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꽃중년을 위한 디자인 호텔 HOTEL K5

2020.03.11 09:40:44


최근 일본 호텔업계에서 주목할 만한 트렌드는 바로 지역 재생이라는 키워드다. 주로 한때는 부흥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쇠락한 지역에서 제 2의 전성기를 목표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호텔이 그 구심점 역할을 하는 형식이다. 한때 일본 최고의 금융 지구로 유명했던 도쿄의 니혼바시 카부토쵸(日本橋 兜町)에는 약 100년 전 일본 최초의 민간 은행이었던 건물이 호텔로 변신해 지역 재생을 꿈꾸고 있다. 일본의 금융 산업을 이끌어온 이 지역의 역사, 감각적이면서 여유 있는 중년을 타깃으로 한 감도 높은 디자인, 몇 개의 회사가 유닛 형식으로 참여한 호텔 프로젝트팀의 구성 등이 이 호텔에서 눈여겨봐야할 중요한 요소이다.






다시 태어난 일본의 금융 지구

일본 금융 역사의 상징이자 지금도 수많은 증권 회사들이 본점을 두고 있는 지역인 니혼바시 카부토쵸, 이곳은 메이지 시대에 일본경제의 발전을 이끈 실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 栄一)가 일본 최초의 은행을 개업하고 증권거래소를 설립한 이후부터 일본 금융의 심장으로 불려왔다. 그렇게 한 세기를 풍미해 온 카부토쵸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당시 도쿄 증권거래소가 중개인에 의해 거래가 이뤄지던 운영 방식을 폐지하고 전산 시스템으로 바꾼 후, 중개인들의 모습이 카부토쵸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동네에 활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카부토쵸에 자리 잡았던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롯폰기로 오피스를 옮기면서 이곳의 사람들은 점점 더 빠져 나가, 지역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부토쵸의 헤이와 부동산(平和 不動産)은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사람이 모이는 곳, 금융투자와 성장의 메카로서의 지역 재생을 표방하면서, 주변 지역과 금융 도시 기능의 융합을 이루는 카부토쵸 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이 같은 이유로 추진된 니혼바시 카부토쵸 카야바 지역 재생 사업 즉 ‘kabuto one 프로젝트는 일본 주요 은행 본점이 밀집돼 있는 오오테마치(大手町) 지구와 니혼바시(日本橋) 지구를 연계하면서, 국제금융도시의 중심이 되는 카부토쵸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지역 재생 프로젝트에 해당되는 면적은 약 10에 이른다. 게다가 이곳은 지하철 5개 노선의 역이 통과하고, 도쿄역까지 도보 권내 있으며, 하네다·나리타 공항의 접근성도 좋은 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카부토쵸는 이제 핀테크 기업을 비롯한 신생 기업의 성장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금융관련 비즈니스의 주역을 담당할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를 만들고자, 오래된 역사적인 건물을 레노베이션한 마이크로 복합시설 ‘K5’사업을 추진했다. 


100년 된 은행 건물의 변신을 맡은 프로젝트팀

지난 21일 오픈한 K51923년 준공된 일본 최초의 민간은행인 제일은행 별관 건물을 레노베이션해서 탄생했다. 이 건물을 지은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 栄一)2024년부터 새로운 1만 엔 지폐의 얼굴로 등장할 정도로 일본 금융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내년 NHK드라마의 주인공으로도 다뤄질 예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건물은 단순히 오래된 은행 건물이 아니라 일본 금융의 시발점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이 건물의 프로젝트는 지역 재생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곳의 레노베이션에는 일본의 젊은 호텔 기획 운영회사와 마케팅 회사 등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먼저, 전체 콘셉트의 개발을 담당한 것은 'Backpackers' Japan'으로, 이들은 쿠라마에(蔵前) 창고를 개조한 유스호스텔 ‘Nui’와 같은 독특하고 매력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만들어낸바 있다. K5호텔의 점포를 발굴하고, 큐레이터 및 브랜딩을 담당한 ‘Media Surf Communications’는 기획과 운영을 담당했다. 그리고 공간 디자인은 스톡홀름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CLAESSON KOIVISTO RUNE(CKR)’의 모텐크라손, 에로코이비스트, 오라 루네 등 3명이 맡았다.




애매함을 콘셉트로 한 디자인


이 프로젝트팀은 마이크로 복합시설 K5를 지역 재생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콘크리트 구조의 중후한 은행 건물을 레노베이션하면서 콘셉트를 애매함으로 잡았다. K5프로젝트를 진행한 마쓰이 아키히로 공동 대표는 "단순함, 정직함, 퀄리티가 높은 가게를 모아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큐레이팅했다. 아울러 단순한 부티크 호텔이 아니라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길을 도모했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을 창조하고, 게다가 그 콘셉트는 애매함이라니 뭔가 설명이 쉽지 않다.


실제로 이곳을 찾았을 때 제대로 마감이 되지 않은 듯한 건물의 외관을 접하고 내부로 들어와 1층의 모호한 경계에 선 필자는 처음 보는 공간의 구성에 다소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공간이 나뉜듯하지만 정확한 경계가 없고, 세월에 그대로 노출된 벽면이나 창틀은 언뜻 보면 무성의해 보이나 그 속에 무성한 식물들과 그린 컬러의 캐노피가 어우르는 조화는 세심하게 계산된 디자인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1층에는 리셉션 레스토랑 ‘CAVEMAN’, 카페 ‘SWITCH COFFEE’, 그린 숍 ‘Yard Words', 칵테일&티 바 ‘Ao’, 그리고 지하 1층에는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플래그십 매장 ‘B’가 들어와 있는데, 사실 이 영업장 하나하나는 모두 각자 브랜드 파워를 가진 숍들이었고, 이곳에서 경험한 커피 맛은 단번에 그것을 증명해줬다.


   


그리고 2층부터 4층에 위치한 객실을 찾은 순간, 이 호텔의 애매함이라는 콘셉트에 확실한 신뢰가 생겼다. 스웨덴 디자이너들은 역사가 있는 이 건물을 살리면서 북유럽과 일본의 디자인을 융합시킨 독특한 공간을 연출했는데, 이들의 이색적인 선택은 다양하게 구현됐다. 우선 객실의 문은 모두 구리로 제작된 중후한 문이다. 이 문을 만지면 이용자의 지문이 남게 되는데, 세월이 지나도 그 사람들의 역사가 남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마치 세월이 지나면 색이 변하는 10원짜리 동전처럼 객실문도 자연스럽게 변화해 나가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호텔 객실의 바닥에는 카펫이나 나무 바닥을 새로 까는 대신 옛날 그대로 살리는 이색적인 선택을 했다. 바로 이러한 선택들이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역사를 더해가겠다는 시도를 눈치 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객실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베드의 독특한 캐노피 커튼이다. 특히 4층의 스위트 룸은 무려 4.5m의 높은 천정에서 내려오는 원통 스타일의 캐노피 커튼이 침대를 360도 감싼 모습이 가히 압도적이다. 


    


객실의 안락의자, 소파, 가구, 종이 램프는 모두 디자인을 담당한 CKR의 루네가 디자인했고, 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TIME&STYLE이 제작했다. 욕실과 거실 침실을 나누는 문이나 욕실의 천장은 백향목을 사용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디자인에 가미된 일본식 격자 의장, 쪽빛 커튼, 종이 랜턴, 삼나무 등은 일본적인 색채를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객실 분위기에 방점을 찍은 것은 텔레비전 대신 비치한 LP플레이어였다. LP에서 음악이 흐르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오묘하게 조화하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호텔 객실 플로어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부터 1층의 활기 있는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객실은 스탠더드룸(35~40, 35000)부터, 스위트 룸(78, 17만 엔)까지 총 20실이 마련돼 있다.


꽃중년들의 휴식처

K5는 과거 이곳에서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자취가 건물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은 그 자취의 주인공들이 다시 이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K5는 카부토쵸에 새로운 젊은 층을 유입하려는 무리한 시도 보다는 이곳에서 청춘을 보낸 꽃중년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한 달에 한번쯤 바닷가로 차를 몰고 나가 서핑을 즐기고, 일 년에 한번은 해외여행을 가고, 그리고 언젠가는 크루즈 여행을 계획하는 그런 꽃중년들이 자기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 되는 것이 바로 K5의 목표다. 하지만 오픈한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필자가 방문했을 때 이들의 목표는 예상보다 상회하는 듯 했다. 이 멋진 공간에는 이들이 목표한 꽃중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얼핏 봐도 디자인에 관심 꽤나 있을 법한 스타일 멋진 2/30대들부터 일본의 전형적인 학부모로 보이는 조신한 여성들도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꽃중년들을 비롯해 이들과 취향을 공유하는 다양한 세대가 찾는 K5로부터 카부토쵸에는 작은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호텔앤레스토랑의 일                         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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