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슐호텔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지 40년이 된 지금, 효율성의 상징이었던 캡슐호텔이 이제 일본의 정신과 문화를 담아 럭셔리한 콘셉트로 다시 태어났다. 차를 마시는 일본 전통 다실의 형태를 빌려와 좁지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호텔, Hotel Zen Tokyo를 만나보자.
40년 역사의 캡슐호텔
세계 최초의 캡슐호텔이 1979년 2월 오사카(大阪)에서 탄생한지 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캡슐호텔이 탄생한 1970년대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접어들어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돌아가던 시대였다. 도시는 불야성을 이뤘고,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당시 24시간 사우나에는 복도나 로비 바닥에 잠을 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로 이 때 오사카에서 사우나를 경영하고 있던 경영자는 밤새워 일하는 사람들이 사우나에서 조금이나마 제대로 잘 수 있고 다음날 보다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고민하던 차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들에게 영감을 준 것은 바로 오사카 엑스포가 열렸을 때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쿠로카와키쇼(黒川紀章)가 발표한 육면체의 캡슐을 조합한 건축이었다. 이를 보고 바로 경영자들은 쿠로카와키쇼의 설계 사무소를 찾았고, 쿠로카와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설계에 착수했다. 쿠로카와는 우주선 모양의 캡슐을 만들어 이를 나열한 다음 각 캡슐에서 잠을 자고, 텔레비전을 보며 그리고 조명 같은 스위치도 누워서 모두 조작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해냈다. 쿠로카와가 만들어낸 캡슐호텔은 높이와 폭이 약 1m, 깊이가 약 2m 남짓의 공간으로 구현됐고, 남성 전용 1박 1600엔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 캡슐호텔은 연일 만실을 기록했고 일본의 경제성장과 비례해서 전국에 퍼져나갔다.
캡슐호텔의 진화
일본의 경기는 1991년을 정점으로 버블경기가 붕괴하면서 이와 함께 캡슐호텔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곤경에 처한 캡슐호텔을 구한 것은 바로 여성 고객과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확대되면서 잔업이나 출장 등 여성의 생활패턴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저가 항공사의 등장과 인터넷의 발달로 해외에서도 쉽게 호텔을 예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2010년 경부터 저렴하게 잠만 자는 공간이라는 캡슐호텔의 기존 이미지를 뒤엎는 다양한 캡슐 호텔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본지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퍼스트 캐빈’과 ‘Book and Bed’ 호텔도 캡슐 호텔에 새로운 기능과 콘셉트를 도입해 변화를 이룬 형태였다.
그리고 지금 도쿄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캡슐호텔이라는 기본적인 형태에 일본적 아이덴티티를 담은 새로운 호텔인 Hotel Zen Tokyo가 탄생했다. 캡슐 호텔은 오래 전 부터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가장 ‘일본’스러운 숙박 형태며, 다실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일본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정수로 인식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해 일본의 정신인 ‘Zen’과 ‘다실’의 이미지를 담은 새로운 형태의 호텔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좁으면 좁을수록 여유로운 공간
호텔을 구현해 낸 카가미 타로(各務太郎)의 이력은 유니크하다. 카가미는 와세다 대학(早稲田大学) 공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광고회사인 덴츠(電通)에서 카피라이터와 CM플래너로 일했다. 카가미는 건축가가 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건물이 어떻게 도시와 관련돼 가는지 생각하는 것이, 광고에서 카피라이터가 제품 콘셉트에 맞춰 그에 관련되는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축을 전공했음에도 광고회사에 덴츠에 입사한 것이다. 그후, 2014년 도쿄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자, 이를 계기로 건축가로서 도시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혀보고 싶다고 생각해 덴츠를 퇴사하고 다음해 하버드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입학 후, 도쿄나 홍콩,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비싼 부동산 가격에도 이 곳에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심에서 ‘작은 공간'을 활용해서 살 수 있는 일본적 방식을 활용하는 것에 주목했고, 건축학 분야에서 선구자인 쿠로카와 키쇼의 캡슐호텔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카가미는 캡슐호텔을 통해 일본의 작은 공간에 주목하다 보니, 일본에서 생겨난 작은 공간인 카라오케와 캡슐호텔이 모두 센노리큐(千利休)의 다실인 묘우키안(妙喜庵)에 그 기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넓은 공간을 선호하는 서양의 사고와는 달리, 다실은 좁으면 좁을수록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더 생기는 특별한 공간이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해, 좁으면 좁을수록 심적 여유로움을 느끼게 되는 공간을 숙박 시설로 구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일본스러운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해외에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실에 기반을 둔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의 차도를 전 세계에 알린 16세기의 차도가 센노리큐의 다실을 21세기의 형태로 재해석해 일본식의 모던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기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캡슐호텔의 틀을 추가로 반영해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럭셔리 캡슐 호텔을 실현해 냈다.
럭셔리 호텔의 구성과 타깃
카가미 타로가 만들어낸 다실, 캡슐로 불리는 작은 공간에는 싱글 또는 더블침대가 있고, 토코노마(床の間:타다미 방에 타타미 한 개 넓이를 확보해 바닥을 한 단 높여서 정면의 벽에는 족자를 걸도록 만든 장치) 모양의 금고, 캐비닛, 전원, 옷을 거는 행거 등으로 구성돼 기존의 캡슐호텔과는 다른 차원이다. 객실 타입은 총 5종류로, 방의 종류에 따라 침대 크기(싱글 또는 더블), 면적, 디자인이 다르다. 객실 5가지 중 3가지는 다실 캡슐, 나머지 두 종류는 더 넓은 콘크리트와 나무 소재를 활용한 디자인 코너 룸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5층으로 이루어진 호텔 공간에서 1, 2층은 여성 전용이다. 뿐만 아니라, 호텔 내에는 넓은 공용 공간(약 300㎡)이 확보돼 있어 작업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고, 세탁실, 식사가 가능한 카페 · 바 등의 시설이 구비됐다.
그렇다면 이 호텔을 찾는 고객들은 주로 어떤 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까? 싱글 룸의 가격대를 6000엔으로 설정하고, 호텔의 위치를 하네다 공항과 나리타 공항의 접근성이 좋은 스이텐구마에(水天宮前)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것을 보면 비즈니스 맨을 타깃으로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호텔의 콘셉트에 주목해 보면, 이 호텔은 단순히 비지니스 맨뿐 아니라 다실이나 ZEN 등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갖는 방일 외국인 여행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 등 해외에서는 ‘분재’를 비롯해 일본의 ZEN 문화,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카가미는 바로 이러한 일본의 ZEN 정신을 담은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내어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10년 이내에 50곳에 호텔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는 좁고 불편한 것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캡슐호텔과 같은 작은 숙박시설은 좁고 불편하니 당연히 가격이 싸야하고 고객들은 고통감수를 통해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만족감에 이 곳을 찾았다. 하지만, 작고 좁은 것이 단순히 불편한 것만이 아니라, 일본스러운 미학적 가치를 모던하게 재해석하고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담은 공간으로 탄생됐다. 캡슐호텔이 불편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다실이라는 문화적 공간을 접목하면서 재해석된 것이다. 그야말로 일본이 가진 공간적 한계를 오히려 좁으면 좁을수록 정신세계를 건강하게 하는 ZEN과 연결시킨 이 호텔의 시도는 일본의 호텔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도약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호텔앤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