨어진 곳에 있는 호텔을 발견했다. 이 매력적인 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 한 것이 최초의 핀 율 호텔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핀 율의 작품과 함께 머물다
하우스 오브 핀 율 호텔은 핀 율이 생전에 완성한 대부분의 작품을 담아 더 이색적인 핀 율의 가구를 직접 만지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호텔이다. 호텔은 총 6개의 객실, 라운지 바, 식당, 그리고 스키 건조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원 컬렉션의 쇼룸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6개의 룸은 모두 다르게 디자인됐고 ‘치프테인(Chieftain)’, ‘펠리칸(Pelican)’, ‘포엣(Poet)’ 등 핀 율의 대표 작품의 이름을 붙였다. 요금은 시즌에 따라 3만 엔에서 4만 엔 수준이며 조식 및 방문객들을 위한 무료 음료가 포함된다.
이외에도 침대는 매트리스 전문 업체인 ‘게타마(Getama)’, 조명은 ‘루이스 포르 센(Louis Poul Sen)’과 ‘빤달(Pandul)’, 수건과 시트는 창업 2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덴마크 왕실에서 사용한다는 ‘조지 젠슨 마스크(George Jensen Damask)’. 커트러리는 ‘카이 보이슨(Kay Bojesen)’을고집하고 있다. 샴푸나 비누 등은 일본의 자연주의 코스메틱 브랜드인 ‘마크앤웹(Marks & Web)’을 사용한다. 덴마크식 인테리어에 일본의 유기농 제품과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에 중점을 두고 특별한 디자인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하우스 오브 핀 율 이름의 유래
이 호텔의 이름은 전 세계 핀 율의 가구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쇼룸 ‘하우스 오브 핀 율’에서 따온 것이다. 오롯이 핀 율의 가구로만 꾸며진 호텔을 만들고자 한 의도다. 핀 율은 생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하는 집과 함께 그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위한 인테리어 역시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핀 율의 가구는 마치 하나의 공간을 설계하는 것처럼 만들어졌고, 형태에 굳이 디자인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은 가구는 정교한 예술 작품이자 하나의 완성된 건축물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화려한 기교 없이 이음매를 자연스럽게 휘어 장식 효과를 낸 가구는 반백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여전히 멋스럽다. 이는 호텔 역시 마찬가지다. 객실은 물론이고 지하에서 다락방까지 호텔 내 모든 공간이 핀 율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지만 공간을 구획하는 흑색 기둥의 프레임, 나무 바닥, 흰 벽이 가구와 함께 조화를 이뤄 마치 가구를 위해 공간이 존재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어울림이 유기적이다.
뿐만 아니라 하우스 오브 핀 율 호텔은 집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주변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든 음료 및 간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주간에는 스키, 하이킹, 래프팅, 산악자전거 타기, 낚시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시간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디너는 일본 시골의 유기농 요리로 제공한다.
하우스 오브 핀 율 호텔은 핀 율이 생전에 완성한 대부분의 작품을 담아낸 핀 율의 ‘하우스’이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편안한 ‘하우스’인 셈이다. 하우스 오브 핀 율 호텔을 보고 있노라면 이 호텔은 핀 율은 물론 그의 미망인, 원 컬렉션, 그리고 일본의 장인(匠人)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역만리 일본이라는 나라의 산골짜기 마을에 위치한 덴마크식 디자인 호텔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스키장을 옆에 둔 겨울 풍경이 서로 닮아서인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예술적 감성을 이어가는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이 시대와 장소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호텔&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