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반부터 호텔 한식당 오픈 소식이 한 달에 한번 꼴로 전해지더니 그동안 호텔에 문을 연 한식당이 6곳, 이 가운데 절반가량만이 남았다. 특히 미쉐린 가이드의 등장으로 인기를 얻은 모던한식은 호텔 한식에 큰 변화를 안겨줬다. 한식세계화가 시작 된 지 십년을 훌쩍 넘긴 지금, 호텔에 들어온 한식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불은 이미 당겨졌고 얼마나 오랫동안 심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호텔에 몰아친 한식 열풍
2017년은 그야말로 호텔업계에 한식이 물결처럼 흐르던 해였다.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호텔 한식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또 그 많던 한식당은 얼마나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우선 당시 새롭게 문을 연 한식당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4월부터 파크 하얏트 서울의 더 라운지가 프리미엄 전통차 컬렉션과 모던 한식 다이닝 및 디저트 메뉴로 리뉴얼 오픈했고, 5월에는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에서 모던 한식당 안뜨레를, 7월에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 페스타 다이닝을 리뉴얼 오픈하며 8가지 한식 카테고리를 컨템포러리한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8월에는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풀만이 컨템포러리 코리안 다이닝 안뜨레를 선보였고 9월에는 르 메르디앙 서울이 에드워드 권 셰프의 모던 한식당 엘리멘츠를 품에 안았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신창호 셰프의 모던 한식당 주옥이 더 플라자에 입점했다.
이 밖에도 뷔페나 올데이다이닝, 아시안 콘셉트의 레스토랑에서 한식을 강화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의 아시안 라이브는 리뉴얼 작업에 50억 원을 투자해 한층 섬세해진 한식을 선보이며 아시아 5개국의 요리를 파인 아시안 다이닝 콘셉트로 풀어냈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에서는 로비 라운지 카페 델 마르가 한식을 보강한 올데이 다이닝으로 재탄생 했으며 더 플라자는 농촌진흥청과 손잡고 전국 12 종가의 내림음식을 뷔페 레스토랑 세븐 스퀘어에서 선보였다.
또한 이러한 트렌드가 양식당으로 확산되면서 점차 경계를 허물고 한국적인 재료로 풀어낸 요리가 컨템포러리 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호텔에서 터부시되던 한식이 새롭게 주목받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미쉐린이 불붙인 모던한식, 배경엔 한식세계화
호텔에 한식당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는 2016년 11월 미쉐린 가이드의 서울편 발간 이후다. 수년 전부터 기대 속에 등장한 미쉐린 가이드의 스타 레스토랑 절반이 한식당에 쏟아지면서 한식을 외면해오던 호텔 업계가 한식당을 보강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모던한식의 인기는 호텔 다이닝을 휩쓸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예상치 못한 호텔에서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기획하던 레스토랑을 급히 한식당으로 수정해 오픈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지난 3년간 호텔 한식당의 화두는 ‘미쉐린의 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노력에도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쯤에서 호텔에 한식 트렌드를 촉발시킨 미쉐린 가이드와 한식세계화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미쉐린에 대한 언급을 좀 더 이어가고자 한다.
지난해 미쉐린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미쉐린의 별을 획득하는 것은 많은 셰프들에게 영예로운 일이다. 더불어 그 무대를 세계로 넓혀 외국인 고객을 겨냥한 홍보 수단으로 삼기에 더 없이 좋은 이야깃거리다. 앞서 언급했듯이 호텔에 한식 열풍이 불게 된 이유를 시기적으로 미쉐린 가이드의 등장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한식세계화로 인한 공감대 확산이 깔렸다. 2008년 당시 정부가 국정 과제로 한식세계화를 채택하며 한식세계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세부 프로젝트가 국내외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하게 진행됐다. 호텔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춘 한식당이 수면에 오르기 시작한 것도, 호텔 한식이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이러한 자극은 묻혀있던 한식의 재발견을 이끌었지만 변화되고 있는 한식을 알릴 효과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 퍼트릴 마케팅적 요소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미쉐린 가이드에 주목한 것이다. 한식세계화를 완성하는 퍼즐 중 하나가 미쉐린 가이드 발간으로 미쉐린을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정부는 수차례 물밑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한식세계화에 대한 공감대가 없었다면 미쉐린 가이드의 발간이나 호텔에 자리 잡고 있는 한식당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호텔 색 찾아 움직이는 한식당의 지각변동
한창 이목이 쏠렸던 호텔 한식당은 지금 어떤 모습 하고 있을까?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의 안뜨레는 올 1월부터 앙뜨레로 이름을 바꾸고 프렌치를 기반으로 하는 양식 메뉴와 한식 메뉴가 선보여지는 컨템포러리 다이닝으로 선보이고 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페스타 다이닝은 강레오 셰프가 강민구 셰프에게 메가폰을 넘기면서 콘셉트도 수정됐다. 강레오 셰프가 전국의 농가를 직접 찾아다니며 완성한 컨템포러리 한식 페스타 다이닝은 강민구 셰프가 한국 식재료의 계절감과 특성 살려 만든 캐주얼 유러피언 다이닝으로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르 메르디앙 서울에 있던 에드워드 권 셰프의 모던 한식당 엘리멘츠는 2018년 12월까지 계약을 종료하고 경남 김해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이 자리에는 후덕죽 셰프의 중식당 허우가 새 둥지를 틀었다.
3년 여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면 당시 오픈한 호텔 한식당 가운데 절반이 콘셉트를 수정하거나 호텔을 떠났다. 저마다 호텔의 색을 찾아가기 위해 레스토랑의 콘셉트나 운영 형태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텔 한식당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호텔이 한식당을 품기에 앞서 발목을 잡는 몇 가지 요소들을 짚고 넘어가보자.
-한식당, 한식 주방의 특성부터 파악해야
한식당은 양식당과는 달리 주방 구조나 공간, 베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그 구조적인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기본적인 호텔의 주방은 소스나 스톡을 생산하는 프로덕션(Production), 애피타이저나 생선 등 차가운 요리를 담당하는 콜드 키친(Cold kitchen), 육류를 다루는 부처(Butcher), 빵 및 디저트를 만드는 베이커리(Bakery) 등으로 분업화 돼 대부분 각 주방으로 공유된다.
반면 한식에 사용되는 기물, 조리법,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백업 키친의 역할을 한식 주방에서 모두 감당한다. 즉, 고기를 담당하는 육부, 육수를 담당하는 탕부, 한정식, 냉면 등 면을 담당하는 면부, 반찬을 담당하는 찬부로 나눠져 요리를 만들기 위해 주방 전체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그만큼 한식 주방은 다른 주방에 비해 공간의 효율성이 중요하고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또한 한식은 한국인에게 너무 친숙한 나머지 희소성이 떨어지며 주관적인 기준에 입각해 유독 한식을 앞에 놓고서는 할 말이 많다. 이 때문에 한식만큼 맛을 맞추기 까다로운 음식을 찾기도 힘들다. 하지만 한식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트렌드에 편승해 끼워 맞추기 식으로 오픈하고 나면 낭패를 보게 된다.
로드숍과 달리 호텔에서 영업장 하나가 지고 나는 일은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레스토랑은 호텔 브랜드의 얼굴과도 같고 가장 손쉬운 진입로이기 때문에 호텔의 가치를 새겨야 하고 고객들에게 이미지를 정착시키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또 호텔의 레스토랑은 고객들의 추억이 있는 공간으로 고객층의 기반이 단단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 핵심 레스토랑일수록 호텔이 생겨난 역사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러한 한식당은 오너십 철학이 담긴 호텔의 시그니처라는 의미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부로부터의 변화 아닌 외부로부터의 변화
분명 규모나 파급력에 있어서 호텔 한식당은 한식의 변화를 리드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프의 소신 있는 결정보다 여러 단계에 의한 수정작업을 거치다 보면 처음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되고, 몇 해 못가서 한식당은 사상누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호텔은 비용을 줄이고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독립적인 임대업장으로 전환하거나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변화를 추구하려고 한다.
호텔과 색이 비슷한 레스토랑과 손잡고 밸런스를 맞추는 한편 그저 그런 한식당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센세이션을 기대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이상이 현실화 되려면 호텔과 임대업장 간에 손발이 잘 맞아야 하지만 성격과 체계가 다른 두 집단이 하나로 합쳐지는 데 진통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구세력 간에 융화 단계에 들어서면 호텔은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고 다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반면 합이 맞지 않으면 한식이 아닌 다른 콘셉트로 공간을 채우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내일 [Feature Dining] 호텔 한식당의 재발견 위기인가 기회인가 -②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