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애프터눈 티를 마시기 위해 테이코쿠 호텔(帝国ホテル, Imprerial Hotel, 제국호텔)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같은 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문해 로비는 다소 부산스러웠지만, 라운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국빈의 방문에도 변함없이 침착하게 미소를 짓는 직원의 공손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이 호텔의 내공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처음 애프터눈 티 서비스를 선보였다는 17층 라운지에 도착해 둘러보니, 평일임에도 예약을 하지 않고는 티 한잔 즐기기도 쉽지 않은 그 곳에는 한껏 멋을 내고 시간을 내서 찾은 듯한 고객들이 많아 보였다. 테이코쿠 호텔에는 이처럼 평생 한 번쯤은 이곳의 서비스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매일 아침 이 호텔의 조식을 즐기는 고객이나, 3대를 이어 이곳의 고객이 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125년 동안 변함없이 사랑받으며 일본 호텔의 역사와 자존심이 돼 온 테이코쿠 호텔의 비법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필자가 찾은 답은 바로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정성을 담은 환대) 정신이다.
도쿄 올림픽 정신=오모테나시=테이코쿠 호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에서 유행하는 말 중 하나가 ‘오모테나시’이다. 2013년 IOC총회에서 일본의 타키가와 크리스탈이라는 프랑스와 일본 혼혈인 여성 아나운서가 올림픽 개최지 선정 프레젠테이션에서 특유의 끊어 읽기와 제스처로 이 단어를 표현하며 위원들에게 호소한 것이 화두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전에서 프레젠테이션으로 주목을 받았던 나승연 씨의 인기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올림픽을 앞두고 그야말로 성심성의를 다하는 서비스로 일본을 찾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사람들의 결의에 찬 시선은 테이코쿠 호텔로 향하고 있다. 테이코쿠 호텔이 오랫동안 지켜온 기업 이념과 직원들의 서비스 현장이 바로 ‘오모테나시’의 교본과도 같기 때문이다.
테이코쿠 호텔의 역사
1890(메이지 23)년 11월 3일 메이지 정부가 서구화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당시 외무 장관이었던 이노우에의 제안에 의해 테이코쿠 호텔은 일본의 영빈관으로 탄생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 지진이 발생했지만, 테이코쿠 호텔은 지진에 강한 설계 건축을 한 덕분에 주변의 많은 건물이 붕괴하는 가운데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호텔 웨딩이 시작된 계기는 바로 이 관동대지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진으로 많은 신사가 붕괴 되거나 소실된 후에 호텔 내에 신전 결혼식, 사진실, 미용실을 갖추고 결혼식에서 피로연까지 모든 서비스를 호텔에서 제공하는 현대 호텔 웨딩 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에서 처음으로 제국호텔이 시작한 서비스로는 호텔 웨딩 외에도 “제국호텔 세탁소에서 지우지 못하는 얼룩이라면 세계 어디에서도 지울 수 없다.”며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세탁소, 쇼핑 아케이드, 뷔페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테이코쿠 호텔은 현재 도쿄, 오사카, 가미코치에 있으며, 이 중 도쿄는 올해 11월에 개업 125주년을 맞이한다. 오사카는 2016년 개업 20주년을 맞이하게되고, 카미코치는 2013년에 80주년을 맞이했으며, 하와이의 ‘하레쿠라니 호텔’, ‘와이키키 파크 호텔’과 제휴하고 있다.
100 - 1 = 0
테이코쿠 호텔은 ‘호텔 오쿠라’와 ‘호텔 뉴 오타니 도쿄’와 함께 일본 명문 3대 호텔로 불리고 있지만, 이미 다른 호텔 보다 70년 이상 앞서 있으며, 테이코쿠 호텔의 오모테나시 서비스 수준은 지금도 다른 호텔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접객부서에서 배차부서, 세탁소, 구두닦이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명물 직원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정도이며, 특정 직원의 서비스를 목적으로 테이코쿠 호텔에 묵는 손님도 셀 수 없다. 테이코쿠 호텔의 오모테나시 정신을 표현한 광고로 ‘포켓 머니는 만 엔’, ‘종이 쓰레기는 하룻밤 더 숙박 합니다.’라는 카피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만엔의 포켓 머니는 택시로 호텔에 오는 고객을 위해 도어맨이 언제든지 만 엔 지폐를 환전할 수 있도록 주머니에 오천 엔짜리 지폐 한 장과 천 엔 지폐 5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아직 일본 지폐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 택시를 이용한 외국인 게스트가 잔돈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 택시 기사를 만난 경우를 대비해 바로 환전이 가능하도록 준비한 서비스인 것이다.
그리고 종이 쓰레기가 하루 더 숙박한다는 문구는 객실 쓰레기를 청소한 후 다음날까지 하루 더 보관해 둔다는 뜻인데, 체크 아웃했던 고객이 중요한 서류를 휴지통에 버린 것 같다고 문의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전체 931개의 객실 쓰레기를 하룻밤 더 보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객실청소를 담당하는 종업원의 발상에서 시작된 서비스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일본의 영빈관으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테이코쿠 호텔은 해외에서 오는 특별한 VIP를 맞이하거나 긴 여행의 피로를 푸는 서비스에 집중해 왔다.
세탁 서비스를 시작하고, 호텔 내에 우체국을 두거나, 기사가 달린 전용 리무진을 준비하는 일 외에도 회원 베개의 높이를 맞춘다던가, 허리에 문제가 있는 고객의 침대 매트 아래에는 단단한 판을 넣고, 샤워기의 수압까지도 고객의 취향에 맞는 태세를 갖추는 등 고객을 챙기는 서비스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테이코쿠 호텔의 대표이사이자 총지배인인 사다야스히데야(定保英弥)는 “서비스는 ‘100-1= 99’가 아니라 ‘100-1=0’”이라고 말한다. 호텔의 서비스에서는 1개의 실수가 전체의 평가로 이어진다고 생각으로, 단 하나라도 고객의 마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바로 테이코쿠 호텔의 오모테나시인 것이다.
좋은 호텔의 조건은 바로 ‘휴먼웨어’
세계의 어떤 사람이 와도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 호텔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시설), 소프트웨어(서비스 및 조직), 휴먼웨어(인재)’ 이 세 가지를 균형있게 고품질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테이코쿠 호텔이 추구하는 휴먼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전통에 집착하지 않고 테이코쿠만의 발상으로 만들어낸 서비스나 상품이 즐비하고, 현장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실제 서비스로 이어지는 진취적인 도전이 항상 추진되고 있는 것은 바로 테이코쿠 호텔이 가지고 있는 휴먼웨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객실 당 평균 2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근무 환경, 사소한 서비스라도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 2대 3대씩 대를 이어 거듭 엄격한 시선으로 서비스를 평가하는 단골 고객들의 취향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적극적으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서비스, 실무의 아이디어가 호텔의 자랑이 되는 서비스로 실현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사람’에게 집중한 테이코쿠의 ‘휴먼파워’이자 오모테나시 정신이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 2014년 100주년을 맞으면서 바야흐로 국내 호텔 역사가 100년이라는 문턱을 넘어서게 됐다. 앞으로 우리도 한국의 ‘정(情)’이라는 고유의 정서가 잘 전달될 수 있는 따뜻하고 독창적인 휴먼웨어 서비스를 개발해 나간다면, 제2, 제3의 100살 호텔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2015년 5월 게재>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월간 호텔&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