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공장 속에서 태어난 호텔, 호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도쿄 카마타

2019.10.29 09:20:38



이름난 관광지나 유명한 도시가 아닌 지역에 자리한 호텔들은 지역색을 잘 담아내거나 독특한 개성을 살려야 한다. 독창적인 콘셉트의 호텔들이 늘어나고 있는 일본에서 이번에 주목한 지역은 무려 공단이다. 일본 제조업의 심장부라는 타이틀은 근사하지만, 삭막하고 멋은 없을 것 같은 공장 지역에 들어선 호텔 스토리는 꽤나 흥미롭다. 나사를 조이고 용접을 하던 공장의 기술자들이 디자이너와 함께 만들어낸 호텔이라니 궁금하지 않은가?


공장의 중심에서 호텔을 외치다
‘동네의 작은 공장’을 뜻하는 마치코우바(町工場)는 일본 제조업의 원동력이다.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장인 정신을 뿜어내는 마치코우바. 이들 하나하나가 모여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일본 제조업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마치코우바가 약 4000개 이상 밀집돼 있는 지역 오오타구(大田区)는 일본 제조업의 심장부로 불리는 곳이다. 나사를 조이고, 용접을 하고, 기계를 조립하는 이 지역에 올해 4월 생뚱맞게도 호텔이 들어섰다. 호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도쿄 카마타(ホテルオリエンタルエクスプレス東京 蒲田)의 테마는 역시 마치코우바다. 




호텔 운영사인 ‘호텔 매니지먼트 재팬(ホテルマネジメントジャパン)’은 오오타구의 카마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을 제공한다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지역 마치코우바들과 함께 호텔을 만들었다. 호텔 프로젝트는 이곳에서 ‘세키철공소(関鉄工所)’를 운영하며 지역 청년회 회장을 맡고 있던 세키(関) 사장을 설득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처음 의뢰를 받은 세키 사장은 호텔을 건축하는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코우바의 기술자들은 도면대로 만드는 작업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호텔 설계 디자이너들이 요구하는 분위기나 느낌 같은 감각적인 주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제조업의 성지인 카마타 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일환으로 추진된 호텔 건설은 곧 착수됐고, 세키 사장은 호텔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지역의 마치코우바 곳곳을 안내하며 수없이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 디자이너의 주문에 기술자로서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지역의 수많은 마치코우바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기술자들은 업무 외의 시간에 디자이너들의 주문을 구현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프로젝트를 완성해내는 데 5개월이 걸렸다. 결국 호텔이 완공되고 이를 직접 본 마치코우바의 기술자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처음으로 설계도 도면이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해냈다는 만족감은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기술자들이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보람일 것이다. 


기계가 작품이 되고, 기술이 디자인이 되다
공장 지역 한가운데의 호텔은 어떻게 디자인됐을까? 우선 호텔 입구에는 예술작품이나 꽃 장식을 대신해 오래돼 보이는 커다란 기계가 손님을 맞이한다. 이것은 가공할 금속 부품을 깎아서 원하던 형태로 만들어내는 데 사용하던 기계다. 호텔 디자이너가 마치코우바의 관계자들과 소통을 하던 가운데, 오랜 세월 마치코우바를 운영하다 후계자가 없어 회사 문을 닫은 경영자로부터 이 기계를 인수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코우바의 기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의 상징인 이 기계만큼 이 지역에 잘 어울리는 오브제가 또 있을까? 호텔 안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금속 가공 공장의 전시관이 떠오르는 가공 기계들이 곳곳 눈에 들어온다. 어차피 이곳에 투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마치코우바와 연결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친숙한 오브제가 호텔의 장식으로 쓰인 이유는, 그것이 기계일지언정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외에도 호텔 곳곳에 마치코우바의 기술이 반영돼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이 호텔의 각 층을 표시하는 숫자다. 호텔은 마치코우바가 자랑하는 다양한 가공 기술을 담아 각 층을 표시했다. 예를 들어, 6층을 표시하는 데 사용된 마치코우바의 기술에는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구부리고, 용접하고, 동시에 마감처리를 하는 세 가지 기술이 결합됐다. 4층의 플로어 넘버는 ‘접다’라는 테마의 가공 기술을 응용해 만들었고, 이 작업에는 마치코우바 두 곳이 협력했다.




이처럼 호텔에 적용된 마치코우바의 기술은 입구와 복도를 지나 객실에도 반영됐다. 사실 마치코우바가 많은 지역은 다소 삭막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이 때문에 호텔은 객실을 만드는 과정에서 차분한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객실 벽에 목재와 시멘트를 섞은 목재 시멘트 판을 사용해 아늑함과 차분함을 연출했다. 객실의 헤드 보드 인테리어 마감재로는 목모 보드(Wood Wool Cement), 로비 천장과 복도에는 주로 야외에서 사용되는 밴드 메탈(Band Metal)과 갈바륨(Galvalume) 강판 등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산업 소재를 사용했는데, 특수 소재를 도입하면서도 부드러운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호텔의 유니크한 부분은, 바로 마치코우바의 기술이 어떻게 호텔 내부에 반영돼 있는지 안내하는 오디오 가이드 앱(ON THE TRIP)을 꼽을 수 있다.


이 앱은 4개 국어가 제공되며 ‘테츠(Tetsu)’라는 가상의 캐릭터가 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떠한 기술로 만들었는지 음성으로 안내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다가 테츠는 호텔의 안내뿐만 아니라 주변 음식점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호텔의 레스토랑에도 마치코우바의 기술과 디자인이 적절히 반영돼 있다. 먼저 인테리어를 보면, 레스토랑에는 큰 테이블이 놓여 있어 해방감이 느껴진다. 레스토랑은 밤 12시까지 운영돼, 숙박객들이 작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의 역할을 한다. 숙박객들은 이곳에서 여행 정보를 공유하면서 다른 손님과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한다. 그리고 호텔의 조식의 메뉴가 제공되는 형태도 다소 특이한데, 조식은 마치코우바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의 도시락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뷔페 음식을 도시락에 담아서 먹을 수도 있고, 객실에 가져갈 수도 있도록 했다. 붐비는 조식 시간에 좀 더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술도 문화다
이 지역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마치코우바가 밀집한 카마타에 호텔을 만든다는 것이 크나큰 모험으로 느껴졌다. 지리적으로 이곳은 시나가와(品川)나 하네다공항(羽田空港)에서 가까워 마치코우바에 일이 있는 비지니스 맨이라 하더라도 굳이 마치코우바에 숙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곳에 일이 없는 사람은 더더욱 찾거나 머물 일이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편견이라는 것이 호텔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카마타의 마치코우바는 그 자체가 중요한 문화적 자산인 동시에 다른 어느 관광지와는 다른 희소성을 갖고 있다. 마치코우바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기술도 바로 문화며, 경지에 오른 예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의 기술은 호텔의 입구에서부터 객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적용됐고, 예술적으로 승화됐다. 관광객들은 호텔에서 마치코우바의 뛰어난 기술의 단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제조대국으로 급성장을 이룬 일본의 산업 한 부분을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호텔은 단순히 마치코우바의 특징을 구색 맞추기 식으로 끼워 넣지 않았다. 호텔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마치코우바들이 협력을 통해 호텔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그들의 기술을 융합하고 결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마치코우바의 역사와 기술을 제대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이곳은 일본어로 ‘혼모노(本物)’ 즉 ‘진짜’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 마치코우바의 수는 전성기에는 9000개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절반도 안 되는 4000개로 줄어들었다. 일본의 제조업이 언제 다시 옛날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좀 더 냉정히 보면 그런 일은 이번 생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곳 기술자들의 기술력은 어제보다 오늘 더 농후해지며, 그들의 역사는 더 깊어가고 있다. 외국의 값싼 노동력과 첨단 기계들이 흉내낼 수 없는 예술에 가까운 기술력은 여전히 이곳의 막강한 무기다. 그리고 호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도쿄 카마타는 이러한 기술과 역사를 호텔이라는 공간에 응집해 냈다. 이는 훌륭한 경치도, 이름난 관광지도 없는 공장 지역에서 이 호텔이 유의미한 공간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다. 호텔이라고 해서 경치와 입지 좋은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역사와 가치를 제대로 구현한다면 호텔이 자리하지 못할 입지라는 한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작은 호텔을 통해 배운다.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호텔앤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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