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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 리조트

[류근수의 Design Lesson] Lesson No.1 본질을 담은 디테일을 만들어라

“진본성이란 특정 오브제와 그것이 표방하는 바가 일치한다는 보장이다.”
- 데얀 수직 -


요즘 읽고 있는 책(바이 디자인, 데얀 수직, 홍시커뮤니케이션, 2014)에서 되새기는 글입니다. 전체를 제 맘대로 다시 옮기면 “사물/시설의 본성과 그 겉모습이 일치하면 그 디자인은 진짜다.” 본성과 겉모습 사이의 소통에 관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겉모습이란 재료가 가진 성질, 이를테면 색깔, 질감, 반짝임의 정도 등으로 표현되는 것만이 아니라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도 포함하는 넓은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최근 몇 년간 화제가 되었던 몇 곳의 호텔, 레스토랑 그리고 카페를 늘어보았습니다. 이리저리 끈을 그려 짝을 지어봅니다. 그리고는 그 끈을 같이 잡고 갈 지인을 떠올렸습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바로 지금보다는 앞으로 호스피탤리티 디자인에서 무겁게 다루어야할 생각들을 “디자인 레슨”을 통해 짚어 봅니다.


[소설(小雪)호텔]

<중간의 회색, 비스듬한 건물입니다.>


소설호텔을 처음 가 본 것은 2014년 6월 중순, 호텔이 문 연지 막 보름정도 지난 때로 윤근주 소장(일구구공도시건축사무소 공동대표)과 추진하던 건축세미나를 의논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그 해 4월, 제가 번역한 <알바루 시자(alvaro siza)와의 대화>가 나왔고 알바루 시자를 좋아하는 그가 마침 좋은 공간이 생겼으니 일을 추진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아직 그 날, 그 곳을 기억하면 즐겁습니다. 그 일대의 지역문화는 완결성이 있습니다. 술집, 편의점, 모텔 그리고 해장국집. 점심 전이었는데 한창 인테리어 사진을 찍던 중이었고 그 틈에 잠깐씩 건축가와 이야기도 하고 구경도 하곤 했습니다. 사실 살면서 여기저기에서 희한한 곳들을 봐왔기 때문에 소설호텔의 디자인에 대해서 낯선 특별함이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마니아들만이 공유하는 익숙한 ‘힌트’가 있어서 놀라고 반가웠습니다. 어쩌면 윤근주 소장은 저와 건축세미나를 이야기하기보다 숨겨놓은 ‘힌트’를 제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같은 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들의 자세, 위치를 알고 싶었고 작업결과물 너머의 것을 헤아리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작업에서 디테일은 전체 작업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깃발’이자 ‘발판’이었다.”
- 황정환, <공간>誌와의 인터뷰에서


<바닥에서 세면대를 거쳐 샤워부스로 이어지는 선과 면>


<곳곳의 ‘힌트’들>


<‘밀당’이 가능한 문과 묘한 ‘사이공간’>


<이 호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 >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 나올 법한 공간>


<이런 부분들은 그림으로 그려지는게 아닙니다.>


<조명을 비롯해서 천장면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위의 말에 덧붙여서 재료의 특성이 드러난 디테일이 다시 프로젝트의 재료가 된다는, 공동대표인 황정환 소장의 변증법적인 글을 어느 잡지에서 읽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디테일, 맞춤새, 마무리 등 뭐라고 부르던 간에 꼼꼼하게 선과 면을 맞추며 작업한 그 세세한 부분들은 그들 스스로의 말처럼 시작이자 끝이고 누군가에게는 덫이기도 합니다. 당장 눈앞에 시각적으로 끌리는 무언가가 그 너머의 것을 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전 디자인에 영향을 준 알바루 시자의 직접적인 ‘힌트’를 찾았고 그에 대해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데 입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의 영화음악들이 새나옵니다. 투명한 욕조, 떨어질 듯 경사진 유리, 빈 새장, 난데 없는 봉들이 합쳐져서 그런가요?
여름이 지나 그 해 겨울부터 소설호텔 건축세미나는 영화보기 좋게 만든 ‘트리플 시네마 펜트하우스’에서 시작됐고 제 강의가 첫 4회였습니다. 덕분에 서영우 대표가 가장 아낀다는 ‘다운 스위트’에서 하루 잠도 잤습니다. 침대가 바닥보다 두, 세단 낮은 곳에 있어서 공간의 분위기를 차분히 내리누릅니다. 이곳에서 ECM 음악회를 열기도 했었죠? 그리고 여기 지하의 5.5 언더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어번 프로젝트 스페이스(urban project space)인데 꽤나 재미난 판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이곳이야말로 소설호텔의 성격을 몸소 내뿜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디자이너는 ‘자기’를 주체하지 못한다. 디자이너가 진본성을 달성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진본성은 그에게서 멀어진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진본성의 품격(quality)에 마음을 빼앗기고, 도처에서 그 품격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힌트(clues)들을 선례 삼아 자신의 디자인에 반영한다.”
- 데얀 수직


결국 소설호텔은 일구구공이 촘촘하게 깐 바탕 위에 서영우 대표의 개인적인 호텔 철학을 그가 모으고 고른 가구와 소품으로 빚은 눈덩어리입니다. 소설호텔이 ‘표방하는 바’가 멀리 포르투갈에서 찾아낸 알바루 시자의 방법(진본성의 품격)인지, 요금제와 지하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대표되는 ‘지역문화’에 대한 오마주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이 호텔에서의 재미랄까요?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이 글의 초안이 완성되고 다음 날 저녁에 윤근주 소장이 보낸 문자가 찍혀있습니다. 연말에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 보러 스리랑카에 가지 않겠냐고...


[이코복스(ikovox) 커피]


“디자인의 진본성은, 디자인이 진정성을 전달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그것을 모방하는 데서 얻어지는 품성이라 할 수 있다.”
- 데얀 수직


노스타임(nostime의) 심현엽 대표는 빈티지 시계 콜렉터입니다. 전 세계의 좋은 가죽으로 멋진 시계줄도 만들어냅니다. 저도 2년 정도 전에 종로에 있는 그의 작은 작업실에 가서 아버지의 고물시계에 숨을 불어넣고 말 엉덩이 가죽으로 시계줄을 만들었습니다. 눈 감고 군복을 만져보면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밀리터리 마니아이기도 해서 덩치만 보고는 그 섬세하고 집요한 성격을 가늠하기 힘듭니다. 여름이면 어디서 구했는지 꼬마 유리병에 담긴 코카콜라를 내밀 줄도 압니다.
이태원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이코복스 커피 압구정점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카페 깊숙한 곳에 시꺼먼 이코복스 스피커가 눈에 띕니다. 심 대표는 오래 전에 이코복스 스피커를 거래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스피커를 알고 있죠. 들떴습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그는 스피커 이야기를, 곧 저와의 접점인 바우하우스(bauhaus)를 이야기합니다. 영국계 bbc 방송국용 모니터링 스피커, 미국계 시네마, 가정용 스피커가 유명하다면 독일은 나치정권의 선전용으로 만든 스피커가 유명했답니다. 목소리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과 악기소리를 고르게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거죠. 지금은 카메라 렌즈로 유명하지만 당시에 짜이스 이콘(zeiss ikon)사는 스피커도 만들었고 그 모델 이름이 이코복스(ikovox)랍니다. 이코복스 이태원점을 가보고는 카페의 사장님과 뭔가가 통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인테리어의 네이비 블루 색깔, 소품에 일일이 붙인 금속 태그 그리고 글씨 등에서 밀리터리 문화와 함께 바우하우스의 ‘힌트’를 봤다고 합니다.



<나무, 금빛, 짙은 네이비블루가 어울립니다.>


사실 압구정점 1층에서 볼 수 있는 리트펠트의 가구는 ‘밀리터리 체어’, ‘밀리터리 테이블’로 1923년 군인숙소를 위해서 디자인한 모델들입니다. 더 유명한 ‘레드 블루 체어’도 있고 ‘지그재그 체어’도 있습니다. 한편, 2층의 테이블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엔조 마리(enzo mari)의 ‘아우토프로제타지오네(autoprogettazione)’로 1974년작입니다. 라이센스를 개방해서 회사에서 상업적이 이유가 아니라면 그 누구나 혼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가구들입니다.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한 이코복스 커피의 이우석 대표와 심현엽 대표는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마자 교감으로 눈이 반짝입니다. 단언컨대 짜이스 이콘의 이코복스 스피커를 알고 즐기는 사람은 전 세계에 몇 명 되지 않습니다. 들뜬 두 소년입니다. 독일 밀리터리 매니아와 미국 밀리터리 매니아가 한 시간 반 동안 쏟아낸 낱말들을 주어 담으면, 태그 호이어(tag heuer)의 분트(bund)시리즈, 세이코(seiko6205), 벤러스(benrus), 아다낙(adanac), 노이만(neumann) 스피커, ma1항공점퍼, 리얼 맥코이(real mccoy), 버즈 릭슨(buzz rickson’s), ykk... 제게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암호문 같았습니다. 당최...
끼어들어 디자인을, 호스피탤리티를 두 사람의 대화에 밀어 넣어 봅니다. 늘 그 시대의 최고, 새로운 양식(style)을 만들어야하는 전문가(디자이너)와 달리 일반인(오너)은 어떤 특정한 양식을 고집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어떤 시대의 양식이 디자인의 본질일까요? 보이차에 빠져있던 이우석 대표는 바우하우스 디자인에서 당나라 도기의 흔적을 보았답니다. 서양문화인 카페라는 시설에서 표방해야할 디자인의 ‘품격(본질)’은 1930년대 모더니즘으로 바뀌는 시점에 이미 나타났고 이제 본인은 그 때의 양식, 밀리터리 양식에 천착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1930년대를 수집하는 겁니다. 그러고는 함께 조선의 민예를 예찬한 야나기 무네요시, 다시 바우하우스 그리고 모더니즘을 이야기했습니다. 다들 1930년대에 활동했던 개인, 단체 그리고 운동입니다.


“가구의 미학적 언어는 그것이 쓰이는 공간과, 디자인 시점에 목적했던 공간에서 나온다.

그렇게 보면 의자는 건축 이념의 결정체로 이해할 수 있다.”
- 데얀 수직


<2층으로 올라갑니다.>


<짜이스이콘, CD 31-18 모델 옆으로는 엔조마리의테이블>


<화장실 철물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리트펠트의 가구이야기로 돌아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가구모델의 제작도면을 가지고 있었고 동네의 공방, 우드쿱(woodcoop)과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냈답니다. 어느 디테일 하나 타협하지 않고 원본대로 만들었고 아니 되살려냈고 이제는 원본보다 더 잘 만들었다고 자신합니다. 그 근거로 지그재그 체어의 미묘한 상판 각도를, 두 판을 붙이는 디테일을 말합니다. 무서운 사람입니다. SNS 상에서 누군가가 짝퉁이 아니냐고 말했다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죠.

자신이 추구해왔고 찾았던 ‘진정성’을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손님들에게 ‘전달’하는 이우석 대표, 그 바탕에는 진본성이 있습니다. 비록 모든 손님들이 제가 들은 이야기를 들을 수도,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없겠죠. 하지만 매장 곳곳에 자리한 그 올곧음은 충분히 전달된다고 봅니다. 정통입니다. 그건 소설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어떤 것에 관심을 두시냐고 물었더니 이란 카페트를 말씀하시네요. 저처럼 이스파한 카페트를 좋아하시길래 홍콩의 카라반(caravan), 런던의 크리스티(christie’s) 매장 카페트 코너를 소개했습니다.
중원에는 고수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소설호텔과 이코복스커피는 포르투갈 건축가의 재료를 다루는 솜씨와 1930년대 산업제품의 품질에서부터 디자인의 진본성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단지 유형의 재료가 담고 있는 성질만은 아니겠죠. 재료가 모여서 보다 큰 공간으로 확장되고 그 속을 채우는 점원의 몸놀림, 마음 씀씀이에도 진본성은 베어 있을 겁니다. 그래야 하고요. 그들의 시작은 작았지만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Lesson No.1
본질을 담은 디테일을 만들어라.


류근수
루트 디자인 파트너스 대표

프랑스, 포르투갈에서 마시밀리아노 푹사스, 쟝 미셀 빌모트, 알바루 시자의 작업에 참여했다. 호텔, 복합개발사업 전체단계에서 발주처 자문, 계획/설계단계에서 국내외 설계사 코디네이션 그리고 공간/특주가구의 디자인/제작/설치 총괄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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