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바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기억은 대학교 신입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도락가였던 친한 중국인 친구가 나에게 저녁을 대접했는데, 그녀가 디저트로 주문한 것이 파블로바였다. 아직까지도 나는 파블로바를 처음 입에 넣었을 때의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파블로바의 가벼운 맛은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고 나는 마치 디저트의 신세계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거부할 수 없는 맛의 파블로바, 도대체 어떤 디저트일까? 사실 파블로바는 머랭, 신선한 휘핑크림 그리고 신선한 과일(주로 베리류가 들어간다)로 이뤄진 간단한 디저트다. 베리에서 나오는 산성이 짙은 맛과 크림, 머랭의 단맛이 대조를 보이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파블로바는 재료 면에서 머랭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겉과 속이 모두 바삭한 머랭과 달리 바삭한 겉 부분과 부드러운 속을 가지고 있다.
파블로바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유명하고 대단한 디저트인 만큼,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동시에 파블로바를 그들의 국가적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두 나라 모두 유래와는 거리가 있는 국가들이다. 인접한 두 국가의 디저트를 둔 라이벌 관계와 상관없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모두 동의하는 사실은 이 디저트가 세계적인 러시아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디저트의 이름은 그녀의 죽음 이후 헌정됐다고 한다. 뉴질랜드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파블로바는 안나 파블로바의 1926년 투어 때 그녀의 튀튀(Tutu, 발레할 때 입는 치마)에서 영감을 받아 처음 디저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안나 파블로바의 이름을 딴, ‘파블로바 아이스크림’, ‘라 파블로바(프랑스식 개구리 다리 요리)’ 등 많은 음식들이 있었다.
사실 머랭 케이크 자체는 그녀가 태어나기 100여 년 전부터 존재했다. 이미 19세기에 독일어권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샴 토르테(Schaum Torte)’의 제과법을 미국에 들여왔다. 또한 그보다 이전에,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의 패권을 쥐고 흔들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그들의 스페인 문화에 대한 사랑을 머랭, 과일, 크림을 이용해 만든 ‘스패니쉐 윈드토르테(Spanische Windtorte)’를 통해 보여준 바가 있었다. 유럽인들이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로 건너가면서 이러한 디저트들의 레시피가 신대륙에 전해졌고 파블로바와 같은 엄청난 사회적 발명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비록 위의 두 국가 모두 디저트의 탄생과는 관련이 없지만 그 문화를 보존해왔다는 점에서는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파블로바는 다른 디저트들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단순히 여름의 상징적인 디저트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초기의 파블로바는 베리류만을 고집했지만, 필자는 단맛이 적은 무화과와 장미향수가 들어간 현대적인 형태의 파블로바도 좋아한다. 파블로바를 즐기고 싶다면, 옅은 향과 맛을 가진 우롱차나 열대과일로 만든 차와 같이 먹는 것을 추천한다.
미셸 이경란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 대표
Univ. of Massachusetts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오랫동안 제과 분야에서 일해 왔다. 대한민국 최초 쿠키아티스트이자 음식문화평론가로서 활동 중이며 현재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