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밀회, 퇴폐, 유흥……‘대실’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단지 ‘방을 빌려준다.’는 뜻을 가진 단어일 뿐인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사람들이 ‘대실’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조차 민망해하니, 이미지가 생명인 럭셔리 호텔에서 대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호텔 대실이 데이유즈(Day use)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제공되며 수익을 창출해내고,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공간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특급 호텔의 대실, 우리나라에서는 진짜 안 될까? 음흉함은 그저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 아닐까?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 쓴 단어, ‘대실’
‘대실’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과거 대실은 불륜이 성행하는 여인숙이나 모텔을 비롯해 갖가지 부정적인 측면의 섹슈얼한 의미를 함의했다. 물론 지금이야 여기어때, 야놀자 등 숙박업 O2O 서비스 기업의 마케팅으로 대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실 서비스’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용했다고 쉽게 말하기 어렵고, 호텔 서비스 공급자 입장에서도 최후의 보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실’이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불명예를 뒤집어 쓴 데에는 오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다년간 숙박업 O2O 서비스 기업에 근무한 A씨에 따르면, “서양에서는 비즈니스맨들이 출장 중에 비행기 연착 등의 이유로 대실에 해당하는 ‘데이유즈’ 서비스가 제공됐다. 그렇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호텔 대실이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안착된 반면, 동양에서는 80년대 일본 버블경제 때 원조교제가 러브호텔에서 성행하며 이러한 부정적인 대실 문화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렇듯 대실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탓에, 이미지가 중요한 특급 호텔에서는 일반적으로 대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특급호텔에서 대실 서비스 제공하면 불법일까?
한편,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호텔과 모텔을 구분하는 기준은 ‘대실’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상에도 등급심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하는 관광숙박업 그리고 나머지 중소호텔/모텔 등을 포함하는 일반숙박업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가 ‘대실’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정책산업과의 위재호 씨는 “이는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정보다. 사실상 관광진흥법에 관광호텔의 대실에 대해 규제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다만 학교 근처에 짓는 호텔들에 대한 몇 가지 규제 내용이 있는데, 그중에 대실을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매우 협소한 범위에만 해당된다.”라고 전했다.
한편, 호텔 등급평가 시에 호텔 대실을 숙박 어플리케이션이나 입간판 배너 등에서 ‘광고’할 경우에 한해 감점이 되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즉, 등급심사 시 대실 ‘광고’를 하면 감점 요소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특급 호텔의 대실 영업을 막는 법적인 근거나 규제는 없는 것이 팩트다. 이에 대해 한국관광공사 숙박개선팀 호텔업등급결정사무국의 홍현선 차장은 “불황인 호텔 업계에 대실 영업을 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또, 이러한 등급심사 평가항목 역시, 인식이 변화하다면 자문위원회와 상의를 통해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해외 특급호텔의 데이유즈 서비스
국내 특급 호텔에서도 대실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시도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랜드 하얏트서울 호텔은 지난 2015년 국내 특급호텔 중에서는 처음으로 데이타임 패키지를 선보였다. 야외수영장 및 풀사이드 바비큐 이용혜택을 포함해 한 달 간 한정 판매를 했는데 반응이 좋아 추가 연장했고, 호텔 비수기에도 판매한 바 있다. 또, 비스타 워커힐 서울 역시 작년 3월 ‘미드데이 브레이크 패키지’를 선보였다. 총 100객실 한정으로 룸 5시간 이용에, 실내 수영장과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가격은 13만 원으로, 당시 판매가 거의 매진됐다고 한다.
두 패키지 모두 판매 결과는 좋았지만, 여러 논란에 휩싸였는데, 럭셔리 호텔의 대실 서비스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컸던 것. 호텔의 퀄리티와 이미지에 타격이 간다는 우려의 시각이 존재했고 또 특급호텔이 불륜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다. 이에 대해 한 중소호텔의 총지배인은 “국내 호텔이 대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기존에 형성된 인식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빈 객실을 활용하는 데 좋은 방편이 되지 않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다. 특히, 1인 대실을 요구하는 수요가 늘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 인식 탓에 국내에서 데이유즈를 제공하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해외 특급호텔에서는 대실 예약 대행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비어있는 객실을 활용하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스타트업 기업인 ‘데이유즈닷컴(DayUse.com)’은 2017년에 20개국 내 4000여 곳의 호텔들에 대실 예약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데이유즈 닷컴은 메리어트 호텔과, 아코르 호텔 그룹, 힐튼 호텔같은 특급 호텔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데이유즈닷컴 플랫폼을 통한 예약 건수는 하루 평균 1000건에 달한다고도 전한다.
불황인 호텔 산업에서 객실 점유율이 확실하지 않을 때, 특급호텔에서 대실을 수익 모델로 활용할 가능성은 논의할만한 주제다. 여기서 고려할 항목은 소비자들의 럭셔리 호텔에 대한 인식, 객실 청소에 따른 인력 비용, 청결도 문제 등 다양하다. 이에 <호텔앤레스토랑>에서는 일반 호텔 소비자와 호텔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호텔 대실에 대한 인식과 마케팅 활용성에 대한 가능성을 조사했다.
호텔 소비자 대상 설문조사
설문에는 총 441명의 호텔 소비자와 219명의 호텔 전문가가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게재했다.
호텔 소비자용 설문조사 결과, 대실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20~30대가 약 90%를 차지하는 점이 표본의 한계지만, 한편으로 이들이 현재 혹은 미래의 주요 호텔 소비자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유의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일부 설문에 참여한 40~50대들 중에 호텔 대실 서비스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이들은 약 30%뿐이었다. 호텔 대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나이대별로 고루 분포돼있던 점이 인상적인 특징이다.
대부분의 설문 응답자가 관광호텔의 대실 서비스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결과를 내비쳤다. ‘대실은 모텔이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럭셔리한 호텔의 이미지에 타격이 갈 것’이라는 응답을 선택한 이들은 8.2%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젊은 층에서 원하는 호텔 대실 서비스로는 연인과 이용할만한 데이타임 패키지를 원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주관식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한 총지배인의 예견처럼, ‘1인 대실 패키지’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높았다. 사우나 패키지, 호캉스 패키지 등 혼자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니즈가 존재한 것. 특히 40~50대 남성들 위주로, 경제력은 되지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이들이 1인용 사우나 패키지를 많이 요구했다. 또, 자신을 워킹맘이라고 밝힌 한 30대 여성은 가족들과 오버나이트를 하지 않고, 낮 시간에 호텔에서 아이들과 쉼과 동시에 수영장, 식사 및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대실 서비스를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호텔 전문가 대상 설문조사
전문가용 설문조사는 호텔 총지배인, 호텔리어, 호텔 세일즈 마케팅 담당자, 호텔 관련 전문학과 교수 등으로 이루어진 호텔 전문가 219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비교적 나이와 성별이 고루 분포돼 있다.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여전히 호텔 대실 서비스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었지만, 일반 호텔 소비자에 비하면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입장이 주를 이뤘다. 특히, 전문가들이 특급호텔에서 대실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제시한 것은 ‘아직 국내 정서상 대실 서비스는 럭셔리한 호텔의 이미지에 타격이 간다.’에 약 73%의 가장 큰 응답 비율을 나타냈다. ‘마케팅적으로 활용도가 낮다’는 항목에 선택한 이들은 약 15% 정도로 큰 수치는 아니었다. 이를 통해 호텔에서 대실 서비스가 마케팅적으로 활용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국내 정서상 활용되지 못하는 이유가 설문조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주관식 설문에서 특급호텔 대실의 마케팅적 활용성 대해 대체로 아직은 시기상조이나, 일정한 조건이 갖춰졌을 때 가능한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객실확보, 퇴실 후 정비(청소), 가격 등의 사항을 고려해 대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추천했다. 또, 아직은 특급호텔보다 비즈니스 호텔이나 중소 호텔에서 대실 서비스가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는 내용도 주를 이뤘다. 또, 특급호텔에서는 성수기를 피해 비수기에는 객실 활용을 위해 대실을 제공하는 것이 수익 창출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항목에도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답변했다.
내일 [Feature Hotel] 특급 호텔 대실, 진짜 안돼? -①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