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고령자의 감성을 존중하는 일본의 요양시설 2 - 노인 돌봄 쉐어 하우스, 핫피노 이에 롯켄

2021.09.22 12:12:19

- (はっぴーの家ろっけん: 행복의 집 롯켄)

 

코베시 나가타구(神戸市長田区)는 2025년에 지역 인구의 35%가 만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일본의 전형적인 고령화 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은 4년 전 고스트 타운으로 돼 가는 상점가의 한켠에 들어선 6층짜리 녹색 건물 하나로 새로운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간판도 없는 정체불명의 이 건물에서는 아이들과 장을 보러 나온 엄마들, 그리고 가끔은 외국인들도 드나든다. 밖에서만 보면 아이들이 노는, 지역의 놀이 시설일까, 엄마들이 아이를 맡겨 두는 보육시설일까, 그것도 아니면 외국인들을 위한 도움 센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더욱 의아해진다. 여러 가지 섹션으로 나눠진 이곳에서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비롯해, 한켠에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있는 엄마들, 다른 구역에는 소파에 앉아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숙제를 하는 아이들, 그리고 또 한쪽 구석에는 외국인들과 꽤나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있다. 이런 광경만 놓고 보면 도대체 이 의문스러운 공간의 용도를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사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노인 돌봄 쉐어 하우스 ‘핫피노 이에 롯켄(はっぴーの家ろっけん: 행복의 집 롯켄)’이다.

 

 

아이와 노인을 돌봐야하는 더블케어 상황에서 찾은 돌파구

 

이처럼 이색적인 노인 돌봄 쉐어 하우스, 핫피노 이에 롯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시설의 대표인 슈도 요시히로(首藤義敬) 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 배경을 설명한다. 슈도는 나가타구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당시 나가타구는 고도 경제성장기라는 호경기 덕분에 가와사키 중공업, 미쓰비시 중공업 등 대형 공장의 하청 업체들로 가득 찬 동네였다. 때문에 동네에는 항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80년대 들어서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이 유입돼 나가타구는 다양한 문화가 혼재해 있는 지역이 됐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경기가 나빠지면서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했고 그여파로 인해 나가타구의 하청업체들은 하나, 둘 도산했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동네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나가타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많은 가옥들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슈도 역시 파괴된 동네를 뒤로 하고 부모님을 따라 나가타구를 떠났다.


성인이 된 후 부동산 일을 시작한 슈도는 어느 날 밀린 임대료를 회수하기 위해 나가타구에 살고 있는 한 노인을 찾았다. 슈도는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걸으며 한숨이 나왔다. 동네는 과소화로 인해 어린 시절의 활기는 찾을 수 없었고 상점가는 고스트타운으로 바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스산하게 바뀐 동네를 걸으며 슈도는 임대료가 밀린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슈도에게 미안하다며 밀린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더 이상 혼자 사는 것이 힘들어져 요양원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슈도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누군가의 돌봄이 없어서 살던 동네를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도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자신과 같이 살아 왔던 조부모가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슈도는 당시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조부모가 치매 판정을 받다 보니 졸지에 딸과 조부모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더블 케어’의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육아와 노인의 케어를 같이 하게 되는 더블 케어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무언가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노인을 요양원에 보내든지, 아이를 돌볼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든지, 아니면 가족의 누군가가 일을 그만두고 두 사람을 돌보는데 전념해야 했다. 슈도는 고민에 빠졌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자신과 아내 모두 일을 포기할 수 없었고, 조부모를 요양원에 보낸다든지,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슈도는 조부모와 자신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나가타구로 옮겨 자신의 조부모를 돌보는 것을 전제로 한 케어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설에 대한 구상은 기존의 노인 돌봄 시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는 바로 노인 돌봄 서비스가 붙어 있는 교류형 게스트 하우스였다. 단순히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시설의 경우는 입소를 원하지 않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일단 입소하면 가족 혹은 이웃 그리고 친구들과 교류하는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슈도는 일상 속에서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접하고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그것이 커뮤니티 룸을 가진 ‘노인 돌봄 서비스 제공형 게스트하우스’였던 것이다.

 

 

‘돌봄’의 물물교환이 이우러지는 게스트하우스

 

노인 돌봄 서비스 제공형 게스트하우스라는 콘셉트를 정한 슈도는 상점가의 한 곳에 오랫동안 비어있던 6층 건물을 리노베이션 했다. 1층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거실로 불리는 넓은 프리 스페이스를 마련했고, 2층부터는 40개의 방을 만들었다. 이 시설에서 가장 주목할 곳은 바로 이 프리 스페이스다. 왜냐하면 이곳은 지역의 아이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구체적인 일상을 살펴보자. 동네에 살고 있는 한 엄마가 슈퍼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프리 스페이스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한 시간 동안 아이를 좀 지켜봐 달라고 하고 자전거를 타고 떠난다. 근처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하교 후 프리 스페이스에 들러서 축구 게임을 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벽에는 자신들이 정한 규칙 - ‘게임을 15분 동안 한 후에는 다른 친구에게 양보한다’ - 이 붙어 있다. 또 다른 아이들은 한쪽 코너에 놓인 탁구대에서 탁구 경기에 열중하고 있다. 애기 침대가 놓여 있는 거실 안쪽에는 갓난 아이를 키우는 동네 엄마들이 모여 애기를 하며 기저귀를 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키친 주변의 테이블에는 유학생이 친구에게 일본어를 배우고 있고, 근처에 사는 아티스트는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컴퓨터 앞에서 작곡을 하고 있다.

 

 

이쯤되면 핫피노 이에 롯켄이 지역 사람들이 교류의 장의 역이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노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어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핫피노 이에 롯켄이 제공하는 노인 돌봄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노인을 돌본다는 것이 가지는 부담감을 경감시킨다는 점이다. 원래 돌봄이 가지는 의미는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우거나 누군가의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돌봄은 서로가 공생하고 행복하기 위한 행위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진행되고 특히 최근에는 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돌봄은 개인이든 행정기관이든 모든 사람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점점 돌봄이라는 것은 부담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행위로 바뀌어져 갔다. 슈도는 바로 이와 같은 돌봄이라는 행위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자 지역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초등학생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차를 내주는 간단한 도움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도움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갓난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에게는 할머니들이 아이를 잠깐씩 봐주는 동안 육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야말로 핫피노 이에 롯켄은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공간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돌봄의 물물교환이라는 가치를 창출해 낸 것이다.

 

물론 핫피노 이에 롯켄과 같은 공간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이 시설을 만들어낸 슈도도 핫피노 이에 롯켄과 같은 운영 형태를 가진 곳이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핫피노 이에 롯켄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색적인 시설이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노인을 돌본다는 것의 부담감을 지역 사회가 전혀 강제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형태 즉, 돌봄의 물물교환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_ https://form.run/@happyhouse-rokken
https://helpmanjapan.com/article/8161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 기자, KBS 작가 호텔 농심 마케팅 파트장을 지낸 바 있으 며 현재 도쿄에 거주 중으로 다양한 매체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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