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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컬리너리

[The Chef] 세상은 도전하는 자의 것_ 강병욱 셰프의 힐링 스토리


카타르의 노부 레스토랑 출신인 강병욱 셰프는 서울시에서 만든 상생상회의 메인셰프로 활동했으며 이탈리아 슬로우푸드 한국 대표로 참여해 한국의 자연주의 요리를 선보이는 한편 지역 농부와의 협업으로 팜투테이블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사라져 가는 한국의 식재료에 숨을 불어넣고 발효음식의 가치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최근 지역의 특색을 담은 인사식탁과 애월식탁의 오픈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강병욱 셰프를 만났다. 꿈을 이루고자 모두가 힘들 것이라고 만류하는 길을 걸어온 그가 남기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떼는 첫 걸음은 두렵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그 떨림이 확신이 되는 경험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누군가는 걸어야 했고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이 되기를 자처했으며 고독한 싸움을 견뎌 지금에 이르렀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희망을 써내려간 강병욱 셰프의 힐링 스토리다.


레스토랑 오픈 준비로 바쁘시다고요. 근황을 전해주세요.
얼마 전 뜻이 맞는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지역의 자연주의 레스토랑을 선보이기 위한 회사, 리치 테이블을 설립했어요. 저는 이 회사의 대표직을 맡고 있으면서 요리부문을 담당하고 있지요. 그동안 제가 경험한 지역의 토종 식재료와 요리법을 사용해 사라져가는 옛것을 보존하고 과거와 현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청춘살롱을 이어 서울 인사동과 제주 애월에 각각 인사식탁, 애월식탁을 준비하고 있고 7월 중 오픈을 앞두고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역을 넓혀 매장을 열 계획이고요.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희집은 종가집의 장손이에요. 한복을 입고 커다란 가마솥에 음식을 하시던 어머니를 보고 자랐지요. 전통적인 한식에 입맛이 길들여진 저였지만 한식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닌가요? 그 고된 모습에 한식만큼은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스무 살 무렵에는 세계적인 일식당 노부에서 넥타이 메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셰프들의 모습을 선망하게 됐고 반드시 노부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의 이런 의지를 담아 일본어로 번역한 메일을 꾸준히 전 세계 노부 레스토랑에 보냈어요. 하지만 영어도, 경력도 안 되는 신참내기가 일하기 쉽지 않았어요. 노부 셰프의 추천으로 기회를 얻게 돼 홍콩과 미국의 노부 레스토랑에서 채용 의사를 보내와도 갖가지 사유로 비자에서 번번이 탈락하게 되니 점점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그동안 저는 한국과 홍콩, UAE를 오가며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어요. 외국에서 일하면서 느낀 게 한국인들은 맵고 짠 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프랑스나 이태리 사람들의 미세한 미각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는 것이에요. 반면 그들은 발효음식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더라고요. 한식의 강점이기도 하지요. 내가 그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차별화 되는 한식, 한국의 발효음식에 눈을 뜨게 된 거죠.



열정이라지만, 경력과 언어도 통하지 않은 곳에서 혹독한 요리 수업을 받았을 것 같아요.
처음엔 모든 게 그랬어요. 홍콩의 3스타 레스토랑 조엘 로부숑에서 견습생으로 첫발을 디뎠을 때도요. 냉혹한 세계의 쓴맛을 알게 된 거죠. 알아듣지 못하고 “Yes, Chef!”만 외쳐댔으니 타깃이 된 것이에요. 주변 동료들의 모함에도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견뎌냈어요. 결국 모든 실수를 뒤집어쓰고 3개월 만에 해고됐지만 이 일을 계기로 살아남기 위한 독기를 품었죠. 이기고 싶었어요. 결국 언어도 경력도 안 되는 내가 그들을 능가하려면 덜 먹고, 덜 자고 남는 시간에는 하나라도 더 배워야 했으니까요. 거의 무급이나 다름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이력서를 여러 장 손에 쥐고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짧은 영어지만 당당하게 말했지요. 우유 한 병을 사서 눈금을 나눠 표시해가며 며칠의 끼니를 때워야 했을 정도로 배고픈 생활을 했지만 외롭다는 생각조차 들 여유도, 휴일도 없이 열심히 살았어요.


굳이 열정페이로 버텨가면서 이 일을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돈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했으니까요. 저는 제 자신을 잘 알아요. 다 무너져도 열정 하나로 버텼던 나 자신만큼은 무너지기 싫었죠. 결국 자신감의 원천은 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것조차 신기할 만큼 음식은 계속 바뀌게 돼 있어요. 결국은 남는 게 기술인거죠. 저는 열정을 주고 그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시간과 기회를 산 것이에요.



가장 뜨겁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때를 떠올린다면요?
홍콩에서 일하고 있을 때 드디어 노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와이키키 매장으로 배정 될 예정이었지만 먼저 계신 선배들의 조언으로 LA매장에 지원했는데 비자문제로 좌절됐지요. 그리고 포시즌스 호텔 내 오픈을 앞두고 있는 카타르의 노부 레스토랑으로 가게 됐어요. 이마저도 모든 채용이 끝나 기존에 가기로 했던 CDP직급보다 한참 낮춰 들어갔어요. 그토록 일하고 싶던 노부 레스토랑인데 직급 같은 건 아무렴 상관없었죠. 그리고 일년 반 동안 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주방에서 보냈어요. 나올 때는 스시 카운터만 빼고 모든 주방을 다 돌았을 정도로요. 저는 힘들 때마다 저에게 편지를 쓰곤 하는데요. 10년 후의 모습을 꿈꾸며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초심을 새겼어요.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의 숙소에서 냉장고도 없이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정말 열정 하나로 활활 타오르던 시기였지요. 지금도 힘들 때면 종종 생각나곤 하죠. 초심을 잃지 않게끔. 얼마 전에도 잠시 다녀왔어요. 추억의 장소에서 옛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지난해 펀딩에서 콤부차로 목표액의 660%를 달성했던데,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콤부차는 중국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해 즐겨 마시던 발효차로 유명해요. 홍차 버섯을 배양해 만들죠. 카타르에서는 라마단 기간에 레스토랑도 문을 닫아 한 달 정도 휴가가 생겼어요. 휴가 기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셰프의 동의를 얻어 한 달간 홍콩의 원스타 레스토랑 NUR로 스타쥬를 떠났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미쉐린을 획득한 비결이 궁금했어요. 바로 발효음식이었죠. 모든 메뉴에 발효된 재료를 사용하더라고요. 이곳의 시그니처 가운데 하나가 발효차인 콤부차인데, 이것을 배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오너셰프인지라 레시피만 봐서는 영양학적 분석만 돼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도 없고 말예요. 마침 탈의실에 항아리와 메주가 걸려있기에 물어보니 셰프가 한식에 관심이 많았던 거예요. 저는 한국의 김치와 불고기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이 레스토랑의 콤부차 만드는 법을 딜 할 수 있었어요. 이 한 달의 경험이 제게 발효음식에 눈을 뜨게 한 거죠.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것인 만큼 현지화된 것인가요?
맞아요. 홍콩에서 콤부차는 시금치와 블랜딩을 하는데 저는 한국적인 것과 연관 시켜 소스나 차의 형태로 시도해봤어요. 둥글레차, 옥수수차 등 한국인에게 익숙할만한 수십 가지의 라인업을 갖췄죠. 수없이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보니 어느 순간 감이 생기더라고요. 핸드메이드 제품에 발효식품이다 보니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잖아요. 매번 기본 레시피에 감이 더해져요. 콤부차는 곧 인사식탁과 애월식탁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쉼 없이 달려온 것 아닌가요? 인생의 고비가 있었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한 신규 로컬 체인호텔이 오픈할 당시 Head Chef로 근무했어요. 직원 교육은 물론 6개월 동안 휴일도 없이 메뉴작업을 하며 일밖에 몰랐으니까요. 오너와 갈등을 겪으며 여러 가지 내부적인 문제로 한계에 내몰렸을 때 어느 순간 요리에 환멸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열정을 쏟았던 주방에서의 삶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몸이 많이 아팠고 병원에 가니 공황장애 초기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가 취미생활이나 20대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라는데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20대의 전부를 일한 것 밖에는.


그럼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 내일의 식탁이라는 상생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어요.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농장에서 농부와 협업으로 팜스테이블을 선보이는 것인데, 첫 작업을 한 곳이 그림같이 펼쳐진 가평의 한 농장이었어요. 농부님과 함께 지내면서 가평면을 구석구석 돌아다녔지요. 산이고 들이고 발길이 닿는 곳에서 식재료를 직접 채취하고 6~7가지 메뉴를 코스로 선보였어요. 산에서 발견한 돌이 접시가 되고 흙을 밟고 손으로 수확한 산나물이 훌륭한 요리가 됐어요. 결국 아름다운 자연을 맞대고 지내면서 얻어진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어요.


자연주의 요리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시는데,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슬로우푸드 워크숍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어떤 강연을 하셨나요?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상생상회를 소개하고 이곳에서 직거래로 판매되고 있는 B급 농산물을 소개했어요. 흔히 우리가 못난이 채소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외국에서 시장을 다녀보면 제 멋대로 생긴 못난이 채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요. 유독 한국에서 만큼은 알이 굵고 쭉쭉 뻗은 A급 농산물들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어요. 심지어 인큐베이팅 재배로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요. 사실 겉모양만 다를 뿐 속은 똑같은데도 말이죠. 외형적으로 상품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에서는 A급 농산물이 아니면 불량품 취급을 받아 농협에서 수매하지 않는다고 해요. 결국 상품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B급 농산물들은 밭에 버려지게 되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맛, 문화가 잊혀지지 않게 보존하는 일도 중요해요. 해마다 ‘맛의 방주’라고 해 전 세계의 잊혀져가는 식재료를 등재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맛의 방주에 등재된 식재료는 토판염이 있지요. 저는 100번째 맛의 방주로 울진군의 해방풍을 소개했어요. 바닷가 바로 앞에서 자라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이 나물은 조선시대부터 풍을 예방하는 효능을 갖는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식물이라고 해요. 줄기나 잎의 맛이 다르고 조리법도 달라 해방풍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접근했지요.


인사식탁과 애월식탁의 전신이 된 청춘살롱은 지역과 농민의 상생을 모토로 시작한건가요?
네. 허름했던 공간의 먼지를 털어내고 손님을 마중할 공간을 마련해 청춘살롱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저는 종종 지방을 방문해 그곳에서 지내며 지역민, 농부, 텃밭 가꾸는 할머니에게서 음식의 스토리는 물론 지혜와 감동을 얻어요. 울진의 해방풍이나 서산의 감태 등 지역의 특산물을 받아 청춘살롱에서 로컬음식을 먹을 수 있게 메뉴를 구성했어요. 어디에서 왔고 누가 만들었는지 음식의 스토리를 통해 농부와 채소를 소개하는 홍보의 장이 되기도 하죠. 지금은 문을 닫았고 7월부터 인사식탁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해요.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 조리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극한 상황에 놓였을 때 길어야 1년이면 결국 다 포기하더라고요. 단순히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이 아닌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중장기 계획을 세우길 바랍니다. 모든 계획은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낼 수 있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해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중심 없이 떠돌이 생활만하면 결국 남는 것 없이 내가 흡수되고 말지요. 겁내지 말고 부딪혀 내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자신의 영역이 넓어져요. 이 모든 경험이 쌓여 인맥이 될 겁니다. 세상은 넓고도 좁지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으실 것 같네요. 계획을 소개해주세요.
발효음식은 한식의 정점이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발견해야할 우리문화의 가치인 셈이죠. 사실 찾아보면 한국의 희귀한 식재료들이 많은데 아직 이것들의 가치를 발견해내지 못해 안타까워요. 맥을 이어야할 토종 씨앗들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지방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토종 씨앗을 집 앞 텃밭에 뿌려 수확하고 정말 희귀한 것은 항상 베게 밑에 두고 주무신다고 해요.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해온 토종 씨앗이 유품으로 발견되면 누군가 찾길 바라는 마음인거죠. 이런 유산들을 누군가 개발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결국 문화로 만들어 음식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을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요리사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것을 찾아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애월식탁이 있는 제주도에 요리연구소를 만들 계획입니다. 제주 식재료의 보고가 될 만큼 풍부한 제주의 토종식재료를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힘을 쏟고 싶어요. 음식은 유산입니다. 나의 자녀가 아이를 낳고 세대를 거듭한 어느 날, 그들이 ‘된장찌개를 알 수 있을까?’ 라는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해요. 재료를 발굴해 레시피화 하고 이를 지역에 환원하는 한편 나의 식탁에서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요. 살아있는 요리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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