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속 시간을 거슬러 그 어디쯤 인생의 나침반을 찾는다면 강민구 셰프의 시간은 지금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까? 요리에 눈을 뜬 순간부터 그가 하는 모든 요리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꿈꿔온 한식에 대한 신념이 단단해질수록 인생의 걸음은 한 계단씩 목표에 가까워졌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던, 한식 셰프가 되기 위해 강민구 셰프는 먼 길을 돌아 지금 이 자리에 섰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페스타 바이 민구의 총괄 셰프로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를 영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곳은 그가 경험한 온갖 미식에 대한 이야기가 흐르고 넘쳐 강민구의 요리 그 자체를 만들었다. 한식을 탐구하던 청년 강민구가 경험한 유로피언 다이닝, 페스타 바이 민구는 셰프의 요리를 정직하게 담아낸 공간이다.
‘밍글스’로 모던 한식이라는 확고한 입지를 다졌잖아요. 그런데 페스타 바이 민구에서 유로피언 다이닝을 선보인다니 궁금했어요. 게다가 이곳은 한식을 선보이던 공간이기도 했고요.
밍글스의 한식을 공간만 달리해 선보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같은 셰프가 만드는 동일한 콘셉트의 음식으로 두 공간을 나란히 채우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주방과 홀 서비스는 한 팀으로 움직이는데 공간이 바뀌면 같은 퀄리티와 느낌을 전달할 수도 없고요. 요리하는 사람 입장에서 공간과 음식은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관계예요. 페스타는 입지적인 부분에서도 매우 특별한 공간이죠. 그래서 주변 환경을 고려해 기존의 공간과 인테리어에 맞는 요리를 생각하게 됐어요.
페스타 바이 민구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우선 반얀트리가 추구하는 힐링을 전달할 수 있도록 휴양지의 느낌을 살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선보이려고 노력했어요. 반얀트리는 다른 체인호텔이나 전통호텔과 다르게 젊고 도전적인 부분이 많아요. 한편으로는 휴양지의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도 멤버십이 강하고 내국인의 비중이 높지요. 그래서 이곳에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휴양지의 느낌을 담았어요. 페스타의 음식을 경험하면서 힐링할 수 있도록요.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스트레스 없는 편안한 공간이어야 해요. 공간과 음식이 제공되는 총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페스타 바이 민구가 나올 수 있었어요.
페스타가 유로피언 다이닝을 지향하지만 강민구 셰프의 내공이 담긴, 강민구스러운 요리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네요. 한국적인 요소도 물론 포함되나요?
레스토랑은 음식을 만드는 셰프의 캐릭터가 녹아 있는 곳이에요. 제철의 좋은 재료를 활용한 음식에 셰프의 색깔을 담아서 전달하지요. 밍글스는 저의 여러 경험이 모던 한식이라는 장르로 선보여지는 공간이에요. 페스타에는 밍글스가 있기 전, 제가 외국에서 경험한 요리들을 유로피안 다이닝으로 표현했어요. 하지만 전통적인 유로피언 다이닝으로 구분하지 않아 한국적인 요소가 일부 가미돼 있어요. 모던 한식을 하는 밍글스와 완전히 끊어서 생각할 수는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밍글스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의 80% 정도가 페스타에도 동일하게 공급되기도 하고요. 같은 재료로도 표현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거든요. 가령 좋은 안심부위와 양념이 있다면 불고기를 만들 수도, 서양식 스테이크를 만들 수도 있지요.
전혀 다른 장르의 요리에서 접점을 찾는다는 게 어렵게 느껴져요.
그것이 전통음식이라면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컨템포러리의 둘레에서는 믹스 앤 매치가 더 쉬워져요. 즉 전통 한식과 클래식한 프렌치보다 모던 한식과 컨템포러리 프렌치의 접점을 찾기가 더 쉽다는 말이죠. 뉴욕은 물론이고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등 미식 국가의 주요 도시에서 아시아 식재료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일식 재료야 말할 것도 없지요. 그만큼 아시아의 요리가 각국의 음식에 접목될 여지가 많다는 것을 뜻해요. 좋은 식당에는 특별한 음식이 있어요. 재료나 기술에 한계를 두지 않는 만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영향을 주고받지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간장, 참기름도 여러 가지 종류를 사용해요. 요리마다 사용하는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죠.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차이가 중요하다고 봐요.
이번에 페스타 바이 민구를 오픈하면서 새롭게 합류한 멤버도 있다면서요?
캐나다, 호주, 프랑스, 한국에서 경험을 쌓은 실력파 셰프인 윤태균 셰프를 영입했어요. 페스타의 메뉴가 절반 정도 갖춰졌을 무렵 합류해서 페스타 메뉴의 절반을 윤 셰프와 함께 완성시켰어요. 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장 담그는 법을 배우러 영암에 갔을 때 우연히 다시 만나 제안하게 됐지요.
그동안 많은 호텔에서 러브콜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반얀트리에 합류하신 이유가 있나요?
사실상 입점 제안의 형태가 많았어요. 하지만 식당 하나를 운영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현실에서는 파인다이닝이라고 해도 사실상 생계형 다이닝이거든요. 혼자서 레스토랑을 여러 곳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반얀트리에 합류해 페스타 바이 민구를 총괄하게 되면서 호텔이라는 다양한 조직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오래된 호텔이었다면 부담이 많았을텐데 페스타팀은 젊고 역동적인 느낌이라서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대표님의 운영 철학이나 오픈마인드가 저와 잘 맞았어요.
그동안 모던 한식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셨는데, 붐업된 모던 한식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디일까요?
셰프라는 직업은 확고한 목표와 사명감이 필요해요. 한국의 식문화, 한식을 내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고 후배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는 것이죠. 아시아 식재료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듯 한국의 식재료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한식을 소비하는 시장이 확대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해요. 예를 들어 전 세계에 비슷한 콘셉트의 일식당이 많이 생겨난다는 것은 세계인들이 일본 식재료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일본을 가보고 싶은 나라로 꼽게 되는 이유와 같아요. 일본이 독보적으로 관광과 식문화에서 앞설 수 있던 요인이고요.
한식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군요. 그렇다면 우려되는 부분도 있나요?
한식이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에요. 그 가운데 모던 한식의 붐업은 타이밍이 좋았다고 봐요. 새로운 한식에 대한 니즈가 있었고 한국적인 색을 지닌 다이닝이 필요한 시점에 밍글스가 오픈했지요. 그리고 이러한 기류는 5년 동안 이어져 왔어요. 다만 우려되는 것은 모양이 잘 갖춰진 한식이 마치 한국의 식문화를 대변하듯 비춰지는 것이에요. 이것은 일부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거든요. 전통한식 뿐 아니라 다양한 길거리 음식도 우리 식문화예요. 또한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치킨, 자장면처럼 새로운 형태로 융합 발전되고 있는 음식도 많지요. 이런 것들까지도 잘 어필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초밥이나 피자가 세계적인 음식이 된 것처럼 한식도 저변이 확대돼 뻗어 나가길 바라요.
28세의 나이에 노부 레스토랑의 최연소 한국인 총주방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는데 그 당시 한식보다 일식이 더 강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식 셰프가 된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일식에 꿈이 있었다면 일본으로 갔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세계인이 주목할만한 한식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해외에서 처음으로 한식에 대한 꿈을 키웠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했어요. 단 몇 개월의 스타쥬도 마다하지 않고 아시아 셰프 중에서 전 세계가 주목할만한 셰프의 레스토랑을 찾아 다녔어요. 그 중에서도 노부를 선택한 이유는 아시아 셰프로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둬 서양 사람들을 열광시켰고 일식을 전 세계에 대중화 시킨 셰프이기 때문이었어요. 그가 어떻게 자국의 음식을 표현하는지, 레스토랑은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했지요. 결과적으로 이 경험들이 밍글스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산지에서 발로 뛰는 셰프로도 유명하시죠. 식재료를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운 편인가요?
제철 식재료 위주로 사용하고 감자, 오이, 옥수수 등 재료마다 대여섯 군데의 샘플링을 거쳐 산지에서 조달할 만큼 좋은 식재료를 선별하려고 노력해요. 좋은 식재료가 있어야 요리할 때 편하고 자신감이 생기죠. 굳이 화려한 기교나 양념을 더하지 않아도 되고요. 음식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를 찾는 것이에요. 이런 요리 스타일이 저와 잘 맞아 수시로 식재료를 발굴하거나 주변의 소개를 받아 매주 농장을 방문하는 편이죠.
최근 호텔에서 유명 셰프나 셰프의 레스토랑을 영입할 만큼 셰프의 이름이 부각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요.
외국에서는 호텔의 식음업장을 로드 레스토랑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요. 보수적인 환경의 국내 호텔업계는 이제 시작되고 있는 것이죠. 로드 레스토랑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공간과 시스템적으로 영세하거나 열악한 곳이 많아요. 따라서 최근에 호텔업계에 일고 있는 크고 작은 변화로부터 서로의 니즈를 충족함으로서 융합되고 새로운 문화로 발전해 나갈 것을 기대해봅니다.
밍글스와 페스타,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 앞으로 남은 계획이 있나요?
밍글스가 지난 6월 6일에 청담동으로 이전했어요. 그리고 7월 8일에 페스타 바이 민구가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고요. 당분간 새로운 공간과 콘셉트가 잘 안착될 수 있는데 힘을 다할 계획입니다. 밍글스와 페스타가 고객들에게 만족할만한 공간의 다양한 경험이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