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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컬리너리

[The Chef] "과거는 비워내고 현재의 나를 담는 시간" 앙스모멍, 토니정 셰프


크라우드 펀딩의 목표치를 연달아 달성하며 화제에 오른 앙스모멍의 토니정 총괄 셰프를 만났다. 열아홉 살에 신라호텔에 최연소 입사하고 군 제대 후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서울에서 호텔 셰프의 꿈을 키우던 젊은 청년이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 주방 밑바닥부터 경력을 쌓았고 미쉐린 레스토랑의 수셰프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제 막 라인쿡 자리에 섰지만 영어 실력이 부족해 접시닦이로 내몰렸고 버스기사의 말벗이 되어 가며 어깨너머로 영어를 익혔다. 주방 일을 말보다 몸으로 먼저 익힌 탓에 그의 눈치는 한 마디 말보다 빨랐다. 르 꼬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르 시르크, 르아뜰리에 조엘 로부숑, 르 포치, 노마 레스토랑 등 유명 레스토랑에서 커리어를 쌓아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는 화려함 보다 소박함을 택했다. 못질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아담한 곳에 문을 연 동네 가게, 그곳에서 셰프의 파인다이닝은 시작된다.


* ‌크라우드 펀딩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


“크라우드 펀딩, 경험에서 비롯된 신중한 결정해야...
셰프의 신념과 의지도 중요”


방송 출연도 그렇고 이제 앙스모멍이 총 3개가 되면서 많이 바빠졌겠어요.
네. 오전에도 수지에서 촬영이 있어서 바로 넘어오는 길이예요. 제가 방송체질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해요. 이제는 앙스모멍 3호점도 오픈해서 신경 쓸게 더 많아졌죠. 그래도 주방에 있을 때가 더 편해요. 사람들이 저보고 스타 셰프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제 조금 알려진 셰프일 뿐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레스토랑의 멋진 맛을 알리고 싶어요.


3개 지점을 돌보고 계신데, 간단히 매장 소개를 해주세요.
원래는 종로점만 관여하기로 했다가 3개 지점을 총괄하게 됐어요. 신사점으로 합류하게 된 건 1년이 조금 지나서였고요. 신사점은 이미 와인애호가들에게 유명한 곳이라서 단품요리 위주로 메뉴가 구성돼 있어요. 와인 품종에 따라 페어링 되는 메뉴들이죠. 종로타워점은 한국의 로컬 푸드를 프랑스 조리기법으로 만든 파인다이닝으로 저만의 퓨전 레스토랑입니다. 홍대점은 스테이크 하우스에요. 아직 주방 리뉴얼 공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장작을 피워 직화로 굽는 리얼 우드 스테이크 하우스로 자체 숙성한 드라이에이징 소고기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각 매장마다 콘셉트도 다르고 반응도 좋다면서요? 이대로라면 4호점, 5호점도 기대해볼만 한데요.
사실 1호점인 신사점은 콜키지 프리로 유명한 ‘와인 레스토랑’으로 알려져 콘셉트 잡기 애매한 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음식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하고 와인과 매칭이 좋은 메뉴를 선보였더니 와인 애호가 분들도 많이 찾아주시고 매출도 많이 올랐지요. 2호점인 종로타워점은 메인 고객인 인근 오피스 고객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편안한 파인다이닝을 생각하고 만들어 매우 성공적으로 콘셉트가 잡힌 것 같아요. 여세를 몰아 홍대에 3호점을 오픈한 지 한 달 남짓 됐네요. 호텔 내에 입점해 있어 호텔의 조식기능도 담당하는 올데이다이닝인데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일본, 아메리칸 등 다양한 스타일의 조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을 전후로 일본 교토에도 앙스모멍을 오픈할 계획인데요. 알맹이는 재래식의 전통 한식이고 디자인만 프렌치로 덧입힐 새로운 한식을 소개할 겁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경상도, 전라도 등 우리나라 향토 음식을 코스별로 나누고 여기에 어울리는 와인과 전통주 칵테일을 매칭 시킬 방법도 구상하고 있어요. 그 다음은 뉴욕으로 진출하고 싶어요. 


요즘 크라우드 펀딩이 외식업계의 화두인데요. 올해 앙스모멍 3호점을 오픈하면서 크라우드 펀딩의 목표치를 연이어 달성했다던데 비결이 뭐죠?
크라우드 펀딩은 종로점부터 시작했어요. 업체에 제안 받아 수익 배분형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게 됐는데 처음엔 반대했어요. 투자자가 생긴다는 건 그만큼 간섭을 받아야 할 게 많아진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아이디어는 좋은데 자본금이 없어 경제적으로 힘든 회사가 많잖아요. 이런 곳에 크라우드 펀딩이 획기적인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앙스모멍 종로점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작해 성장하게 된 케이스에요. 다른 지점에 비해 테이블 수는 적고 인건비 등 조건은 타 매장과 같은데 매번 매출이 두 배 이상을 기록해요. 지금은 앙스모멍의 얼굴이 됐을 정도로 고객 만족도가 큰 매장이 됐어요. 파인다이닝의 문턱을 낮춰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한편 인테리어나 음식에 신경을 썼는데 좋은 점수를 얻은 것 같아요. 종로점의 수익률도 안정되고 이후 홍대점을 오픈하면서 크라우드 펀딩 1차 목표액 1억 원을 거뜬히 달성하고 이후 3억 5000만 원까지 증액시켜 투자받게 됐어요.


셰프들 사이에서 투자자에 의한 레스토랑 실패 사례가 많이 발생하다보니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만큼 규제도 많이 풀렸고요. 하지만 마냥 좋을 수는 없을텐데요.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1000%의 확고한 의지가 있더라도 목표액 달성이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거든요. 3~5년 오너 셰프를 하다가 열정만으로 크라우드 펀드에 도전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요. 레스토랑 운영 능력을 시험대에 올렸을 때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열정이 능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에요. 사실 셰프가 음식하면서 매장 관리를 체계적으로 잡기 힘들어요. 조그만 매장이라도 10년 이상 운영해야 비로소 안정감이 생길 수 있지요. 또 하나는 셰프의 요리에 대한 신념과 의지라고 생각해요. 투자자들에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야 신뢰를 줄 수 있어요. 앙스모멍도 이런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1년여 시간을 준비했어요. 레스토랑의 브랜딩을 위한 작업이었지요. 이런 가능성을 보고 많은 와인 애호가 분들이 투자자가 돼 주셨어요. 


앙스모멍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잖아요.

이름만으로 프렌치 레스토랑인 줄 알았는데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 다양한 요리를 볼 수 있어요. 레스토랑의 정체성이 뭔가요?
레스토랑의 정체성은 바로 셰프입니다. 다시 말해 셰프를 믿고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선보이는 게 제가 추구하는 앙스모멍이에요. 평소 안 먹던 재료도 “먹어보니 괜찮네?”라는 감탄이 나올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과거에는 한식, 중식, 일식, 서양식 등 요리의 장르를 구분했지만 점차 요리에 사용되는 식재료가 다양해지고 구할 수 있는 루트도 광범위해지면서 더 이상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해졌어요. 이는 오히려 고객에게 지루함을 줄 뿐 아니라 요리를 구현하는데 한계에 부딪치게 하지요. 홍대점의 경우 조식에 베트남 포, 인도네시아 나시고랭, 아메리칸 스타일 팬케이크, 일본 숙성연어 덮밥 등 다양한 장르의 요리가 제공되는데 호텔 투숙객 뿐 아니라 홍대를 찾는 외국인 고객들의 방문도 많아요. 주방 직원들도 고기만 하루 종일 구우면 지루할 텐데 여러 가지 경험을 쌓게 되니 재미있게 일할 수 있고요.


듣고 보니 셰프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은데 정 셰프님이 추구하는 요리 스타일도 궁금해요.
재료가 가진 순수한 맛을 강조해요. 신사점의 시그니처인 감바스는 아르헨티나 민물새우를 껍질 째 사용하는데 올리브오일, 마늘, 새우가 들어가는 전부예요. 새우의 내장과 머리에서 전해지는 순수한 맛을 끌어내기 위해 껍질만 살짝 벗기고 불필요한 가공은 걷어내 새우의 맛을 굉장히 진하게 느낄 수 있어요. 또 샤토브리옹 스테이크는 자연방목의 특별한 사육프로그램으로 키워진 미국산 CAB 소고기를 사용해 고기의 누린내가 적어요. 한국의 고객들은 고기에 핏기가 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오븐이 아닌 무쇠 솥에서 정제된 오일로 팬프라이해 핏기가 돌면서도 단맛이 느껴지는 독특한 감칠맛을 살렸어요. 컴플레인도 거의 없고요. 맛있는 스테이크의 조건을 맞추는데 반드시 와규나 프라임 비프여야 할 필요는 없어요. 마블링을 떠나 소가 얼마나 건강한가에 따라 스테이크의 맛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재료가 가진 장점을 끌어내는 게 셰프의 역할이 아닐까요? 


“꿈을 현실로”


이제 정 셰프님 이야기를 좀 들어보죠.

화려한 이력을 가지셨는데, 한국에 정착하신 게 2년 전인가요?
마지막 근무지인 덴마크의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노마(NOMA)를 떠나 2년 전 귀국해 목동에 자그마한 가게를 열었어요. 불어로 휴일이라는 뜻의 디망슈. 인테리어도 직접하고 테이블웨어나 집기 하나하나 발품 팔아 정성들여 준비했어요. 덴마크의 느낌을 살려서 코스요리를 선보인 파인다이닝이었는데 요리 수준은 높였지만 가격을 낮춰 누구나 편안하게 들러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랐지요. 그런데 파트타임 직원 1명과 저 단 둘이서 모든 것을 하려니 장사가 잘 되도 너무 힘든 거예요. 몸무게가 12kg이나 줄었을 정도로요. 그 때 앙스모멍의 이원준 대표님이 가게로 찾아와 처음 만나게 됐는데 삼고초려 끝에 영입됐지요.


레스토랑 노마는 로컬푸드, 그 중에서도 특이한 야생 식재료를 사용하기로도 유명한 세계 레스토랑 랭킹 1위에 오른 곳이기도 하죠. 이곳에서의 경험이 셰프님에게 어떻게 영감을 줬나요? 또한 지금의 모습에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꼽는다면 누가 있을까요?
르 아뜰리에 조엘로부숑에서 일할 때입니다. 셰프 조엘로부숑은 후각이 예민해 냄새를 맡으면 음식에 뭐가 들어갔는지 다 알아낼 정도였어요. 완벽하지 않으면 음식을 내보내지 않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했고요. 그 때 저는 ‘어설프게 요리하는 것은 더 이상 안되겠구나’라고 느꼈어요. 셰프마다 스타일이 다르지만 자기만의 요리를 만든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을 쌓으면서 자기가 배운 그대로를 넘어 창조하는 것, 특히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지요. 저 역시 한계점에 부딪힐 때가 많지요. 내가 하고 있는 게 다는 아니니까요.


노마에서의 경험은 재료 본연의 맛을 이끌어내는 테크닉을 배울 수 있게 했어요.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직접 산에 가서 나물을 캐 요리하시잖아요. 어느 레스토랑이든 이 맛을 따라 잡을 수 없어요. 그래서 노마에서는 직접 재료를 채집해요. 레스토랑 직원의 절반이 채집팀일 정도로 재료에 상당히 공을 들이죠. 그것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덴마크 전통 식재료의 맛을 내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게 한 비결라고 생각해요.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한국에서 호텔업계에 몸담으셨죠? 그것도 신라호텔 조리팀에 최연소 입사하셨는데 굳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험난한 미국행을 택하신 이유가 뭐예요?
열아홉 살에 신라호텔 연수원에 들어가 6개월 후부터 일식당 아리아케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당시 주방 분위기는 굉장히 엄했는데 어린 마음에 무섭고 삼엄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옮긴 곳인 프렌치 레스토랑 콘티넨탈이었고 영어와 불어를 같이 쓰다 보니 더 복잡해졌어요. 입사한지 2년 후, 입영통지서와 함께 퇴사하고 제대 후엔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서울의 스테이크 하우스 더 스퀘에서 근무하게 됐어요. 3, 6, 9, 11의 규칙 아시죠? 직장생활의 슬럼프 주기인데, 6년쯤 되다보니 요리를 잘한다는 착각이 들지 뭐예요. 제가 넘어야 할 한계점을 뛰어 넘고 싶었어요. 게다가 양식당에만 있다 보니 해외 경험이 없으면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호텔 주방은 너무 고립된 데다가 시야를 넓힐 수 있는데 한계가 있었거든요. 마침 연수원 시절 친한 형이 미국을 간다기에 무작정 따라 나선 길이 가시밭길인 줄은 경험하기 전엔 몰랐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죠. 가시밭길 끝엔 성과도 있었겠지요?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언어장벽이 너무 높았어요. 영어를 전혀 못했거든요. 라인 쿡으로 배정받았다가도 디시워시로 내몰린 적도 있어요. 그래서 메디슨 파크의 순환 버스를 타고 다니며 버스 기사님과 말벗하며 어깨너머로 영어를 배웠어요. 일하다가 쫓겨나기도 여러 번... 하지만 갈 데가 어디 있어요. 죽더라도 여기서 죽어야지 생각하면서 망부석처럼 떠나지 않으니 결국엔 동양인인 제가 뉴욕의 미쉐린 레스토랑 르씨르크의 수 셰프 자리에 오르게 되더라고요. 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니 눈치로 주방 일을 배웠다고 해야겠네요. 가끔 저에게 불어로 설명해달라는 손님이 있는데 영어나 불어보다 한국말이 편한 그냥 한국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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