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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2 (금)

레스토랑&컬리너리

[The Chef] ‘실패를 숨기려 하지마!’ 스테이 한국인 최초의 셰프 드 퀴진, 최해영 셰프


셰프의 꿈을 안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멘토가 필요하다면 망설임 없이 최해영 셰프를 소개하고 싶다.
시그니엘서울 81층에 위치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스테이에서 총책임을 맡고 있는 셰프 드 퀴진, 최해영 셰프는 10년 넘게 프랑스에서 경력을 쌓으며 산전수전을 모두 경험한 베테랑이다. 내면의 강인함과 특유의 포용력으로 팀을 리드하는 최 셰프는 그가 소속된 프랑스의 야닉 알레노 그룹 최초의 한국인 수셰프를 역임했으며 이제 막 닻을 올린 긴 항해를 위해 스테이로 파견돼 지금의 자리에 섰다.
과도기의 다이닝, 그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오늘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해영 셰프가 뗀 발자국이 잔잔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느낀 첫인상은 부드러움과 카리스마가 공존했는데, 야닉 알레노 셰프와 팀 미팅하던 그 테이블에서요. 한국의 레스토랑에서는 여성이 헤드자리까지 오르기 쉽지 않잖아요. 현실적으로 롱런할 수 도 없고요.
꼭 한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일은 기술직으로 육체적인 노동을 필요로 하니까 체력적으로 여성이 견디기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알고 보면 주방에서 몸보다 머리를 써야 하는 상황이 더 많긴 하지만요. 성별을 떠나 요리사라는 직업 자체를 조명했을 때 프랑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직업에 대한 지위 정도랄까. 우리나라는 기술직인 ‘장이’를 되물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기술직을 천시하고 머리 쓰는 일은 우대하지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대를, 가업을 잇는 것을 대단한 자부심으로 여기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해요.
 
프랑스에서 10년 넘게 일했으면 자리도 잡혔을 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나요?
스테이가 오픈할 무렵, 야닉 알레노 셰프가 제안을 했어요. 처음에는 자신이 없어 거절했지요. 프랑스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굳힌 상태였고, 오래전 이미 한국 주방의 분위기도 경험해봤기 때문에 저는 호텔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문화가 과연 바뀌었을까? 직원들과 융화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죠. 하지만 프랑스에서 저는 영원한 이방인이었고 내 정체성, 뿌리를 찾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한 달 만 있어보기로 한 게 일 년을 넘겼네요. 



계획대로라면 벌써 프랑스에 계셨을텐데 미련이 남았던 건가요?
결정적인 계기는 함께 일하는 친구들 때문이었어요. 애정이 없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이죠. 제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지만 끝까지 함께 가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 최고의 음식을 선보이려고 위에서부터 열정과 애정을 흘려보내니 직원들 간의 시너지도 생겼어요. 그 결과 2년 연속 미쉐린 1스타에 선정되기도 했고요. 저는 한국에서 이 친구들 덕분에 내 안에 갇혀있는 나를 꺼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호텔에 대한 선입견, 막연한 불안감 이런 것들을 해소할 수 있었죠. 한국은 언젠가 돌아올 곳이지만 그 시기를 몰랐을 뿐이었던 것 같아요.  



제과제빵으로 요리를 시작하셨던 당시 분위기는 디저트를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을 많이 선택했죠.  행선지를 프랑스로 잡으신 이유가 뭔가요?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이템 헌팅을 위해 일본을 자주 찾곤 하죠. 특히 한국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트렌드 변화에 민감해 그 때마다 필요를 채우기에 급급해요. 저도 처음엔 일본으로 유학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1~2년 지나 돌아보니 이러한 수고가 시즌을 넘기기 위한 일회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때부터 기초와 전통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어요. 일본은 프렌치를 가져와 내면화시키는데 이것이 한국으로 건너오면 그대로 유행이 되더라고요. 롱런하고 싶단 생각에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어요.


하지만 제과제빵 학교가 아닌 요리학교를 선택하셨네요. 그것도 입학이 까다로운 명문요리학교 폴 보퀴즈에요.
첫 행선지는 초콜릿을 배우기 위해 벨기에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유럽이 입학설명회 시즌인지라 프랑스의 폴 보퀴즈까지 가게 된 거에요. 과자, 빵, 초콜릿 과정이 모두 포함된 요리학교죠. 남을 수만 있다면 전 과정을 다 이수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학비도 비싼데다가 영어나 불어가 가능해야 하고 저보다 까마득히 어린 10대~20대 학생들이 대다수인 가운데 제 나이 서른이었어요. 가진 것이라곤 제과제빵 경력과 열정뿐이었죠. 면접관들이 10년이라는 간극을 어떻게 융화시킬 것인지 물었을 때 어눌한 불어실력으로 그들을 설득시켜야 했어요. “나에게 그만큼의 젊음은 없지만 그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내가 가진 연륜이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 할 수 있다.”고요. 나만 배워가는 게 아니라 배움으로 서로 나눌 수 있는 게 분명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들은 이 말을 언어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줬어요. 학비를 벌어서 대야했기 때문에 졸업은 좀 늦어졌지만 제 의지를 보고 기다려주고 믿어줬지요.       

 


결국 제과제빵에서 프렌치로 전향하게 됐지만 선택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나라를 가니까 내가 하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프랑스 요리는 디저트로 마무리까지 할 수 있어야 해요. 디저트만 아는 것은 시작과 중간과정이 없는 그림이나 마찬가지죠. 달달한 것은 아니까 짭조름한 것을 가져다 쓰는 방법을 배운 거예요. 돌아보면 제과학교가 아닌 요리학교를 선택한 게 당연했다고 봐요. 결정적으로 제 생각을 바꿔놓은 건, 라스트랑스(L’astrance)의 파스칼 바흐보(Pascal Barbot) 셰프를 만났을 때에요. 요리를 배우긴 했지만 당연히 디저트로 돌아갈 생각을 했거든요. 라스트랑스는 25석의 작은 공간에서 단짠의 조화를 이뤄낸, 그것도 셰프 테이블의 첫 장을 연 센세이션한 곳으로 명성이 높았어요. 디저트를 포함해 요리의 모든 과정을 넘나드는 파스칼 바흐보 셰프를 보면서 요리에 경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야닉 알레노 셰프를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그 인연이 궁금해요.  
1789년에 지어져 나폴레옹이 식사한 곳으로 유명한 파리시의 한 건물이 있어요. 이곳에 있는 레스토랑 르도와양(LEDOYEN)에서 1년 차 마지막 인턴십을 하고 있을 무렵 임대 계약이 끝났고 레스토랑의 주인이 바뀌면서 멤버 교체가 이뤄졌지요. 바로 야닉 알레노 셰프의 팀이에요. 야닉 셰프는 기존 멤버를 모두 안고 가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끝까지 버티고 남은 사람은 저 하나 뿐이었어요. 덕분에 라스트 솔저라는 별명을 얻었죠. 야닉 셰프의 첫인상이요?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식을 해석하는 관점이 기발했어요. 사실 당시의 제 모습과 야닉 셰프는 표면적으로 맞지 않았어요. 저는 전통이나 원리, 기초를 추구했고 야닉 셰프는 모던의 선두주자였으니까요. 하지만 식재료를 단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전체를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코드가 잘 맞았지요. 제가 늘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던 셰프였어요.



다름을 인정하고 나에게 필요한 점을 배운다는 건가요?
정확히 말해서는 제 고정관념을 깨뜨린 셰프예요. “우리는 기초가 탄탄해야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뽑아낼 수 있어. 모던은 특별한 게 아니야. 전통을 뒤집으면 모던이 되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지.”라고 했던 야닉 셰프의 말이 와 닿았지요. 프렌치를 하고 있지만 저는 그곳에서 영원한 이방인이에요. 그런 저의 강점은 바로 한국이라는 DNA에 있지요. 그것을 접목하면 모던이고 퓨전이 되는 것이에요. 나는 외국인이고 그곳에서 전통만을 고집한들 제 강점이 될 수 없어요. 전통을 기반으로 나의 장점을 접목시키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모던인거죠.


매 순간 요리를 만들면서 힘든 점이 있나요?
다 털어내고 군더더기 없이 요리에 철학을 담는 작업이에요. 프랑스에 있을 때 야닉 알레노 셰프가 한 달에 한번씩 메뉴 테이스팅을 했어요. 손님의 눈높이에서 음식이 어떻게 보일지 늘 점검했지요. 제가 처음으로 메뉴를 개발했을 때 받은 질문이 “이 음식을 얼마에 먹겠니?”였어요. 그 값을 지불하고 먹을 만한 값어치가 생길 때까지, 마무리 되지 않고 의미 없는 조합만으로는 테이스팅 받을 생각을 말라는 것이에요. 한번은 스테이의 전복 요리를 테이스팅 받은 적이 있는데 낙제점을 받았어요.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 요리에 너무 많은 맛이 느껴지기 때문에 식사를 마친 뒤 ‘과연 내가 뭘 먹었지?’ 헷갈리게 된다는 이유에서였죠. 요리를 하다보면 욕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넣고 싶어져요. 그럼 이 음식은 절대 끝나지 않아요. 훌륭한 요리가 어떤 건지 아세요? 바로 셰프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순수하고 명료한 요리에요. 다 털어내는 작업이 필요하죠. 그래야 가장 합당한 맛을 찾을 수 있어요.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수년 새 셰프 열풍이 거세졌어요. 한국의 다이닝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요.
일단 TV 채널을 돌리면 음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해요. 물론 과도기도 필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거품이 너무 많고 과열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조리 유학만 해도 한국인 유학생이 많이 증가했거든요. 비싼 학비를 쏟아가며 1~2년 사이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겉멋만 들거나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혈혈단신으로 프랑스의 주방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르도와양에서 야닉 셰프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에 저는 곧 떠날 사람이었어요. 팀이 교체되면서 이전 팀을 이끌었던 셰프가 포시즌스 호텔로 가면서 다시 데려가기 위해 콜을 보냈던 사람들 중에 제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떠날 생각이 없었어요. 당시에 스타터와 메인 사이에서 디테일이 중요한 생선 파트의 헤드를 맡고 있었는데 갑자기 허수아비 섹션의 헤드로 강등됐어요. 사람들이 저를 모질게 대해도 셰프의 철학이 저와 맞고 이곳에서 보고 배울 게 있으니까 나에게 필요한 부분만 봤어요. 그러던 찰나에 서비스 실수로 빌미를 주고 말았죠. 야닉 셰프가 참 모질게 몰아세우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이대로 앞치마를 던져놓고 나가면 그날로 마지막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 누구도 제가 다시 나타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저는 다음날도 출근했고 섹션의 헤드에서 꼬미로 내쳐진 것을 확인해야 했어요. 하지만 그래도 했어요. 모두가 저를 걸림돌 취급해도 참고 견뎠지요. 그동안 제가 일을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죠.



그 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사람이 제일 밑바닥으로 내려가니 마음도 가난해지더라고요. 그들 말대로 나는 과연 느리고 지저분하며 일도 못하는 사람인가? 아니요. ‘남들이 그렇게 취급해도 내가 아니면 아닌 거다. 최소한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라고요.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디고 나니 수직상승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야닉 알레노 셰프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르도와양 수셰프 자리를 지켰어요.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이곳에 왔을 때 후배들을 보는 마음가짐이 남달랐겠네요.
제가 이곳에 와서 후배들에게 했던 말이, 맛보는 것 잊지 말고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수용할테니 도와달라는 것이었어요. 선배라는 말은 단지 그들보다 먼저 시작했다는 것 뿐 그 시간을 후배에게 보상받으려고 하면 안돼요. 내 것이 만들어진다는 의미는 그것이 특별해져서가 아니라 소소한 게 쌓여 자신만의 음식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시도해보려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겁니다. 또한 남의 질책에 대해 두려워하면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어요. 많은 경험에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실수에도 느낌이 오기 마련이에요. 두려워하거나 숨기려 하지 말고 실수를 인정하세요. 그게 정답입니다. 내 것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한 반복의 자기 열정이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훨씬 나아질 겁니다.
    

그렇다면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뭔가요?
셰프는 모든 생명체를 다루는 직업으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해요. 음식은 재료가 말해줘요. 어떤 농부, 어부가 키웠나에 따라 재료의 맛이 달라지죠. 그 정성이 담긴 재료로 건강한 요리를 만드는 게 셰프고요. 그러기 위해 재료에도 스트레스를 최소화 해야 돼요. 이케지메는 생선의 신경을 죽여 마취상태에서 요리하는 방법으로 스트레스 상태에서 요리하지 않아 신선도를 오래 유지시켜주지요. 셰프라면 의사에게 가기 전 단계까지 사람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사명, 그 정도의 철학은 가져야한다고 봐요.    


공식적으로는 내년까지 스테이에 머무신다고요. 앞으로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까지는 다른 것 생각 말고 스테이에 올인하는 게 전부였고 그것만으로도 벅찼어요. 앞으로 남은 1년은 향후 거취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해요. 스테이에 더 머물게 될 수도 있고 프랑스로 가거나 한국에 남게 될 수도 있지요. 그게 어느 곳이든지 결정적인 것은 내 가게를 여는 일입니다. 스테이는 제 이름의 레스토랑을 열기 전 마지막 행선지에요. 저의 것을 찾아가는 마지막 미션이죠.



메뉴 설명



1 주니퍼 베리를 우려낸 따뜻한 올리브 오일에 찐 가리비, 팽이버섯, 렌틸을 올린 요리이다.



2 ‌오렌지 껍질을 활용한 설탕 크러스트에 오리구이를 한다. 토마토, 당근, 샐러리, 조개를 모에샹동 샴페인으로 우려낸 조개 스프와 멸치, 마늘, 오일, 칼라마타 올리브를 곁들인 오리 콘소메를 잘라서 제공한다. 무, 아스파라거스, 은행, 동충하초를 넣어 프랑스식으로 재해석한 오리 타르타르 비빔밥은 근대와 함께 서브한다. 비빔밥 소스는 기존 고추장과는 다르게 양파, 바질, 서양 모과, 레몬과 사과를 넣어 상큼한 맛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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