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Benesse Art Site Naoshima)

2015.08.05 10:19:13

지역과 예술과 기업의 상생프로젝트

칼럼 연재를 시작하기 전부터 필자의 머릿속에는 일본의 ‘나오시마(直島)’라는 선망의 지역이 있었다. 가보고 싶었고,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이곳을 칼럼의 소재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취재자료를 요청한 필자에게 돌아온 담당자의 답은 ‘매거진의 특성 때문에 취재를 거절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들은 호텔이라기보다 미술관과 지역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춘 사업이기 때문에 호텔 소개에 중심을 둔 맞춘 본지의 콘셉트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당황스러웠지만 이해가 됐다. 사실 이 곳을 선택한 것도 그러한 문화 예술적 특성이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에 기사의 방향을 수정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취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호의 내용은 숙박시설로서의 호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문화예술과 지역프로젝트에 비중을 둔 내용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산업 폐기물 처리장에서 예술의 섬으로
나오시마는 낙도의 독특한 문화와 경관을 유지하면서 현대 미술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개발이 이루어진 섬이다. 오래 전부터 해운업과 제염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던 나오시마는 1917년 미쓰비시 광업(현재 미스비시 메트리얼)의 제련소를 유치하고 경제 상황이 단번에 좋아졌지만, 공해와 폐기물로 인한 환경 문제가 심각해졌다. 게다가 구리의 국제 가격 하락 등 시장의 변화로 인해 제련시설 경기가 하락했고, 제련시설 노동자 수와 함께 나오시마의 인구도 1970년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바로 옆의 섬인 토요시마에서 발생한 산업 폐기물의 불법 투기 문제를 계기로 나오시마는 환경도시를 선언하며 환경문제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섬의 남부를 관광 사업의 장으로 하는 관광 개발을 목표로 했지만, 국립공원의 규제와 1970년대의 경제 침체로 계획을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나오시마는 관광 휴양지로 변화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베네세홀딩스와 후쿠타케 재단이 있었다. 1985년 나오시마 섬의 미야케 읍장의 ‘깨끗한 관광’이라는 콘셉트와 베네세 코퍼레이션의 후쿠타케 사장의 ‘자연과 접촉하는 경험’이라는 콘셉트가 합쳐져 지금과 같은 나오시마의 구상이 시작됐다.


예술에 관한 철학과 지역에 관한 이해
베네세 아트사이트 나오시마(Benesse Art Site Naoshima)는 세 개의 섬인 나오시마(直島), 데시마(豊島), 이누지마(犬島)를 무대로 한 일본의 대표적 교육기업 베네세홀딩스와 후쿠타케 재단이 이끄는 예술활동을 지칭한다.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는 기업의 문화예술 활동지원, 자연환경과 건축과 예술작품의 조화, 지역재생 이라는 가치를 구현한 모범적 성공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시작은 1980년대 중반 베네세홀딩스(구 후쿠타케 출판)의 창립자이자인 후쿠타케 데쓰히코(福武哲彦)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섬에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장을 건설해 섬의 남부 일대를 교육문화지역으로 만들고자 했던 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오시마의 읍장이었던 미야케 신텐은 섬 전반을 문화, 산업, 교육이라는 세 가지 분야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플랜을 가지고 함께할 수 있는 기업을 찾고 있었다. 둘은 의기투합하여 나오시마 섬의 개발에 관한 약속을 주고받게 된다.
그 후 테츠히코 사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후쿠타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郎) 씨가 1988년에 사업을 현대미술로 전환해 나오시마 문화촌 구상을 발표하고 섬의 남부 지역을 시작으로 종합 관광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후쿠타케 소이치로 씨가 현대미술에 주목한 이유는 부친인 후쿠타케 테츠히코 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컬렉션으로 전국적인 전시를 개최할 만큼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기도 했었고, 본인 역시 예술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존경 받는 기업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오시마의 국제 캠프장 건설에서 호텔과 미술관을 합체한 베네세 하우스, 지중미술관, 아트 프로젝트 완성까지 문화 리조트 지역이 나오시마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은 건축가를 선정할 때도 일본의 자연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외국인을 배제했고, 도쿄나 대도시 출신의 건축가 또한 우선적으로 제외시키기를 고집했다. 또한 약 25년간 아트사이트 나오시마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해 온 안도 타다오(安藤忠雄)는 고택의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때문에 집을 완전히 들어낸 후 지하와 기반 공사를 마치고 다시 같은 자리에 집을 옮겨 넣는 식의 어려운 공사를 진행했다. 안도 타다오의 모든 건물 공사에 참여한 미장전문가가 남긴 “그 지역에 있는 것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철학을 잘 말해주고 있다.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
나오시마를 ‘현대 예술을 살리는 지역 공간 만들기’로 여기게 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은 ‘집(家) 프로젝트’였다. 베네세 현대 미술 사업은 당초 베네세 하우스 부지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오시마 주민과의 접점은 부족했고 자연히 베네세홀딩스의 사업을 싸늘하게 보고 있는 주민들도 많았다. 이 예술사업이 섬에 녹아드는 계기가 된 것이 1997년부터 시작된 ‘집 프로젝트’였다. ‘집 프로젝트’는 모토무라 지역의 오래된 민가를 현대미술로 재생시킨 것으로, 인구유출과 고령화로 인해 폐가가 늘어나는 것을 보다 못한 나오시마 동사무소가 베네세에 상의해 시작된 사업이다.
이렇게 시작된 ‘집 프로젝트’는 나오시마 자체를 디자인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 됐다. 그 이유는 ‘집 프로젝트’가 예술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과 인근 주민들의 교류에서 태어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주민들이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집, 두 집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면서 점차 주민들도 작품에 친밀감을 가지게 되고 완성된 작품의 관리를 돕는 등 관심을 보였다. 또한 젊은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면서 대부분의 거주자가 노인이었던 섬의 주민들은 관광객들을 반겨 작품의 위치를 안내하거나 화장실을 빌려주고 그들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해 ‘집 프로젝트’는 조금씩 지역에 익숙한 주민들을 건강하게 만들어 갔다. 즉, 나오시마의 지역 주민이 자신의 마을을 디자인하는 주체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2009년 미야노우라 지구에 문을 연 목욕탕 ‘I♥湯’은 후쿠타케 나오시마 미술관 재단에서 나오시마를 찾는 관광객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을 위해 기획한 대중목욕탕 프로젝트이다. 현대미술관이자 동시에 공공시설이기도한 이 공간은 건축과 작품의 뚜렷한 경계가 없다. 섬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주민들이 가져온 다양한 물건을 실제로 작업에 활용하거나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아티스트 특유의 거대한 콜라주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 냈다.


지속 가능한 아트사이트 나오시마의 특징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1992년 미술관과 호텔이 일체화된 베네세하우스 오픈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지금까지 꾸준히 새로운 요소들이 더해지며 진행되고 있다. 계속해서 지속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의 특징이 과연 무엇인지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첫 번째, 개인의 컬렉션이 공공의 예술로 승화된 점이다. 나오시마 섬에 상설로 전시되고 있는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섬을 찾는 방문객들이 반드시 찾는 베네세하우스 미술관과 지추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은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이 아버지 대에서부터 수집한 아트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잭슨 폴락, 데이비드 호크니, 쟈코메티 증의 작품이나 모네의 수련 연작은 외딴 섬에 위치한 미술관의 컬렉션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작가와 작품의 유명세에 의지하기 보다 훌륭한 작품들이 더욱 가치를 발할 수 있도록 섬이라는 장소를 선정하고, 지역 문화 그리고 섬 주민들과의 밀접한 관계형성을 통해 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자 했다. 바로 기업의 아트컬렉션에 공공미술의 성격이 강화된 것이다.
두 번째, 기업의 관점에서 베네세홀딩스는 아트사이트 나오시마 프로젝트에 임하기에 앞서 중기운영계획의 수립과 사업의 재정비를 함께 진행했다.
사회공헌활동의 동기와 목적을 기업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기업 활동에서의 사회공헌활동이 갖는 위치와 영역을 확보한 것이다. 그 예로, 교육 사업에서 노인복지로 사업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는 사업계획에 맞춰 인구고령화와 지역 활력의 침체를 맞고 있는 나오시마섬을 대상으로 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사회적 가치의 추구를 통해 기업에게도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CSV(Creating Shared Value)의 개념을 도입했다. 따라서 사회공헌사업의 전략적인 포지셔닝에 성공한 아트사이트 나오시마는 20년 이상 걸친 장기적인 사업기간 동안에 기업의 이윤창출 활동과 경쟁이나 상충 없이 오히려 기업 활동의 경쟁적 맥락 (Competitive Context)을 높이는 활동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NPO와 지차체의 협력과 권한이 이양됐다는 점이다. 나오시마 섬은 후쿠타케재단의 공익사업활동을 통해 기업의 주도로 지역 활성화를 이뤄가고 있다. 그러나 섬에서 베네세홀딩스라는 기업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를 자제하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사실 베네세라는 단어는 베네세하우스 미술관과 리조트 외에는 나오시마의 어떤 프로젝트에도 사용되고 있지 않다. 이런 노력은 아트사이트 나오시마 프로젝트에 공익적인 가치를 더하며, 베네세홀딩스의 사회공헌활동의 진실성과 공정성을 강조한다. 이렇게 상업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노력은 NPO에의 권한의 이양, 지자체와의 파트너십으로 연결되고 있다. 또한 베네세홀딩스는 지자체, NPO,지역주민들의 협력을 통해 나오시마를 배경으로 한 국제 행사인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의 개최로 주변 섬들과 세토내해 지역을 아우르는 문화벨트를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화는 모두 지방에서 시작 된다
후쿠타케 소이치로는 키무라 쇼자부로의 ‘경쟁하는 문화의 시대’라는 저서에서 나오시마의 콘셉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키무라의 저서에는 ‘자연이야말로 최대의 교육자이다.’, ‘문화는 모두 지방 문화적인 것이지, 중앙문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도 없는 대자연에 둘러싸여 문명을 느낀다면 그것은 가장 사치스러운 삶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베네세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를 건설하게 된 계기가 ‘과도한 도시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지역으로 피폐해지던 한 섬의 아름다운 자연을 되찾기 위해 시작됐던 나오시마 프로젝트.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는 기업과 예술과 지역 문화가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지 오늘날도 여전히 역동적으로, 그리고 장엄하게 보여주고 있다.

<2015년 8월 게재>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월간 <호텔&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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