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필자가 경험해본 가장 좋은 기차는 KTX 특실이나 신칸센의 특실 정도였다. 반면 럭셔리 크루즈에 관해서는 팸투어를 해본 경험도 있고, 관련 배경지식도 남달라 언젠가 한 번쯤은 크루즈 드레스 코드를 제대로 갖춰서 영화 같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로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점의 여행 코너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은 교통수단으로만 인지했던 기차에 관한 선입견을 럭셔리 크루즈 트레인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나나츠보시.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이 기차는 이제 필자에게도 새로운 로망이 됐다.
1인 15~95만 엔의 크루즈 트레인
크루즈 트레인은 차내에서 최상의 시간을 즐기면서 관광지에 들러 지역마다 최고의 환대를 체험하는 여행의 형태다. 쉽게 말해 호화 여객선의 육지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나츠보시 인 큐슈(이하 나나츠보시)라는 이름은 일곱 개를 의미하는 ‘나나츠(七)’와 별을 의미하는 ‘호시(星)’가 합쳐져서 일곱 개의 별을 의미한다. 이 별은 특급호텔이나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용도로서의 별이 아니라 큐슈가 일곱 개의 현으로 구성돼있는 데서 유래했다. 큐슈의 현을 빛나는 ‘별’이라고 비유한 것은 실로 큐슈라는 지역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고 있는 것이다. 큐슈의 7개 현(후쿠오카현, 사가현,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미야자키현, 가고시마현)과 큐슈의 주요 7개 관광 재산(자연, 음식, 온천, 역사, 문화, 파워 스팟, 인정미, 기차), 그리고 7개 차량 편성을 표현한 것이 바로 나나츠보시라는 이름이다.
나나츠보시는 큐슈 각지를 둘러 볼 수 있는 관광 객실형 열차로 2013년 10월 15일 운행을 시작했다. 2012년 10월부터 예약 접수를 시작해 현재까지 높은 티켓 구입 경쟁률을 보인다. 1인당 가격은 1박 2일 15~40만 엔(열차에서 1박), 3박 4일은 38~95만 엔(열차에서2 박, 료칸에서 1박). 타깃층은 도쿄와 오사카 지역에 사는 국내 관광객과 해외 부유층 관광객이다. 나나츠보시는 ‘어른의 공간’으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투어 참가자는 중학생 이상으로 한정된다. 차내 공용 공간에서의 드레스 코드는 ‘스마트 캐주얼’로 규정하며, 청 샌들은 금지된다. 차내는 전면 금연이고, 침대객실에는 TV가 없다. 나나츠보시를 이용하기 위해 신청할 때 참가자의 이름을 등록해야 하는데, 티켓을 구입한 후 그 중 1명을 변경하는 경우 변경 수수료 1만 엔이 필요하다. 구입해서 다시 파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2명 모두 변경할 수는 없다.
리조트 같은 나나츠보시의 매력
나나츠보시의 매력은 무엇일까?
첫째, 희소성이다. 1회 운행 시, 승차 가능한 인원은 최대 14쌍(28명)밖에 되지 않는다. 2015년 3~9월의 평균 경쟁률이 22대 1이라는 좁은 문은 한층 더 프리미어 느낌을 준다. 제일 뒷 차량에 있는 DX 스위트 A는 최고 경쟁률은 268대 1을 기록할 만큼 인기다. 높은 경쟁률의 끝에 손에 넣은 플래티넘 티켓은 여행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에 틀림없다.
둘째, 크루즈 트레인이라는 개념이다. 승차 전 승객들에게는 드레스 코드 안내 등이 들어있는 봉투가 전해지고, 크루즈 트레인 투어 데스크 담당자가 여행의 목적이나 알레르기의 유무, 여행 동안 듣고 싶은 노래 요청 등에 관한 안내가 이뤄진다. 이 시점에서 승객들은 우아한 크루즈 트레인 여행에 관한 기대감이 고조된다. 이 후 하카타 역의 전용 입구에서 레드 카펫을 거쳐 나나츠보시에 승차한 순간부터 눈앞에는 지금까지 열차의 개념을 초월한 공간이 펼쳐진다.
셋째, 열차 자체의 예술성이다. 차분한 광택을 자아내는 옻칠(우리나라의 나전칠기 같은 기술), 품격 있는 색상의 차체, 곳곳에 장식된 황금 장식 등의 조합이 지금까지의 열차에는 없었던 고급스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기관차의 프런트 그릴과 엠블럼 등의 부품에 눈을 돌리면, 그 하나 하나가 일류의 예술 작품처럼 마무리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내부도 구석 구석까지 세공기술의 극치가 보인다. 객실은 ‘그립고 새로운’ 콘셉트로 서양과 일본의 양식을 절충한 차분한 분위기에 싸여있다. 벽과 바닥에는 나무가 사용되고 있다.
넷째, 서비스다. 여행의 즐거움 중 큰 부분인 식사는 모두가 모이는 라운지나 식당차에서 제공된다. 요리는 큐슈 현지에서 엄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큐슈를 대표하는 레스토랑의 요리사가 솜씨를 발휘한다. 세련되면서도 가족처럼 다정한 승무원의 환대가 있고, 차창밖에 보이는 큐슈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이 흘러간다. 단지 여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것들을 동시에 즐기는 것은 어렵다. 바로 나나츠보시이기에 가능한 즐거움인 것이다.
일본의 장인 정신이 깃든 공간
나나츠보시의 디자인은 미토오카에이지(水戸岡鋭治)가 완성했다. 미토오카는 권위 있는 국제 철도 디자인 공모전인 브루넬 상(Brunel Award)을 여러 번 수상한 바 있는 유명한 아티스트이다. 그는 25년 전부터 JR 큐슈의 차량 디자인을 맡고 있으며, 디자인 분야에서 돌풍을 일으켜온 혁명아 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04년에 완성된 큐슈 신칸센 ‘츠바메’(つばめ)는 차량 곳곳에 따뜻한 목재를 적용했으며, 금박이 붙여진 벽 등 승객의 눈을 끄는 장치가 화제가 됐다. 2011년에 운행을 개시한 임시 특급열차인 ‘A 열차로 가자’는 서구문화가 전래된 아마쿠사 지방을 달리는 열차로 유럽의 향기를 담은 열차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미토오카는 JR 하카타 역 광장에 어린이 놀이터를 마련했고, JR 오이타 역내에는 장난감 기차를 달리게 하는 등 재미있는 발상으로 역을 ‘사람이 통과하는 장소’에서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 바꿔왔다. 이처럼 사람을 즐겁게 하는 미토오카의 디자인에 매료돼 큐슈에 오는 철도팬과 관광객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경력에도 불구하고 미토오카에게 있어서 나나츠보시의 제조는 “지금까지의 신칸센과 특급열차에 비해 10배 이상 어려웠다.”고 회자할 만큼 힘든 작업이었다. 그만큼 ‘큐슈의 매력을 세계에 발신한다.’는 나나츠보시의 콘셉트는 부담이었던 것이다. 세계에서 명성을 얻으려면 당연히 세계적으로 전례없는 열차를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기본 콘셉트는 럭셔리 크루즈 트레인으로 까다로운 고객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최고의 퀄리티를 구현해야했다. 즉, 열차는 압도적으로 아름답고 편안해야 했던 것. 하지만 JR 큐슈는 JR 동일본과 서일본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예산도 결코 윤택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미토오카 에이지는 오오노 코스케(大野浩)라는 사람을 파트너로 선정했다. 그는 철의 도시로 불리는 키타 큐슈에 본사를 둔 ‘츠치에’라는 회사의 도쿄 영업소장이었다. 미토오카가 오오노를 선택한 이유는 이 회사가 인테리어와 외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 디자인과 제작을 맡고 있었으며, 그가 바로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든다는 장인 집단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큐슈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에서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기차 만들기는 연구와 인내의 연속이었다. 한 가지 예로, 일반 열차라면 일단 그릴 금형 틀을 제작하고 거기에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면 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나츠보시는 보통 열차처럼 양산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열차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호화 열차라고 해도 고작 2대 밖에 만들지 않는데, 엄청난 비용을 들여 금형을 제작하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오오노는 프레스 리스 포밍(press less forming)이라는 최신의 금속 가공 기술을 적용했다. 그리고 장인의 수공예를 결합해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조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성공했다. 나나츠보시 차체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이 황금빛 엠블럼인데, 이는 최신 기술과 장인의 수공예를 넣은 것으로, 이전까지 없었던 높은 정밀도를 가진 작품이었다. 그 밖에도 초일류 공예품 장식이 곳곳에 사용됐다.
지역을 밝히는 일곱 개의 희망의 별
사실 일본 사람들의 열차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신칸센을 비롯해서 지하철, 전철까지 모든 노선과 시간을 외우고 있는 마니아를 비롯해서, 열차에 관한 특별한 추억과 기록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열차나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열차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무슨 유명 배우의 팬 사인회 만큼 사람들이 몰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장면을 필자도 여러 번 목격했다. 어쩌면 나나츠보시의 성공은 열차에 대한 애정이 저변에 깔린 일본 사람들의 독특한 추억과 감정이 바탕 돼 가능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나츠보시는 단시간에 일본 각지를 연결해주는 신칸센의 편리함보다 차창 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식당차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열차의 낭만과 추억에 중점을 뒀고, 모든 것이 존재하는 도쿄를 대신해 그 곳에만 있는 큐슈지역의 매력에 집중했다.
JR 큐슈가 내건 ‘일곱 개의 별’이라는 콘셉트는 ‘큐슈의 매력을 세계에 발신하는 것’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큐슈의 미래를 짊어질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 셈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처럼 현재 일본은 수도 도쿄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정치·경제·언론·문화 등 모든 것이 도쿄에 집중된 한편, 지역 경제의 침체와 저출산, 고령화, 과소화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현대사회의 필연적인 운명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큐슈도 대도시를 제외하면 피폐라는 말이 어울리는 정도로 과소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도 있다. 나나츠보시는 그런 큐슈의 폐색감을 깨는 희망의 별로서 만들어졌다.
나나츠보시의 제작에 참여했던 오오노는 말한다. “나나츠보시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움직이는 호텔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차선로를 따라 마을 조성, 일자리 만들기, 사람과의 관계 만들기를 동시에 이뤄내는 작업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나츠보시는 단순한 호화 열차 사업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꿈을 주고 승객에는 큐슈의 매력과 사람들의 따뜻함을 전한다. 나나츠보시가 지나는 시간에 맞춰 선로 근처에 나와서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는 주민들의 모습은 왜 지역을 밝히는 희망의 별이 될 수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오늘 필자는 나나츠보시의 사진을 보며, 언젠가 남편과 함께 결혼 몇 주년을 기념하며 여유로운 열차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필자의 가슴에도 나나츠보시라는 새로운 로망의 별이 하나 생긴 셈이다.
<2015년 10월 게재>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호텔&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