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Dining] 로컬푸드 프로젝트 다이닝, 상생을 말하다 -①

2019.02.18 09:18:13


사회 곳곳에서 상생을 외치지만 있음과 없음이 함께 공존하는 길은 멀고 더딘 것이 현실이다. 돌이켜 보건대, 다이닝에서의 상생은 늘 존재해 왔지만 그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3~4년 전에 불과하다. 고급 수입 식재료와 외국산 품종이 넘쳐나는 마당에 지금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단어인 신토불이는 이제 더 정확히 말해 ‘얼마나 경쟁력 있는 품질을 갖고 있느냐’로 되물어진다. 요리의 절반 이상은 식재료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셰프들은 좋은 식재료를 발굴하는 것에 늘 관심이 많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농가와 레스토랑을 잇는 교각으로써 상생의 고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다. 외식업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로컬푸드가 바로 그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바로 잇는 신뢰의 다리, 우리는 그것을 넘어 상생의 길로 가고 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상생에 강자와 약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 다이닝의 상생을 취재했다.


상생으로 떠오르는 로컬푸드
10년 전 쯤부터 로컬푸드가 다이닝 트렌드의 흐름을 타기 시작한 건 전세계적인 열풍이 된 웰빙 덕분이다. 이후 국내외 식품안전 사고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며 밥상 안전을 지키기 위한 로컬푸드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로컬푸드 운동의 범위는 식품의 안전성 확보 외에도 에코 마일리지라 해 식재료의 배송거리를 단축,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임으로써 환경을 보호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최근에는 여기에 신뢰와 상생이라는 울타리를 둘러 로컬푸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즉 재배, 생산 과정을 투명하게 구축해 익명에 묻혀있던 생산자에 신뢰를 더하고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판매 채널을 통해 로컬푸드의 산지 직거래가 활발해 진 것이다. 점차 로컬푸드를 소비하는 사람을 일컫는 로커보어(Locavore)가 많아지고 지자체마다 로컬푸드를 판매하기 위한 각종 루트를 구축하는 한편 정부는 이를 장려하는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이로써 로컬푸드의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다이닝 트렌드를 넘어 자연스러운 소비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외식업계에서도 로컬푸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경로가 바로 산지투어다. 산지투어는 정부와 지자체 및 각종 기관, 민간단체, 기업에서 목적에 맞게 활용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잇는 산지투어, 효과는?
한 때 산지투어는 셰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크게 번졌다. 산지투어는 셰프가 직접 산지에 가서 식재료가 관리되는 환경, 재료의 특성을 살펴보고 식재료의 새로운 가치를 개발하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상생 고리다. 산지 직거래로 이동거리를 줄여 환경을 생각하고 고객에게는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어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리를 연구하고 식재료를 다루는 셰프 입장에서 재료에 대한 식견을 쌓고 전문성과 역량을 넓히는 기회가 돼 호응도 좋다. 궁극적으로는 산지 재료의 판로를 개척하고 나아가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농가와 업계가 윈윈하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산지투어는 정부, 지자체, 기업, 민간단체 등이 나서서 추진했지만 유독 호텔에서는 그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참여 대상도 호텔과 레스토랑의 현직 셰프에서 현재는 구매력이 있는 외식 업주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산지페어, 외식업계에서는 활발 호텔은 저조
산지투어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이하 aT센터)가 추진하고 있는 산지페어다. 2013년에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호텔 및 현지 셰프들을 중심으로 식재료 직거래를 위한 산지페어를 진행한 바 있지만 참여율 저조로 현재는 한국외식업중앙회와 함께 국산식재료 공동구매 조직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산지페어는 식재료 공동구매 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국내 외식업계 바이어를 식재료 산지로 초청해 식재료 생산업체와 만남의 장을 주선하는 행사며 2013년부터 매년 8~9회 정도 개최되고 있다. 또한 외식업계에는 좋은 품질의 국산 식재료를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식재료 생산업계에는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해주는 외식업계-생산자의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aT센터 식품외식기획부 손근용 대리는 “국산 식재료 공동구매 조직화 사업은 가격 협상력이 떨어지는 개별 업장 단위를 모아 조직화 해 aT가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기존에 진행했던 산지페어와 취지도 잘 맞고 농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가공, 생산업체에 이르도록 선택의 폭을 넓혔다.”고 전했다. 각 지자체와 공동주최하는 산지페어는 매 산지마다 3~5곳의 품평회와 견학을 진행하고 상품설명과 상담으로 이어지는데 그동안 발굴된 산지만 해도 130~150여 곳에 이를 정도다. 연 초에 지자체를 대상으로 사업 소개와 수요조사를 실시한 뒤 선정된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4~5월경부터 연말까지 사업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호텔 내 구매절차 복잡 규제부터 풀어야
정부가 추진하는 산지페어에 호텔의 참여가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aT센터의 손용근 대리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셰프들의 여건 상 참여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지만 참가 주체가 구매력이 있는 외식업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실수요로 이어지는 성과가 미미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전현직 호텔 총주방장으로 결성된 한국총주방장회(Korean Chef’s Club 이하 KCC)의 배한철 회장은 이러한 원인을 “호텔 내 구매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KCC는 정부, 지자체와 함께 산지페어를 수차례 진행한 바 있지만 호텔 내 구매로 이어지는 데에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되므로 최종적으로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즉 기존의 루트(벤더 사)를 넘어 새로운 재료를 공급받기 위해서 근거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다가 최소 세 곳의 견적을 받아 입찰을 진행해야 하는 원칙을 내세우다 보니 복잡한 결제단계까지 거치다보면 구매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구매부서 입장에서는 많게는 십여 개에 달하는 업장을 관리하기 위해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내부 비리를 견제하기 위한 절차라고 하지만 셰프들 사이에서는 일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불만이 높다. 배 회장은 이어 “로컬푸드 직거래는 환경을 생각하고 고객에게 고품질의 맛좋은 요리를 제공할 수 있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텔 내부에서부터 이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고객에게 질 좋은 요리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고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정한 거래를 감독하기 위한 절차라는 해석에 대해서 “이는 사실상 조리팀에 대한 견제라기보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호텔 내부 구조의 전형적인 병폐다. 견제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이를 투명하게 시스템화 하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즉 제재를 위한 관리가 아닌 효율성을 갖추는 관리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내 대부분의 호텔이 아직도 이런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겉으로는 상생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이를 실현할 창구가 없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로컬푸드의 중요성 인식, 관련업무 조직화 해
이 같은 문제점에도 산지투어의 긍정적인 효과가 부각되는 가운데 일부 호텔에서는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 하고자 조리, 구매 및 관련 부서로 팀을 구성해 산지투어를 시행하고 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는 로컬 푸드 프로젝트를 2012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로컬푸드 프로젝트는 호텔 셰프가 직접 산지에 방문해 식재료를 선별, 구매까지 참여하며 서울에서 만나기 어려운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호텔 레스토랑에서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완도 전복과 문경 약돌돼지를 비롯해 제철 자연산 활어를 호텔로 직송하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한 소금은 신안 염전에서 천일염을 공수해 사용한다. 이 프로젝트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동거리를 단축시켜 식품의 신선도를 극대화하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우수한 먹거리를 선별, 직거래함으로써 호텔과 고객에게는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지역 생산자에게는 판매 활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더 플라자는 2015년 3월부터 셰프 헌터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구매 전문가, 셰프, 메뉴운영 기획 담당자로 구성된 특수 식재료 발굴팀이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여 식재료의 발굴에서부터 선정, 샘플 테스팅 및 메뉴 개발 적용의 모든 단계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구매 전문가가 선택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셰프의 까다로운 식자재 선정 기준을 통해 식자재를 발굴하며, 계절별, 산지별, 미각별로 조사하고 분류해 리스팅하고 있다. 각 기준을 통과한 식재료는 구매 가능 여부에 따라 산지를 방문해 품질을 확인 후 샘플 테스팅을 거쳐 최종 사용 및 메뉴화 결정을 한다.


JW 메리어트 서울은 F&D를 총괄하는 신종철 총주방장이 이끄는 R&D팀이 산지투어를 실시하고 있다. 2016년부터 산지 농가 직거래를 본격화한 이래, 셰프들로 구성된 R&D팀을 구성, 전국 방방곡곡을 함께 누비며 광범위한 산지 조사를 통해 고품질의 로컬 식자재를 선정하고 산지 직거래를 통해 지역 농가와의 상생 협력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 일대를 돌며 수많은 샘플 테스트를 거쳐 선별한 고당도 밀감과 한라봉을 비롯해, 우리나라 고유의 식자재인 당유자(제주), 한우(경남 하동), 굴(경남 통영), 전복(전남 완도), 죽순(전남 담양), 오디(전북 전주), 청주 블루베리(충북 청주) 등 20여 종의 고품질 농수산물을 직거래하며 지역 농가 소득 확충과 농어촌 일자리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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