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디자인
색채 디자인이란 기본적으로 주어진 환경조건에 맞춰 알맞은 색상, 채도, 명도를 선택해 디자인하는 것이다. 색채는 늘 우리와 함께 있고 색이 없는 곳은 없으며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가령 외출을 위해 옷을 입을 때만 해도 ‘무슨 색의 옷을 입을까?, 이 옷에 어울리는 구두색은 무엇을 신어야 할까’ 등 우리는 일상에서 색채에 관련해 매순간 많은 선택을 하고 있다. 색은 디자인 원리 중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로 사람. 사물의 첫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며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영향력 있는 도구 중 하나다. 색채는 어떠한 설명 없이도 생각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직관적이고 원초적이며 감정적이다. 색의 감정적 효과는 색 경험의 고유한 감정이나 구체적인 연상에 의한 감정을 말한다. 감정적 효과로는 한색과 난색을 통해서 온도감을 감지하며 색의 밝기, 넓이에 따른 색에서 느껴지는 팽창, 수축 등의 운동감이 나타나며 명도의 차이에 따라, 가벼움과 무거움이 작용한다. 이처럼 색은 시각을 통해 감정 및 직관적인 의미와 연결된다.
디자이너들은 색채하면 대부분 팬톤칩을 떠올린다. 팬톤(Pantone)은 매년 20년 동안 올해의 컬러를 발표하고 있으며 공간, 패션, 가구 및 산업 디자인은 물론 제품, 포장 및 그래픽 디자인을 포함한 여러 산업에서 디자인 개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팬톤은 2100색 색상표를 사용해 색의 기준을 만들고 그 색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중에게 색채에 시대적 흐름을 느끼도록 만든다. 과거의 팬톤이 색에 기준을 제시해 그것을 언어로 만들었다면, 이제는 색에 의미를 부여해 유행을 이끈다. 팬톤이 2019년에도 어김없이 올해의 색으로 ‘리빙 코랄(Living Coral)’을 선정했다. 산호를 뜻하는 코랄의 색에 영감을 받은 리빙 코랄은 앞에 리빙(Living)이 붙어있는 만큼 아주 생동감 있는 컬러다. 활기차고 부드러우며 편안함, 포근함, 따뜻함을 부여한다. 팬톤은 색은 그냥 색이 아니라, 해석을 통한 의미부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색의 놀라운 힘>의 저자인 장 가르비엘 코스(Jean Gabriel Causse)는 “이 세상 최고의 색채 전문가가 자기 머릿속에 들어 있음을 잊지 마라. 그의 이름은 본능이다.”라고 말했다. 공간의 형태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에 의해 접근하지만, 색채는 사람마다 느끼는 사고가 개인적이고 원초적이며 감정적인 특징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색채를 최초로 현상학으로 분류한 대표적 학자였던 다비드 카츠(David Katz)는 “형태보다도 색채가 좀 더 감정과 더 연관된다.”고 말했다. 즉, 형태는 인간의 이성에 색채는 인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
색채는 강렬하게 작용하고 기억에 쉽게 남으며 인간 행동의 90%는 감정에 의해, 10%는 이성에 의해 유발된다고 설명한다. 색채 경험은 형태의 경험보다 더욱더 직접적인 감각 사고이며 색은 평면적이지만, 공간적, 입체적이면서 인간의 감성에 강하게 작용한다. 색채는 형태를 풍부하고 다양하며 흥미 있게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공간을 형태로 지각하며 동시에 색채로도 인식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컬러감을 선사하는 2018년에 오픈한 하와이 호놀룰루를 대표하는 와이키키 해변에 디자이너, 건축가, 아티스트 등이 모여 만든 글로벌한 디자인 스튜디오인 BHDM에서 리뉴얼한 ‘쇼어라인 호텔 와이키키(Shoreline Hotel Waikiki)’는 하와이의 강렬한 색감과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자연과 만나는 네온’이라는 콘셉트로 구성된 이 호텔은 하와이의 자연의 컬러를 다채로운 색채의 감성으로 충만하게 담으려는 흔적이 공간 곳곳에서 보인다. 호텔에서 느껴지는 강한 컬러감은 눈에 강렬함을 선사함과 동시에 보색 대비를 이루고 호텔 전체는 다양한 색감의 향연을 보이며 자연을 나타내는 장식품과 오브제들은 흰색으로 디자인돼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 호텔은 밀레니엄 세대와 Z세대들에게 어느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도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명소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공간에서 다양한 색채로 인한 색 자극(Color Sensation)은 가시광선에 의한 빛의 자극을 의미하는 것으로 눈을 통해 대뇌로 이어지면서 색의 지각이 일어난다. 색이 없으면 형태도 없다. 형태에 색채의 감정이 더해지면서 공간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따라서 색채로부터 분리된 형태는 없으며 색채가 형태와 함께 공간의 형태의 지각에 관계된 인자로서 고려돼야 하는 이유는 색이 없으면 형태도 없는 상호보완적 관계여서다. 색채는 색이 있음과 없음에 따라 유채색과 무채색으로 나눈다. 무채색은 흰색, 검정, 회색 등 밝고 어둠에 대해 구분되며 유채색(Chromatic Color)은 빨강, 파랑과 같이 다양한 색의 종류, 밝고, 어두운 정도, 진하고 연한 정도의 순으로 나뉜다. 다양한 색의 종류로 나타나는 속성을 색상이라고 하고 밝고 어두운 정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을 명도라고 하며 선명하고 흐린 정도에 따라 나뉘는 속성을 채도라고 한다. 이러한 색상, 명도, 채도를 색의 삼속성이라고 한다.
색채의 근원
색은 빛이며 에너지고 물리적 현상이다. 색이 지각되는 것은 빛의 산란과 반사로 인지되는 현상이다. 색과 빛은 동의어다. 뉴턴은 색을 처음으로 과학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1672년에 프리즘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수학자, 물리학자, 연금술사, 천문학가, 광학자다. 그는 빛이 굴절률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 색상의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했다. 뉴턴의 프리즘 실험을 통해 빛이 발견되면서 색의 본질은 사물이 지닌 대상색이 아닌 빛의 특성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빛은 입자로 이뤄져있고 그 흐름이 눈의 색 감각으로 발생시킨다는 데카르트의 입자설을 입증했다. 그는 모든 단색광은 균질하고 근원적이며 빛은 색상에 따라 굴절률의 정도가 다르고 푸른빛이 붉은빛보다 더 많이 굴절되며 백색광은 다른 단색광들의 혼합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색채란 색채를 인식하는 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객관적 실체다. 뉴턴은 색이 실체라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색은 공간 속에 부유하는 현상이라 정의한다.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 공간은 색을 가지고 있고 색으로 보인다. 색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은 빛, 사물, 뇌의 인식 작용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색은 지각과 감각의 두 가지 차원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물이 만나면서 사람들마다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색은 물리적 속성뿐 아니라, 사물과 공간, 환경 간의 관계에 따라 감정적이고 유기적 속성으로도 설명된다.
자연은 최고의 신의 색
많은 디자이너, 건축가 등 자연은 창작 활동을 하는 많은 예술가에게 근원적 영감(Inspiration)을 제시하는 원천이다. 자연이 주는 것은 불규칙과 규칙에서 오는 형태뿐만 아니라, 자연의 색과 질감 등 무한하다. 자연색은 질리지 않으며 눈을 쉬게 하고 정직한 색채며 순수하다. 또한 가공되지 않은 색으로 본질적이며 편안하다. 많은 디자이너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연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분인 것처럼 자연색은 대부분 아름답고 조화로운 배색의 기초가 된다. 자연색과 일치하는 색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낸다.
얼마 전 오픈한 하얏트 계열 특급 호텔인 힌디어로 ‘개인적 스타일’을 뜻하는 안다즈 호텔이 서울 강남 압구정역에 오픈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디자인팀 ‘피에트 분(Studio Piet Boon)’이 디자인을 맡았고 호텔이 위치한 지역의 특징이나 문화를 공간이나 서비스에 반영해 디자인됐다. 전체적으로 호텔 디자인은 한국의 전통 문화인 조각보와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특히, 241개 객실이 한국의 자연 색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련되게 풀어냈다. 객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색이 밝은 노란색이다. 이 컬러는 우리나라 전통 유기그릇의 노란색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소파, 테이블 그림 등에 적용돼 있다. 황금빛 아름다운 유기 그릇은 놋그릇으로 불리며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건강한 그릇이다. 유기는 음식에 조금이라도 독성이 있으면 검게 변하는 특성이 있어 무독, 무취, 무공예 금속이 만든 최상의 식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객실은 유기의 노란색과 함께 청록색 카펫과 벽면도 시선을 끌었다. 고려 청자의 청록색인 비취색이 공간 곳곳에 쓰여져 있었으며 밝고 고운 초록인 비취색은 비색이라 불린다. 이는 물총새(翡翠) 날개의 푸르름에서 비유한 비취색(翡色)을 의미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누구도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신비스러운 색(秘色)’이라 한다. 이는 청자의 고급스럽고 은은한 푸른빛으로 세계 어디서도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색감을 자랑한다.
비취색은 비점토 속 철성분이 청색 반사토록 만들어 세련되고 색택(色澤)이 일품인 컬러며 철분과 불꽃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가마에서 그릇을 불로 굽는 과정을 ‘번조’라 하고 산소가 충분할 때 생기는 붉은 불꽃을 산환 불꽃, 산소가 부족할 때 생기는 푸른 불꽃은 환원 불꽃이라고 한다. 보통 붉은 옹기는 산화 번조 방식으로 만들며 그릇에 바른 유약 속 철분이 불과 만나 산소와 결합되면 적갈색을 띄고 비취색은 유약에 든 철분과 산소가 만나 결합하지 못하도록 가마 안을 산소가 부족한 상태로 만들어 환원 번조 방식으로 구워 아름다운 비취색을 만들어 낸다. 요즘 대부분 호텔 객실은 흰색, 회색, 아이보리 등 무채색 중심으로 색감이 이뤄진 것에 반해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안다즈는 한국적 콘텐츠를 담은 디자인을 실현했다. 또한 직원 유니폼도 무채색 중심의 정장이 아니라 자주색 셔츠, 청록색을 사용해 컬러감을 부여했다.
색채는 가성비 좋은 영역
세상은 무수히 많은 색으로 이뤄져 있고 우리의 삶은 색의 지배 하에 있다. 색채는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색채는 호텔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소프트웨어의 요소 중 하나며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성비가 좋은 영역이다.
색채는 디자이너의 개인적 취향이나 사고, 표현 방식을 넘어서, 한 시대의 문화를 상징하고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척도가 되며 사람들에게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간에서 색채는 공간의 이미지를 좌우하고 무의미한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풍성함을 제공한다. 또한 감정적 작용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람들과 공간간의 관계성을 끌어낸다. 따라서 호텔은 조화로운 색채 계획을 통해 타호텔과 차별화된 이미지로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특히 호텔은 성격이 다른 공간들이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색채 조화가 잘 고려돼야 한다. 공간별로 목적은 다르지만 호텔을 상징하는 대표 컬러를 계획해 바닥, 벽, 천장, 가구 등의 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함으로써 총체적으로 하나의 호텔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색채 디자인의 궁극적 목적은 조화(Harmony)다. 즉, 색채 상호 간의 조화, 주변 환경, 공간과 사용자간의 조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또한 세상의 무수히 많은 색채 중 디자이너가 효율적으로 색채 디자인을 가능토록 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와 콘텐츠에 맞는 색채를 아카이브한 색채 팔레트가 필요하며 디자인의 목적과 상황에 맞게 바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많은 컬러 레퍼런스와 팔레트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야한다.
이규홍
ASC Studio 대표
지난 13년 동안 LG하우시스에서 공간디자인 컨설팅 등 책임연구원을 맡아오다 올 4월 독립해 ASC Studio를 설립하고 현재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