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케이크는 비스킷 위에 크림과 신선한 치즈를 얹어서 만든 단 맛이 강한 타르트다. 필자의 어머니가 건강문제가 있음에도 거부하지 못하는 하나의 디저트가 바로 치즈케이크기도 하다. 엄밀히 케이크가 아님에도 케이크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에, 치즈케이크를 어떤 디저트류(예를 들어 커스터드 파이, 타르트, 플란 등)로 분류해야 하는지 논란이 많다. 이런 논란과는 상관없이, 치즈케이크는 다양한 맛을 구현해낼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디저트 중 하나다. 이 디저트의 긴 역사는 기원전부터 존재했다고 추정된다.
먼 옛날, 치즈케이크는 중세시대 영국에서 오직 부자들만 연회에서 먹는 고급 타르트였다. 하지만 치즈케이크 조리법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철학과 민주주의의 선구자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즈케이크의 발명에도 기여했다. 치즈케이크의 원형은 놀랍게도 그리스 요리다. 생각해보면, 그리스인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 기여했다는 것이 참 놀랍다.
‘치즈케이크와 같은 것’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기원전 5년에 그리스의 뛰어난 내과의였던 아지무스(Aegimus)가 꿀로 치즈를 달게 만드는 과정을 담은 책에 나온다. 아지무스는 히포크라테스가 등장하기도 전에 살았던 인물인데, 그의 책에 나온 것과 같은 케이크들은 주로 고대 그리스의 결혼식에서 쓰였다. 신부는 케이크를 구워서 새신랑과 신랑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줬다. 이런 접대문화는 웨딩케이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통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림픽이 내년으로 다가오는 만큼 치즈케이크와 올림픽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소개하고자 하는데, 기원전 776년에 열렸던 첫 번째 올림픽에서 치즈케이크가 에너지 보충을 위해 운동선수들에게 제공됐다는 증거들이 있다.
현대식 치즈케이크에 대한 첫 기록은 그리스의 패망이후 그들의 전통, 음식, 문화를 자신들의 것으로 동화시켰던 로마인들에 의해 기록됐다. 로마의 역사가이자 정치가였던 대(大)카토의 남아있는 저서 중에 기원전 160년에 발간된 ‘농업론’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오늘날의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 페이스트리 기반의 치즈케이크과 유사한 것을 만들기 위한 상세한 요리법을 포함하고 있다. 당시에는 지금의 이름이 아닌 플라센타(Placenta)나 리부마(Libuma)라고 불렸고, 종교행사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 사용됐다. 로마제국이 전유럽에 영향을 끼치면서 유럽인들은 이 레시피를 몇 백 년 동안 발전시켰고 그 결과 영국까지 레시피가 전해지게 된다. 영어인 ‘치즈케이크’라는 이름은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사용하게 됐다. 그리고 불과 18세기가 돼서야, 우리가 아는 치즈케이크를 닮은 디저트가 탄생했다. 요리사들은 맛을 살리기 위해서 이스트대신 거품을 낸 계란을 사용했다. 아메리카 개척민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레시피도 같이 건너가게 됐다. 1730년대, 필라델피아는 ‘치즈케이크 하우스’ 여관을 자랑했다. 치즈케이크는 애플파이만큼은 아니더라도, 미국의 아이콘과도 같은 디저트다. 미국의 크림치즈가 치즈케이크와 만나면서 더 짙고 크림 같은 맛을 자랑하는 ‘뉴욕 치즈케이크’가 탄생했다. 치즈케이크는 정말 길고 엄청난 전통을 가졌으며 그 인기는 케이크 애호가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치즈케이크에 관련된 기념일들이 무려 4개나 존재하고, 그 중 하나는 7월 30일인 ‘치즈 케이크의 날’이다.
미셸 이경란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 대표
Univ. of Massachusetts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오랫동안 제과 분야에서 일해 왔다. 대한민국 최초 쿠키아티스트이자 음식문화평론가로서 활동 중이며 현재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