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꽃보다 할배’라는 연세 지긋한 어른들의 유럽배낭여행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젊은이들처럼 걷고 먹고 즐기던 출연자들의 모습은 이른바 우리네 ‘할배, 할매’들의 여행 욕구를 제대로 자극해서 여행업계에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모든 고령자들이 이들처럼 건강하거나 용감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을 위한 관심과 세심한 배려가 담긴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더 많은 어르신들이 훨씬 수월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일본에서 고령자들이 가기 쉬운 숙소를 선정하고 추천해주는 시스템과 이를 통해 인증을 받은 숙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령자를 위한 ‘실버스타’ 등록 제도
일본의 전국 료칸 생활 위생 조합 연합회(全国旅館生活衛生同業組合連合会, 조합원 약 2만 건)는 고령화 사회를 맞이해 고령자들이 가족, 혹은 단체로 여행하는 기회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했다. 이에 대응해 만든 것이 실버스(타Silver Star) 등록제도다. 이 제도는 후생노동성(厚生労働省) 및 관계 기관의 협조를 얻어 고령자를 위한 여행 서비스 및 시설의 증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실버스타로 등록된 료칸이나 호텔은 ‘Silver Star’의 ‘S’와 하트 모양의 마크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버스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첫째, 숙박시설 내 공동 욕실에 난간, 슬로프, 샤워 의자, 벤치 등을 설치해 고령자를 배려하도록 한다. 둘째, 식음업장에는 반드시 고령자를 배려한 메뉴가 있어야 한다. 셋째, 고령자(만 65세 이상)를 위한 할인요금 제도를 갖춰야 한다. 넷째, 적정한 거리 안에 왕진 등이 가능한 의료시설이 있어야 한다.
일본 총무성통계국(総務省統計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65세 이상 인구 중 절반이 1년에 한 번 이상 국내여행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자연스레 고령자에게 상냥한 숙박 시설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수요에 힘입어 실버스타 등록인가를 받은 료칸과 호텔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가이드 북, 포스터, 삼각 POP, 전단지를 만들어 캠페인을 전개해 더 많은 고령자들이 실버스타 숙박시설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전국 여관생활 위생조합 연합회는 ‘사람에게 상냥한 숙소 만들기 상(人に優しい地域の宿づくり賞’)을 제정해 매년 고령자를 위한 배려가 뛰어난 숙소에 시상하고 있다.
사람에게 상냥한 숙소 만들기 상
‘사람에게 상냥한 숙소 만들기 상(人に優しい地域の宿づくり賞)’은 1997년부터 시상되기 시작했다. 매년 전국에서 추천을 받은 숙박시설 중 철저한 조사를 통해 수상 대상자를 선정한다. 선정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의 특성과 고령자를 위한 온천, 요리, 지역 활동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지역의 경제·역사·문화 진흥에 공헌을 해야 한다. 세 번째는 고령자의 취미와 건강관리에 관한 각종 이벤트 등의 환경을 조성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는 고령자를 위한 복지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국제화에 부응하며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기준으로 ‘사람에게 상냥한 숙박시설 선정위원회’는 실버스타 심사위원, 관련 학계, 장애인 단체 등으로 구성된 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수상 시설을 선정한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시설인 초우세이칸을 소개한다.
안티에이징 료칸 - 초우세이칸(長生館)
초우세이칸은 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일본식 전통 료칸이다. 숙소를 감싸는 듯한 4000여 평의 정원이 있어 료칸 내부에서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노천 온천은 니가타현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식사 또한 제철 재료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요리로, 고령자들을 배려한 건강식 메뉴가 많다. 무엇보다 초우세이칸이 사람에게 상냥한 숙박시설로 지정된 이유는 바로 독자적인 ‘건강 프로그램’ 때문이다. 초우세이칸의 건강 프로그램은 건강을 중시하는 고령자들의 요구에 따라 다른 온천과 차별화를 둔다. 라듐 온천을 이용한 안티 에이징(노화 방지) 캠프 운영이 그것이다. 안티 에이징의 핵심인 면역력의 활성화에는 ‘음식, 운동, 설렘’이 필수적인 요소다. 이를 위해 지역의 채소와 몸에 좋은 약선 요리를 제공하고, 야외 체험이나 연주회 등을 진행한다. 고령자의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관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NPO 법인 ‘샤라쿠(しゃらく)’
‘샤라쿠’는 건강상의 이유로 여행이 힘든 고령자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NPO 법인이다. ‘여행을 포기하지 말자’, ‘여행은 최고의 재활이다’ 등의 모토로 간병 보호자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금까지 총 1200명이 넘는 고객의 여행을 코디했다. 여행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도 샤라쿠에는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고향집에 귀성하고자 하는 사람, 손자의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 성묘를 가려는 사람, 국내 관광을 원하는 사람, 그리고 해외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 등 그야말로 다양한 요구들이 있다. 샤라쿠는 고객의 상황과 희망에 따라 맞춤형으로 에스코트하고, 도우미 혹은 간호사가 동행해 안전과 건강을 지킨다. 사업 초반에는 고령자의 여행에 ‘봉사’의 개념으로 따라다녔지만, 이후 여행업의 면허를 취득해 전문적인 여행의 기획과 서포트를 함께 진행함에 따라 사업화에 성공했다. 여행의 기획은 가족, 헬스 케어 매니저와의 상담을 통해 본인의 건강에 맞는 여행 스케줄을 작성하고, 호텔과 이동 수단를 정하며, 에스코트 헬퍼와 의료 케어 스텝의 코디네이트 등으로 이뤄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65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했고, 노령화 지수는 65세 이상 인구의 수가 유소년 인구의 95%를 넘어섰다. 10년 전 48.9%에서 두 배 증가한 수치다. 고령자들은 인구 구성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주요 소비층으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적극적인 여행의 주체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나 신체적인 불편함, 그리고 심리적인 불안함 등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아직도 여행을 할 때는 소속된 단체 여행의 일원이거나 가족 여행을 따라나서는 객체로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제약 요건이 많아 망설이거나, 아예 포기하고 지내는 수많은 고령자들에게 바쁜 아들딸을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가 필요하다. 이것이 실버스타 인증제, 사람에게 상냥한 숙소 상, 안티에이징 프로그램, 여행 맞춤 코디네이터 등과 같은 고령자를 위한 시스템과 서비스들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호텔&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