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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 리조트

[류근수의 Design Lesson] Lesson NO.3, “양식(Style)이 브랜드를 말하게 하라.”


에머슨퍼시픽이 건축/운영하는 ‘아난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연을 중시했던 철학자, 에머슨에서 이름을 따온 모회사 에머슨퍼시픽은 수익시설을 개발해서 분양하거나 운영하는 회사로 사업장은 크게 ‘아난티’와 ‘에머슨’ 브랜드로 나뉩니다.
지난 겨울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이번 봄에 아난티 클럽 청담에 이어 여름에 아난티 코브(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 + 힐튼 부산)를 다녀왔습니다. 호텔 블로거, 외국 호텔인테리어 회사의 디자이너, 상업개발전문가 그리고 건축설계하는 제가 함께 했는데요. 각자 분야가 다르니 서로 호텔을 보는 관점이 달라 재미있었습니다. 건축은 건물이 들어설 자리를 둘러싼 조건과 그 속에 담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마치 한 문장을 이해하려면 앞뒤 문장을 헤아려야 하는 것처럼 건축도 행간을 살펴야 해서 건축에서도 문맥(Context)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기후, 지역사, 주변경관, 도시조직 등이죠. 또한 시설을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프로그램(Program)이라고 부릅니다.


서울 중심에서 차로 한 시간 반이면 닿는 중미산, 유명산 자락에 걸친 골프장 ‘아난티 클럽 서울’의 북쪽 계곡에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이 자리합니다. 반면 ‘아난티 클럽 청담’은 청담동 일반주거지역에 조용히 자리잡고 표면상은 여성회원들의 커뮤니티 공간을 자칭하지만 사실 모회사 이익구조의 핵심인 분양홍보관(모델하우스)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와 ‘힐튼 부산’이 모여서 이룬 ‘아난티 코브’는 크게는 동부산관광단지, 오시리아관광단지에 속하고 개발제한구역에 등대고 바다로 향해 펼쳐져 있는데 기장군 동암항과는 산책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어촌정주어항으로 마리나항만 개발계획이 발표됐죠. 사업의 반(분양)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번 호에 주로 다룰 리조트는 어떤 건축유형(Type)일까요?
먼저 리조트는 건축용도상 숙박시설(휴양 콘도미니엄)이고 아난티와 같은 고급리조트는 5성 호텔(관광호텔)과 비슷해 보이지만 등기분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시설입니다. 관광호텔이 절대시하는 등급도 없습니다. 까다로운 외국 프랜차이즈의 요구를 피해갈 수 있죠. 외국인 회원도 극소수입니다. 그러니 선택과 집중이 가능합니다.

각 나라, 문화에서 휴양이란 활동은 조금씩 다르고 발전한 과정도 조금씩 다릅니다. 더운 나라에서는 피서, 추운 나라에서는 피한, 물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는 온천 등 고대로부터 그런 요구에 대응하는 시설들이 발달했죠. 유럽에서는 제도와 철도교통수단이 발맞춰 도입되면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 왔습니다.


     


지난 <호텔 & 레스토랑> 2016년 7월호 제 기고글에서 프랑스 사례를 참고하세요. 리조트건축에서는 앞서 말한, 건축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습니다.

먼저 주변환경으로부터 격리/단절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도피(Getaway, Retreat, Escape, Evasion)와 은둔처(Hermitage, Refuge)란 말을 흔히 씁니다. 지나왔던 주변과는 다른 인상을 주려고 단지입구에서부터 캐노피, 드롭존을 거쳐 로비까지 특별하게 디자인합니다. 또한 서비스를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의 영역 그리고 그 중간지역으로 이뤄진 구분이 확실하고 기능도 호텔과 비교했을 때 더욱 단순합니다.


“수도원은 외딴 곳에 짓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수도자들이 거기에서 평화롭고 고요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곳에 싸우러 오는 것이죠. 기도할 때 생기는 유혹들과 싸우기 위해서 옵니다. 그렇지만 방문객에게는 그 봉쇄 수도원이 마치 세상에서 멀리 벗어나, 속세의 고통과 근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평화의 천국처럼 보일 것입니다. 아마 그는 그곳에 하느님의 평화가 깃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평화가 자기를 초대하며 잠시 모든 걱정거리를 벗어 놓고 마음을 쉰 다음, 믿음 안에서 다시금 생기를 찾고 새로워진 모습으로 그가 살고 있는 소음과 소요의 도시로 돌아가라고 권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시토회가 걷는 길, 앙드레 루프 아빠스, 분도출판사, 왜관, 1987”




절과 서원의 차이를 예로 들어보죠.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이 중요한 불교와 세상 밖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한 성리학의 차이가 결과적으로 사진에 잘 찍히는 절과 그렇지 않은 서원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 리조트로 돌아가서, 밖을 향하기보다 안으로 감싸야 하니 하나하나의 개별 건물(침실동)이 가지는 성격/정체성보다는 건물군 전체가 담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그 결과는 뻔하지만 지역색, 향토색 강한 양식(Style)을 가진 건축이고 대부분 독채(Pavillion) 침실로 이뤄진 마을(Village)입니다.
휴양의 이유야 어찌됐던 간에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니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이라는 개념이 리조트 건축설계의 바탕이 돼 왔습니다. 그런 성향으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아만(Aman)이죠. 그 시작은 업계에 큰 파장을 줬습니다.
1988년 태국 푸켓에 휴식하러 간 아드리안 제카(Adrian Zecha)가 맘에 드는 숙소가 없어 에드워드 터틀(Edward Tuttle)에게 설계를 맡겨 짓게 된 아만푸리(Amanpuri)가 아만 전설의 시작입니다만 사실 그런 디자인의 진짜 시작은 따로 있습니다.



스리랑카 건축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를 아시나요? <호텔 & 레스토랑> 2017년 2월호에서도 칸달라마 호텔이 소개가 됐고 저도 <호텔 & 레스토랑> 26주년 창간특집으로 진행된 ‘내 인생 숙소’에서 잠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바와의 디자인은 서양건축에서 차용한 섬세함에 전통건축요소를 섞고, 주변환경을 고려해 열고 닫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이 지금이야 특별하지 않지만 1960년대 당시 아시아에는 지역전통건축물들의 바탕 위에 드문드문 식민지 배의 잔재가 남아 있어 열대풍(Tropicalism) 서양건물이 특별해 보이거나, 예외적으로 일본에서 근대주의(Modernism) 건축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던 때였죠. 상하이, 하노이 같은 곳에서도 특별한 움직임이 있긴 했습니다만 현대의 환대산업에 준 영향은 미미합니다. 하지만 동성애자이면서 특정 종교를 갖지 않았던 바와는 여러 문화와 시대를 넘나들며 영향을 받았고 그런 이종요소들을 버무려 멋진 조경 위에 잘 풀어놓았습니다.

스리랑카 벤토타, 인도 마두라이, 마드라스 등 남아시아에 수십 개의 리조트를 설계했고 십여 개가 지어졌는데 그중에 으뜸은 인도네시아 발리섬 사누르(Sanur)에 있는 빌라 바투짐바르(Batujimbar)입니다. 1970년에 설계했는데 아직도 그 아우라는 돋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만과 바와의 리조트가 멋있다고 하지만 서양인들 눈에야 이국적이지 그 이국에서 나고 자란 동양인에게는 그만큼 자극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 업체들은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마을을 마케팅에 사용합니다.
“그러면 여태껏 유럽과 미국 관광객들의 시각, 취향에 맞춰왔던 이런 리조트양식을 중국, 한국을 포함한 지금 신흥 아시아 관광객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오래된 것은 나쁜 것이란 생각이 보편화된 이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의 눈에 비싼 돈을 들여 간 여행지 객실에서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이 놓여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여기서 미리 궁극의 질문을 던져둡니다. “리조트 시설를 디자인하면서 건축양식이 왜 중요할까요?” 말하고 싶은 리조트 건축양식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


1. 모던한 디자인
이 양식은 80년대 신대륙, 중동지방, 공산주의와 관련지어 발달했고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도드라지죠. 배경과 동떨어진 모던한 시설들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아주 희귀합니다. 그만큼 호불호가 뚜렷하겠죠.


2. 열대풍 디자인
007영화를 떠올려 보시죠. 어느 나라 바닷가, 파도가 넘실거리고 비키니를 입은 아찔한 여인이 백사장을 걸어나옵니다. 그 끝에는 어김 없이 방갈로가 있고 하얀 커텐, 침대가 펼쳐져 있죠. 영화 ‘연인’, ‘엠마뉴엘’ 시리즈도 있네요. ‘방갈로(bungalow)’란 양식 자체가 인도 뱅갈 지역 건축양식을 영국군이 전 세계에 퍼트린 것입니다.
그럼 그게 좋다고 한국에 어느 유명 휴양지에서 가져온 열대지방풍의 리조트를 지을까요? 중급리조트사업모델입니다. 대표적으로 ‘클럽 메드(club med)’가 있죠. ‘메드’는 지중해(mediterranea)의 약자입니다. 지역주의라고 부를 만한, 이를테면 경기/부산지역만의 건축이 남아있나요? 없습니다. 일본 식민주의 양식의 건물을 지을까요? 지방도시에 그런 사례가 있지만 역시 아난티 정도의 브랜드가 추구할 모델은 아닙니다.
결국 선예도에 차이가 있지만 아난티는 절충을 선택했습니다. 가평에서는 산세에 맞춰 잘 드러나지 않게 낮게 깔았다면 해운대에서는 바람과 파도에 선을 곶추 세우거나 날립니다. ‘바다 위의 성’이란 표현을 쓰던데 ‘바다에 태운 연鳶도 어울립니다. 실제로는 자연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결과만 봤을 때 말입니다. 전체 디자인에 일부 지역색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리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절충하는 건축양식을 전략으로부터 취했다면 미국 서부(Soutehrn california institute of architecture)에서 공부한 민성진 건축가는 적절한 선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골프장 클럽하우스(금강산, 가평, 남해, 웨이하이)를 통해 그 스타일을 보여줬죠. 위의 사진에서 보는 콘크리트 선은 에릭 오웬 모스Eric Owen Moss의 영향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애매하거든요. 한국적인 공간, 비례를 가지지 않다보니 거기에 일식, 양식이 들어가면 대비가 되지 않습니다. 바탕이 어느 쪽을 선택해야 위에 뭔가를 얹어도 달라 보이는데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플레이팅할 그릇이 퓨전이면 전통 한식을 담기도, 전통 양식을 담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같이 퓨전으로 가는 거죠.
반면에 건축주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 있습니다. 어느 대하드라마에서 가져온 듯한 한옥보다는 세련돼 보이고 그렇다고 너무 시골 도시건축 같지도 않고. 애매함은 또한 야릇함이니까요. 아마 그렇게 통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아난티 비지니스모델을 읽는 핵심이 회원권 판매라면 아난티의 디자인을 읽는 핵심은 그 건축양식일 겁니다.” 아난티는 회원을 그냥 익명의 개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족이고 그들이 머무는 곳은 빌리지이며 그들의 지적 활동을 위한 아카데미, 사교활동을 위한 클럽이, 여가활동을 위한 타운이 준비됩니다. 충성심(Loyalty)을 가질 가족들도 아난티에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은 이미지를 요구할 겁니다. 그 요구, 반대로 아난티 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고유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회원 입맛에 맞는 시설을 만들 수 있겠죠. 세 축이 이어져 있습니다.
남해 힐튼에서부터 아난티의 DNA를 접하며 낯선 것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외부 조경, 지하 주차장의 드롭 존에 비해 부족하게 느껴지는 복도, 독서등이 없는 침대, 외장재를 쓴 내부, 북큐레이터를 고용할 정도로 정성을 쏟은 서가와 같은 것들은 물론 기존 숙박시설건축에는 볼 수 없었던 부풀어 오른 덩어리, 중심을 공유하지 않는 곡선과 끊어진 단선 등이 있었습니다. 일반 관광호텔 밖에 모르는 저야 낯설지만 회원권으로 같은 브랜드의 여러시설을 쓰는 회원들에게는 익숙하고 필요한 유전자/코드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디자인을 반복하는 전략이었다면 같은 건축가와 작업을 해야겠죠. 그리고 같은 양식을 지켜줘야 하고요.
게임은 지금부텁니다. 등기분양권판매/대형고급호텔 운영에서 높아진 ‘아난티’ 브랜드 이미지를 이용해 회사의 다른 두 축인 개발과 운영의 성과를 끌어올리는 것이 원하는 그림일 겁니다. 의료, 소매, 주택사업, 자산운용에 뛰어드는 앞으로는 더욱 더 회원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곳에 관심을 둬야한다고 하셨죠.


요즘 잘 나가는 일본 어느 서점주인이 말했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시화하고 디자인으로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회원가족이, 기업주가 가진 가치가 유무형으로 모인 것이 브랜드입니다. 그것은 분양 설명서나 IR의 글로 전달할 것이 아닙니다. 이번 글에서 설명한 건축양식이 브랜드가 담고 있는 가치를 말해야 합니다.


류근수
루트 디자인 파트너스 대표
프랑스, 포르투갈에서 마시밀리아노 푹사스, 쟝 미셀 빌모트, 알바루 시자의 작업에 참여했다. 호텔, 복합개발사업 전체단계에서 발주처 자문, 계획/설계단계에서 국내외 설계사 코디네이션 그리고 공간/특주가구의 디자인/제작/설치 총괄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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